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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만든 ‘술 센 사람’, 음주에 더 위험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술은 인류 문화와 함께 발전해왔지만 긴 역사만큼 어두운 점도 있다. 전 세계 사람들 가운데 1.4%가 ‘알코올 사용 장애’를 가지며 이로 인해 연간 3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알코올은 여러 가지 형태로 뇌에 영향을 주는데,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은 ‘가바(GABA)’ 수용체에 작동하면서 나타난다. 가바는 신경전달물질의 하나로, 다른 세포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가바 수용체는 하나의 단백질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단백질이 복합체를 이뤄 만들어진다. 각각 2개의 알파 소단위체와 베타 소단위체, 하나의 감마 소단위체 등 총 5개의 소단위체 단백질이 모여 가바 수용체를 형성한다. 각각의 단위체도 종류가 다양하다. 알파 소단위체는 6종류, 베타와 감마 소단위체는 각각 3종류가 있다.

2명의 공격수와 2명의 수비수, 1명의 골키퍼로 운영되는 축구팀을 운영하기 위해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출전 선수를 고르는 것처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것이다. 알코올이 가바 수용체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는 뜻이다.

최근 미국 국립보건원의 웨이 루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 알코올 사용 장애로 사망한 이의 두뇌를 생화학적으로 부검해 어떤 단백질이 변화했는지 조사했다. ‘용의선상’에는 수십종의 단백질이 올랐는데, 이 가운데 ‘TMEM132B’라는 이름이 붙은, 처음 보는 단백질이 눈에 띄었다.

이 단백질의 기능을 알기 위해 루 박사팀은 그 ‘주변인’들을 찾아 나섰다. TMEM132B와 붙어 다니는 다른 단백질의 목록을 뽑아보니 가바 수용체가 등장했다. 알코올 사용 장애와 TMEM132B를 연결해 주는 유력한 ‘공범’이 나타난 것이다.

루 박사팀은 TMEM132B가 가바 수용체 기능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했다. 분석 결과, TMEM132B는 가바 수용체가 활약하는 세포의 막으로 가바 수용체를 옮기는 ‘운반책’처럼 보였다.

특히 TMEM132B는 알코올이 가바 수용체에 작동하는 능력을 강화시켰다. 반면 TMEM132B가 유전적으로 없는 생쥐에서는 알코올의 작동이 약화됐다. 이 특징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연구진은 TMEM132B가 없는 생쥐에게 술을 한 잔 주고, 각종 행동을 검사했다. 생쥐도 술을 마시면 걱정이 사라지는데, TMEM132B가 없는 생쥐는 같은 양의 술을 마셨을 때 걱정이 덜 사라졌다. 술에 잘 안 취했다는 의미다.

술을 마시면 생쥐들도 몸을 잘 가누지 못한다. 그런데 TMEM132B가 없는 생쥐는 술을 더 많이 마셨을 때도 몸을 잘 가눴다. 또 아주 쓴 화학물질을 섞은 술이라도 TMEM132B가 없는 생쥐는 끄떡없이 잘 마셨다. 술이 써서 못 먹는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생쥐가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TMEM132B를 없앴더니 아주 술이 센 생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알코올 사용 장애로 사망한 이의 뇌에서는 오히려 TMEM132B가 적은 모습이 관찰됐다. TMEM132B가 적다면 술에 덜 취하는, 즉 술이 센 사람일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 생긴 이유는 알코올 사용 문제는 술이 세서, 그래서 오히려 술을 더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술이 안 받아서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음주 문제가 없다.

술이 센 것은 술자리에서는 자랑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알코올 사용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약점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최한경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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