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품은 페인트…미래 화성기지에 ‘숨쉴 환경’ 만든다

이정호 기자

영국 연구진, 미생물 섞은 페인트 개발

산소 발생·탄소 흡수 ‘시아노박테리아’ 함유

복잡한 기계 장치 없이 바르기만 하면 활동

‘척박한 환경’ 화성 기지에서 활용 가능성 커

미래 화성 기지의 상상도. 영국 연구진이 최근 산소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는 흡수하는 특수 페인트를 개발했는데, 화성 기지의 벽에 발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미래 화성 기지의 상상도. 영국 연구진이 최근 산소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는 흡수하는 특수 페인트를 개발했는데, 화성 기지의 벽에 발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1970년 4월11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달 탐사선 아폴로 13호가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된다. 아폴로 13호에는 우주비행사 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륙 50여 시간이 지났을 때, 아폴로 13호 기체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이 발생한다. 이내 산소가 새기 시작한다. 비상사태였다. 호흡과 직결되는 산소 누출은 우주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다. 우주비행사들은 자신들이 원래 머물던 ‘사령선’과 비교해 산소가 더 많이 저장된 ‘달 착륙선’으로 긴급 대피한다. 예정된 임무를 그대로 수행하기는 이미 어려워졌기 때문에 달 착륙선을 구명선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달 착륙선은 우주비행사 3명 가운데 2명만 타도록 설계돼 있었다. 나머지 1명은 다른 2명이 달 착륙선을 타고 월면에 다녀오는 동안 달을 공전하는 사령선 안에서 머물게 돼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달 착륙선에 3명이 올라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앉을 의자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3명이 몰려들면서 달 착륙선 내 공기에서 이산화탄소가 급증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질식으로 우주비행사들은 목숨을 잃는다.

우주비행사들은 선내에서 구할 수 있는 비닐봉투와 양말 같은 잡동사니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거를 임시 필터를 가까스로 만들었다. 결국 그들은 목숨을 건지고 지구로 귀환한다.

미국 영화 <아폴로 13>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우주비행사가 지구 밖에서 제대로 호흡할 환경을 만드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과학계에서는 골치 아픈 숙제다. 아폴로 13호에서처럼 꼭 비상상황이 아니어도 그렇다. 미래에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에 건설할 대규모 우주기지에서 산소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실용적이며 검증된 방법은 아직 없다. 그런데 최근 과학계에서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미생물이 섞인 페인트를 쓰는 방법이다.

영국 연구진이 개발한 특수 페인트 내부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 녹색 덩어리들이 ‘시아노박테리아’이다. 산소를 뿜고 이산화탄소는 흡수한다. 영국 서리대 제공

영국 연구진이 개발한 특수 페인트 내부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 녹색 덩어리들이 ‘시아노박테리아’이다. 산소를 뿜고 이산화탄소는 흡수한다. 영국 서리대 제공

산소 뿜는 미생물 혼합

지난주 영국 서리대 연구진은 지구에 사는 미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를 함유한 특수 페인트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올로지 스펙트럼’에 실렸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주로 지구의 물속에 산다. 크기가 수㎛(마이크로미터)다. 대략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이다. 너무 작아 몸 구조를 제대로 살피려면 현미경을 써야 한다.

가장 큰 특징은 광합성을 해 산소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는 흡수한다는 점이다. 과학계는 지구 대기에 산소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시아노박테리아 덕분이라고 본다. 30억년 전 지구에 등장한 뒤 6억년 전 대기 중 산소 비율을 지금의 절반까지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다.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식물 대신에 산소를 공급했다.

서리대 연구진은 시아노박테리아 중에서도 ‘크로오코시디옵시스 쿠바나’라는 종류를 선택했다. 이를 수성 페인트에 섞었다. 크로오코시디옵시스 쿠바나는 다른 종류의 시아노박테리아와 달리 물이 적은 환경, 즉 사막에서 산다. 별다른 관리 없이도 알아서 생존한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크로오코시디옵시스 쿠바나를 고무와 유사한 성분인 고분자 물질 안에 넣은 뒤 페인트와 혼합했다. 연구진은 여기에 ‘그린 리빙 페인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린 리빙 페인트의 성능은 놀라웠다. 페인트 1g당 하루 0.4g의 산소를 생성했다. 이산화탄소는 0.31g을 흡수했다. 복잡한 기계 없이 미생물이 들어간 페인트로만 만든 성과였다. 페인트 속에서 숲을 가꾼 셈이다.

화성 기지에 활용 기대

서리대 연구진은 그린 리빙 페인트를 화성 기지에서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기지 내벽에 바르면 산소를 주고 이산화탄소는 가져간다.

연구진은 대학 공식 자료를 통해 “크로오코시디옵시스 쿠바나는 강력한 자외선에서도 견딜 수 있다”고 밝혔다. 높은 온도와 방사능에도 저항력을 갖는다. 자외선을 막을 오존층이 적고, 대기가 옅어 기온 변화가 크며, 방사능을 방어할 자기장이 미약한 화성에서 취급하기에 딱 좋다.

인간이 숨쉴 환경을 만드는 일은 우주과학계 공통 관심사다. 2021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 무인 탐사차량 ‘퍼서비어런스’ 내부에 탑재한 ‘목시(MOXIE)’라는 장비로 소량의 산소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목시는 화성 대기를 구성하는 이산화탄소를 분해해 산소를 생성했다. 광합성과 비슷하다. 서리대 연구진이 만든 페인트와도 원리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만약 서리대 연구진이 만든 페인트 기술이 실용화한다면 화성 기지에서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방법이 다양해지는 셈이다. 다만 목시 같은 전자기기를 계속 유지·관리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벽에 페인트를 발라 두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편이 훨씬 간편할 것으로 보인다. 서리대 연구진은 “한 달간 페인트를 관찰했지만 성능이 저하되지 않았다”며 “화성을 개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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