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간의 꿈같은 ‘동행 비행’, 좋은 기회가 다가오는데…

이정호 기자

“계획에 없었다”고 퇴짜 맞은 ‘한국 첫 소행성 탐사’

소행성 ‘아포피스’가 2029년 4월14일 지구에 바짝 접근한 모습의 상상도. 아포피스의 지름은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1.5배인 370m에 이른다. 미국 애리조나대 제공

소행성 ‘아포피스’가 2029년 4월14일 지구에 바짝 접근한 모습의 상상도. 아포피스의 지름은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1.5배인 370m에 이른다. 미국 애리조나대 제공

과기정통부 예타조사 대상 선정서 ‘아포피스 탐사 사업’ 탈락
급하게 추진됐다며 가로막혀…NASA와 달리 ‘경직된 태도’
올해 선정 안 되면 탐사 어려워…학계 “준비 일정 빠듯” 지적

한국 과학계가 사상 처음으로 추진하던 소행성 탐사 사업이 좌초 위기에 몰렸다. 과학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내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진행했던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선정 과정에서 소행성 ‘아포피스’ 탐사 사업이 지난달 21일 탈락으로 분류됐다. ‘추진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아포피스 탐사에는 2024년부터 2030년까지 3873억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가장 큰 탈락 이유는 4년 전인 2018년 시작된 중장기 우주 개발 계획에 아포피스 탐사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 추진 근거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아포피스가 과학계와 일반인 사이에서 탐사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건 2019년 이후다. 한국 과학계 역량도 2018년 당시에는 소행성 탐사를 추진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미리 계획된 일만 추진한다”는 정부의 경직된 태도 때문에 한국이 우주 선진국의 발판을 마련할 첫 소행성 탐사 기회를 날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 총탄 40배 속도 ‘고난도 비행’

아포피스는 지름이 370m로, 63빌딩의 1.5배다. 지구와 충돌하면 대륙 하나는 날려버릴 위력이 있다. 아포피스의 최대 근접 시점은 2029년 4월14일, 이때 지구와의 거리는 3만1600㎞이다. 정지궤도위성 고도(3만6000㎞)보다 가깝게 지구를 스친다.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이번 탐사 계획의 핵심은 아포피스 10㎞ 앞까지 탐사선을 붙인 뒤 지구에 최근접하는 시점을 전후한 5개월 동안 같은 거리와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동행 비행’이라고 부른다. 비행기로 따지면 편대 비행이다. 자동소총 총탄의 40배 속도로 움직이는 아포피스 곁에서 탐사선이 나란히 움직이며 표면을 관찰한다. 고난도 기술이다. 성공한다면 소행성 탐사에서 단박에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우주 선진국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2029년 4월14일 예상되는 소행성 ‘아포피스’의 궤적. 지구 옆을 3만1600㎞ 거리에서 스치듯 지나칠 예정이다. 달과 지구 사이 거리인 38만㎞보다 훨씬 가깝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2029년 4월14일 예상되는 소행성 ‘아포피스’의 궤적. 지구 옆을 3만1600㎞ 거리에서 스치듯 지나칠 예정이다. 달과 지구 사이 거리인 38만㎞보다 훨씬 가깝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 중장기 계획에 없다며 ‘탈락’

이 야심 찬 사업이 왜 가로막혔을까. 과학계의 얘기를 종합하면 아포피스 탐사 사업이 ‘갑자기’ 제기됐다는 점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선정에서 퇴짜를 맞은 중요한 이유였다. 아포피스 탐사는 지난해 초에 추진되기 시작됐다. 이러다보니 2018년부터 시행된 정부의 중장기 우주 개발 청사진인 ‘3차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기본계획에는 소행성 탐사 시점이 2035년 이후로 잡혀 있다. 이 때문에 ‘근거가 미약하다’ ‘계획을 당길 이유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 사이에선 의문이 강하게 제기된다. 최신 이슈에 순발력 있게 대응한 게 문제냐는 것이다. 아포피스가 두려워하거나 파괴해야 할 대상에서 탐구의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조명받은 시기는 대략 2019년부터 2020년 사이다. 실제로 2019년 미국에서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모여 개최한 ‘행성방위회의’에서 지구 코앞까지 다가온 아포피스에 대한 관측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집중적으로 나왔다. 게다가 한국은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이 시작된 2018년에는 소행성 탐사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일례로 성능을 개량해 아포피스를 탐사하는 데 사용할 국산 발사체 ‘누리호’가 처음 발사된 시점만 해도 불과 반년 전인 지난해 10월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대응 방식은 한국과 다르다. 유연하다. NASA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오시리스-렉스’ 탐사선을 2029년 아포피스에 접근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6년 발사된 오시리스-렉스는 2020년 10월 지구에서 약 3억㎞ 떨어진 소행성 ‘베누’에서 시료를 채취해 지구로 돌아오는 길이다. 아포피스로 가라는 추가 임무를 준 것이다. 과학계의 한 연구자는 “오시리스-렉스가 발사될 때 아포피스 탐사는 예정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 올해 선정 안 되면 ‘탐사 불가’

한국의 아포피스 탐사는 재추진될 수 있을까. 불확실하다. 과기정통부 내 사업추진 부서는 올해 6월에 있을 다음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선정 시기에 이 사업을 다시 밀어붙일지 정하지 않았다.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탐사선 개발 기간을 감안할 때 애초 계획된 2027년 10월 발사는 불가능하다. 우주비행 기간을 고려하면 2029년 4월 지구에 다가오는 아포피스 탐사도 물 건너간다. 개발과 제작을 위한 준비 기간을 생각하면 일정이 이미 빠듯하다는 지적이 과학계에서 나온다. 이유 한국우주과학회장은 “아포피스 탐사에선 세계에 내놓을 만한 업적을 만든다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며 “아폴로 계획이 성공했을 때 미국인들에게 ‘달에 간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이 생긴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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