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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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창의력도 계산의 결과? 딱 10년 전 이맘때 세계의 이목이 사람 한 명과 기계 한 대에 쏠렸다. 당시 프로바둑 세계 1위 이세돌 기사와 인공지능(AI) 알파고가 그 주인공이다. 둘 간의 대국은 알파고의 완승으로 끝났다. 사람들은 다섯 번의 대국 중 사람이 한 판밖에 이기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했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그 한 판의 승리 덕분에 10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세돌 9단은 AI를 이긴 유일한 인류로 꼽히며 기념되었음을 말이다. -
김월회의 아로새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학문 학문이 세상에서 미움을 몹시 받은 지가 오래입니다. 단정히 앉아 깊이 생각할 때는 양심이 살짝 드러나다가도 사람과 마주하고 세상사와 접할 때면 번번이 아첨하며 받아들여지기를 구하곤 합니다. 농부를 만나면 농사일만 말하고, 상인을 만나면 장사 일만 말하는데, 대부분 자신을 버려두고 다른 일만 좇고 있으니 진실로 평생의 고질입니다.(<방산에게 답하다>) -
김월회의 아로새김 “현자는 후한 녹봉에서 나온다” 송대 초엽의 큰 학자 범중엄이 한 말이다. 범중엄은 보수적 가치를 기반으로 제도개혁을 추진했는데, 후한 녹봉을 주는 대신 관리에 대한 감독과 평가를 엄정하게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전근대 시기 관리는 전문 역량과 도덕 역량을 겸비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 수준은 백성의 스승이 될 정도였다. 그러니까 백성을 잘 가르칠 정도의 전문 역량과 백성의 모범이 될 정도의 도덕 역량을 갖춰야 했다는 얘기다. 범중엄은 관리가 이런 역량을 제대로 갖췄는지는 엄정하게 평가해야 하지만, 이를 평가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러한 역량을 기준 이상으로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먼저 갖춰주는 것이 합당한 처사라고 요구한 것이다. -
김월회의 아로새김 이럴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 말 것을 <맹자>에 나오는 일화다. 농지세와 시장세, 관세를 과도하게 부과한다는 지적이 있자 조세를 담당하던 대영지란 관리가 말했다. “농지세는 그냥 거두고, 관세와 시장세는 올해에는 폐지가 불가능하니 금년에는 경감해주고 내년에나 폐지하겠습니다.” 이를 듣고 맹자가 말했다. “지금 매일 이웃의 닭을 훔치는 자가 있다. 누군가가 그에게 이는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조금 줄여 한 달에 한 마리씩만 훔치다가 내년이 되면 그만두겠다’고 답했다.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았다면 얼른 그만둬야지, 어찌 내년까지 기다린단 말인가?” -
김월회의 아로새김 나무가 새를 선택하려면 중국 춘추시대의 역사를 전하는 고전 <춘추좌전>에는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서기전 484년에 있었던 일이다. 위나라의 대부 공문자는 자신에게 잘못한 태숙질을 치고자 했다. 하여 자기 문하에 와 있던 공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평소 의롭지 못한 공격을 반대했던 공자는 “예법은 익혔지만 군사에 대해서는 모릅니다”라고 답한 후 물러나왔다. 그러고는 공문자에게서 떠날 채비를 갖추면서 말했다. “새가 나무를 고르지 나무가 어찌 새를 고르랴?” 여기서 새는 섬기는 이, 나무는 섬김을 받는 이를 가리킨다. -
김월회의 아로새김 모르면 그 자리에 없는 듯 있어라 공자와 제자 자로 간의 대화는 무척이나 직설적이었다. 위나라 군주가 국사를 공자에게 맡기고자 한다는 소식을 스승께 전하려 온 자로는 공자를 뵙자마자 위나라 정사를 담당하게 되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겠냐고 여쭈었다. 그러자 공자는 명분, 그러니까 이름값을 바로잡겠다고 답했다. 이에 자로는 겨우 그거냐면서 세상 물정에 정말로 어둡다며 스승을 들이받았다. 공자도 지지 않았다. “들판 같은 인간이로다” 하면서, 왜 이름값을 바로잡는 것이 모든 정치의 첫걸음인지를 설명했다. 그러고는 결론 조로 군자는 자기가 잘 모르는 바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 없는 듯이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
김월회의 아로새김 용기라는 인문 역량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함이 바로 아는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만으로는 참된 앎이라 할 수 없고,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비로소 참된 앎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공자의 이 말에는 중요한 덕목 하나가 숨어 있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 필요한 덕목, 바로 용기다. 사실 공자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행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기왕이면 알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것이, 모르고 있음은 가급적 숨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이라도 사람들이 나를 그것만 알고 나머지는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저어되기도 한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있어야 내가 어디까지만 안다고 함을, 그 밖에는 모른다고 함을 진솔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용기 덕분에 참된 앎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
김월회의 아로새김 미래를 읽는다는 것 2025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이제 함께해온 한 해를 보내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할 때다. 그런데 새해를 맞이한다고 함의 실상은 무엇일까? 그 대답으로 옛사람들은 미래를 읽어내는 일을 들곤 했다. 옛사람들이 행한 미래 읽기의 기초는 이러했다. “귀가 밝은 자는 소리가 없는 데서도 들으며, 눈이 밝은 자는 형태가 없는 데서도 봅니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은 일을 만 번 시도하면 만 번 다 성공하는 것입니다.”(<사기>) 한마디로 있음에서 없음을 읽어낼 줄 알아야 어떤 일이든 시작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는 뜻이다. -
김월회의 아로새김 ‘학술 적자국’이라는 자화상 “역사적으로도 과학에 관심을 가진 국가는 흥했고 이를 무시하는 국가는 망했다.” 지난 7일 과학기술정책 국민보고회에서의 대통령 발언 중 일부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바이오, 반도체, 우주항공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이 시대를 선도하며 국가 발전을 견인하고 있음은 부인키 어려운 사실이다. 그런데 과학에‘만’ 관심을 가지는 국가의 흥망성쇠는 어떠할까? -
김월회의 아로새김 눈 감고 활쏘기라는 요행 <한비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이 어둠 속에서 화살을 마구 쏘다 보면 과녁에도 적중된다. 머리카락같이 아주 가는 털을 맞힐 때도 있다. 그런데 불을 켠 다음 다시 맞혀보라고 하면 못 맞힌다. 과녁을 맞힌 것은 요행이지 실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없으면서도 과녁을 맞히는 방법이 또 있다. <여씨춘추>에 나온다. 과녁을 향해 1만명이 일제히 쏘면 정중앙에 적중하는 화살이 틀림없이 생긴다. 이 또한 실력이 아니라 요행이다. 정중앙에 맞힌 자더러 다시 정곡을 맞혀보라고 하면 못 맞힐 가능성이 십중팔구는 넘을 것이기에 그렇다. -
김월회의 아로새김 백성의 고통은 위정자의 안락 “전해오는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자신을 안락하게 하고, 남을 해함으로써 자신을 이롭게 한다.” 맹자와 함께 공자 사후 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 순자의 증언이다. 한마디로 남의 불행을 자기 행복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유학자들이 경전 중의 경전으로 매우 중시했던 <시경>에는 이러한 시구도 실려 있다. “백성이 받는 재난은 하늘이 내린 것 아니네. 모이면 말만 많고 등지면 미워하는, 오로지 다투는 사람들 때문이라네.” 여기서 백성의 원문은 ‘하민(下民)’이다. 시인은 ‘민’ 한 글자로도 백성이라는 뜻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음에도 ‘하’를 넣었다. 은연중에 ‘상층 대 하층’이라는 구도를 소환함으로써 서로 헐뜯기에 여념 없었던 이들이 상층 사람임을 환기하기 위해서였다. -
김월회의 아로새김 마음을 저버린다는 것 영화나 소설에서 볼 법했던 모습을 삶터에서 자주 접하는 시절이다. 자기가 달려가는 길 끝에 절벽이 있을 줄 모르고 욕망을 주체치 못해 끝까지 달려가다가 고꾸라지는 이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맹자식으로 말하자면 자포자기의 전형이다. 흔히 자포자기라고 하면 모든 일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 무기력하게 퍼져 있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자포자기라는 말의 지식재산권자 격인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를 해치는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자신을 버리는 자와는 함께 일할 수 없다. 예의를 비방하며 말하는 것을 일러 ‘자포(自暴)’라 하고, 인의를 행치 않음을 일러 ‘자기(自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