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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미소’ 불상, 아름답지만…40억원↑ 가격은 ‘국제호갱’ 감이다
호암미술관이 6월16일까지 열고 있는 전시회가 있다. ‘진흙에 물들지 않은 연꽃처럼’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다.한·중·일 3국의 불교미술에 담긴 여성들의 번뇌와 염원, 공헌 등을 세계 최초로 조망하는 전시회란다.전시회에는 한국·미국·유럽·일본 등에 소장된 92건의 작품이 출품되었다.■홀연히 나타난 백제의 미소?그중 유독 눈에 띄는 작품이 한 점 있다. 부여 규암리 출토 백제 금동관음보살 입상(이하 백제 보살상)이다.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백제 시대 걸작’으로 회자되다가 어느 순간 행방이 묘연해졌던 불상이었다.그러던 2018년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의 개인소장가가 이 불상을 국내 귀환(판매)를 전제로 공개한 것이다. 이 보살상을 친견한 이들은 “장인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빼어난 얼굴과 몸매”이며 “백제 7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보살상”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이 보살상은 1907년 무렵 충남 부여 규암리에서 출토된다.경성일보 ... -
금동대향로, 구멍 대충 뚫었다…아차 실수? 국보의 흠결
‘백제판 천존고(天尊庫)?’ 최근 국립부여박물관이 백제 국보관 설립을 위한 착공식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렸다.좀 객쩍은 비유이겠지만 신라 신문왕(681~692)이 만파식적(피리)과 거문고를 보관했다는 ‘보물창고’를 떠올렸다.<삼국유사> ‘기이·만파식적’조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 비가 내리고, 비가 오다가 개이고, 바람이 멎고 파도가 잔잔해졌다”면서 “이것을 월성(도성)의 천존고에 보관했다”고 전했다.‘신라 천존고와, 이제 세우겠다는 백제 국보관이 무슨 상관이냐, 웬 무리수냐’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그러나 백제 국보관을 만들고 수백년, 수천년이 지나면 신라 천존고와 같은 전설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새로 조성될 국보관(1543평·지상 3층, 지하 1층)에 입주할 ‘국보 유물’은 무엇이 될까.“‘백제 금동대... -
660년 백제 최후의 날…1300년 만에 드러난 멸망의 ‘8’ 장면
“칠기 제품은 확실한데….” 2023년 6월이었다. 사비 백제의 왕궁터인 부여 관북리 유적을 발굴하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조사팀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발굴 지점은 왕궁 내 조정(국사를 논의하고 행사 및 향연를 여는 공간) 시설로 여겨지는 대형건물터가 확인된 곳이었다. 그런데 한 건물터의 30m 범위 안 여러 구덩이에서 거뭇거뭇한 물체가 노출됐다.“칠기인 것 같은데 어떤 제품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죠.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 사각형 미늘(갑옷의 개별 조각)과 이 미늘을 연결한 구멍들이 확인됐습니다.”(심상육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특별연구원)이것들은 ‘옻칠한 갑옷(칠피갑옷)’으로 판명되었다. 갑옷 조각은 모두 6곳이 확인됐다. 그중 한 구덩이에서는 갑옷과 함께 말의 아래턱 뼈가 나왔다. 주변의 기와폐기층에서는 말안장 부속품(발받침대·등자)이 확인됐다. 이 구덩이의 갑옷은 마갑(말갑옷)일 가능성이 짙다.■말발굽 흔적의 백제궁궐이... -
‘아파트 고분’ 속 ‘모계 근친혼’ 흔적…1500년 전 영산강은 ‘여인천하’였다
1996년 5월 어느 날이었다. 영산강 유역인 전남 나주 다시면 복암리 3호분을 발굴 중이던 전남대 조사단이 심상치않은 징후를 발견했다. 굴삭기로 쌓인 소나무를 정리하면서 흙을 걷어내다가 큰 판석(판자 모양의 큰 돌)들이 노출된 것이었다.판석과 판석 사이에 주먹 크기의 틈새가 보였다. 고분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흥분된 마음으로 손전등을 비춰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함척(函尺·측량 자)을 넣어 보았다. 하염없이 들어갔다. 180㎝도 넘는 깊이였다.■금동신발을 신은 주인공틈 사이로 자세히 살펴보니 뭔가 독(옹) 같은 유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도굴의 화를 입지않은 돌방무덤(석실분)임을 직감했다. 이 돌방무덤에 복암리 3호분 96석실(돌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국립문화재연구소와 전남대박물관의 대대적인 조사가 7월8일부터 두 달간 이어졌다.발굴결과는 놀라웠다. 대형 독널(옹관)이 앞뒤 ... -
며느리를 ‘개××’라 욕한 임금…‘독 전복구이’ 올가미로 죽였다
‘구추(狗雛)’라는 말이 있다. ‘개 구(狗)’에 ‘병아리 추(雛)’자인데, ‘개새끼’라는 쌍욕으로 번역된다.888책 4770만자에 이른다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이 ‘구추’라는 욕이 딱 한 번 나온다.그렇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절대 지존이라는 임금이, 그것도 남도 아닌 며느리에게 내뱉었다.1646년(인조24) 2월8·9일이었다. 사간원 헌납 심로(1590~1664) 등이 인조에게 신신당부한다.“강빈이…소현세자의 부인이었으니 전하의 자식이 아닙니까. 그러니 선처를 베푸시어….”그러자 인조가 “개새끼를 억지로 임금의 자식이라고 칭하다니, 나에게 모욕이 아니고 무엇이냐.(狗雛强稱以君上之子 此非侮辱而何)”고 앙앙불락했다.인조... -
“일본인의 피가 흐른다”…3.1운동 급소환한 ‘금동관’ 옹관묘
“전라도 남부와 제주도는 왜인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조선인에게는 일본인의 피가 섞여있다…”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1880~1959)라는 인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의 고구려·낙랑 고분과 부여 능산리 고분은 물론이고 전남 나주 반남 고분을 파헤친 역사·고고학자이다. 그런 그가 1920년 <조선과 만주(朝鮮及滿洲)>(1월·151호)에 기고한 글(‘상고시대 일·한 관계의 일부·上世に 於ける 日韓關係の 一斑’)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조선의 남부에는 왜인 고분이 있다. 즉 전남 나주와 보성에는 <삼국지> ‘동이·왜인전’에 등장하는 여왕국(히미코·卑彌... -
벽화 속 ‘빨간 립스틱의 화장남과 화장녀’…“고구려인은 패션피플”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범상치 않고 그대의 손을 만져보니 솜처럼 부드럽습니다.”<삼국사기> ‘열전 온달’의 한 귀절이다. “온달과 결혼 할래!”를 외치다가 쫓겨난 평강공주가 누추한 온달 집을 찾았다.온달은 부재중이었다. 시각장애인인 온달의 노모는 공주가 들어서자 몸에서 나는 향을 느꼈다. 노모는 솜처럼 부드러운 공주의 손을 잡고 “그대처럼 천하의 귀한 분이 올 곳이 못된다”고 했다.■평강공주의 몸에서 향기가 났다하기야 공주로 태어나 ‘불면 날아갈세라, 만지면 터질세라’ 궁궐에서 고이 자란 분이 아니던가. 그런 분이 누추한 온달의 집을 방문했다. 그랬으니 몸에서 향기가 나고, 손은 솜처럼 부드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달리보면 어떨까.공주가 향이 나는 분을 발랐거나, 혹은 향주머니를 지녔을 수도 있다. 또 공주가 각종 세안제를 발라 ‘솜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운 손’을 갖게 된 것일 수도 있다. 6세기 중엽 편찬된 ... -
580년 만에 ‘갑툭튀’한 장영실의 ‘신상정보’…새빨간 가짜뉴스일까
호군-장영실-실보-계유-경주인’. 2022년 5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의 현판, 궁중현판’ 특별전을 둘러보던 강민경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눈이 번쩍 뜨이는 현판 1점을 보았다.‘활자 주조를 감독한 신하 명단을 새긴 현판’(이하 현판)이었다. 1857년(철종 8) 창경궁 화재로 불탄 주자소를 재건하면서(1858) 내건 현판이었다. 현판에는 계미자(1403)부터 경자자(1420)·갑인자(1434)·정유자(1777)·임인자(1782)·병진자(1796) 등을 주조한 선배들과 함께 무오자(1858) 담당 관원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다.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은 ‘장영실’이었다. ‘호군(정4품) 장영실’과 함께 ‘자(字·다른 이름)=실보(實甫)’, ‘태어난 해=계유·1393)’와 ‘본관=경주’가 적혀 있었다. 단 12자에 불과한 장영실의 초간단 인적사항이었다.■‘?~?’인 생몰연대그러나 강민경 학... -
‘폭군’ 궁예, “끌고가 도륙하라” 했다…1100년 전 비석 탁본 읽어보니
‘불변(不變)의 기록, 10년의 두드림’. 얼마전 문화재청과 불교중앙박물관이 개최한 학술대회의 명칭이다.대체 무엇이 ‘불변의 기록’이고, 또 무엇을 ‘10년간 두드렸다’는 걸까.‘불변의 기록’이란 금속이나 돌로 만든 유물에 새겨(써) 넣은 명문(글씨)인 ‘금석문’을 가리킨다.이 금석문은 당대 사람들이 직접 남긴 생생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1차 사료의 가치를 갖는다.‘두드림’은 ‘탁본’을 뜻한다. 비면에 종이를 대고 그 위에 먹 방망이를 톡톡 두들겨 명문을 뜨는 행위를 가리킨다.2013년부터 10년간 전국 금석문 708점의 탁본조사를 마쳤고, 이번에 그 성과를 보고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이다.■너무도 선명한 탁본학술대회 자료집 중에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발표문이 있었다.‘무의사 선각대사 탑비’(946·보물)의 탁본 해석이었다.(하일식 연세대 교수)이 탑비(부도비... -
‘대방태수 장무이’…식민사관의 악령을 일깨운 인물이다. 그러나…
‘장무이(張撫夷)’라는 인물이 있다. 1700여년전 황해도 사리원에서 살았던 사람이다.그런데 그가 일제강점기 잠자고 있던 ‘식민사학의 악령을 깨운 인물’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물론 ‘장무이’ 본인은 그런 누명을 뒤집어쓸 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 열린 최근 제47회 한국고고학대회에서 ‘장무이묘’를 주제로 최신 연구성과가 발표되었다. 이 참에 ‘장무이’와 ‘장무이묘’와 관련된 사연을 풀어보고자 한다.■대동강변에서 확인된 벽돌무덤의 정체1909년 10월의 평양 대동강변으로 시공간을 옮겨보자.당시 통감부 고건축 촉탁이었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1868~1935)는 평양일보 사장인 시라카와 쇼지(白川正治)로부터 솔깃한 이야기를 듣는다. “대동강 남쪽 강변에 고분이 널려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고분2기의 발굴결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