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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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어떤 유행은 사양합니다 봄동 비빔밥이 한창 유행이라고 해서 유튜브와 SNS를 들여다봤다. 정말로 봄동 비빔밥을 주제로 한 쇼트폼 영상이 줄줄이 조회수 수백만 회를 기록하고 있었다. 줄 서서 기다려야 살 수 있던 두바이 쫀득 쿠키를 이제는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쫀쿠가 가고 봄동이 온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매년 두 달 정도 맛볼 수 있는 계절 식재료 봄동에 유행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는 머쓱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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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자극의 시대에 놓치는 것들 요즘은 시사 교양도 재미가 필수다. 우리는 왜 재미있고 자극적인 내용을 좋아할까? 당연한 말이다. 세상살이가 피곤하니 복잡함보다 단순함에 끌리고, 어려운 것보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에 관심을 더 준다. 그렇다면 자극적인 말과 글은 어떻게 사람들을 흔들까? 스물일곱 살인 여성이 어느 술자리에서 운명 같은 남성을 만난다. 그런데 그는 사실 테러 혐의 용의자로 쫓기는 처지였다. 그를 취재하던 언론은 둘이 함께 있는 사진을 공개해 버린다. 대중은 그녀를 범죄자와 내통하는 인물로 낙인찍는다. 사람들은 진실이 무언지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더 자극적이게도 그녀를 창녀로 몰아간다. 미디어는 왜곡된 정보를 진실로 포장해 재생산한다. 대중은 팩트와 그녀의 실추된 명예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전혀 친분이 없는 여성에게 폭력적인 내용의 우편물을 발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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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그만하지 않기 위해 하는 이야기 정형화한 스토리라인에 깊은 사색을 읽을 수 없는 소설을 독자들은 ‘양산형’이라며 비판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 역시 독자를 사유로 이끄는, 생각을 깨우는 소설이다. 선인도 악의를 가질 수 있고 악인도 선의를 베풀 수 있듯 보통 사람은 양가적인 면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소설일수록 사건을 겪는 인물을 다각도에서 보게 한다. 인물의 행위에 대한 동기와 과정마다 독자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사유하게 만들어야 입체감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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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화두에 대하여 소설을 쓰는 나는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두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대중교통을 타고 도심 한복판을 가를 때면 버릇처럼 좌우 사람들의 행동을 살짝 살피곤 하는데, 요즘은 대부분 손바닥에 있는 작은 네모를 들여다보고 있다. 책은 고사하고 멍하니 있거나, 창밖을 보는 사람들조차 거의 없다. 사람들의 눈길을 붙들고 있는 화면에는 으레 영상이나 쇼츠가 나오고 있다. 놀랍게도 그들의 표정에는 거의 색이 없다. 대부분 무심한 표정으로 가차 없이 화면을 넘긴다. 나라고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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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어떤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가 수능 시험일이 다가온다. 수능을 치른다고 곧장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어른으로 가는 문턱을 넘는 일인 건 분명하다. 부모의 보호에서 자유로워지는 나이라는 뜻이다. 한편으로 부모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20대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학생인 자녀의 성적 정정을 요청하는 부모가 비일비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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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가해자가 없는 사건 인구 5만명이 되지 않는 충북 영동군에는 매년 15만명이 찾는 장소가 있다. 노근리에서 발생한 양민 학살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노근리평화기념관이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미군은 인민군의 공격에 영동까지 후퇴했다.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도 소개령이 떨어졌다. 동시에 미군에게는 인민군에 관한 첩보가 전파됐다. 대전 주변 방어선이 위축되는 중에 농부로 변장한 수백명의 인민군이 전선 후방으로 침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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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질문하는 미래 미국에서 한 10대 소년의 부모가 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6세인 아들이 인공지능(AI) 챗봇에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방법에 관해 물었고, 챗봇이 알려준 방법으로 결국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AI를 배우자 삼아 오프라인에서 결혼식을 거행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AI를 미래의 먹거리라 일컫지만, 이미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세 명 중 한 명이 생성형 AI를 경험해봤다고 응답했다. 1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20대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사람이 아닌 AI에게만 고민을 털어놓은 경험이 있다는 결과도 보았다. 요컨대 우리는 백과사전이자 친구이자 상담사를 겸하는 무엇을 대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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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과거를 잊을 권리는 없다 얼마 전 독일 남부에 있는 독일인 친구 집을 방문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마을인데, 갑자기 크고 날카로운 굉음이 지나갔다. 친구는 놀란 내게 담담한 목소리로, 근처 군부대에서 들리는 전투기 소리라고 알려줬다. 잦을 때는 한 주에도 여러 번씩 난다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친구는 학창 시절에 받은 교육이 떠오른다고 했다. 평화의 중요성, 두 번 다시 일어나면 안 될 전쟁에 관해 수도 없이 보고 들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