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하늘에 이산화황 '치익'…이러면 해수면 상승 잡힌다고?

이정호 기자
1991년 6월12일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 직후 하늘로 화산재가 치솟고 있다. 이때 이산화황 2000만t도 대기에 유입되면서 2년간 지구 기온이 0.5도 낮아졌다. 미국 지질조사소(USGS) 제공

1991년 6월12일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 직후 하늘로 화산재가 치솟고 있다. 이때 이산화황 2000만t도 대기에 유입되면서 2년간 지구 기온이 0.5도 낮아졌다. 미국 지질조사소(USGS) 제공

미국 공군의 공중 급유기 KC-135R이 비행 중인 전투기에 연료를 공급하고 있다. 최근 과학계에선 이 같은 대형 급유기 등을 동원해 이산화황 입자를 극지방 성층권에 뿌려 지구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을 늦추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미 공군 제공

미국 공군의 공중 급유기 KC-135R이 비행 중인 전투기에 연료를 공급하고 있다. 최근 과학계에선 이 같은 대형 급유기 등을 동원해 이산화황 입자를 극지방 성층권에 뿌려 지구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을 늦추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미 공군 제공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미국 뉴욕의 빌딩들이 홍수가 만든 거대한 물결 속으로 속절없이 사라진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선 폭염으로 하루에 수백만명이 숨진다. 한계점을 넘은 기후변화의 결과였다. 이런 일이 지구 곳곳에서 이어지자 인류는 지구 궤도에 기후를 조절할 목적의 인공위성 수천 기를 띄운다. 열과 압력, 수분처럼 날씨를 좌우하는 요소를 제어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 덕분에 인류는 강풍과 눈보라, 홍수 등 기후변화 때문에 겪어야 했던 문제에서 해방된다. 2017년 개봉한 미국 영화 <지오스톰> 장면들이다.

<지오스톰>에 등장하는 인위적인 기후조절 기술을 ‘지구공학’이라고 부른다. 2000년대 들어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최근에는 좀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지구 중에서도 북극과 남극에서 이 기술을 제한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목적은 해수면 상승 억제다. 실행에 따른 비용과 노력을 최소화하면서도 기후 통제 효과를 최대화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주류 과학계에선 지구공학에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지구 기후의 톱니바퀴 안에 끼어들었다가 지금은 상상 못할 ‘대형 사고’를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산화황 뿌려 햇빛 차단
미국 예일대와 항공우주학회(AIAA) 등에 소속된 과학자들이 구성한 공동 연구진은 최근 국제 학술지 ‘인바이런멘털 리서치 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하늘에 ‘특정 물질’을 뿌려 해수면 상승을 저지할 방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뿌리려는 물질은 ‘이산화황’ 입자다. 이를 지구 대기권 가운데 성층권에 해당하는 13㎞ 고도에 살포하자는 것이다.

연구진은 왜 하필 이산화황을 골랐을까. 이산화황이 거울처럼 햇빛을 튕겨내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점이 자연계에서 입증됐기 때문이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했을 때 지구 대기로 섞여든 약 2000만t의 이산화황은 황산 에어로졸을 형성해 2년 동안 지구 기온을 0.5도나 떨어뜨렸다. 인위적으로 이산화황을 뿌려도 같은 효과를 낼 것으로 연구진은 판단했다. 연구진은 미 공군의 공중 급유기인 KC-135R과 유사한 대형 비행기들을 100여대 동원해 이산화황 입자를 뿌리자고 제안했다.

■극지방 기온 2도 하락 기대
사실 이산화황을 이용해 햇빛 일부를 차단하다는 주장은 예전에도 있었다. 이번에 연구진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주목되는 건 이산화황을 뿌리자고 제안한 장소 때문이다. 지구 전체가 아니라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각각 위도 60도 이상 지역의 하늘에만 이산화황을 살포하자고 한 것이다. 북반구에선 미국 알래스카, 남반구에선 아르헨티나 남부보다 극지방에 가까운 하늘을 겨냥해 비행기를 띄운 뒤 충분한 양의 이산화황 입자를 방출하자는 얘기다.

연구진은 이렇게 하면 북극과 남극 기온을 지금보다 2도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곳은 19세기 후반, 세계가 산업화에 들어서기 이전보다 추워지는 셈이다. 북극의 그린란드, 그리고 남극 일대는 지구 해수면을 끌어 올릴 빙하로 가득 차 있는데, 이 지역에 전에 없던 냉기가 공급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계획을 실행하는 데 매년 110억달러(15조5000억원)가 들 것으로 봤다. 반면 지구 전체에서 탄소 감축과 포집 같은 수단을 이용해 같은 효과를 보려면 360억달러(50조7000억원)가 소요된다고 추산했다. 해수면 상승 억제라는 효과는 확실히 챙기면서 비용은 아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찬물 뿌리기식’ 임기응변 위험
문제는 이런 시도가 지구 기후 시스템을 망가뜨릴 위험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인간은 아직 지구 기후 체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덥다고 찬물을 뿌리는 식의 섣부른 대응을 했다간 대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지구공학은 갑작스러운 대기 흐름 변화를 일으켜 생각지 못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강수량 변화 같은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에 없던 가뭄과 홍수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현재까지 등장한 지구공학적인 아이디어들은 모두 전 지구적인 기후 체계를 적용해 만든 컴퓨터 시뮬레이션 안에서 문제가 나타났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지구공학은 ‘치료제가 있으니 온실가스를 뿜어도 괜찮겠지’라는 인식을 인류에게 심어줄 수도 있다고 과학계는 우려한다. 이산화탄소 감축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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