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자게 돕는 고단백 식사, 그리고 뇌 속의 비밀읽음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전공 교수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전공 교수

우리는 잠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짧은 시간을 자더라도 더 개운하게 잘 수 있는 방법에 눈길이 간다. 잠을 잘 오게 하는 음식, 자기 전에 먹으면 안 좋은 음식 등 음식과 수면의 관계에 대한 여러 속설이 있는데, 커피처럼 카페인을 포함하는 음식을 제외한다면 뇌과학적으로 잘 규명된 것은 거의 없다.

드라가나 로굴자 하버드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초파리를 이용해 숙면의 열쇠를 찾고자 했다. 깊은 잠의 특징 중 하나는 쉽게 깨우기 힘들다는 점이다. 실제로 방금 설핏 잠이 든 사람은 작은 기척에도 깨지만, 한밤에 깊이 잠든 사람은 다른 곳으로 들어서 옮겨도 깰 기미가 없다.

이런 점에 착안해 로굴자 교수팀은 초파리를 다양한 세기로 흔들어 깨우는 장치를 만들고, 수백 종류의 돌연변이 초파리 중 잘 깨거나 반대로 깨우기 어려운 것들을 찾아 나섰다. 분석 결과, 몸 속 화학물질인 펩타이드 중 하나인 ‘CCHa1’이 돌연변이가 되면 초파리는 작은 흔들림으로도 쉽게 깨어났다. 이는 CCHa1 펩타이드가 돌연변이가 되기 전에는 깊은 잠을 자도록 해 주지만, 돌연변이가 되면 본래 역할을 못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로굴자 교수팀은 CCHa1 펩타이드가 몸의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주로 뇌와 장의 신경세포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뇌에서만 돌연변이가 일어난 초파리와 장에서만 돌연변이가 일어난 초파리를 각각 만들어 봤다. 그랬더니 장에서 CCHa1 펩타이드를 만들지 못하는 돌연변이 초파리만 잠을 깊게 이루지 못했다. 연구팀은 장이라는 신체기관의 특징에 집중해 먹이와 수면이 서로 관계가 있지 않을지 의문을 품었다.

연구팀은 초파리에 이런저런 먹이를 주면서 수면의 깊이를 실험했다. 그랬더니 당이나 지방이 많은 식사에 비해 단백질이 많은 식사를 한 초파리가 더 깨우기 어려웠다. 깊은 잠에 빠졌다는 뜻이다. CCHa1 펩타이드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난 초파리의 경우 단백질이 풍부한 식사를 하더라도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고단백 식사 후 깊은 잠을 자는 과정을 CCHa1 펩타이드가 매개하는 것으로 보였다.

연구진은 이 현상이 초파리가 아닌 포유동물에서도 유효한지 실험했다. 고단백 또는 고지방, 고당질 식단을 며칠간 유지한 뒤 생쥐가 자고 있을 때 흔들어 깨워 보았더니 고단백 식단의 생쥐가 가장 깨우기 어려웠다. 고단백 식단의 생쥐는 전체 수면 시간은 비슷했지만, 중간에 깨는 일이 적었고 전반적인 수면의 질이 높았다. 다만 CCHa1은 곤충들에서 발견되는 펩타이드이기 때문에 생쥐에서는 비슷한 펩타이드를 찾지 못했다. 연구진의 실험에도 포유동물에서 고단백 식단과 깊은 수면의 연결고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로굴자 교수팀의 연구는 CCHa1 펩타이드의 돌연변이 이외에도 잠에서 쉽게 깨거나 잘 깨지 못하게 하는 많은 돌연변이를 찾아냈기에 앞으로 수면을 조절하는 인자를 밝히는 여러 연구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로굴자 교수팀은 5일 정도 고단백 식단을 유지한 초파리나 생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고, 자기 직전의 식사가 수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살펴보지 않았다. 이번 연구가 야식으로 치킨을 시켜야 할 명분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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