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지구 온난화에…‘WWW’ 땅 아래 ‘곰팡이 네트워크’가 위험하다

김응빈 교수

곰팡이에 숨겨진 이야기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생물 이름을 놓고 비호감 순위를 매기면 곰팡이는 분명 상위권에 들어갈 터이다. 하지만 역시 곰팡이의 한 종류인 버섯은 전혀 다르게 여겨진다. 각종 요리의 풍미를 돋우는 데에 두루 사용될 뿐만 아니라, 영양소가 풍부한 저칼로리 건강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미식가들이 극찬하는 자연산 송로버섯(트러플)의 경우에는 가격도 엄청나다. 2007년, 이탈리아에서 채취한 1.5㎏짜리 흰 송로버섯 한 덩이가 무려 33만달러(약 3억7000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그 맛과 값은 차치하고, 송로버섯은 보통 버섯과는 다르게 땅속에서 자란다. 고가인 탓에 ‘땅속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을 얻은 이 버섯을 미생물학에서는 ‘땅속 버섯’이라고 부르곤 한다.

송로버섯은 주로 참나무 뿌리에서 자라면서 바람에 의존하지 않고 포자를 퍼뜨리는 비법을 개발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러 종류의 송로버섯이 자생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그 지역에 사는 동물이 혹하는 냄새를 공기로 발산한다. 자기를 찾아내서 맛나게 먹고 다른 곳에 포자를 배설하게 하려는 속셈이다. 이 향기로운 유혹의 핵심은 동물의 짝짓기 본능 자극이다. 예컨대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서 나는 검은 송로버섯과 이탈리아 숲에 많은 흰 송로버섯은 수퇘지의 침에 있는 성호르몬 냄새를 솔솔 풍긴다.

유럽에서는 이미 옛날부터 암퇘지를 이용하여 땅속에 묻혀 있는 송로버섯을 찾았다. 요즘에는 실험실 배양을 통해서 또는 다 자란 송로버섯에서 얻은 포자를 숲에 심은 참나무 뿌리에 인위적으로 접종하여 송로버섯을 재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오래전에 이미 버섯(곰팡이) 재배를 시작한 원조가 있다.

■원조에게 배우다

특별한 곰팡이 ‘건강식품’ 버섯은
저비용 재배 가능한 식용 미생물
수확 후 유기물도 퇴비·연료로

어림잡아 5000만년 전쯤 어떤 개미가 곰팡이와 독특한 관계를 맺었다. 가위개미(leaf-cutter ant)는 나뭇잎을 제 몸보다 훨씬 더 큰 조각으로 잘라서 하루 종일 집으로 나른다. 가정재배 곰팡이에게 먹이로 주기 위해서이다. 개미집 안에서 곰팡이는 잎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그러면 개미는 그 곰팡이를 먹는다. 우리가 버섯을 먹듯이 말이다. 놀랍게도, 단순해 보이는 이 시스템을 통해 열대 산림의 나뭇잎 3분의 1 정도가 분해되어 순환된다. 이런 재활용 원리는 식용 버섯 재배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버섯은 좁은 공간에서 비교적 저비용으로 키울 수 있는 식용 미생물이다. 볏짚과 톱밥, 나뭇조각처럼 버려지는 물질에 물만 적당히 주면 재배가 가능하다. 이를테면 미생물에 의한 폐품의 화려한 변신이다. 이렇게 버섯을 수확하고 나면 이들을 키우는 데 사용했던 유기물이 다량으로 남는다. 그런데 폐품의 폐기물인 이것조차도 요긴하게 다시 사용할 수 있다. 간단하게는 퇴비나 동물 사료로 쓸 수 있고, 한 번 더 미생물의 도움을 받는다면 친환경 에너지인 생물연료의 생산도 가능하다.

보통 1㎏의 버섯을 수확하고 나면 5㎏ 정도의 배양 폐기물이 나온다고 한다. 여기에는 여전히 상당량의 에너지원이 남아 있다. 일례로, 양송이버섯을 재배하고 나오는 폐기물 1t이면 최대 150ℓ의 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다. 또는 버섯 재배 폐기물에 축산 분뇨를 혼합하여 메탄가스를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섞어주면 각각 단독으로 생산할 때보다 수율이 좋아진다. 분뇨에 있던 여러 미생물이 행동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서로에 기댄 곰팡이와 식물

식물 뿌리와 곰팡이 ‘균근’의 공생
균근은 질소·인 영양분 흡수 돕고
식물은 광합성해 만든 탄수화물 줘

땅속은 곰팡이와 식물이 밀회를 즐기는 장소이다. 보통 식물의 뿌리는 곰팡이와 얽혀 있는데, 이를 ‘균근(균뿌리)’이라고 총칭한다. 말하자면, 곰팡이가 뿌리에 침입하여 연결된 제2의 뿌리털인 셈이다. 균근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 ‘외생균근’과 ‘내생균근’이 있다. 외생균근은 뿌리를 균사가 감싸는 구조로서 주로 목본식물 뿌리에 형성된다. 송로버섯도 외생균근의 한 종류이다. 반면 거의 모든 식물에서 발견되는 내생균근은 균사가 식물 뿌리의 세포벽을 뚫고 들어간다. 균사가 세포막에 닿으면, 이를 통과하지는 않고 균사 끝부분이 넓어지면서 표면적을 늘린다. 물질교환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균근을 이룬 곰팡이는 자기의 특기를 한껏 발휘하여 사방으로 ‘균사’, 즉 곰팡이 실을 뻗어낸다. 보통 상한 음식에 핀 곰팡이를 보면 가느다란 털이 수북하게 난 것처럼 보인다. 그 털 모양 구조 하나하나가 균사이다. 균사는 여러 세포들이 서로 연결된 것인데, 아주 길게 자랄 수 있다. 자그마치 길이가 6㎞에 달하는 단일 균사가 미국 오리건주에서 발견된 바 있다. 참고로 버섯은 균사가 겹치고 두꺼워지면서 위로 자란 것으로, 한마디로 균사의 연속체이자 중합체라 하겠다.

균근에서 나온 균사들은 낙엽이나 동물 배설물 따위의 온갖 물질을 분해하여 식물 뿌리가 이를 쉽게 흡수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고, 직접 빨아들인 후 일부를 식물에게 나누어주기도 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식물은 곰팡이에게 밥을 먹인다. 생물학적으로 요약하자면, 균근 곰팡이는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데에 필요한 질소와 인 같은 영양분의 흡수를 대행해주고, 식물은 그 보답으로 곰팡이에게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을 나누어주면서 서로 의지하며 알콩달콩 살아간다.

햇빛을 이용하여 세상 모든 생물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까닭에 식물을 ‘지구의 어머니’라 애칭하곤 한다. 우뚝 선 나무와 무성한 들풀을 보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굳건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감탄하곤 했는데, 그들에게도 조력자가 있었다. 사실 울창한 숲은 식물의 뿌리와 균근, 그리고 각종 미생물(특히 박테리아)이 쫀쫀하게 얽혀 있는 거대한 연결망을 바탕으로 하는 어울림 삶의 공간이다.

■땅속 사회관계망

땅속 곰팡이 망으로 연결된 식물들
화학물질 방출 ‘경보 사이렌’ 쓰고
영양분 나눠 보내 돕고 살기도

식물은 이름(植, 심을 식) 그대로 땅에 심어진 생명체이다. 식충식물 같은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식물은 바람에 흔들릴 뿐 능동적으로 움직이지는 못한다. 하지만 놀랄 만큼 용의주도한 방법으로 서로 연락을 한다. 따지고 보면, 식물의 소통 능력은 뜻밖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비대면 재택근무 수행을 위해 더 많은 통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식물이 곤충이나 병원체의 공격을 받으면 특정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마치 사이렌을 울려 마을에 위험을 알리는 재래식 경보 시스템처럼 말이다. 이를 접수한 식물들은 해충을 쫓는 물질 또는 침입자의 천적을 끌어들이는 물질을 내뿜는다. 공기를 통해 보내는 화학적 메시지는 전달 범위와 내용에 큰 제약이 있고, 수신 대상도 지정할 수 없다. 확성기로 특정인에게 파일을 전달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식물이 인터넷이라도 이용한단 말인가? 그렇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다. 바로 균근이 그 주인공이다.

균근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이 연결망을 인터넷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 www)에 빗대어 ‘우드와이드웹’(Wood Wide Web)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땅속 인터넷은 일종의 ‘적응형 사회관계망’이다. 다양한 식물과 곰팡이를 통합하고 피드백을 제공하여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한다. 이 곰팡이 망 덕분에 식물은 훨씬 더 세련되고 광범위한 소통은 물론이고,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심지어 이를 통해서 큰 식물이 햇빛에 가려져 영양분을 얻지 못하는 작은 식물에게 영양분을 보내어 도와주기도 한다. 물론 오가는 물질이 항상 모든 식물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동물이 자기 영역에 불청객이 들어오면 쫓아내듯이 식물은 보통 뿌리에서 위협 신호, 성장 억제 물질을 내보낸다. 가령 호두나무 뿌리에서 분비되는 ‘주글론(juglone)’이라는 화합물은 살균, 살충 작용뿐만 아니라 주변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한다.

■우드와이드웹 세계지도

온난화 영향에 줄어드는 외생균근
그 자리 채우는 탄소 발생 곰팡이
점차 한 올씩 끊어지는 보호 그물

연결된 우리가 공감하기 시작할 때
미래세대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30여년 전, 균근 연구의 한 선구자가 외생균근과 내생균근은 각각 온·한대와 열대 토양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근거는 이렇다. 기온이 낮아질수록 미생물의 활성이 줄어들어 유기물의 분해도 느려진다. 외생균근은 유기물을 분해하여 식물에게 필요한 질소를 직접 공급한다. 열대지방 식물은 인이 필요하다. 인 공급에는 내생균근이 더 효과적이다. 2019년 다국적 공동연구진이 완성한 우드와이드웹 세계지도가 그 학자의 예측을 입증했다.

곰팡이 네트워크는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식물들 사이의 소통도 가능하게 한다. 토양이 지구 생물 다양성의 4분의 1 정도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 보인다. 따라서 어디에 어떤 균근이 있는지를 아는 것은 생물다양성을 이해하고 보전하는 필요조건이다. 비유컨대, MRI 스캔이 뇌 기능 이해에 큰 기여를 하듯이 균근의 세계 지도는 지구 생태계 작동원리를 파악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이 비밀스러운 지도가 공개되면서 아주 중요한,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 대번에 드러났다.

열대 토양을 우점하고 있는 내생균근은 유기물을 빨리 분해하여 이산화탄소 발생을 촉진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외생균근은 많은 탄소를 땅속에 가두어 둔다. 문제는 그 특성상 외생균근이 지구온난화에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외생균근이 떠난 빈자리에는 내생균근이 들어서게 된다. 토양의 거대한 탄소 저장소를 지탱하는 곰팡이 무리는 사라지고 대기로 탄소를 쉬이 내보내는 곰팡이가 늘어날 거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되면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는 불 보듯 뻔하다.

거의 5억년 동안 조화와 균형 속에 유지되어 온 우드와이드웹이 위기에 처했다. 인간을 비롯한 땅 위에 모든 삶을 지탱하는 보호 그물이 점차 한 올씩 끊어져 가고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공감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공감하려면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실천적 참여만이 우리와 미래세대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9)지구 온난화에…‘WWW’ 땅 아래 ‘곰팡이 네트워크’가 위험하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Today`s HOT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400여년 역사 옛 덴마크 증권거래소 화재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장학금 요구 시위하는 파라과이 학생들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2024 파리 올림픽 D-100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