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전쟁이 만든 공포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 원리 찾았다

이정호 기자
이보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위원. IBS 제공

이보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위원. IBS 제공

사고, 폭행, 전쟁 같은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한 뒤 나타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치료제 개발을 앞당길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소속의 이보영 연구위원팀이 PTSD 치료제 개발을 위한 과학적인 원리를 동물 실험을 통해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14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인 ‘분자정신의학지’ 최신호에 실렸다.

PTSD는 사고나 재해 등 충격적인 일 때문에 얻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지속되는 상황을 뜻한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정신질환인데, 현재 뾰족한 치료법이 없다. PTSD 환자에게는 인지행동치료 같은 정신과적 조치와 우울증 약물 투여가 병행되고는 있지만, 호전율은 50% 수준에 그친다. 그러는 사이 PTSD 환자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연구진은 국내 통계 분석 결과,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PTSD 환자가 45.4%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이 이번에 내놓은 분석의 핵심은 미국 제약회사 앱티닉스가 개발한 임상시험 단계의 약물인 ‘NYX-783’을 PTSD에 걸린 실험용 쥐에 투여해 효과를 입증하고, 작용 원리를 규명한 것이다. 연구진은 실험용 쥐에서 PTSD가 나타나도록 특정 소리와 전기 자극을 동시에 가했다. 이렇게 되면 쥐에게는 특정 소리가 곧 공포가 된다. 연구진은 공포를 겪은 뒤 24시간이 지난 쥐에 이 약물을 주입했더니 공포 기억이 재발되는 일이 억제된다는 점을 관찰했다. 분석 결과, 뇌 속 전전두엽 내의 ‘NMDA 수용체’가 활성화했는데, 연구진은 이 작용이 신경기능을 조절하는 ‘BDNF 단백질’의 발현을 유도하면서 공포 기억을 억제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번 연구 성과가 공포를 경험했던 기억 자체를 들어내는 것인지, 기억은 그대로 둔 채 공포스러웠던 감정만 지우는 것인지는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향후 연구진은 공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뇌 속 부위인 해마와 감정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상호 관계를 파악해 의문을 해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보영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 성과가 NMDA 단백질을 목표물로 삼는 PTSD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 다른 원리로 움직이는 후보 물질들도 찾아내 PTSD 뿐 아니라 다양한 정신질환 치료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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