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광년 떨어진 파란 별…지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이정호 기자

우주망원경 테스, 최근 외계행성 ‘TOI-1231b’ 발견

섭씨 57도에 물 존재 암시하는 구름 관측, 암석 없는 가스 행성 가능성도

지구에서 90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발견된 외계행성 ‘TOI-1231b’의 상상도. 대기에 물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지구에서 90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발견된 외계행성 ‘TOI-1231b’의 상상도. 대기에 물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때는 2174년, 인류는 환경이 파괴된 지구를 대신할 태양계 밖 행성 ‘타니스’로 대형 우주선을 출항시킨다. 승객은 모두 6만여명, 새 행성에 인간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선발된 엔지니어와 농부 등의 개척자들이었다. 이들은 100년이 넘는 긴 항해를 위해 각자 몸을 누일 수 있는 캡슐에서 장기간 수면에 들어간다. 하지만 새로운 행성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이들이 투약받은 ‘진화 촉진제’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만든다. 어둡고 자원이 부족한 우주선 안에서 약효가 발휘되며, 승객들을 민첩하며 잔혹한 맹수로 만든 것이다. 주인공들은 이들과 사투를 벌이고, 우여곡절 끝에 잠들어 있는 승객 1000여명과 함께 우주선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탈출한 사람들을 기다린 건 행성 전체에 가득한 물, 그리고 숨 쉴 수 있는 대기였다. 인류의 역사가 새로운 행성 타니스에서 새로 시작한 순간이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팬도럼> 이야기다.

■ 지구 코앞서 발견한 외계행성

물과 대기가 존재하는 행성은 공상과학(SF) 영화의 단골 소재다. 최근에는 성능 좋은 우주망원경이 잇따라 발사되며, 영화계뿐만 아니라 과학계에서도 생명의 존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뜨거운 탐구 주제가 됐다.

그런데 지난달 말 미국 과학매체 스페이스닷컴은 미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와 미국 뉴멕시코대 연구진이 지구에서 90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TOI-1231b’라는 외계행성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연구 결과는 논문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최근 실렸다.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의 지름은 10만광년에 이르기 때문에 새 외계행성이 발견된 90광년은 우주적인 관점에선 코앞의 이웃이다.

새 외계행성은 2018년 미국이 발사한 우주망원경인 테스(TESS)로 발견했다. 관측 결과에 따르면 새 외계행성은 지구의 3.5배 크기로 해왕성보다 약간 작다. 또 자신을 거느린 중심별인 적색왜성에 스치듯 바짝 붙어 돈다. 이 때문에 공전 주기가 24일에 불과하다. 육상 트랙을 돌 때 바깥쪽보다 안쪽 코스를 선택하면 빠르게 도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여기까지는 우주에서 발견한 수천개의 다른 외계행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펙’이다.

최근 외계행성 ‘TOI-1231b’를 탐지한 우주망원경 ‘테스(TESS)’의 임무 상상도. 어두운 외계 행성이 밝은 별 앞을 지나며 빛을 가리는 순간을 포착해 행성의 존재를 알아낸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최근 외계행성 ‘TOI-1231b’를 탐지한 우주망원경 ‘테스(TESS)’의 임무 상상도. 어두운 외계 행성이 밝은 별 앞을 지나며 빛을 가리는 순간을 포착해 행성의 존재를 알아낸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 온화한 온도·수분 구름 가능성

하지만 TOI-1231b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섭씨 57도의 온화한 온도다. 지구 평균기온인 15도보다는 높지만, 사람이 어렵지 않게 견딜 만한 사우나 수준의 온도다. 지금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외계행성 온도가 수백~수천도였다는 점에서 TOI-1231b는 낙원에 가깝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TOI-1231b가 공전하는 적색왜성 자체가 본래 미지근한 별이기 때문이다. 적색왜성은 표면 온도가 3500도를 넘지 않는다. 반면 태양은 5500도에 달한다. TOI-1231b가 공전에 3주 남짓밖에 안 걸릴 만큼 적색왜성에 바짝 붙어 공전해도 사우나 같은 온화한 온도를 유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TOI-1231b에 주목할 점은 또 있다. 연구진은 두꺼운 대기가 있는 이 행성에 구름이 있다고 보고 있다. 관심거리는 구름을 만든 물질이다. 수소나 헬륨일 수 있지만 물일 수도 있다. 만약 구름이 물로 만들어졌다면 대기에도 물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15년 지구에서 124광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외계행성 ‘K2-18b’는 대기에 물이 섞인 것으로 나타나 천문학계를 흥분시켰다. 지구에서도 구름은 물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TOI-1231b의 자연환경은 다른 외계행성에 비해 상당히 좋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구에 사는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딱딱한 암석 없이 가스로 이뤄진 행성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구 생명체는 발 딛고 설 대지가 있다는 전제로 신체를 발달시켜왔다. 연구진은 NASA 홈페이지를 통해 “허블우주망원경과 올가을 발사될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을 통해 새 외계행성을 둘러싼 기체의 종류가 무엇인지 정밀 관측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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