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걸리던 예타 사라져 ‘신속 연구’ 효과
“정부 원하는 큰 사업에 예산 주나” 의구심도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세종시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를 없애기로 하면서 과학계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화급을 다투는 첨단 기술 개발 경쟁에서 통상 7개월에 걸친 예타 기간을 기다리지 않고도 R&D에 즉각 돌입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과학계 일각에서는 지난해보다 4조6000억원 줄어든 R&D 예산을 어떻게 정상 복구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가 원하는 큰 규모의 R&D 사업에 예산을 몰아주는 데 예타 폐지가 활용돼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날 윤 대통령 발표의 핵심은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이 가운데 300억원이 국고로 지원되는 R&D 사업에 반드시 예타를 적용하도록 한 규정을 폐지하는 것이다.
예타 제도는 R&D에 들어가는 비용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예산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R&D 예타를 진행하는 기관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과학기술계에서는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R&D 발전 흐름을 예타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예타에 소요되는 기간이다. R&D 예타에 걸리는 통상 7개월이 너무 길다는 지적이 과학계에서는 많았다. 예타에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나라에 기술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처럼 한국이 다른 국가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이번 예타 폐지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하지만 과학계 일각에서는 이번 R&D 예타 폐지에 대해 경계 섞인 시선이 제기된다. 현재 과학계의 최대 현안인 R&D 예산 복구 문제 때문이다.
지난달 대통령실은 내년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어느 부문의 예산이 늘어날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정부가 원하는 규모 큰 R&D 사업에 예산을 몰아주는 수단으로 이번 R&D 예타 폐지가 활용돼선 안 된다는 인식이 나오는 것이다.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정책위원장은 “지난해 정부는 R&D 예산 중 국제 협력 부문 예산을 유독 크게 늘렸는데, 이처럼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R&D 예산을 내년에 확대하는 데 예타 폐지를 활용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정책위원장은 “삭감된 올해 R&D 예산 항목을 내년에는 정확히 복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예타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애는 것은 국가 예산 관리 측면에서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