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
오별아트 디렉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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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첩자가 보내온 미술계의 빛과 어둠 최근에 미술책 하나를 샀다.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인데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책이라 아예 옆에 두고 싶어서 구입했다. 제목은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작가 비앙카 보스커가 뉴욕 현대 미술계 이곳저곳에 잠입 취업해 마치 스파이처럼 활동하며 쓴 예술 에세이다. 스파이에게는 완수해야만 하는 임무라는 게 있다. 비앙카가 ‘환영받지 못할 첩자’ 신분으로 스스로를 미술계의 밑바닥에 밀어넣으며 부여한 임무는 바로 “도대체 예술이 뭐길래 삶의 벼랑 끝에서도 인간이 그것으로 희망의 빛을 구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피터 도이그스럽다는 것! 미술계의 은둔자로 불리는 피터 도이그 앓이는 제법 오래됐다. 그러나 소문에 의하면 피터 도이그는 한국 미술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한국에서의 개인전도 원치 않는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미학적 추측에 가까운 확신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사실일 거다. 최근 몇년간 한국 미술계는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트렌디한 시장으로 급부상했지만 그 이면은 피터 도이그가 가장 혐오하는 ‘철저한 계급화와 서열 매기기, 그리고 블록버스터 전시 다반사와 높은 가격대의 작품만 팔리는 자본의 재현’ 시장이 됐다. 누구의 그림이 투자 가치가 높은지, 누가 소장했는지, ‘리셀(Resale)’ 가격이 얼마인지가 작품의 아우라를 압도하는 시장이 된 거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예술이라는 이름의 약 처방 어디선가 잘못된 레코드가 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분명 바늘을 새로 바꾸고 턴테이블의 수평을 맞췄는데도, 음악은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버린다. 그리고 일상의 리듬이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소음이 되어 내 심장을 조금씩 조이는 것 같다. 그 소음을 멈추기 위해 약을 먹거나, 누군가 내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길 바라며 소파에 눕는다. 하지만 그 원인을 찾아 치료하지 못한다면, 병은 낫지 않고 약은 계속 먹어야 한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에 왜 뒤샹이지? 잘 그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환영 만들기다. 예술에서 환영 만들기는, 화가가 던진 미끼를 관객이 덥석 물어서 자기 마음속에서 형상을 완성하게 만드는 ‘심리 게임’에 가깝다고 곰브리치는 말했다. 장담하건대, 데이미언 허스트 역시 곰브리치의 <예술과 환영>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수족관 속 박제 상어나 ‘다이아몬드 해골’ 작품 앞에서 결국 셀카를 찍는 사람들을 보며, 승리감에 웃었을 것 같다. “보라, ‘욕하면서도 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허스트의 진짜 마법’이라고 했지?”라면서.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29세의 고흐와 에머슨을 품고 양평으로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아.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이는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고흐가 몇 차례 좌절을 겪은 뒤 테오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7세(1880년) 무렵이었고, 이 편지는 29세였던 1882년 10월경에 쓰였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반 고흐 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폭풍우 속의 스헤베닝겐 해변’이나 ‘헤이그의 오래된 집들과 신교회’가 대표적이다. 스승 모베를 만나 화가로서의 기초를 다져가던 시기로, 결코 어설픔이 느껴지지 않으며 고흐가 추구한 예술의 진정성이 처음부터 또렷하게 드러난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함돈균과 피터 도이그의 예수, 그리고 ABC 얼마 전부터 술과 담배를 끊듯 유튜브도 끊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폐허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별’처럼 챙겨 보게 되는 채널이 있다. 함돈균의 뉴스쿨이다. 문학비평가의 언어가 ‘무사의 칼’보다 더 날카로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치·시사 비평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듣다 보면 결국 더 오래 남는 것은 문학비평이다. 시인 이영광의 산문집, 한강의 시집, 카뮈의 <결혼, 여름> 같은 작품을 풀어내는 방식이 그야말로 ‘죽여주게’ 좋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존 케이지에게서 티노 세갈로 “핵심만 얘기해. 그 전시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내가 티노 세갈 전시 오프닝에 가겠다고 하자 남편이 무심하게 묻고 내가 답한다. “세상에 물건이 너무 많잖아. 그게 다 쓰레기가 되고. 그래서 티노 세갈은 물질로서의 작품을 생산하지 않아.” 남편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묻는다. “그럼. 미술관에서는 뭘 파는데?” “상황과 경험!” “어떤 상황?” “무용수들과 함께하는 경험 예술로서의 상황.” 그러자 남편은 단박에 일종의 ‘개념 미술’ 같은 건데 ‘개념’만 잡으면 되지, 그걸 꼭 봐야 맛이냐며 살짝 면박을 주고, 발끈한 나는 비장의 무기를 쓴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뇌과학자와 함께한 홍천미술관 여행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라는 책이 있다. 예술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의사의 처방전보다 더 효과적인 건강 비법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책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지 못했다. 왜 있지 않은가? 읽지 않았는데 읽은 것 같은 생생한 체험마저 전달되는 유튜브 채널들. 내게는 ‘일생 동안 당신이 읽어야 할 백 권의 책’을 표방하는 독서채널 ‘일당백’이 그러한데 특히 ‘정박사’의 ‘떨리는 심장’까지 들여다보이는 것 같은 진심 화법이 인상적인 채널이다. 특히 너무 좋아서 받아 적었던 이런 대목이 생각난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개새끼’와 ‘비빌 언덕’ 사이 마크 브래드퍼드 전시장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탄 날, 읽고 있던 책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세스 프라이스라는 현대미술가가 쓴 소설로 한국어 제목은 <세스 프라이스 개새끼>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이 책은 일반적인 소설이라기보다 예술가의 ‘자아’와 ‘미술계 시스템’에 대한 지적인 해부도에 가깝다. 스스로 ‘개새끼’인 이유를 밝히는 일종의 ‘폭로 예술’이라고 할까? 프라이스의 신랄한 언어에 따르면 작가는 그의 취향, 역사, 심지어 고뇌마저도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기 좋게 포장된 ‘상품’일 뿐이다. 그는 미술계가 자신들의 시장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얼마나 난해한 언어로 장벽을 세우는지, 네트워크 중심의 시스템 속에서 작가가 어떻게 주관을 잃고 부속품으로 전락하는지 특유의 지적인 냉소로 파헤친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파마 종이에서 베르메르의 빛을 본다 그는 물감 대신 파마지를 씁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던 어머니 곁에서 자라며 매일 만지던 그 얇고 투명한 종이입니다. 오랫동안 패션계에 몸담았던 친구가 그 질감에 매료된 듯 이렇게 말하더군요. “세상에, 파마지가 이렇게 우아할 수 있다고? 넌 그 깁스 풀면 여기부터 와야 해.” 언제나 타이틀은 그럴듯했지요. 패션지 에디터에서 로컬 크리에이터 겸 아트스테이 대표라고 명함의 타이틀이 바뀌었지만 사실상 나는 ‘나 스스로를 갈아 넣어 하루를 짓는 노동자’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안 갈 수가 없지요. 미용실 노동자들이 매일 쓰고 버리는 그 ‘노동의 흔적(파마지)’을 주워 모아,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추상화를 만들었다는데.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기차의 꿈에서 다시 나무에게로 “그래, 이런 게 영화지.” 눈 오는 날 넘어지면서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온 날이었다. 갑자기 움직일 수 없는 다리와 함께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영화 <기차의 꿈>을 봤다. 모처럼 영화다운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흠뻑 취해 나만의 ‘깁스 홀리데이’를 자축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하는 영화였다. 게다가 영화가 끝나면 이런 메시지가 우주에서 온 희미한 교신 신호처럼 마음에 남는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카를로 로벨리와 셋이 추는 춤 누군가의 그림을 보고 있다. 어둡고 난해하다. 빅뱅 이후 아기 우주와 현재의 지구와 미래 사이 어디쯤에서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것들이 계통 없이 얽혀 막 요동치는 듯, 혹은 춤추는 듯 움직이는 느낌의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림. 전에 본 적 없고 경험한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비현실적 그림인데도, 이상하게 나랑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확신에 찬 느낌이 든다. 궁금했다. 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