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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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의 행로난 ‘말통령’ 백락 오늘날에 ‘개통령’이 있다면 저 옛날에는 ‘말통령’이 있었다. 말은 지금의 자동차와 같아서 힘 있다는 이들은 천리마같이 세상에 몇 없을 말을 욕망하였다. 그렇다보니 말을 잘 감별하는 이는 전국적 명성을 얻기도 했다. ‘백락’은 그러한 말통령 중 대표적 인물이다. <전국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이가 말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사흘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는 백락에게 일당을 쳐줄 테니 자기 말을 한 번만 쳐다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백락은 그 말을 흘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백락이 쳐다보고 간 말이라는 소문이 났고 말 주인은 10배의 가격을 받고 팔았다. 백락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말해주는 일화다. -
김월회의 행로난 신조어처럼 쓰이는 세계관 “이 게임의 세계관은 뭐야?” 이 말을 접했을 때 ‘우리나라가 게임 강국이라고 하더니 세계관을 논할 정도로 깊이 있게 발전했구나’ 싶었다. 다만 이 생각이 뜬금없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계관은 게임뿐 아니라 웹툰, 웹소설, 드라마, 영화, 예능 등 여러 장르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그 뜻은 자연과 사회, 인간과 삶 등을 바라보는 유기적 관점을 가리켜온 기존 의미와는 꽤 다르다. 이를테면 이렇게 쓰인다. -
김월회의 행로난 다민족 시대에 대학이 내놓을 답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혐중’ 풍조의 심화 속에서도 중국인 유학생이 지난 7년 새 78%가 늘어났다. 휴전선 바로 밑 강원 고성에 있는 한 지방대 캠퍼스에선 방글라데시, 네팔, 인도 등지에서 온 400여명의 유학생들로 ‘작은 이태원’이 구현되고 있으며, 대학이 소재한 면 인구의 11%가량이 외국인일 정도로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도도 높다. 외국인 유입이 인구절벽으로 인한 문제 해결의 실질적 대안이 됐음이다. 그만큼 외국인 유입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다민족·다문화 사회가 본격화되는 셈이다. 이러한 추세에 거스르면 국가의 운영과 진보에 적잖은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민청 신설을 서두르는 이유다. -
김월회의 행로난 ‘융합’과 ‘학생선택권 강화’라는 이데올로기 근자에 들어 융합과 학생선택권 강화가 대학개혁의 금과옥조인 양 대학사회를 휘젓고 있다. 융합으로는 부족했던지 첨단이란 수식어를 붙여 정부는 수도권 대학 정원을 800여명이나 늘렸다. 지역대학의 몰락이 촉진되어도 일단 융합부터 도모하겠다는 태도다. 한편에선 학생선택권 강화가 대학혁신의 징표처럼 횡행하고 있다. 학생이 전공을 선택하고 새로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이다. 강의 내용과 수준, 방법 등도 학생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학생의 원대로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며 너스레를 떨어댄다. 대학과 사설학원은 존재 이유와 목적이 엄연히 다름에도 학원 경영하듯 대학을 운영해야 바람직한 혁신이라고 우기는 모양새다. -
김월회의 행로난 학문의 위기, 인간다움의 위기 인문학은 인문과 분명하게 다르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그렇다고 그 둘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AI)과 인간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하여 그 둘을 같다고 할 수 없음과 같은 이치다. 인문은 인간의 무늬라는 뜻이다. 여기서 인간은 다른 존재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다움을 갖춘 인간을 뜻한다. 따라서 인문은 인간다움의 무늬이고, 핵심은 인간다움이다. 인문학은 이러한 인간다움이 공부 대상인 학문이다. -
김월회의 행로난 인간의 평균적 역량과 인공지능 인간과 기계 사이의 불화는 오래전부터 다루어진 문제다. 2300여년 전 장자도 짧지만 강렬하게 이 문제를 언급했다. 장자의 논리는 이러했다. 사람은 기계를 사용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계의 마음’을 품게 된다. 따라서 기계는 가능한 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랬다가는 순수함이 깃들지 못하게 된다. 이를테면 기계는 들인 공력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해줌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순수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
김월회의 행로난 미래 실종과 소모사회 청년세대에게 미래는 실종 상태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수행한 연구를 보면 청년세대는 “미래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까?” “개인의 힘으로 미래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등의 물음에 20대는 6.5%, 30대는 10%만 동의했다. 이는 40대가 21.9%, 50대가 24.5%, 60대 이상이 37.1% 동의한 데 비해 매우 낮은 수치다. 20대, 30대가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으며 미래를 빚어가는 데 몹시 회의적이라는 얘기다. 청년세대에게 미래는 이젠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
김월회의 행로난 무너지는 법치, 인기 높은 ‘흑영웅’ 우리 사회는 엄연한 법치주의 사회다. 그럼에도 ‘흑영웅(dark hero)’의 인기는 늘 높다. 며칠 전 종영된 드라마 <모범택시Ⅱ>만 봐도 그렇다. 공권력조차 휘하에 둔 악의 세력을 흑영웅이 통렬하게 징벌한다는 내용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흑영웅은 “악은 악으로, 폭력은 폭력으로 제압한다” 같은 세계관을 신봉한다. 하여 악을 징벌하는 데 범법 같은 나쁜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셈이다.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안겨주는 영웅이지만 마냥 칭송하기에는 꺼림칙한 이유다. -
김월회의 행로난 당장의 쓸모와 ‘쓸모없음’의 관계 순우곤은 중국 전국시대 ‘골계’, 그러니까 해학의 달인으로 이름난 지식인이었다. 그가 하루는 옆집 주인에게 당신 집에 불이 날 거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경고를 무시했다. 며칠 후 그 집에 과연 불이 났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얼굴을 잔뜩 그을려가며 열심히 불을 껐다. 집주인은 그들이 너무도 고마운 나머지 화재를 수습하고 나자 음식을 장만하여 그들을 대접하였다. 그런데 화재를 예고했던 순우곤은 초대받지 못했다. 불이 났을 때 그는 출타 중이어서 화재 진압에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김월회의 행로난 작당(作黨)과 외세 영합 중국의 전국시대 이야기다. 한나라에 선왕이란 제후가 있었다. 당시 한나라에는 공중과 공숙 두 권신이 실권을 독점하고자 각축하고 있었다. 이에 선왕은 그 둘 모두를 중용하기로 했다. 서로 견제하고 싸우게 만들어 그들의 세력을 깎아내자는 속셈이었다. 다만 자기가 헤아리지 못한 바가 있을까 싶어 규류라는 신하에게 자신의 방책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규류는 단호하게 절대로 안 된다고 아뢰었다. 역사를 보면 선왕과 비슷한 계책을 쓴 군주가 적지 않았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몹시 나쁜 결과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
김월회의 행로난 ‘공적 우정’이라는 공정 공자는 벗에도 관심이 컸다. 고상한 우정을 환기하는 “금란지교(金蘭之交)”도 출처가 공자이고, “글로써 벗한다”는 뜻의 “이문회우(以文會友)”(<논어>)도 공자의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논어>에는 벗에 대한 공자의 언급이 자못 실려 있다. 그만큼 공자는 벗을 중시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보다 못한 이와는 벗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은 답을 찾는 데 쏠쏠한 힌트가 된다. 사실 공자의 이 말대로 했다가는 결국 벗을 못 삼게 된다. 벗은 보통 둘 사이에 맺어진다. 갑과 을이 서로를 벗 삼아야 비로소 벗 관계가 성립된다. 짝사랑이란 말이 있는 걸 보면 혼자 하는 사랑은 사랑의 일종으로 여겨진 듯하다. 반면 ‘짝벗’이란 말은 없다. 혼자서는 벗할 수 없다고 여겼음이다. 하여 공자의 말대로 하면 벗 관계가 성립되지 못한다. 갑은 을이 자기보다 낫기에 벗하려 하는데, 이를 을의 입장에서 보면 갑은 자기보다 못한 이가 되므로 벗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김월회의 행로난 잘록한 허리를 좋아한 군주 2500여년 전 중국 초나라에 영왕이라는 군주가 있었다. 그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허리 가는 이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러자 조정의 신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몸매 관리를 했다. 관복을 입을 때도 숨을 한껏 들이마신 후에 허리띠를 꽉 졸라맸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조정의 대신들은 깡마른 채 얼굴빛이 온통 검어졌다. 군주 마음에 들려고 애쓰고 애쓴 결과, 조정은 병자에 가까운 자들로 가득 차 무기력해졌고 국정은 마비되었다. <묵자>라는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