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
오별아트 디렉터·작가
최신기사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개새끼’와 ‘비빌 언덕’ 사이 마크 브래드퍼드 전시장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탄 날, 읽고 있던 책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세스 프라이스라는 현대미술가가 쓴 소설로 한국어 제목은 <세스 프라이스 개새끼>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이 책은 일반적인 소설이라기보다 예술가의 ‘자아’와 ‘미술계 시스템’에 대한 지적인 해부도에 가깝다. 스스로 ‘개새끼’인 이유를 밝히는 일종의 ‘폭로 예술’이라고 할까? 프라이스의 신랄한 언어에 따르면 작가는 그의 취향, 역사, 심지어 고뇌마저도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기 좋게 포장된 ‘상품’일 뿐이다. 그는 미술계가 자신들의 시장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얼마나 난해한 언어로 장벽을 세우는지, 네트워크 중심의 시스템 속에서 작가가 어떻게 주관을 잃고 부속품으로 전락하는지 특유의 지적인 냉소로 파헤친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파마 종이에서 베르메르의 빛을 본다 그는 물감 대신 파마지를 씁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던 어머니 곁에서 자라며 매일 만지던 그 얇고 투명한 종이입니다. 오랫동안 패션계에 몸담았던 친구가 그 질감에 매료된 듯 이렇게 말하더군요. “세상에, 파마지가 이렇게 우아할 수 있다고? 넌 그 깁스 풀면 여기부터 와야 해.” 언제나 타이틀은 그럴듯했지요. 패션지 에디터에서 로컬 크리에이터 겸 아트스테이 대표라고 명함의 타이틀이 바뀌었지만 사실상 나는 ‘나 스스로를 갈아 넣어 하루를 짓는 노동자’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안 갈 수가 없지요. 미용실 노동자들이 매일 쓰고 버리는 그 ‘노동의 흔적(파마지)’을 주워 모아,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추상화를 만들었다는데.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기차의 꿈에서 다시 나무에게로 “그래, 이런 게 영화지.” 눈 오는 날 넘어지면서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온 날이었다. 갑자기 움직일 수 없는 다리와 함께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 영화 <기차의 꿈>을 봤다. 모처럼 영화다운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흠뻑 취해 나만의 ‘깁스 홀리데이’를 자축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하는 영화였다. 게다가 영화가 끝나면 이런 메시지가 우주에서 온 희미한 교신 신호처럼 마음에 남는다. -
김경의 별잇기 예술여행 카를로 로벨리와 셋이 추는 춤 누군가의 그림을 보고 있다. 어둡고 난해하다. 빅뱅 이후 아기 우주와 현재의 지구와 미래 사이 어디쯤에서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것들이 계통 없이 얽혀 막 요동치는 듯, 혹은 춤추는 듯 움직이는 느낌의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림. 전에 본 적 없고 경험한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비현실적 그림인데도, 이상하게 나랑 깊은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확신에 찬 느낌이 든다. 궁금했다. 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