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국제노동기구 ILO 수석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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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피하지 못하는 사람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봄꽃이 터지듯 피어오르던 로마를 떠나던 날, 테헤란에는 폭탄이 쏟아졌다. 나는 간드러진 봄바람 속을 가로질러 공항으로 향했고, 다른 누군가는 폭탄이 떨어지는 두바이 공항에서 필사적으로 빠져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계절은 제시간에 도착하는데, 인간은 번번이 제정신에 도착하지 못한다. 전쟁이 시작되면 넘쳐나는 것은 피란민만이 아니다. 말도 함께 넘쳐난다. 패권, 억지력, 안보, 자유. 텔레비전 화면 아래로 흘러가는 그 단어들은 하나같이 크고 단단하다. 마치 세상의 운명이 정말 그런 말들 사이에서 결정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말들은 한결같이 파괴와 죽음을 가리키면서도 어김없이 평화와 생존의 이름으로 발화된다. 살육을 계산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인간의 오래된 습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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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이 세계 통역되나요? 오늘도 통역기를 낀다. 스페인어 통역사는 두 명인데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한쪽은 손짓까지 섞는 열정의 라티노이고, 다른 한쪽은 늘 무덤덤하다. 한쪽은 같이 흥분하고 울부짖지만, 다른 쪽은 감정의 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그래서 통역기가 들려주는 말은 원뜻과 전달자의 체질이 뒤섞인, 탁하지만 발랄한 소통의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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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설명 뒤에 숨을 때 우리는 설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보고서는 두껍고, 진단은 정교하며, 문제의 원인은 빠짐없이 정리된다. 통계는 늘 최신이고, 그래프는 점점 세련된다.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런데 그다음 장면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결정이 없다. 책임도 없다. 책임을 물을 때마다 설명은 늘어난다. 그리고 그 설명은 거의 언제나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시스템 탓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선택 탓이다. 구조가 문제이거나, 개인의 판단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갈래 설명이 등장하는 순간, 결정의 순간은 마법처럼 사라진다. 누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왜 그 선택이 가능했는지는 모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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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낡은 문장에서 해방되려면 세상일이 내 뜻 같지 않을 때 나는 흐릿한 미래보다는 제법 선명해 보이는 과거를 돌이켜 보곤 한다. 저렇게 또렷한 옛길도 많은 사람들이 수상한 안개를 뚫고 수고스럽게 걸어 온 덕분에 생겼다. 지금 당연한 것이 과거에는 격렬한 의심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면, 가망 없이 갈라져 가는 오늘을 낙관할 힘이 불쑥 솟아나곤 한다. 그래서 오래된 문장이 그럴듯한 새 옷을 입고 우리 주위를 배회할 때면 나는 오히려 반갑다. 나아갈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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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나침반에서 새벽배송까지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 없는 곳을 다녀온 여행을 회고하는 토머스 모어는 궁여지책으로 유토피아를 저 아득히 멀리 있는 섬으로 묘사했다. 설정 자체가 역설적이니, 모어는 그 역설을 대수롭지 않은 듯한 문체로 밀어붙였다. 나침반 얘기가 그렇다. 유토피아의 섬에는 나침반이 없었다. 파도 잔잔한 여름에만 항해했다. 어둡고 바람 불고 추운 날에는 엄두도 내지 않았다. 낯선 외지인이 나침반을 소개해 주자, 섬사람들은 당연히 열광했고 더 이상 어둠과 겨울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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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실감나는 적’을 찾아서 모든 시대에는 경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선을 긋고, 안과 밖을 나눈다. 선을 긋는 행위는 언제나 단순하고, 그 단순함은 안도감을 준다. 선이 명확할수록 안쪽은 더 안전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언제나 “경계가 분명한 공동체(bounded community)”를 향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공동체는 위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안쪽의 질서를 지키려면, 언제나 바깥의 혼란이 필요하다. 적이 사라지는 순간, 내부의 결속도 함께 무너진다. 그들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적이 사라지면, 새로운 적을 찾아 나선다. 마치 사라진 신을 대신해 새로운 신을 만드는 신학자처럼. 의도라기보다 습관이며, 습관이라기보다 거의 반사에 가깝다. 인류의 오래된 방어기제가 정치의 본능으로 굳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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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부쳐지지 않은 편지, 카프카가 트럼프에게 저는 프란츠 카프카입니다.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제 소설 하나쯤은 들어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아마 <변신>은 아시겠지요. 다만 제가 생각하기엔, 당신에게는 오히려 <심판>의 풍경이 더 친숙하겠습니다. 그 끝의 외침 “개 같군”은 당신이 즐겨하는 표현과도 닮아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치열하게 불화했습니다. 사사건건 부딪쳤고, 삶의 중요한 길목에서 날카롭게 대립했습니다. 마흔 즈음, 뒤늦게 화해를 시도하려 했습니다만, 사람이 쉬운가요. 말로는 못하고 결국 한 통의 긴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차마 직접 전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해달라 부탁했지요. 어머니는 그 편지를 남편에게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곧 세상을 떠났으니, 그 편지는 ‘부쳐지지 않은 편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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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죽어도 안 된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1967년 9월3일. 이날은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는 우측통행을 시작했다. 오전 9시에.” 스웨덴 여성 청소노동자 마이아 에켈뢰브의 일기 속 이 구절은, 아무런 수식어도 없이 쓰였지만 사실상 혁명 선언문이었다. 그날 아침, 스웨덴은 교통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꾸었다. 수천년간의 관습, 100만대 차량의 습관, 온 국민의 몸에 밴 ‘왼쪽 본능’을 뒤집은 날이었다. 그것도 단 몇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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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잠이 보배다 어릴 적 나는 시골 외갓집에서 늦잠을 자곤 했다. 점심밥 때가 다 되어도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좀 미안해졌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잘했다, 잠이 밥이고 잠이 보배다. 그때 나는 그 말이 그저 한 노인의 다정한 위로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 보니 그 말이야말로 보배였다. 잠이 정말 밥이고, 밥보다 나을 때도 있었다. 할머니는 당시 이미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감춰진 베개’의 가치를 알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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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남자들 ‘가정의 달’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불안해진다. 이 문구는 늘 희생을 요구한다. 남자로서 부인하고 싶지만, 그 희생은 대개 여성의 몫이다. 정책은 가족을 위한 것이고 복지라고 써놓았지만, 정작 남편들은 그걸 ‘자기개발비’쯤으로 해석하는 일도 많다. 사실, 이런 일은 오래전부터 그랬다. 50년 전 독일에서는 아이 옷을 사라고 지급한 아동수당이 이상하게도 아빠들의 양복값으로 증발했다. 정부는 놀랐고, 곧장 수령인을 엄마로 바꿨다. 그러자 수당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 아이들 옷장에 안착했다. 학계에선 “복지의 도착지 오류”라는 기괴한 개념을 만들었고, 가정 내 자금 흐름의 오묘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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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민주주의는 방귀다 내게 사전은 늘 비장하거나 곤혹스러운 물건이었다. 어릴 적 한글사전은 세종대왕의 분투와 일제강점기 한글학회의 외로운 투쟁을 떠올리게 했다. 사전을 넘길 때마다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비장함이 있었다. 중학생 때 처음 받은 영어사전은 이름이 ‘콘사이스(Concise)’였지만 전혀 간략하지 않았다. 두툼한 사전을 잘근잘근 씹어먹듯 외워야 한다고 해서 몇번 입에 넣었지만 단어는 머리에 남지 않고 항문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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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마지막 선거라는 마음으로 이젠 못 보겠제. 버스에 타고 떠나는 내게 손을 흔드는 외할머니의 몸짓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구부정해져버린 허리 탓에 걷기조차 힘들었지만, 동네 어귀까지 나와서 손자의 손을 어루만지고 버스가 떠난 후에도 그곳에 오랫동안 앉아 계셨다. 할머니에게 우리 만남은 늘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주었다. ‘운 좋게’ 손자를 다시 보면 다시 마지막인 양 온 힘을 다했다. 나는 그걸 몰랐다. 때로는 귀찮다는 듯 할머니 손에서 서둘러 내 손을 빼냈다. 마지막인 줄도 몰랐던 마지막이 머지않아 다가왔고, 버스 뒤편에 이젠 외할머니가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나는 슬퍼했다. 왜 달리 마지막이라고 하겠는가. 되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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