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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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이동 먼 친구에게 지금 네 시계는 오전 5시 반을 가리킨다. 우리는 반나절만큼 떨어져 있다. 타국에서 너는 이제야 생일을 맞는다. 그곳의 아침은 열일곱 시간 느리게 시작된다. 너는 두 나라를 오가느라 시계 두 개를 몸에 새겼다. 그러다 많은 게 고장 났지만 생일을 두 번씩 축하받게 되었다. 집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져 그것이 전생처럼 느껴질 즈음 생각한다. 집이라는 개념은 시간과 함께 움직여서 한곳에 머문 적 없었다. 어떤 집은 꿈쩍도 하지 않았기에 사라진다. 그럼 어디부터 바깥이라 부를까. 빗겨간 자리와 찾아오는 행운 사이로 새로운 자세를 찾고 있다. 사람으로부터, 말로부터, 싫어하는 표정으로부터, 좋아하는 식당으로부터 일부를 길어올린다. -
느린 이동 과거와 미래를 교환하기 얼마 전엔 다른 나라 무대에서 낭독회를 가졌다.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칭다오 국제학교 학생들에게 나의 한국어 시를 낭독하고, 그 시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였다. 한글로 읽은 문장은 자막을 통해 중국어로 화면에 보였다. 그들에게 물었다. “피곤하지 않나요? 계속 언어 사이에서 뛰어다니는 거.” 나는 오랫동안 이민자로 살았고, 칭다오에는 이주 경험이 많은 시민이 다수다. 발 딛는 터전뿐 아니라 오가는 언어도 땅이다. 타국어든 방언이든 여러 땅을 오가야 하는 삶은 수고롭다는 이야기를 두 언어를 오가며 전했다. 오랜만에 영어로 이야기하는 나는 조금 긴장했고, 한국어와 영어에 서툰 청소년 관객들은 서로 속닥댔다. 객석에는 반짝이는 눈으로 무대를 보는 독자도 있었지만 그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
느린 이동 섞이는 땀과 정신 한 사람은 폼 롤러 위에 누워 부지런히 위아래로 전신을 움직인다. 다른 한 사람은 일찌감치 침대에서 전자책을 읽다 눈이 감긴다. 그의 손에서 흘러내린 e북 리더기를 침대 맡에 두고 램프를 끈다. 잘 시간이다. 파트너는 서로의 잠을 목격하는 자들이다. 몸을 맞대고 누워 각자가 짊어진 무의식을 헤매느라 분주한 날도 있지만, 육체를 나란히 두고 밤을 통과한다. 이불을 나누어 쓰는 타인은 대체로 신뢰하는 자다. 가장 취약한 나를 열어 둔 사이니까. -
느린 이동 고지서 흰 슬라이딩 침대 위에 눕는다. 간호사 선생님이 굵고 딱딱한 바늘을 팔뚝에 꽂자 팔꿈치 근방부터 몸이 뜨거워진다. 조영제가 들어오는 중이다. 혈관 속 피를 야광 물질처럼 밝히는 약물이다. CT 장비실에 사전 녹음된 음성이 울려 퍼진다. “숨을 들이켜세요.” 숨을 한가득 머금자 누워 있던 슬라이딩 침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숨을 참으세요.” -
느린 이동 도깨비불 어떤 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홀린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내가 여러 채의 세계로 뒤엉킨 불씨라는 걸 기억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깊숙이 들어와, 헤집고 지피고 비추는 존재들이. 그들을 도깨비라고 불러보자. 도깨비들은 어딘가 툭 튀어나와 있다. 분명히 하나의 불빛이었는데 어느새 다른 색을 띠고 있다. 또렷하고 동시에 취약하다. -
느린 이동 층이 다른 팬케이크 취향이라는 단어가 자주 유통되는 걸 본다. 어디까지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음만 먹으면 모두가 모든 정보와 모두의 선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 시대에. 자원이 너무 많아졌다. 정보를 다루는 도구도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다 읽지 않아도 인공지능(AI)이 나를 대신해 논문과 책의 내용을 요약해주고, 1시간이면 10여분짜리 몰아보기 영상으로 네다섯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콘텐츠가 N차 창작물로 웹에 남는다. 웬만한 자원은 집에서 열람 가능한 ‘하이퍼 리소스’ 시대가 왔다. -
느린 이동 공중 뿌리 “가족이라는 바깥” “팝업 행사와 닮았다” “취약한” “다시 지어지는” “공간이나 사물은 한동안 집이 된다” “무엇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나”. 집을 떠올리자 산발적인 표현이 쏟아진다. 어떤 단어는 이어지고 몇 문장은 멀어서 다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 같다. 집이 내 안에 그렇게 남았구나. 여기저기 동시에. 찢어진 채로. 여러 번 허물어지고 다시 구축되며, 뼈와 살이 서로를 뒤덮은 채로. -
느린 이동 시간의 목격자들 한산한 도로에 가로등이 일제히 켜진다. 바다가 밀려가고 쓸려온다. 해협을 훑고 간 빛이 내 방 오래된 거울에 쏟아진다. 작년 여름 같은 거울에 조금 다른 빛이 걸려 넘어졌다. 그런 데서 시간을 알아차리게 된다. 우리는 어딘가로 흐르고 있다. 어젯밤에도 같은 꿈을 꿨다. 그 문턱에서 나는 매번 고꾸라진다. 어떤 시간은 실패다. 나를 비집고 나와 밤을 팽창하는 실패들. -
느린 이동 미래로 사라지기 몸도 마음도 쉽게 덜컹인다. 연이은 마감 탓에 비슷하게 느끼던 짝꿍에게 문자가 왔다. “분명한 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다는 거야.” 고갤 들어 두산아트센터 건너편에 자리한 층층나무를 본다. 서른 살 넘어 보이는 나무의 몸이 위아래로 천천히 휜다. 길고 얇은 외로움처럼. 배가 지나간 강물처럼. 오월에는 적게 쓰고 많이 말했다. 연습실에서 매일 아홉 시간씩 보내는 동안 봄이 흘렀다. 연극이 올라갔다. -
느린 이동 새 벽과 천장 100여명이 겨우 드나드는 협소한 기차역에 들어선다. 곧 철거 예정이라고 한다. 기차역에서 지난 세 달간 만든 연극을 생각한다. <엔들링스>. 최후의 개체들이란 뜻이다. 왜 연극이 떠올랐을까.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철거되는 그것을 꿋꿋이 응시하는 창작자들이기 때문이었을까. 수십명이 설계한 그 작업 또한 곧 사라질 예정이기 때문일까. -
느린 이동 눈을 감았다 뜨면 헤엄을 무서워하는 뒤통수가 보인다. 뛰어드는 자세를 취했다가 허리를 이내 곧추세운다. 망설이는 게 틀림없다. 어쩌면 저건 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강을 향해 몸을 던진다. 수면이 종잇장처럼 구겨진다. 제 몸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인간을 들일 때도, 강은 울린다. 첫 진동은 더 작은 파동으로 이어진다. 강의 먼 데까지 한 인간의 존재가 닿는다. -
느린 이동 바다와 활주로 믿을 수 있어? 저렇게 커다란 게 우리 위로 날아다닌다는 걸? 비행기를 보던 친구가 말했다. 보잉 737이 이륙한다. 거대했던 비행기가 손톱만큼 작아진다. 이내 사라진다. 나는 이륙하는 비행기 영상을, 빠르게 활공 중인 기내에서 보고 있다. 이동 중인데도 더 멀리 가고 싶나.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곳으로 향하겠다면서 그 많은 카메라는 왜 챙겨왔나. 나는 나로부터 튕겨 나가는 사람처럼 공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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