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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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남자들 ‘가정의 달’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불안해진다. 이 문구는 늘 희생을 요구한다. 남자로서 부인하고 싶지만, 그 희생은 대개 여성의 몫이다. 정책은 가족을 위한 것이고 복지라고 써놓았지만, 정작 남편들은 그걸 ‘자기개발비’쯤으로 해석하는 일도 많다. 사실, 이런 일은 오래전부터 그랬다. 50년 전 독일에서는 아이 옷을 사라고 지급한 아동수당이 이상하게도 아빠들의 양복값으로 증발했다. 정부는 놀랐고, 곧장 수령인을 엄마로 바꿨다. 그러자 수당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 아이들 옷장에 안착했다. 학계에선 “복지의 도착지 오류”라는 기괴한 개념을 만들었고, 가정 내 자금 흐름의 오묘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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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민주주의는 방귀다 내게 사전은 늘 비장하거나 곤혹스러운 물건이었다. 어릴 적 한글사전은 세종대왕의 분투와 일제강점기 한글학회의 외로운 투쟁을 떠올리게 했다. 사전을 넘길 때마다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비장함이 있었다. 중학생 때 처음 받은 영어사전은 이름이 ‘콘사이스(Concise)’였지만 전혀 간략하지 않았다. 두툼한 사전을 잘근잘근 씹어먹듯 외워야 한다고 해서 몇번 입에 넣었지만 단어는 머리에 남지 않고 항문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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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마지막 선거라는 마음으로 이젠 못 보겠제. 버스에 타고 떠나는 내게 손을 흔드는 외할머니의 몸짓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구부정해져버린 허리 탓에 걷기조차 힘들었지만, 동네 어귀까지 나와서 손자의 손을 어루만지고 버스가 떠난 후에도 그곳에 오랫동안 앉아 계셨다. 할머니에게 우리 만남은 늘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주었다. ‘운 좋게’ 손자를 다시 보면 다시 마지막인 양 온 힘을 다했다. 나는 그걸 몰랐다. 때로는 귀찮다는 듯 할머니 손에서 서둘러 내 손을 빼냈다. 마지막인 줄도 몰랐던 마지막이 머지않아 다가왔고, 버스 뒤편에 이젠 외할머니가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나는 슬퍼했다. 왜 달리 마지막이라고 하겠는가. 되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후회해봐야 소용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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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 어떤 불굴의 정신 움베르토 에코는 이탈리아에서 은밀하게 꿈틀거리던 파시즘과 싸웠다. 싸움이라는 표현은 사실 옳지 않다. 그는 웃으면서 화내는 법을 고민했다. 인간을 말살하는 잔인함에는 당연히 정색하며 분노해야 하지만,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웃으며 화낼 수 있다. 그런데 쉽지 않다. 성격이나 재주 탓이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나를 비웃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에코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달리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것은 양식(bon sens)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적어도 어리석음에서는 인간은 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