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마, 허블…'노병 망원경'은 다시 눈 뜰까

이정호 기자
지구 고도 500여㎞를 돌고 있는 허블우주망원경의 모습. 지난달 13일 고장이 난 뒤 작동이 정지됐으며, 현재 원격 수리 중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지구 고도 500여㎞를 돌고 있는 허블우주망원경의 모습. 지난달 13일 고장이 난 뒤 작동이 정지됐으며, 현재 원격 수리 중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2013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그래비티> 도입부는 깊은 고요함이 지배하는 검은 우주와 보석처럼 빛나는 지구가 만드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시작한다. 지구 궤도에 올라오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는 이 빼어난 풍광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은 고도 약 500㎞를 도는 버스만 한 우주 물체를 수리하기 위해 진땀을 뺀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고치려고 노력하는 장비는 허블우주망원경이다. 곁에는 우주왕복선이 머물러 있는데, 주인공들을 태우고 허블망원경에 접근하기 위한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현 시점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우주왕복선은 2011년 모두 퇴역했다. 지금은 허블망원경이 고장 나도 사람이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1990년 발사 뒤 허블망원경은 모두 다섯번 직접 수리를 받았는데, 마지막은 2009년이었다.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해낸 임무다. 그 뒤에는 사람이 직접 손을 대지 않는 원격 수리에 의존했다. 2018년 방향을 제어하는 장치인 자이로스코프가 고장 나 3주 만에 원격 수리로 고친 적이 있고, 올해 3월에도 역시 자이로스코프에 문제가 생기며 작동이 정지됐다 나흘 만에 임무에 복귀한 사례가 있다.

그런데 허블망원경이 최근 또 고장 나면서 과학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13일 허블망원경에 탑재된 컴퓨터가 멈추면서 운영이 중단됐는데, 3주가 다 되도록 원격 수리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비상시를 대비해 설치된 허블망원경 내 예비 컴퓨터를 켜려고 했지만, 반응이 없는 상황이다. NASA는 전력이 예정된 전압을 지키면서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등을 살피고 있다.

길어지는 허블망원경의 수리 기간을 두고 허블망원경의 퇴역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원래 설계 수명은 15년이었지만, 벌써 31년째 활동 중이어서 기계적 피로도가 상당히 축적된 상황이다. 언제든 영구적인 고장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허블망원경이 정말 갑자기 천문학계를 떠나게 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이르면 올해 11월, 망원경에서 ‘눈’ 기능을 하는 거울의 지름이 허블망원경보다 2.7배 큰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발사될 예정이지만, 허블의 자리를 완벽히 대체하긴 어렵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제임스 웹 망원경은 적외선 관측에 특화돼 있다”며 “하지만 허블망원경은 근자외선과 가시광선, 근적외선까지 감지한다”고 말했다. 허블망원경이 구식이긴 하지만 관측할 수 있는 빛의 영역이 넓다는 것이다. 소행성과 혜성, 행성은 물론 먼 은하를 아우르는 각종 천문학 연구에 두루 활용된다.

이 때문에 NASA는 제임스 웹 망원경을 발사한 이후에도 허블망원경을 함께 운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허블망원경 수리가 실패해 작동 불능이 되거나 성능에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NASA는 1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 주에 걸쳐 하드웨어를 계속 점검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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