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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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세상 탑동 누군 깨진 불빛을 가방에 넣고누군 젖은 노래를 호주머니에 넣어 여기 방파제에 앉아 있으면 안 돼십 년도 훌쩍 지나버리거든그것을 누군 음악이라 부르고그것을 누군 수평선이라 불러 탑동에선 늘 여름밤 같아통통거리는 농구공 소리자전거 바퀴에 묻어방파제 끝까지 달리면한 세기가 물빛에 번지는 계절이지 우리가 사는 동안은 여름이잖아이 열기가 다 식기 전에 말이야밤마다 한 걸음씩 바다와 가까워진다니까와, 벌써 노래가 끝났어신한은행은 언제 옮긴 거야 -
詩想과 세상 우리 삶에 수많은 길이 있어도 우리 삶에 수많은 길이 있어도다 무덤으로 향한다.뚜렷한 희망과 두려움 없이마지막 남은 힘을 다 쓰고 나면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만나겠지.그리고 자신에게 묻겠지.하필이면 멀고 험한 길을 택해서왜 모르는 곳을 향해 외롭게 걸었을까?그리고 왜 온 힘을 들여그렇게도 급하게 걸어 왔을까?조용히 기어가는 지렁이도 무덤 바로 앞에서우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는데 말이지. -
詩想과 세상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 아버지는 죽은 할머니의 옷가지를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 마당 귀퉁이에서. 장롱에서 꺼내 온 스웨터. 할머니의 새 옷. 가장 아끼던 피부. 오그라든다. 솟구친다. 연기가 넘친다. 독하다. 마스크도 없이 아버지는 할머니를 한번 더 태운다. 나는 그 옆에서 한번씩 지붕 위로 솟구치는 불씨를 바라본다. 포항은 바람이 많은 도시. 철이 많은 도시. 굴뚝이 많은 도시. 비가 없는 도시. 죽음 앞에서 불 앞에서 나는 심부름을 잘하는 아이. 한나절 동안 아무 말 않고 아버지는 할머니를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 죽음이 이렇게 가벼운 것이잖아. 해 지는 쪽에서 한번 더 불탄다. 생긴 대로 살라는 말, 생긴 대로 먹으라는 말, 그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말. 나는 운동화를 꺾어 신고 풀뱀처럼 울었다. 나에게서 아버지와 똑같은 냄새가 났다. 그을음 같기도 하고 할머니 방 안에 날리던 용각산 가루 같기도 했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나를 버렸다, 불 질러 버렸다. 죽지 못해 살았던 작은 방에서. 이소연(1983~) -
詩想과 세상 내겐 닻나무가 있다 두 평짜리 방 안이 일망무제다화분 하나가 들어오면서난바다 한가운데 구부러져원을 이룬 수평선처럼 방이 출렁거린다야생의 말잔등이라도 올라탄 듯 파도가 치면잴 수 없는 수심을 향해닻 내리는 나무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는 날이이어지지만떨어진 닻은 끝없는 심해로 내려간다과외받는 아이들이 다 잘려 나갔지만병든 어머니는 밥보다 더 많이 먹는 약을 끊을 수 없고차라리 닻줄을 끊어 버릴까 망설이다무저갱 속에서 허방 디디며 길을 찾는다닻을 내릴 때마다 닻나무에서 이파리가 떨어진다물벼락과 파도를 얻어맞고 나자빠졌다가힘겹게 나를 부축하는 일도 신물 난다내 닻나무는 꽃을 피우기나 할까떨어진 나뭇잎을 언제나 끌어올려돛을 올릴까도대체 가늠할 수 없는 바닷속다시 닻을 내 안으로 빠뜨린다 -
詩想과 세상 우리가 없는 이튿날에 아침에는 안개가 끼고 서늘하겠습니다.서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와시야가 흐려지겠습니다.도로는 미끄럽겠습니다. 한낮에는북쪽에서 다가오는 고기압의 영향으로곳에 따라 점차 날씨가 개는 곳도 있겠습니다. 한밤중에는전국에 걸쳐 화창한 날씨를 보이겠습니다만,남동부 지방에서는곳에 따라 비가 내리는 경우도 있겠습니다.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기압은 오르겠습니다. -
詩想과 세상 어두운 마음 모르는 어떤 이들에게 끔찍한 일 생겼다는 말 들려올 때 아는 누가 큰 병 들었다는 연락 받았을 때 뭐 이런 날벼락이 다 있나, 무너지는 마음 밑에 희미하게 피어나던 어두운 마음 다 무너지지는 않던 마음 내 부모 세상 뜰 때 슬픈 중에도 내 여자 사라져 죽을 것 같던 때도 먼바다 불빛처럼 심해어처럼 깜빡이던 것, 지워지지 않던 마음 -
詩想과 세상 비행하는 구름들 귓속에 빗소리가 가득 찬 새벽몸 안에는 노래를 부르다 죽은 가수가 떠밀려 와나는 종종 깨어나 가수의 마지막 노래를 이어 부르지죽은 가수의 노래는 날마다동시대에 살지 않았던 사람의 목청으로 새롭게 불리고교실 창밖으로 날린 수천개의 비행기 중 하나가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수풀에서 날개를 회복한다햇빛이 공처럼 날마다 창문으로 날아와베개에 피어오르는 꿈의 먼지매일 가장 어린 새와 가장 늙은 새가서로의 영혼을 뒤바꾸는 아침어린 새가 첫 비행을 시작하자세상에서 가장 작은 섬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아지고비가 내린 뒤에 세탁된 구름들골목을 빠져나온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언젠가 사라질 얼굴을 티셔츠 안으로 넣자마자모든 공기가 나를 새롭게 통과한다 -
詩想과 세상 잠만 잘 분 100-15, 잠만 잘 분,잠만 잔다는 건 시체놀이를 하라는 것층간소음도 없고음식 냄새가 창을 타고 넘어갈 리도 없으니쾌적하다는 것어차피 둘이 누울 자리는 없으니친구나 친지도 필요 없고먹다 남은 양파나 감자가 있으면 화초 대신 심으라는 것거기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수맥이 지나가나?굳기름처럼 굳은 몸을 뒤척일 때양파나 감자가 식물성의 손을 내밀 거라는 것그러다 꿈에 다시 군대에 가서저의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소리치거나외박증을 끊어 면회 온 애인과 여인숙에 들면, 들다가 깨면장막 저편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가 아니고팔베개해 준 그녀는 내 그녀가 아니고그래도 국민연금과 지역 의보 통지서는언덕을 올라와, 옥탑까지 올라와,속옷과 양말 사이에서 기어이 그이를 찾아내고밤에 내려다보면 붉게 빛나는 수많은 십자가들 아래제각각 누워 있는 잠만 잘 분,성탄도 부활도 없이잠만 잔다는 건 꼼짝도 하지 말라는 것자면서도 그이는 손을 들고 잔다 -
詩想과 세상 저녁 숲의 눈동자 하늘보다 먼저 숲이 저문다숲이 먼저 저물어어두워오는 하늘을 더 오래 밝게 한다숲속에 있으면 저녁은시장한 잎벌레처럼 천창에 숭숭구멍을 뚫어놓는다밀생한 잎과 잎 사이에서모눈종이처럼 빛나는 틈들,하늘과 숲이 만나 뜨는저 수만의 눈을 마주하기 위하여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저무는 하늘보다 더 깊이 저물어서공작의 눈처럼 펼쳐지는 밤하늘내가 어디서 이런 주목을 받았던가저 숲에 누군가 있다내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는 청설모나 물사슴,아니 그 누구도 아니라면 어떠리허공으로 사라진 산딸나무꽃빛 같은 것이면 어떠리저물고 저물어 모든 눈들을 마주하는저녁 숲의 눈동자 -
詩想과 세상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별과 달과 해와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손 저어 대답하면서,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별과 달과 해와모래만 보고 살다가,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길동무 되어서. -
詩想과 세상 흔적 그때, 나는집으로 가는 중이었는디탕, 탕, 탕, 난데없이오그라든 몸이 냅다YMCA 뒷골목으로 뛰었는디전일빌딩 쪽으로헬리꼽따가 날아갔당께보고도 믿기지 않는디아무헌티도 말 안 했제,못 했제잊어뿔자 잘못 본 것이여잘못 들은 것이랑께 저 소리!총알이 정수리를 향하던 꿈을자주 꿨어라우헛것을 본 것이 아니었는디헛것 같은 세월이시방……37년이락 했소? -
詩想과 세상 독거노인이 사는 집 그날 복지사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 노인이 느닷없는 울음을 터뜨렸을 때 조용히 툇마루 구석에 엎드려 있던 고양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단출한 밥상 위에 내려놓은 놋숟가락의 눈빛이 일순 그렁해지는 것을 보았다. 당황한 복지사가 아유 할머니 왜 그러세요, 하며 자세를 고쳐 앉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흐느낌은 오뉴월 빗소리처럼 그치지 않았고 휑하던 집이 어느 순간 갑자기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벽에 걸린 오래된 사진과 벽시계와 웃옷 한 벌과 난간에 기대어 있던 호미와 마당가 비스듬히 앉은 장독과 동백나무와 파란 양철 대문의 시선이 일제히 노인을 향해 모여들어 펑펑,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이명윤(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