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 0.7’ 썰매 타고 이륙…신개념 우주 수송기 온다

이정호 기자

미국 기업, ‘라디안 원’ 개발 본격 착수

겉모습은 일반 비행기…사출기 타고 이륙

1단 로켓 불필요…최대 100회 재사용

지구 궤도에서 4.5t 화물 옮길 수 있어

발사 비용 대폭 감소…2028년 시험비행

우주 수송기 ‘라디안 원’이 지구 궤도에 도달한 상상도. 최대 4.5t의 화물을 우주에서 지구로 옮길 수 있다.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우주 수송기 ‘라디안 원’이 지구 궤도에 도달한 상상도. 최대 4.5t의 화물을 우주에서 지구로 옮길 수 있다.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 제공

#바다를 항해하는 거대한 항공모함 위. 엘리베이터를 탄 함재기들이 항모 내부의 격납고에서 갑판으로 연이어 올라온다. 수분 뒤, 함재기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갑판에 도열한다. 함상 요원 중 한 명이 가장 선두에 선 함재기를 주시하더니 무릎을 잔뜩 구부려 자세를 낮춘다. 그러고는 한쪽 팔을 곧게 뻗어 항모 정면을 가리킨다. 출격 수신호다.

함재기는 주저없이 항모 갑판을 수평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활주 거리는 약 100m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함재기는 하늘로 거뜬히 날아오른다. 2022년 개봉한 미국 영화 <탑건: 매버릭>의 도입부다. 이 장면은 실제 출격 상황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미국 함재기 중량은 기체와 각종 무기를 합쳐 한 기당 20~30t에 이른다. 이런 엄청난 무게를 이기고 좁은 항모 갑판에서 함재기가 이륙할 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갑판에 설치된 ‘사출기(캐터펄트)’ 때문이다. 증기 힘을 이용해 가속하는 사출기는 함재기를 태우고 쏜살같이 달리는 일종의 썰매다. 일정한 속도에 이른 사출기는 함재기를 분리해 하늘로 내던진다.

그런데 최근 이 사출기 원리를 이용해 ‘우주 수송기’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무슨 얘기일까.

여객기 이륙 속도 3배 질주

지난주 미국 우주항공기업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는 지금껏 인류 역사에 등장한 적 없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만드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 CNN 등 현지 언론을 통해 밝혔다. 2028년 시험비행을 목표로, 지상과 고도 수백㎞의 지구 궤도를 연결하는 우주 수송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수송기 이름은 ‘라디안 원’이다.

우주 수송기 ‘라디안 원’이 로켓 엔진으로 가동되는 사출기를 타고 평지를 질주하는 상상도. 시속 864㎞(마하 0.7)까지 가속해 이륙한다. 사출기는 지구 중력을 뿌리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1단 로켓을 대신한다.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우주 수송기 ‘라디안 원’이 로켓 엔진으로 가동되는 사출기를 타고 평지를 질주하는 상상도. 시속 864㎞(마하 0.7)까지 가속해 이륙한다. 사출기는 지구 중력을 뿌리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1단 로켓을 대신한다.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 제공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가 공개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면 라디안 원은 동체 좌우로 주날개를 갖췄다. 꼬리 날개도 있다. 보통 비행기 같은 외형이다. 다만 제트 엔진이 아니라 로켓 엔진을 장착했다.

그런데 이 영상의 핵심은 라디안 원의 모양새가 아니다. 이륙 장면이다. 라디안 원은 굉음과 함께 가공할 만한 속도로 지상에서 활주하다 공중으로 올라간다. 약 3㎞짜리 활주로를 달리면서 찍은 최고 속도는 무려 시속 864㎞다. 마하 0.7이다. 보통 여객기 이륙 속도(시속 약 300㎞)의 3배에 육박한다.

이 엄청난 속도를 뿜어낸 것은 라디안 원 기체에 달린 로켓 엔진이 아니다. 라디안 원이 썰매처럼 올라탄 사출기다. 로켓 엔진으로 작동되는 사출기가 초고속으로 수평 이동을 하다 하늘에 내던지듯 라디아 원을 띄운 것이다.

사출기가 만들어 준 속도를 그대로 흡수한 라디안 원은 자체 로켓 엔진을 추가로 켜 지구 궤도, 즉 우주로 솟구친다. 결과적으로 라디안 원은 1단 로켓 대신에 사출기를 사용한 셈이다.

현재 지구 궤도 등 우주로 가는 전 세계 로켓은 모두 1~2단 또는 1~3단으로 만들어진다. 발사 직후 지구 중력을 이기고 고도를 높이는 핵심 임무는 1단 로켓이 맡는다. 연료를 다 태운 1단 로켓은 공중에서 분리된다. 그리고 2단과 3단도 연료가 소진되면 차례로 떨어져 나간다. 분리된 동체는 바다에 빠져 수장되거나 대기와 마찰하며 타 버린다.

라디안 원은 사출기 덕에 그런 분리와 폐기 과정 자체가 전혀 없는 ‘단일 로켓’이다. 1960년대부터 당연시되던 로켓의 고정 관념을 라디안 원이 깨버린 것이다.

발사 비용 10분의 1 예상

라디안 원을 쓰면 무슨 이점이 있을까. 돈을 아낄 수 있다. 고도를 높이면서 버리는 동체가 없기 때문이다. 라디안 원 자체도 최대 100회 재사용할 수 있다.

얼마나 절감될까.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는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가늠할 단서는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록히드 마틴이 공동 개발하다 2001년 고강도와 저중량, 내열성을 동시에 갖춘 동체 소재를 찾지 못해 개발을 중단한 ‘X-33’ 때문이다. 당시 제기된 기술적인 문제가 지금은 해결되면서 X-33은 라디안 원의 모델이 됐다.

X-33은 개발 추진 당시 500g짜리 물체를 지구 저궤도에 1000달러(약 130만원)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총 2단 또는 3단으로 구성된 로켓으로는 약 1만달러(약 1300만원)가 든다.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춘다는 뜻이다.

라디안 원은 지구 궤도와 지상 사이를 운항하며 최대 4.5t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다. 승무원은 2~5명이며, 착륙할 때에는 보통 비행기처럼 활주로에 바퀴를 펼쳐 내린다. 라디안 에어로스페이스는 “향후 라디안 원으로 지구 궤도의 우주정거장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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