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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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 시의 세계 저물녘 저물녘 잠자리를 찾는한 떼의 새.내게 깃들인다.어스름 속에 서 있는 나는한 그루 나무.팔꿈치에, 어깨에, 머리카락에, 가슴에새들이 파고들어밤새 내는 소리가 아무리 괴로워도쫓아낼 수 없다.그 많은 새들이 다 내 형제들의 영혼.나는 그들의 집이 되어야만 한다.이 대규모의, 구제받지 못한, 벌벌 떠는 다수.밤이라 불리는 이 음울한 평야에나는 단 한 그루 나무.떨리는 손들이 자신을 덥힐 땔감을 달라 한다.그래서 나는 내 가지로 불을 먹여야 한다.이것이 그들이 기억이라 부르는 것. -
세계의 시, 시의 세계 1월27일 얼어붙은 날. 차가운 태양. 새하얀 입김.그해 금요일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무엇을 축하해야 하고, 무엇을 애도해야 하는지,―그날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이자모차르트의 탄생일이었기에.우리의 기억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고.우리의 상상력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창턱에 세워 놓은 촛불은 눈물을 흘렸지만(우리는 촛불을 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스피커에서는 모차르트 초기의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로코코,은빛 가발의 시대, 우리가 아우슈비츠에서 알게 된회색빛 머리카락이 아닌,화려한 의복의 시대, 알몸이 아닌,희망의 시대, 절망이 아닌.우리의 기억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고,우리의 상상력은 갖가지 추측 속에서 길을 잃었다. -
세계의 시, 시의 세계 회계 먼저 눈앞에 황야가 끝없이 펼쳐진 풍경을 상상해보라다음으로 발아래에서 지평선까지 직선을 하나 그려라자, 이것이 세계 전체와 그것을 나누는 분수령이다세계 속 모든 요소는이 분수령을 중심으로 완전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결국 좌와 우, 이것이 기본이다자, 왼쪽에는 네가 가진 것들오른쪽에는 그것을 얻으면서 발생한 채무를 배치한다말하자면 쾌락과 생식, 미와 독현재의 삶과 언젠가 찾아올 죽음어린 느티나무 한 그루와 잃어버린 기억절대로 혼돈이라는 개념을 들여선 안 된다세계는 지금 질서를 획득하고 있으니이 시스템에 맞지 않는 것은 지평선 너머로 추방하라설령 그게 네 자신일지라도 - 요쓰모토 야스히로(1959~)이 시는 요쓰모토 야스히로의 첫 시집 <웃는 버그>(1991)에 실려 있다. 시인은 글로벌 자본주의가 얼마나 많은 오류(bug)를 내포한 시스템인지를 풍자한다. 금융위기, 플랫폼 장애, 프로그램 오류는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회계적 사고는 세계의 질서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한다고 믿는다. 버그의 웃음은 그 간극에서 발생한다. ‘회계’라는 시도 모든 것을 수입과 지출, 자산과 채무로 환산하는 회계적 사고를 교란한다. 발아래 그은 직선 하나를 분수령 삼아 좌우에 배치한 항목들이 흥미롭다. ‘시’라는 장부에는 숫자 대신 “쾌락과 생식, 미와 독/ 현재의 삶과 언젠가 찾아올 죽음/ 어린 느티나무 한 그루와 잃어버린 기억”이 기입되어 있다. 시인은 이런 방식으로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킨다. 회계적 사고는 오늘도 우리에게 명령한다. “절대로 혼돈이라는 개념을 들여선 안 된다”고. “이 시스템에 맞지 않는 것은 지평선 너머로 추방하라”고. 무심코 시를 읽다가 “설령 그게 네 자신일지라도”에 이르러 섬뜩해진다. 나 자신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버그처럼 느껴져서다. -
세계의 시, 시의 세계 겨울의 사과나무 전지 나뭇가지들과 함께높이 치솟으려는내 안의 모든 가지를 잘라냈다 새롭게눈들은 유의하며 바깥쪽으로 뻗는 가지들은 유의하며사과나무의 수관을 뚫고바구니를 들고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늙은 정원사가 말한다 너무 큰 괴로움, 너무 큰 기쁨도우리를뚫고 가야만 한다 라이너 쿤체(1933~2024)라이너 쿤체는 고요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지닌 독일의 서정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동독 정보국의 감찰을 받으며 힘든 시절을 보냈다. 사과나무의 전지(剪枝)를 마음의 가지치기에 비유한 이 시는 결실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고 욕망을 덜어내는 지혜를 전해준다. 제목부터가 두 행으로 가지치기 되어 있다. 겨울이 가지치기에 좋은 것은 나무의 생장이 느려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여름철에 가지치기를 무리하게 하면 수관이 불균형해지고 바람을 견디는 힘이 약해진다. 시인은 먼저 “높이 치솟으려는/ 내 안의 모든 가지를 잘라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싹을 품은 눈들과 바깥쪽으로 뻗는 가지들은 섬세하게 살펴서 남겨두어야 한다. 산 가지와 죽은 가지를 구분하는 통찰력 또한 필요하다. 늙은 정원사는 “사과나무의 수관을 뚫고/ 바구니를 들고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겨울의 빈 가지를 보면서도 이듬해 사과를 수확할 무렵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정원사의 조언은 마음을 가지치기하는 데도 유효하다. 불필요한 가지들을 쳐내야 햇빛과 바람이 드나들 수 있듯이, “너무 큰 괴로움, 너무 큰 기쁨”이 우리 마음을 뚫고 지나가려면 내면을 성글게 비워두어야 한다. 나무도 마음도 가지치기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
세계의 시, 시의 세계 조간신문 날마다 신문을 하나씩 읽고(조간이제일 좋지저녁이 되면 자신이 적어도하루를 더 견뎠다는 걸 알게 되니까)재난들, 믿기지 않지만승인된 결정들이마음에 스며들게 해. 나라들 이름을 댈 필요도 없지,그중에 미국도 있으니까. 우리가 수치스럽고, 수치스러워땅에 얼굴을 박고 쓰러지지 않게 해주는 건 무엇일까? - 메리 올리버(1935~2019)유려한 언어로 자연의 충만한 생명력을 노래해온 시인 메리 올리버가 이런 시도 썼다니, 다소 뜻밖이다. 이 시가 실린 시집 <천 개의 아침>은 이라크 전쟁이 끝날 무렵인 2012년에 출간됐다. 매일 아침 조간신문에 실린 재난과 전쟁의 소식을 접하며, 시인은 자신의 나라 미국에 대한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의(자국의) 평화가 타자의(타국의) 고통을 담보로 유지되고 있다는 느낌. 이러한 공모자로서의 수치심은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적 정동이다. “믿기지 않지만/ 승인된 결정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시인은 “soak in”이라고 표현한다. 물에 젖어들 듯이 우리는 타자의 불행과 타국의 재난에 무력하게 잠겨간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며(have lived through) 수치를 견딘다. 시인이 조간신문이 좋은 이유를 “저녁이 되면 자신이 적어도/ 하루를 더 견뎠다는 걸 알게 되니까”라고 설명하는 것도 그래서다. ‘견딘다’라는 동사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참담하고 아슬아슬한 일상. “ashamed, ashamed”의 반복으로 끝나는 이 시를 읽으며 우리 또한 자문하게 된다. “수치스럽고, 수치스러워/ 땅에 얼굴을 박고 쓰러지지 않게 해주는 건 무엇일까?”라고. -
세계의 시, 시의 세계 늦은 시 이건 늦은 시들.시라는 건 십중팔구대단히 늦기 마련이다,뱃사람이 보낸 편지가그가 물에 빠져 죽은 후에야 도착하듯. 손쓸 수 없이 늦은, 그런 편지들과늦은 시들은 비슷비슷해서마치 물속을 헤치고 다다르는 듯해.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전쟁, 눈부신 시절, 욕망에 빠져들었던달밤, 작별의 입맞춤, 그 무엇이든 시는해안으로 쓸려온 표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