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체미생물, 인간에 기대어 살지만 바이러스 막는 최전선의 동맹군

김응빈

면역과 미생물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인간은 좋은 서식지

따뜻한 집이자 식량 공급원
기를 쓰고 들어와 살려고 해
몸에서 자라는 게 치명적 감염

|홈그라운드 ‘텃세’

본능적으로 공간·먹이 선점
외래 미생물 접근 못하게 막아
선천성 면역에 큰 힘 보태

바깥세상에는 우리 몸으로 침입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미생물들이 널려 있다. 물론 우리도 이에 맞서 강력한 다중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다. 일부는 침입 자체를 봉쇄하도록, 어떤 것은 침입자를 제거하고 그 특징을 기억해 다음을 대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침입자에게서 우리 몸을 지키는 능력을 면역, 그리고 이를 담당하는 세포와 기관을 일컬어 면역계라고 한다.

면역은 크게 선천성과 후천성으로 나뉜다. 태어날 때부터 완비된 선천성 면역의 체계는 성벽 안쪽에 해자가 있고 거기에 사나운 악어가 살고 있는 성에 비유할 수 있다. 좀 더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제1 방어선(성벽)은 피부와 점막이 맡고 있으며, 그 뒤를 백혈구(악어)가 주도하는 제2 방어선이 받치고 있다. 선천성 면역은 상시 작동하면서 침입 대상을 가리지 않고 신속히 반응한다.

살아가면서 길러가는 후천성 면역은 제1, 2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침입자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맞춤형 방어이다. 후천성 면역은 침입자를 격퇴하는 단백질(항체)과 그것의 주요 특징(항원)을 기록하는 기억세포로 이루어진다. 기억세포 덕분에 백신을 만들 수 있다. 쉽게 말해 백신이란 병원성이 없는 병원체의 일부, 즉 항원이고, 이를 미량 투입해 기억세포를 만들어 대비하게 하는 것이 예방접종의 원리다.

■ 최선의 방어

미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몸은 따듯하고 먹거리가 풍부한 좋은 서식지다. 따라서 이들이 기를 쓰고 들어와 살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미생물이 몸 안에서 자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감염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선의 방어는 침입 자체를 봉쇄하는 것이다. 온전한 상태에서 피부와 점막은 가히 난공불락이다. 하지만 상처나 스트레스 따위가 이 철옹성에 균열을 내곤 한다.

구조 면에서 우리 몸과 건물은 닮은꼴이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부 배관이 건물의 제 기능을 가능케 하듯이, 인체의 신진대사도 일차적으로 위장관과 호흡기관 등을 통해 일어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신체 배관의 내부 공간은 엄연히 몸 밖이라는 점이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면 크게 심호흡을 해보시라. 가슴 속에서 시원함이 느껴지는 그곳이 지금 외부 공기와 접하고 있는 기관지의 내벽이다. 이렇게 외부와 직접 맞닿아 있는 신체 기관의 내벽은 모두 부드럽고 끈끈한 조직으로 덮여 있다. 바로 점막이다.

점막을 이루는 세포는 끈끈한 액체(점액)를 분비해 표면이 마르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미생물을 가두어 감염을 예방한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점막은 단순한 물리적 방어막이 아니라, 세균의 세포벽을 파괴하는 효소(라이소자임)에서부터 항균과 항바이러스, 항암 기능도 갖춘 다기능 단백질(락토페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항미생물 물질을 분비하는 복합 방어기지다. 그러므로 촉촉해야 할 점막이 마르면 그만큼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의 침투에 취약해진다. 실내 환경의 적정 습도 유지와 자주 물 마시기를 호흡기 감염 예방 수칙 1순위로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마이크로 동맹군

만약 우리의 시력이 현미경 수준이라면 서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불편할 것이다. 얼굴 표면에서 꼬물거리는 수많은 미생물이 한눈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피부와 점막을 비롯해서 인체의 표면은 온통 미생물로 덮여 있다. 이렇게 우리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통틀어 ‘휴먼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 또는 ‘인간미생물체’라고 한다.

인간미생물체에게 우리의 몸은 집이자 식량 공급원이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삶의 터전에 외래 미생물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일단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공간과 먹이를 선점하고, 침입자에게 유해한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텃세는 선천성 면역에 큰 힘을 보탠다. 사실상 인간미생물체는 제1 방어선의 최전선에 서 있는 든든한 동맹군이다.

인간미생물체는 역동적이면서도 안정적이다. 식단 변화와 질병, 스트레스 등 살면서 겪는 일시적 신체 변화에 따라 그 조성이 변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원래의 평형 상태를 회복한다. 보통 세 살까지 형성된 인간미생물체, 특히 장내미생물은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 속담이 떠오르다 생각이 발전한다. 우리는 인간 세포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미생물 세포가 어우러진 공동체적 개체이다!

■ 나 그리고 우리

현대 생물학은 우리가 인간 세포와 갖가지 미생물 세포로 이루어진 기능 공동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두 부류의 세포는 서로 차원이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생물학적 특성도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를 구별해 비자기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우리의 면역계가 인간미생물체를 인간 세포인 양 그대로 둔다. 분명히 ‘유전적 비자기’인데 말이다. 직무 유기가 아니라면, 인체 면역계는 자기를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개념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학연과 지연 같은 연고 중심의 패거리가 아니라, 조화로운 공존과 번영에 기여하는 건전한 구성원들을 아우른다.

인체 면역계는 대략 20만년으로 추정되는 호모사피엔스의 생물학적 역사 기간 동안 다양한 미생물과의 수많은 만남 속에서 다듬어진 오랜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 사회에서 각양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친구로 발전하는 좋은 인연도 있지만, 때로는 피해를 보는 악연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인생 경험은 타인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에 적잖이 도움을 준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면역계도 자연에 존재하는 온갖 미생물들이 자극을 주면, 거기에 반응하면서 가까이해야 할지 멀리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왔다. 이를 곱씹어 생각하면 전투적 이미지에 가려진 면역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바로 타자와의 공존 능력이다. 이런 수용력이 없다면, 우리는 평생 쉼 없이 미생물과 싸우기만 하다 생을 마감하고 말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면역력’이 큰 화두로 떠올랐다. 솔직히 이 단어는 다소 낯설다. 교과서에서 사용하지 않거니와, 겹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추측컨대 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누군가 사용한 말이 대중의 호응을 얻은 것 같다. 용어의 적절성 시비를 따질 의도는 없다. 다만 어감상 면역의 공격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자칫 면역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바로 뒤에 ‘강화’라는 단어가 따라붙으면 더욱 그렇다.

■ 면역 다시 보기

면역은 배타와 수용이라는 양가성을 띠고 있다. 균형추가 어디로 얼마나 기울지는 유해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이 말인즉, 면역 반응의 방향과 강도는 이질성이 아니라 위험성에 따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미생물체가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유전적 비자기가 면역적 자기로 동화되는 현상을 ‘면역관용’이라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유전적 자기가 면역적 비자기로 인식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면역계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이 그런 경우이다. ‘자기-비자기’라는 이분법적 잣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면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차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1880~1936)의 저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 이런 대목이 있다. “무엇을 ‘아(我)’라 하며 무엇을 ‘비아(非我)’라 하는가? 깊이 팔 것 없이 얕이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서 있는 자를 아라 하고 그 밖의 것은 비아라 한다. … 아에 대한 비아의 접촉이 잦을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가 더욱 맹렬하여 인류 사회의 활동이 쉴 사이가 없으며,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 무릇 선천적 실질부터 말하면 아가 생긴 뒤에 비아가 생기는 것이지만, 후천적 형식부터 말하면 비아가 있은 뒤에 아가 있다.”

|2㎏도 넘게 함께 살죠

수백조마리 대부분 창자에
장내미생물은 주로 ‘점막’으로
면역계와 활발히 상호작용

단재 선생의 통찰력을 적용하면, 면역은 주관적 위치에 있는 인간 세포와 이를 둘러싼 미생물과의 투쟁이 낳은 산물이다. 인간이 있은 다음에야 거기에 미생물이 자리를 잡지만, 면역은 이들의 존재 때문에 진화했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인간미생물체로 자리 잡아 우리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이들은 면역계의 일원으로 우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글머리에서 소개한 내용만으로도 면역계가 매우 복잡한 네트워크로 짜여 있음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수백조마리, 무게로는 족히 2㎏이 넘는 인간미생물체가 가세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95% 이상) 창자에 살고 있다.

장내미생물과 면역계의 긴밀하고도 활발한 상호작용은 주로 점막에서 이루어진다. 장 점막 조직에는 면역세포의 3분의 2가 포진하고 있고, 일부 면역 단백질은 점막으로 분비되어 미생물들과 교류한다. 일례로, 장내미생물이 면역세포를 자극해 사이토카인(cytokine)을 분비하게 한다. 사이토카인은 여러 다른 세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호작용인 면역 반응을 매개하는 메신저이다. 세포를 뜻하는 접두사 ‘cyto-’와 움직임을 뜻하는 그리스어 ‘kinesis’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에 그 기능이 함축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인체에서 자기라는 것은 애당초 비자기들이 자기화된 것이며, 비자기라는 것도 자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면역은 타고난 인간 유전자와 다양한 미생물의 합작품이다. 비유컨대, 이건 초대형 오케스트라 연주이다. 준비된 정기 공연은 물론이고 수시로 즉흥 연주도 해야 한다. 이때 아름다운 화음은 건강의 초석이지만, 불협화음은 질병을 부르는 손짓이 된다.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4)인체미생물, 인간에 기대어 살지만 바이러스 막는 최전선의 동맹군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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