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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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암밍아웃’은 사절합니다 괴로운 사람만큼 자기 언어가 절실한 사람도 없다. 암을 둘러싼 여러 표현은, 결국 자신의 어려움을 잘 설명하려고 고안된 도구다. ‘암 환자’ 대신 ‘아만자’라고 쓰면서 자신의 질병을 둥글려서 받아들인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긴 하지만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하는 대신 “암 걸리겠다”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럼 이런 말은 어떨까. “제 친구 중에도 도미처럼 ‘암밍아웃’을 한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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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이력서의 빈칸 앞에서 자필로 이력서를 쓰지 않게 된 시절이라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만지작거리느라 종이의 네 귀퉁이에 분이 났을 테니까. 이유는 비어 있는 3년치의 경력란에 있었다. 나는 백혈병을 진단받고 회복하는 데에 그 기간을 썼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굿즈를 만들며 글을 썼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그런 걸 적을 수는 없었다. 그 일들은 경력으로 인정받기에는 모자란 구석이 하나씩 있었다. 도무지 채울 수 없는 빈칸 앞에서, 어떻게 해서든 이 공백 아닌 공백기에도 의미가 있었다고 증명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