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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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위험한 ‘초짜’ 포퓰리스트 “주문하는 게 맞나 싶지. 일자리도 좋지만, 과로는 안 되니까. 근데 새벽배송이 필요할 때가 있거든.” 새벽배송 활용 경험에 관한 질문에 돌아온 답인데 관련자들의 일자리, 노동권, 편익 사이의 ‘균형’에 대한 고민이 느껴진다. 사실 이 고민은 정치의 몫이다. 다양한 입장과 요구, 상충하는 권리들 사이에서 균형을 기대받지만, 정치인들은 요즘 한쪽에만 편승하는 ‘두 개의 국민체제’를 부추겨 포퓰리스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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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남성 ‘역차별’에 대응 지시? 미국과의 관세협상 등 여러 현안으로 골몰하실 때, 공개서한 드리게 됐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님께도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 직접고용 시사 후 발뺌한 문제로 글을 썼었지요. 이처럼 민주당 출신 대통령께만 공개서한을 적는 것은 민주당에 대한 어떤 희망에서일 겁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님의 시각이, 진보 측 정치인이 자기 진영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했던 ‘해일 오는데 조개 줍냐’ 같은 것은 아닐지 우려되기도 합니다. 대통령 지시로 성평등가족부가 남성 ‘역차별’에 대응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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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5세 고시’ 사회의 교육개혁 이공계 대학생도 어려워하는 수학 문제를 푸는, 최근 방영된 다큐멘터리의 ‘5세 고시반’ 아동의 모습은 기괴하다. 공교육의 존재감은 없어진 지 오래고, 한국적 교육열의 멸칭 ‘치맛바람’은 수십년째 진화를 거듭해 엄마들은 이제 학령기 이전의 아이까지 ‘공부 기계’로 만들며 마침내 학대와 다르지 않은 ‘5세 고시’에 이르렀다. 교육부총리 임명이 정권마다 순조롭지 않은 상황에서, 이 병적인 현상을 놓고 대입 전형방식 다양화나 인공지능(AI) 교과서 등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이 아닌, 근본적 해법을 내놓을 교육 전문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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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선진 시민들의 여전한 자괴감 담 하나를 두고 안팎의 ‘공기’가 전혀 다른 곳이 있다. 대표적으로 학교와 군대가 그렇다. 담 밖에선 당연한 일이 담 안에선 지적과 처벌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공들여 바른 립스틱을 서둘러 지우는 중고등학교 앞 아침 풍경이나, 상급자에게 비현실적 목소리로 관등성명 대는 군대 하급자의 모습은 학교와 군대가 담장 너머 사회와 매우 다른 공간임을 말해준다. 학생인권조례 시행과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는 말로 공기가 바뀐 듯했으나, 최근 학생인권조례의 잇단 폐지와 드물지 않은 군내 (성)폭력과 죽음은 대한민국 학교와 군대가 아직도 바깥 세계에 견줘 ‘딴 세상’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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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정부 내 야당 같은 여가부이길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한 대통령 파면의 교훈은 모두 ‘제자리’를 찾는 이때 되새김직하다. 1995년 베이징 유엔 세계여성대회 성 주류화 채택에 따른 한국의 2001년 여성부 신설은 유엔의 성평등 확산 의지에 대한 동참 약속이다. 국가의 약속을 깨려던 그 공약은 그러므로 ‘틀렸다’. 현재 여가부의 확대·개편이 논의 중이라니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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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동덕인 여러분, 고맙습니다 성별, 세대, 신체조건 등의 ‘다름’으로 구성원을 가르고, 그중 약해 뵈는 편을 향한 멸시로 다른 한편의 표를 주워 온 그가 이번 대선의 후보까지 됐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게다가 무려 8%대의 지지를 얻었으니 머잖아 트럼프 같은 괴물을 한국도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계엄 전 명태균과 엮여 이름이 오르내리자, 동덕여대 학생 시위를 ‘비문명’으로 낙인찍으며 관심을 피하려 했지만, 그것 역시도 여성에 대한 폄훼로 남성 청년의 표를 낚으려는 속셈임을 아는 이들은 다 안다. 동덕여대 시위는, ‘쥐뿔도 모르면서’ 권력에만 눈이 벌게진 마흔의 정치 선동가에 의해 날조될 만한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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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누칼협’ 없다면 ‘동의’인가? “점심 맛있는 걸로 합시다. 뭐 먹을까요?” 교내 기관의 신입 직원에게 환영의 뜻으로 물었다. 그런데 “어차피 교수님 원하는 메뉴로 정하실 거면서…”라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그의 전임자가 업무 인수인계로 남긴 나에 대한 귀띔 중 하나가 “점심 메뉴 물어보기만 하고, 결국 본인이 원하는 걸로 정한다”였다는 걸 나중에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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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좌와 우가 악수하는 곳, 성차별 “A와 B는 같은 학과에서 어떻게 그리 잘 지냈대?” 내가 있는 학교의 교수 A와 B를 언급하며 몇년 전 지인이 했던 질문이다. 이 둘은 사회적으로 이름난 교수인데 A는 ‘이른바’ 진보, B는 ‘이른바’ 보수 정권의 대통령 인수위나 전략기획팀에 영향력이 꽤 크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지인은 정치적 신념이 딴판인 A와 B가 어떻게 같은 학과에서 갈등 없이 지냈는지 물어본 것이다. “정치 지향적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달라 뵈는데, 젠더 관점에서 보자면 그 둘은 아주 똑같거든.” 망설임 없는 나의 즉답에 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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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제자리’를 찾는 풍경 부패한 독재자 타도가 곧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1970~1980년대를 지나는 동안,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독재 타도!”에만 투영했기에 민주주의의 장애물이 오직 독재(자)인 줄로만 알았던 탓이다. 독재(자) 종식 후에 올 일상과 관계에서의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해 상상하지 않았기에, 민주화의 ‘주역’이자 ‘586 가부장’ 정치인들은 2017년 광장에서 그들과 함께 촛불정권을 탄생시킨 여성들의 목소리를 법과 정책에 반영하기보다, 집권기 내내 집안을 망하게 할 ‘암탉의 울음’쯤으로 치부했다. 당 지지율이 흔들릴 때면 자신들의 부족한 정치력을 돌아보기보다 여성가족부와 산하 기관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며 으름장 놨다. 그랬기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황당한 주장과 ‘여.성.가.족.부.폐.지’라는 더 황당한 공약 앞에 겨우, 그러나 당연하게도 5년 만에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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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스스로 생각 않는 청년의 의미 ‘스카이’로 추켜세워진 대학교 일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어깨 펴고 다녔을 그 캠퍼스에서 대통령 탄핵 반대 성명서를 읽고 시위했다. 민주사회 시민에게 지금의 대통령 탄핵 심판은 수개월의 재판 시간도 아까울 만큼 간명한 문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그대로, 불콰해진 얼굴의 그가 TV에 나와 별안간 계엄을 선포하고, 여의도 하늘로는 연신 헬기가 날아들더니, 곧이어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쳐들어가는 ‘난리’를 생생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뒤이은 포고령은 정적에 대한 ‘종북몰이’를 일삼던 자들이 오히려 북한을 ‘추앙’하듯 써 내려간 망나니의 언어로 꽉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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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몽매한 망상이 활보 못하게 학생들에게 줄곧 상상력이 지성이라고 말해왔다. 독서와 토론, 경험과 성찰을 토대로 공동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 풍부하고 구체적인 상상력을 기르는 것이 고등교육 수혜자의 시민적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부, 경험, 성찰로 구체화되는 상상력의 반대편에는 무지한 망상이 있다. 망상을 장착한 사람은 당면한 문제 앞에서 곧잘 자신을 피해자로 착각하는 자기연민에 빠지고, 자기보다 취약한 존재를 발명하듯 찾아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등 자주 비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