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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독서가·작가 정혜윤
지독한 이번 감기는 그에게도 비켜가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해 11월부터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오전 6시 생방송 뉴스를 제작해왔다. “몸과 마음이 지쳐 인터뷰에 응할 기력이 없다”는 말에 잠시 넘어갈 뻔했다. 이런 와중에도 올 상반기 두 권의 새 책을 낸다. ‘작가’라고 불리면 아직도 머리가 긁적여지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소개되는 것이 반갑고 흐뭇하다지만, 무시할 수 없는 독서가이자 작가다. 100장 분량의 원고를 몇 시간 만에 후딱 써버리고, 그간 읽은 책들과 만난 사람들의 육성을 아무런 메모 없이 녹여내는 능력을 가졌다.정혜윤 CBS PD는 2007년 온라인 웹진에 연재한 글을 모은 <침대와 책>을 시작으로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등을 내며 ‘독서에세이의 흐름을 바꾼, 책과 삶을 매혹적으로 읽어내는 독서가’로 불... -
(19) 입자물리학자 이강영
이강영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그간 60여편의 논문을 썼다. 그 목록엔 ‘유카와 결합 상수에 내포된 플레이버 대칭성의 의미’, LHC에서 좌우동형 모델에 나오는 전기를 띤 힉스 입자의 생성’ 같은 제목이 있다. 이 교수는 물질의 가장 기본적 구조가 무엇인지, 그 구조를 이루는 입자는 무엇인지, 또 그것들이 상호작용하는 원리를 따지는 게 입자물리학이라고 했다. 입자물리학이 보이지 않는 것의 위대함을 알려주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여긴다. 이 논문들에는 그가 깊이 연구한 세상의 이치가 들어있을 터다. 하지만 기자는 논문 목록을 들여다보면서 세상이 더 이해하기 어려운 곳으로 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2011년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APCPT)가 선정한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에 선정됐고, 같은 해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 부문을 수상한 첫 책인 (사이언스북스)을 마주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과학, 수학에 젬병인지라 일종의 경외와 주눅이 ... -
(18) 문학평론가 신형철
문학비평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통념 중 하나는 비평이 문학작품 없이 홀로 설 수 없다는 것이다. 비평은 홀로 설 수 없다는 믿음은 ‘비평가는 시인이나 작가가 되는 데 실패한 문인’이라는 선입견의 질료가 된다. 비평에 대한 또 다른 통념은 그것이 냉정한 논리와 판단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며 애정이나 감동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이런 생각은 비평에 지적 교사로서의 권위를 부여할지 모르지만, 독자들에게는 ‘비평이란 재미없고 골치 아픈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낸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38)는 비평은 엄격한 논리학 교사가 아니라 성숙한 연인에 가깝다고 믿으며, 또한 비평의 독자성이란 예외적인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비평 본연의 지향점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2005년 문학비평을 시작한 이래 비평집 (문학동네·2008)와 산문집 (문학동네·2011), 그리고 아직 책으로 묶이지 않은 많은 글들을 통해 그는 비평의 독자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인상적으로... -
(17) 역사저술가 박천홍
“8부 능선은 넘었지만….” 역사저술가 박천홍씨(47)는 말끝을 흐렸다. (2008년) 출간 이후 5년여의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새 저서가 언제쯤 나올지 궁금해하자 그는 이제 막 8부 능선을 넘어섰다고 했다. 숨이 턱에까지 차올랐고 정상이 눈앞에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등정이 남아있다. 그는 2003년 철도를 통해 한국 근대사의 문명을 다룬 을 내놓으며 단박에 주목받았다. 시리즈 총 5권(2004년), (2005년)을 냈고 근대 지식의 형성사를 담아낼 를 현재 집필 중이다. 올 하반기 이 책이 나오면 ‘근대 3부작’이 완결되는 셈이다.재단법인 아단문고의 학예연구실장인 그는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서양사학을 전공했지만 역사학자는 아니다. 전업 저술가도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 칭했다. 역사학자가 아닌 덕분에 밑바닥 민중들의 삶에까지 눈길을 뻗을 수 있었고, 근대 문인의 작품에서 당시 지식인들의 인식을 읽었으며, 새로운 문명과 맞닥뜨... -
(16) 여성학자 정희진
여성학·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씨(46)와의 인터뷰는 수차례 e메일이 오고간 후 어렵게 성사됐다. 그는 “자격도 안되고 인터뷰는 본래 잘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5년 (교양인)이 나왔을 때 몇몇 매체와 인터뷰를 한 후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그 사이에 은 2012년까지 14쇄를 찍고 지난해 2월에는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13일 경향신문에서 만난 그는 내내 빠르고 경쾌하게 말했다.■ 그 어떤 ‘주의’도 아니고 합리적 방식 선택- 인터뷰를 꺼리는 이유는 뭔가.“글은 잘 쓰고 싶지만 유명해지길 원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거나 내 정체성이 어느 하나로 규정되는 게 싫다. 내 관심사는 다양하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 ‘페미니스트 정희진’으로만 나가게 될 것 아닌가. 인터뷰에서 한 발언들이 내 의도와 달리 굴절되는 것도 싫다. 예컨대 내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본래 맥락은 평등에 반대하... -
(15) 수유너머R 연구원 고병권
고병권 수유너머R 연구원이 ‘뉴파워라이터’에 선정되고 나서 어느 학자로부터 “고 선생이 왜 뉴파워라이터냐”는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간 지식운동, 사회운동을 활발히 했고 출간한 책도 많으며 인문학계에 존재감도 큰데 ‘뉴(new)’라는 수식어로 묶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고 연구원은 연구·생활 공동체 수유너머로 치면 16년, 서울사회과학연구소(서사연)까지 거슬러 포함하면 20년을 공부하고 강의한 제도권 밖 지식인의 대명사같은 존재다. 2001년 첫 단독저서 (소명출판)을 시작으로 최근 (삶창)까지 9권의 책을 냈다. 이달 중 니체에 관한 새책이 나온다. ‘뉴’라는 말에 어폐가 있을지 모르겠다. 고 연구원을 뉴파워라이터에 추천한 이들은 40대 초반이라는 생물학적 젊음, 철학과 당대 사건을 아우르는 글쓰기와 함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추방된 여러 현장에서 새로운 실천적·급진적 철학을 이끌어내는 사유 방식에서 여전히 신선함을 느낀 듯하다. 고 연구원의 휴대전화는 오래 꺼... -
(14) 정치사학자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원 교수(44)는 정치사학자로 흔히 ‘1960~1970년대 현대사 전문’으로 통한다. (현실문화), (이매진) 등의 저서에서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과 사건을 통해 정형화된 프레임을 깨고 그 균열로부터 유의미한 역사성을 캐내는 데 천착해왔다.김 교수는 ‘기억의 연구자’이기도 하다. 개개인의 기억회로에 지나온 시대와 사건, 인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고유의 형태를 띠며 저장돼 있는지에 주목한다. 덕분에 ‘현재화된 기억’이 서술하는 또 하나의 역사와 만날 수 있다.김 교수의 저서 발문에는 지인들이 그의 순한 인상에 대해 언급한 글이 눈에 띈다.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 ‘장난기 많다’ 등등. 하지만 이는 ‘독하고 격렬한 글들’을 강조하기 위한 꾸밈에 불과하다. 그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공순이’ ‘식모’라는 본성이 강조된 명칭을 사용한다. 명칭이야말로 살아낸 시대와 사회를 가감없이 들춰낸다고 여긴다.‘기억의 연구자’가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 -
(13) 경제평론가 이원재
경제평론가 이원재 소셜픽션랩 소장(42)은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 정책기획실장을 맡았다. 2013년 4월 출간한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한겨레출판)에서 이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정치가 바뀌어야 삶이 바뀝니다’라는 슬로건은 이렇게 바뀌어야 했다. ‘삶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뀝니다.’”한겨레신문 기자, 미국 MIT 경영학석사(MBA),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안철수 후보 캠프, 소셜픽션랩 소장 등으로 이어져온 그의 행보는 ‘삶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경제 문법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맞추어져 있다. 일련의 행보를 관통하는 열쇳말이자 그가 꿈꾸는 해법은 ‘사회적 경제’다. 이 소장이 말하는 사회적 경제란 “국가도 시장도 아닌 영역, 즉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경제”이자 “탐욕 대신 이타심, 상호성, 협동, 사회적 목적, 명예와 헌신 같은 동기가 지배하는 경제”를 뜻한다. 최근에는 ‘소셜 픽션’이... -
(12) 철학자 진태원
“단독 저서도 없는데 ‘뉴 파워라이터’에 들어가도 되나요?(웃음)….” 지난 6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47)는 “그래서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고민했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진 교수를 뉴 파워라이터에 추천한 출판사 관계자, 출판 전문가들은 그의 왕성한 번역과 비판적 글쓰기에 주목했다. 진 교수는 (문학과지성) 등 데리다 책 4권, (난장) 등 발리바르 책 4권에다 피에르 마슈레의 (그린비)까지 9권을 번역했다. 올 상반기엔 랑시에르의 번역본이 나온다. 공역자로 참여한 책을 포함하면 번역 목록은 더 늘어난다. 그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 서점 알라딘 서재에서 ‘balmas’라는 필명으로 데리다 번역본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번역비평가로 이름을 떨쳤다. “오역을 찾는 것보다는 제대로 번역된 문장을 골라내는 것이 훨씬 빠르다” 같은 독설을 마다하지 않았다. 서평을 쓸 때도 주례사 비평과는 거리가 먼, 에두르지 않는 직설의 ... -
(11)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
지난해 가을 출간된 <아파트 게임>으로 호평받은 박해천씨(43)는 이력이 특이하다. <아파트 게임>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던 <아파트>와 <아파트 한국사회>의 저자는 건축학 전공 교수들이다. 그러나 박씨는 디자인 연구자다. 카이스트(KAIST)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영국 미들섹스 대학에서 공간문화연구 석사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홍익대와 국민대에서 디자인사와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디자인 전공자가 ‘아파트의 사회학’이라 불릴 만한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2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박씨는 “사회학자나 인류학자와 달리 디자인 연구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입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 사회학자나 인류학자와 구분되는 ‘독특한 입지’란 뭔가.“디자인사를 연구하면서 인간과 인공물이 주고받는 영향 관계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인간이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인공물이 인간의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