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저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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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의지의 재구성 빡빡머리가 된 내게 아버지는 말했다. “의지만 있으면 다 살아.” 하지만 중병을 앓아본 사람들은 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높은 정신의 힘으로 몸을 다스릴 수 있다는 오랜 신화는, 일상이 일상으로 영위되지 않는 순간 산산이 깨진다. 부서진 자리에서 자라나는 마음이 꼭 의지만은 아니라서, 질병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도 여러 갈래로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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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믿음을 응시하는 일 아프고 나서 알게 된 기독교의 기도 방식 중에 ‘화살기도’라는 것이 있다. “암 환자인 ○○을 위해 모월 모일 모시 화살기도를 해주세요”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하면 사람들이 기도를 해주는 식이었다. 신도 화살기도도 눈에 보이는 어떤 존재라면, 그것은 한 지점을 향해 수많은 빛살이 꽂히는 모양일 것이다. 확고한 무신론자에게는 이 의식이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믿는다. 그 빛살이 고통받는 사람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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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아픈 딸도 아픈 소비자도 아닌 “어떻게 친구들의 돌봄을 받을 생각을 했어요?” 질문 뒤에 또 다른 질문이 덧붙기도 했다. “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아요?” 내가 무척 용감한 사람이라거나 대책 없이 무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무려 ‘아픈 사람은 혈연 가족이 돌본다’라는 정상성을 거스른 사람이 된 거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 암만 질병이 집안의 재앙이라 한들, 20년 가까이 따로 살던 성인들이 갑자기 붙어살면서 즐겁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중증질환이라는 사건은 부모와 나의 관계를 이전보다도 부드럽게 만들기는 했다. 아버지 지인은 상황버섯 한 자루를 챙겨줬고, 친족들은 잘 먹고 낫는 데 쓰라며 용돈을 보내줬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와 부모가 기약 없이 붙어살며 서로의 꼴불견을 인내해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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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착즙하는 항암 식단 ‘암 치유’라는 세계가 있다. 나는 암 진단과 동시에 이 광활한 세계에 떨어졌다. 겁먹은 내 머리 위로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음성이 들렸다. “암 환자는 잘 먹어야 한다!” 음성은 곧 숯덩어리 형상의 버섯, 닭발곰탕, 슈퍼푸드를 찬양하는 노래가 되어 공중에 울려 퍼졌다. 나는 소심하게 반항했다. “저는 감염 위험도 크고 간도 약해져서 그런 걸 먹을 수 없어요.” 가사가 바뀌었다. 콩, 브로콜리, 토마토, 마늘… 나는 끝내 울먹이며 소리쳤다. “그건 그냥 골고루 먹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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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치료도 되고, 사고도 되는 위험 방사선 조사는 표준 암 치료법 중 하나다. 내 경우에도 그랬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며칠간 전신방사선 조사를 받았다. 오전과 오후 각각 20분, 움직이지 않도록 몸을 벨트로 동여맨 채였다. 새소년의 ‘파도’가 크게 흘러나왔다. 노랫말에 따라 어깨가 들썩이려 했다. 미동 없이 가만히 있기 위해 꽤나 애를 써야 했다. 통상 조혈모세포 이식 전 처치 목적으로 조사되는 방사선량은 총 8~12Gy(그레이). 한 번에 피폭된다면 치명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이 방사선은 나를 살리기 위해 계산되고 통제된 위험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불가피하게 선택하게 된 것과 불가피하게 잃을 것을 신뢰했다. 칙칙하게 어두워진 몸과 뻑뻑한 눈, 대책 없는 피로와 구역감은 적어도 이 병원과 내 몸 안에서 관리되고 사라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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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암밍아웃’은 사절합니다 괴로운 사람만큼 자기 언어가 절실한 사람도 없다. 암을 둘러싼 여러 표현은, 결국 자신의 어려움을 잘 설명하려고 고안된 도구다. ‘암 환자’ 대신 ‘아만자’라고 쓰면서 자신의 질병을 둥글려서 받아들인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긴 하지만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하는 대신 “암 걸리겠다”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럼 이런 말은 어떨까. “제 친구 중에도 도미처럼 ‘암밍아웃’을 한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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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이력서의 빈칸 앞에서 자필로 이력서를 쓰지 않게 된 시절이라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만지작거리느라 종이의 네 귀퉁이에 분이 났을 테니까. 이유는 비어 있는 3년치의 경력란에 있었다. 나는 백혈병을 진단받고 회복하는 데에 그 기간을 썼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굿즈를 만들며 글을 썼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그런 걸 적을 수는 없었다. 그 일들은 경력으로 인정받기에는 모자란 구석이 하나씩 있었다. 도무지 채울 수 없는 빈칸 앞에서, 어떻게 해서든 이 공백 아닌 공백기에도 의미가 있었다고 증명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