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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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 작품 속의 부동산?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담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 의도를 알아보고 공감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말하는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주제와 소재, 그리고 이를 담아내는 매체가 적절하게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환기의 점묘 추상화를 보자.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우주, 하늘, 바다, 인간에 관한 것일 수 있지만, 표현은 결국 물감을 통해 이루어진다.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 좋은 전시, 나쁜 전시, 이상한 전시 올해에도 각 미술관에서 블록버스트급에 가까운 전시들을 열고 있다. 그 전시들 가운데 어떤 전시가 좋은 전시일까? 작가 입장에서 좋은 전시란 작업실로 빨리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전시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전시된 작품을 보는 내내 작업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전시 말이다. ‘아, 나는 왜 이걸 이런 시각에서 보지 못했을까’ ‘이 작가는 어떻게 이 매체를 이렇게 쓰게 되었을까’ 등등… 반성과 자책하는 마음이 들고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결국 얼른 가서 작업을 해봐야지 하는 전시가 좋은 전이다.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 어머니의 봄 10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봄이 되면 고향엘 가고 싶어 하셨다. 연세가 드신 후 여러 사정 때문에 서울 근교에 내가 모시고 있었는데, 봄이 되면 “집에 가고 잡다”고 하셨다.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어의도라는 고향 섬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목포나 광주에 내려서 시외버스를 타고 지도읍엘 간다. 그다음에 택시나 버스로 지도의 북쪽 참섬 선착장에 가 나룻배를 탄다. 내려서는 고향에 살고 있는 동생이 몰고 온 경운기나 트럭으로 집에 갔다. 한마디로 하루 종일 걸리는 머나먼 길이다.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 나쁜 예언은 왜 맞는가 불타는 63빌딩과 동강 난 채 추락하는 전투기를 함께 배치한 합성 작업을 한 것은 1998년이었다.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9·11 테러가 일어나기 3년 전이다. 훗날 여객기가 건물에 충돌해 붕괴되는 장면을 보며 떠올린 생각은 “나쁜 예언은 맞는구나”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작업은 우리 사회에 잠재된 ‘전쟁 공포’를 다룬 연작으로, 미국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그러나 시대와 공간을 건너 그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를 미술의 신통력으로 설명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왜 나쁜 예언은 유독 잘 들어맞는지, 그 점이 궁금하다.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 젊은 작가들에게 삼월이다. 지구촌 사방이 전쟁터지만 그래도 초중고, 대학에 신입생들이 입학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대학에서 회화나 순수미술을 전공한 친구들도 졸업을 했으리라. 누군가는 대학원이나 유학을 가고, 극히 일부는 취업을 하고, 대부분은 백수도 작가도 아닌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중 누군가는 어찌어찌 모은 돈이나 빌린 돈으로 작은 작업실을 차리고, 먹고살 일을 따로 하면서 작업을 계속하리라 다짐할지도 모른다.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 지워지는 개처럼 카메라를 메고 거리를 걷다 보면 상상하지 못한 장면들과 마주친다. 그런 장면들은 대개 미술 작품에서 보지 못한 것들일 때가 많다. 현실은 늘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넘어선 곳에서 뜻밖의 상황들을 연출하고 보여준다. 거리의 골목에서도 그렇고 철거 중인 재개발 지역에서도, 남쪽 어느 작은 섬에서도 발견된다. 물론 대단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 따뜻한 밥 한 끼 날이 춥다. 너무 춥다. 처음 서울에 왔던 1984년, 영하 18도의 겨울밤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다시 학생이 되어 교사 시절 모은 돈 몇푼을 들여 운영하던 화실의 모든 물이 얼어붙어 마실 물조차 없던 겨울. 건물주가 화실에 더 이상 세를 주지 않겠다는 바람에 화실을 접은 뒤, 서교동 어느 차고 두어 군데 세를 살다 다시 근처 어느 집으로 세를 들어갔다.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 청와대와 도망자 대통령실을 다시 청와대로 옮겼다. 잘한 일이다. 청와대라는 이름을 처음 안 것은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에서였다. 그 잡지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매달 한 권씩 배달돼 왔는데 가끔 당시 대통령 아들의 모습이 실렸다. 청와대 잔디밭에서 대통령인 아버지와 축구를 하는 모습, 진돗개와 놀고 있는 모습, 수업 시간에 손을 번쩍 든 사진들이 실려 있다.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대통령 아들은 저 먼 어느 딴 세상 사람 같았다. -
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 병오년, 1966~2026 붉은 말의 해라는 병오년이 되었다. 60년 전인 1966년도 같은 병오년이었다. 그때 나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작은 섬의 초등학교 분교 5학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해가 병오년이었다는 사실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은 그해를 ‘더 일하는 해’로 저 높은 곳에 있던 누군가가 명명했다는 사실이다. 그 전해인 1965년은 ‘일하는 해’였다. 박목월 시인이 작사했다는 “올해는 일하는 해 모두 나서라”로 시작하는 노래도 있었다. 우리는 그 노래를 학교에서 배웠고, 동네 스피커에서도 간간이 들려왔다. 지금도 그 노래의 멜로디가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