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보다 꿈을, 현실보다 상상을…복잡한 세계에서 길을 찾는 방법읽음

박주용 교수

(33) 고전과 낭만 사이의 과학

많은 바이커는자연에 무한히 가까워지는 자유와 사색의 시간을 정밀한 기계의 고전성과 감성과 해방의 낭만이 만나는 참선의 경험에 비유한다. 필자 제공

많은 바이커는자연에 무한히 가까워지는 자유와 사색의 시간을 정밀한 기계의 고전성과 감성과 해방의 낭만이 만나는 참선의 경험에 비유한다. 필자 제공

1만개의 부품이 들어간 모터사이클을 정비할 때, 매뉴얼을 순차적·논리적으로 따라가는 ‘고전적 사고’로는 불가능에 가까워

과학은 논리적 정합성만으로 이뤄지지 않아…무한한 복잡도 속에서 해결책 찾으려면 직관과 통찰의 ‘낭만적 사고법’도 필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지만 삶의 매 순간순간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의 복잡도는 무한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세상을 머나먼 바다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별을 보거나 바람을 재면서 겨우겨우 파랑을 헤쳐나가는 선원인데, 이겨낼 수 없는 파도를 만나 난파하기도 하고 배가 고장이 나 표류하기도 한다.

우리가 마냥 편안한 선객의 입장이라면 남들이 알아서 배를 고쳐주는 동안 경치만 즐기면 되겠지만, 최소한 필자는 그렇게만 살 수 있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세상에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필자와 친구할 생각은 없는 사람들이고, 나와 교류하는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바다에서 안간힘을 쓰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나와 한 달에 한 번 글로 교류하는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망망대해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고장이 나면 직접 고쳐내야 하는 것은 나의 숙명이기도 하고, 여러분의 숙명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필자가 써온 이 퓨처라마 칼럼을 세세히 읽어본 독자라면(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글 말미에 표시된 필자 프로필도 보셨을 수 있을 텐데 혹시 내가 써놓은 “시간이 생긴다면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한다”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지 궁금해진다(있다면 또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게 얼핏 보면 매일같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유유자적하는 사람이라는 자랑 같지만, 마음만 그렇지 사실은 시간이 없어서 그러지 못하고 있는 보통 생활인이기 때문에 나의 소망을 말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시간이 생긴다면”이라고 했지. 최근에 필자가 자문하고 있는 정부 위원회에 참석했는데 헬멧을 들고 회의장에 들어온 나를 보고 한 분이 “11월이니 이제 끝물이지요?”라고 하셨다. 그 순간 생활인에게 장애물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처럼 몸을 사방으로 막아주는 안락함을 기대할 수 없는 모터사이클은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다 맞아줘야 한다. 당연히 불편한 점도 있지만 그 불편함은 사실 쓴맛이 매력인 맥주와 비슷한 쾌감이 있다. 걸어다님의 느림 일상의 평온함, 부드러운 목넘김도 모두 좋지만 자연이 뿌리는 햇살과 바람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몸으로 만끽하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성적 즐거움 그 자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솔로라이더에게는 끝없는 고독과 사색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라이더의 이 공통경험 때문에 <선(禪) 그리고 모터사이클 정비의 기술>(Zen and the art of the motorcycle maintenance)이라는 책이 나오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 몬태나와 시카고에서 대학 교편을 잡기도 했던 저자 로버트 퍼시그(1928~2017)는 모터사이클의 탠덤 시트에 어린 아들을 태우고 중서부 미네소타에서 서부의 끝 샌프란시스코까지 미국을 횡단한 경험을 기반으로 이 책을 썼다. 그는 책에서 만물의 가치(價値)를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질(質·Quality)이라는 것을 화두로 던지고 이것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한 사색을 한다. 그리고 앞에 놓인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한 분석적이고 이성적 접근을 뜻하는 고전적인 사고와, 그 과정을 정확하게 기술하기는 어려운 직관과 순간적 통찰로 이루어진 낭만적인 사고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해야 한다는 철학을 설파한다.

퍼시그에 따르면 그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쳤다. 없는 것을 찾아내는 창작을 가르치면서 A부터 F 학점까지 딱딱한 체제로 평가해야 하고 그에 맞춰서 ‘객관’이라는 가치를 강요하게 되다보니 높은 질을 갖춘 창작이 불가능한 학생들만 양산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고민하며 우울증에 빠진 전력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모터사이클 정비의 기술’은 모터사이클 여행을 통해 그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여정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왜 퍼시그는 고전적인 사고와 낭만적인 사고가 동시에 적용되는 대상으로 굳이 모터사이클 정비를 든 것일까?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모터사이클 정비에 필요한 것은 철두철미한 고전적인 사고라고 볼 수도 있다. 자동차든, 모터사이클이든 현대의 기계는 직선에서 시속 150㎞/h까지는 쉽게 올라설 수 있는 기계들인데, 라이더가 살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정비하는 데 있어 직관이나 감성, 불확실성이나 “때려맞히는” 일의 자리는 없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매뉴얼을 순차적으로, 논리로 따라가는 고전적 사고만으로는 모터사이클 정비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계가 고장나거나 오작동하는 경우 사실 대부분은 어떤 특정한 부품이 고장났는지 바로 알 수 없다. 고장이나 문제의 원인을 확실히 찾은 다음에야 부품 수리나 정비를 위해 매뉴얼을 따르는 고전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고,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내는 일은 고전적인 사고만으로는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정밀 기술의 정수인 내연기관은 수천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있지만 그 정비에는 직관과 통찰의 낭만적 사고가 필요하다. 스즈키글로벌

현대 정밀 기술의 정수인 내연기관은 수천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있지만 그 정비에는 직관과 통찰의 낭만적 사고가 필요하다. 스즈키글로벌

모터사이클에 들어가는 부품의 수는 1만개 정도라고 하는데(내연기관 차는 약 3만개, 여객기는 600만개라고 한다), 각 부품의 고유번호와 상세한 설계도 같은 고전적인 정보는 존재하더라도 수만개에 달하는 부품 가운데 문제를 일으키는 그 단 한 개를 고전적인 사고를 따라 순차적으로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그 1만개의 부품은 서로 연결된 복합계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내연기관의 실린더 안 구조만 보아도 크랭크샤프트-커넥팅 로드-피스톤이 기계적으로 연결돼 있고, 스파크 플러그와 밸브는 열화학적 반응으로 연결돼 있는데 각각의 부품들은 또 그 자체로 더 작은 부품들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고 또 그 부품들은 더 작은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고…) 부품 하나가 고장나면 연결된 다른 부품들도 고장나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단순히 고장난 부품 하나를 찾아서 교체한다는 것 자체가 허황된 꿈인 경우가 많다. 부품이 1만개이고, 한 부품을 검토하는 데 10초가 걸린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한다고 해도 부품만 쳐다보는 데 하루 여덟 시간 일하는 미캐닉에게는 꼭 3.5일이 걸린다. 그런데 부품끼리 이루고 있는 연결 조합을 다 본다고 하면 한 번 훑어보는 데만도 한 달은 족히 넘지 않을까. 완전한 오버홀을 하려는 사람이 아닌 이상 기계가 고장날 때마다 그 시간을 다 기다려줄 사람들이 세상에 있는지 모르겠다.

모터사이클 정비와 철학에 관한 또 다른 책인 <영혼을 빚는 공작실-일의 가치에 대한 탐구(Shop Class as Soulcraft: An Inquiry into the Value of Work)>의 저자인 (전직)정치학자 매튜 크로퍼드는 실제 자기 숍을 낸 다음, 수리를 의뢰받은 고객의 모터사이클을 앞에 두고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내기 위하여 논리보다는 직관과 통찰을 얻으려 종착점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사색에 빠지는 일이 제일 먼저라는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고객은 분명히 이 미캐닉이 고전적인 접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낼 거라고 믿고 맡겼을 것이고, 본인도 고객에게는 그렇게 약속은 했겠지만(“잘은 모르지만 한 번 낭만적 사고에 빠져보겠습니다”라고 하면 믿어줄 고객이 있을까?) 말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당연히 고전적인 사고만으로 충분할 것 같은 기계 수리였는데, 기계의 무한한 복잡도 속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직관과 통찰로 이루어진 낭만적인 사고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퍼시그의 깨달음이었다. 수많은 부품들이 엮여있어 한없이 복잡한 기계를 고쳐서 다시 작동하게 하는데 순차적인 고전적 사고는 그에 비례해 무한한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에 오히려 복잡성의 굴레를 끊고 문제를 파악하게 하는 것은 논리나 순서와는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는 낭만적 사고라는 것이 모터사이클의 정비가 주는 교훈이라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 시급한 목표-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에 고쳐내야 할 모터사이클, 또는 당장 손을 봐야 할 인생이라는 배-를 이루는 일에 있어서 비선형적이고 순차적인 논리가 없는 낭만적인 사고도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진정한 가치를 찾고 질을 높여주는 토대가 된다는 <모터사이클 정비의 기술>은 2차대전 이후 사람보다 앞서가는 듯한 기술의 고속 발전기에 공허해진 독자들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가치를 채워넣어주었고, 전 세계적으로 약 500만부가 팔리면서 역사상 제일 널리 읽힌 철학서에 오르기도 했다.

바이커들에게 모터사이클의 매력을 물어보면 ‘자유’를 최우선으로 댄다는데, 단순히 경험의 감성적인 성격 때문에 낭만적인 사고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잘 생각해보면 과학을 한다는 일 자체가 고전과 낭만의 결합이다. 과학은 매 순간 논리적 정합성과 엄격성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증거는 역사에서 허다하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다방면에서 탁월한 실력을 갖추었거나 업적을 남긴 사람을 르네상스 맨(Renaissance Man)이라고 부른다. 천년 동안 유럽의 모든 것을 지배했던 교회의 도그마가 벗겨지자 건축, 기술, 미술, 생물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 다빈치와 같은 르네상스기 인물들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표현일 텐데, ‘인류의 마지막’ 르네상스 맨으로 불리기도 하는 앙리 푸앵카레(1854~1912)도 그 반열에 이름이 올라있다. 푸앵카레는 그의 이름이 붙은 수많은 수학적 정리와 개념, 그리고 현대 카오스 이론과 비선형 동력학의 시작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살아생전에 이미 푸앵카레가 일하는(머리를 쓰는) 모습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었는데(19세기 말 프랑스판 ‘천재의 공부하는 법’?), 창의성을 연구하던 심리학자 에두아르 툴루즈(1865~1947)는 푸앵카레를 인터뷰하고 난 뒤 “푸앵카레가 생각하는 방식은 예술가의 그것에 더 가까워서 즉흥적이고, 무의식을 헤매는 것 같고,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꿈꾸는 것 같고, 순전한 상상의 것을 발견하려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현대과학의 아버지 가운데 하나인 사람에게서 순차보다는 즉흥, 의식보다는 무의식, 이성보다는 꿈, 현실보다는 상상을 보았다는 것, 모터사이클 정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낭만적인 사고와 다르지 않다. 문제 해결의 낭만적인 사고법. 세계의 복잡성으로부터 논리만을 이용하려다가 못 빠져나오고 허우적거리는 우리 생활인들 모두가 생각해볼 만한 점이다.

▶박주용 교수

[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이성보다 꿈을, 현실보다 상상을…복잡한 세계에서 길을 찾는 방법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트워크와 복잡계 물리학에 기반한 융합 데이터 과학 전문가로서 노트르담대학교, 하버드 의과대학 데이너-파버 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예술과 과학의 창의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카이스트 포스트AI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고안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시간이 생긴다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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