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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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인사권자의 눈이 높다고 하려면 국민주권정부의 초대 내각 인선이 마무리되자 대통령비서실장은 인사권자의 눈이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듣는 순간 의아했다. 몇몇 장관 후보자의 흠결이 작다고 할 수는 없어서였다. 맹자와 쌍벽을 이루었던 순자는 신하를 넷으로 나눴다. 태신(態臣), 찬신(簒臣), 공신(功臣), 성신(聖臣)이 그것이다. 그는 군주가 성신을 등용하면 존귀해지고 공신을 등용하면 영예로워진다고 했다. 백성들을 잘 단합하게 하고 외환을 잘 막으며 군주에게 충성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데 지치지 않는 신하가 공신이고, 이에 더해 예기치 못한 일이나 변화에 잘 대처하고 기존 시스템을 넘어서는 것에 기민하게 대응해 법제도를 빈틈없이 마련하는 신하가 성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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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돈은 억울, 알아서 기는 사람이 유죄 돈의 힘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하다. 2100여년 전 <사기>를 쓴 사마천은 이렇게 통찰했다.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열 배 부자이면 헐뜯지만 백 배이면 그를 두려워한다. 천 배이면 그의 일을 대신해주고 만 배이면 그의 하인이 되고자 한다. 이는 세상사의 섭리다. 이를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남들보다 돈을 열 배 더 갖고 있으면 남을 굳이 헐뜯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진 돈이 남들의 백 배이면 남들이 자기를 두려워하게끔 하고, 천 배이면 남들에게 자기 일을 전가하며, 만 배이면 남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다. 가진 돈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질수록 사람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정도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왠지 저 옛날 중국에서나 있었던 일이 아닌 듯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그 옛날 사마천의 통찰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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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까맣지 않은 까마귀를 인정하는 눈 회색 바위여도 아침 햇살이 비쳐 들면 황금빛을 띤다. 그러다 한낮의 작열하는 광선이 내리쬐면 하얗게 반짝거리고, 저녁 되어 노을빛이 비쳐 들면 자줏빛으로 물들여진다. 이를 두고 연암 박지원은 색 속에 빛이 있어 그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암이 든 사례는 까마귀였다. 다들 까마귀는 당연히 까맣다고 여기지만, 연암이 보니 어떤 때는 뽀얀 황금빛이 감돌았고, 진한 녹색으로 반짝이기도 하며, 해가 비추면 자줏빛이 발산되어 눈앞에 어른거리다가 비췻빛으로 바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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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위정자가 총명해지려면 옛날 당나라 때 백낙천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한시의 양대 산맥인 이백, 두보와 이름을 나란히 했던 대시인이다. 그런데 그는 정사의 잘잘못을 가려 황제에게 간언을 올리는 관직에 있었을 때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올곧은 관리이기도 했다. 다음은 그가 올린 간언의 한 대목이다. “천자의 귀는 스스로 밝아질 수 없으니 천하 사람들의 귀를 합하여 들은 후라야 밝아지게 됩니다. 천자의 눈은 스스로 밝아질 수 없으니 천하 사람들의 눈을 합하여 본 후라야 밝아지게 됩니다. 천자의 마음은 스스로 훌륭해질 수 없으니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합하여 헤아린 후라야 훌륭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천자께서 자기 두 귀로만 듣고 두 눈으로만 보며 한 마음으로만 헤아린다면 고작 열 걸음 안도 못 들으며, 백 걸음 밖은 볼 수 없게 되고, 궁궐 밖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넓디넓은 천하와 복잡다단한 정사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책림(策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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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권위와 다양성 다시 강조하지만,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자는 목표를 공유하며 모여 사는 곳이 사회다. 그래서 사회에는 권위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기꺼이 동의하는 권위가 발휘되어야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고 갈등할 때 조정하고 중재할 수 있어서다. 그러면 권위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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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전문성 포기는 도덕성 포기 나는 선거철만 되면 곧잘 무국적자가 되고 만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는 국민이 원해서 출마한다고 하는데 정작 나는 그의 출마를 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법원에 의해 무국적자로 내몰렸다. 야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에 대한 판결을 내리면서 대법관들은 “일반 국민의 시각”을 강조하며 고등법원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국민으로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법 정신과 법리에 입각한 엄밀한 판결이었기에 나는 또다시 일반 국민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일반과 비(非)일반을 나누는 것이며, 또 일반 국민의 생각은 통일되어 있다고 믿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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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인간다움의 공동체’라는 전제 전근대 시기 유학자들은 인문, 그러니까 ‘인간다움의 무늬’를 사유할 때면 인간과 동물의 같고 다름을 비교하는 수법을 썼다. 공자 이후 유학의 양대 산맥이었던 맹자와 순자도 그러했다. 흥미롭게도 이 둘은 모두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봤다. 맹자는 그 차이가 매우 작다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 덕분에 인간은 동물과 구분되며 인간으로서 우뚝 서게 됐다고 한다. 그 작은 차이가 바로 도덕이다. 순자는 인간이나 동물 모두 기로 이뤄져 있고 생명과 앎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인간만이 의로움을 지니기에 사회를 일구며 인간답게 살게 된다고 보았다. 역시 도덕을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핵심으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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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오물 섞인 진흙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하여 국가사회의 살을 함부로 후벼 파는 이들이 있다. 멀쩡한 살이 도려내지면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이, 행복이 파괴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천연덕스럽게 국가사회의 살을 후벼 판다. 그것도 어쩌다 한번 그러고 마는 게 아니라 온갖 술수를 동원해 후벼 파고 또 후벼 판다. 민주헌정 질서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저들은 이른바 ‘자해공갈단’보다도 더 악독하다. 자해공갈단이 끼치는 폐해는 당사자들에 국한되지만 민주헌정 질서를 대놓고 파괴하는 이들이 끼치는 해악은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 모두에게 미친다. 국가사회의 몸을 후벼 파내는데 누군들 그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더욱 악랄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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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슬기로운 자기 생각 검증 내 생각이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를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오랜 옛날부터 던져졌다. 가령 공자는 말과 행실의 일치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사람이 늘 말한 대로 행한다면 그 사람의 생각에는 거짓이 없다고 믿었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기에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미더운데 생각이 미덥지 않을 수 없다고 여긴 결과다. 제자백가의 하나인 묵자는 한결 구체적으로 판단의 근거를 제시했다. 모두 세 가지다. “첫째, 성현들의 사적과 부합하는가? 둘째, 사람들 다수가 그렇다고 여기는가? 셋째, 국가와 사회에 쓸모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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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처참해진 말의 질서 말의 질서가 갈수록 처참해지고 있다. 위헌 계엄을 발동하고는 계몽령을 내렸다고 천연덕스레 말함으로써 계몽이란 말을 우롱했다. 내란 조장과 폭력 선동을 국민저항권 행사라고 호도함으로써 국민저항권이란 말을 더럽혔다. 당장의 현상만이 아니다.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측이 집권할 때에는 정의니 법치 같은 말이 호되게 모욕당했다. 사뭇 정의롭지 못하고 탈법에 불법을 일삼은 자들이 오히려 국민을 향해 법치를 요구하고 정의를 부르댔기 때문이다. 때로는 법치나 정의 같은 말은 사회적 루저나 되뇌는 것이라 하며 법치와 정의란 말을 대놓고 모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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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판을 뒤엎는 자와 몽둥이질 바둑에는 이기는 수 아니면 지는 수밖에 없다. 상대보다 실력이 없다거나 자신이 잘못해서 패색이 짙어졌다면 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때면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돌을 던짐이 떳떳한 모습이다. 적어도 양식 있고 도덕과 법률의 가치를 믿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순간에 지는 수 외에 또 다른 수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 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실행에 옮기는 자들이 있다. 그 수는 다름 아닌 판을 뒤엎는 수다. 승패를 확정 짓기 전에 판을 뒤엎었기에 자신이 졌다는 점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판을 뒤엎는 것은 룰에 어긋나며 몰상식하고 비윤리적이라 비판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는 것보다는 뒤엎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했기에 뒤엎는 수를 결행했고, 또 자신은 그렇게 해도 될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리했다고 눈 껌벅이며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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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아로새김 거짓말 좀비 중국 고전 가운데 <신이경(神異經)>이라는 책이 있다. 신기하고 괴이한 이야기를 모아둔 책이다. 거기에 보면 ‘와수(訛獸)’, 그러니까 ‘거짓말 짐승’이 나온다.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서남방 야만의 땅에는 와수가 출몰하는데 토끼 같은 외모에 사람 얼굴을 하고 말을 한다. 늘 사람을 속여 동쪽으로 간다면서 서쪽으로 가고, 나쁜 것을 좋은 것이라 말한다. 그 고기는 정말 맛이 좋은데 그걸 먹으면 참되지 않은 말만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