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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의 필화 70년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13) 심산 김창숙
    (13) 심산 김창숙

    필화 70년사의 별들 중 가장 많은 것을 잃고 참담하게 후반생을 보낸 인물은 단연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1879~1962년)일 것이다. 그는 붓을 필봉포(筆鋒砲), 혀를 설공탄(舌攻彈) 삼아 독립·통일·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분단시대 최고의 유학자이자 시인이며 투사로 민족사적 야인정신의 횃불이요, 죽창이었다. 이 고결한 애국자는 이승만 독재 타도로 한 몸 불사르다가(이게 진짜 불사르기다!) 자신이 세운 유도회(儒道會)와 성균관, 성균관대 총장직을 친일 세력에 강탈당한 채 거처도 없이 생을 마쳤다.■ “반역자 이승만” 일갈한 심산“역적을 치지 않는 사람 또한 역적이다”라는 일진회 규탄 <성토문>으로 헌병 분견소에서 심한 고문(1909년)을 당한 게 심산의 첫 시련이었다. 일제의 심한 고문과 옥중 투쟁으로 불수(不隨)가 된 이 원로 혁명가는 8·15 후 우남 이승만과의 첫 대면부터 삐꺽댔다.미 국무부 극동국장 빈센트가 자치 준비가 안된 한국의 ...

    2016.12.29 20:37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12) 언론·출판 길들이려는 독재의 망령
    (12) 언론·출판 길들이려는 독재의 망령

    세상은 ‘나도 한때는’ 정의의 편에 섰던 사람들에 의하여 한걸음 전진하다가 그런 사람들의 변절로 두 발짝 후퇴한다. 역사는 ‘한때만’ 좋았던 사람보다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인물들의 투쟁으로 발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한때는’이라고 회고할 수 있는 노인은 평생 악업만 쌓은 것보다는 낫다. 악업에 빠졌다가 만년에 정의의 편으로 돌아서면 대환영을 받는다.박근혜 탄핵 정국은 오랜 세월 권력의 오염 속에서 헤매다가 레테강을 건널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레테강을 건너고 싶어도 그 악업이 너무 깊으면 사공 카론(국민)이 배를 태워주지 않을 수도 있다.한인섭 교수는 칼럼 ‘한태연과 유신헌법’(한겨레신문)에서 그 악법 공모자로 지탄받던 ‘한갈이(한태연, 갈봉근, 이후락)’보다 “개정안은 이후락과 신직수가 주도하여, 김기춘(당시 법무부 법제과장) 등 검사들을 시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고 했다. 골격은 손대지도 못한 한태연은 개정안 자구 수정에 조금 관여했다는 것...

    2016.12.22 21:46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11) 정비석의 ‘자유부인’
    (11) 정비석의 ‘자유부인’

    독재는 평화와 안정이 천적으로 혼란과 위기, 갈등과 빈부격차가 보약이다. 그러나 그 길항(拮杭)관계가 무너지면 혁명으로 치닫는다. 사월혁명도, 12월9일 촛불혁명도 같은 이치다. 그러나 프랑스대혁명을 나폴레옹이 횡령했듯이 사월혁명은 5·16쿠데타에 갈취당했다. 12·9혁명도 날도둑질 안 당하려면 촛불 켠 이 손들을 영원히 서로 굳게 잡아야 할 것이다.■ 전쟁·독재 속 무너진 사회윤리휴전 1주년을 이틀 앞둔 1954년 7월25일 이승만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초청으로 방미 길에 올랐다. 워낙 껄끄러웠던 둘은 정상회담으로 불화를 증폭시켰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푸른 빛깔 양복 차림으로 미 상하합동회의(7월28일) 연설에서 소련이 수소탄을 대량 생산하기 전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미국의 공군과 해군의 힘이 필요한 것이지만, 미국의 보병은 단 1명도 필요치 아니하다”면서, 한국이 “20개 사단을 여러분에게 제공하였고, 또 앞으로 새로운 20개 ...

    2016.12.15 20:44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10)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슬픔
    (10)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슬픔

    3년1개월 만에 정전협정(1953년 7월27일)으로 끝난 한국전쟁은 “양쪽 모두 전쟁에 이겼다고 선언하지만 양쪽 모두 실제로는 자신이 졌다고 느끼는 것 같다”(브루스 커밍스·존 할리데이 지음, 차성수·양동주 옮김, <한국전쟁의 전개과정>, 태암, 1989년).남북은 공동 패자인데 싸우지도 않은 일본이 승전의 영예를 누렸다. 이 전범국은 “태평양전쟁의 수많은 기억을 쉽게 몰아내고 서방세계에 훨씬 안전하게 묶여졌다”(같은 책). 우리 피로 통통히 살찐 이 범죄국가는 태평양전쟁 부활전에 나서고 있다. 두 번째 덕을 본 건 장제스였다. 타이완 접수로 중국 재통일을 노렸던 마우쩌둥의 야망은 항미원조(抗美援朝)로 유보되어 장제스 독재는 탄탄해졌다. 중국은 친소적이었던 북한을 친중적으로 기울게 한 것으로 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불안했던 동유럽 지배권을 굳히게 되어 두 진영의 비난에도 쾌재를 불렀다. 국민과 군대 모두에게 인기 없는 첫 전쟁을 치른 미국은 서태평양...

    2016.12.07 21:03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9) 타락녀 빗대 부패 권력 고발한 김광주
    (9) 타락녀 빗대 부패 권력 고발한 김광주

    독재체제가 궁지에 몰렸을 때 대응책은 이승만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엇비슷하다. 거짓 사과로 사건을 은폐·축소시켜 부하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허위보도라며 언론과 비판세력을 싸잡아 빨갱이로 몰아댄다. 안보와 민생을 빌미로 삼아 궤변으로 역공한다. 어용 조직을 동원해 억지 주장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남북문제를 적극 활용한다. 한국정치사는 친일 후예인 친미세력 주역으로 이 5막극을 연속 공연하는 것. 국민들은 이 레퍼토리에 번번이 속아왔다. 주인공만 바꿔 재공연하는 몰염치한 우주의 쓰레기들!■독재의 문 연 ‘부산정치파동’제헌국회의원 임기는 2년이라 1950년 5월30일 제2대 총선을 맞아 대통령은 노골적인 선거운동과 야권 탄압을 자행했지만 집권당(대한국민당)과 야당(민국당)은 참패하고 무소속이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그러자 2년 뒤 대통령 선거(국회 간접선거)를 치러야 할 노(老)독재자의 심경은 착잡해졌다.마땅히 탄핵감이었던 이 독재자를 구해준 건 한국전쟁이었...

    2016.11.30 21:47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8) 전쟁 중에도 언론자유 지켜온 기자정신
    (8) 전쟁 중에도 언론자유 지켜온 기자정신

    파시스트보다 2세기 전의 부르봉파(미 군정 고문 L 버치 중위)이고, “통일할 능력도 없거니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할 성의도 없고 국민을 사랑할 줄도, 위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병주 ), 거기에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끈덕진 나라다. 미국은 지길 싫어하는 나라다. 미국은 언제든 전쟁을 필요로 하는 나라다”(이병주 )라고 굳게 믿는 사람, 이승만 전 대통령. 맥아더 원수 축사를 들으며 대통령에 올랐고, 매카나기 미 대사의 외교적 마사지로 물러나 미국으로 망명한 권력의 화신.미국의 반소 전략에 따라 반공십자군을 자임한 이승만은 1949년 2월부터 ‘북진통일론’을 가동시켜 전쟁불가피론으로 치달았다. 문교부는 그해 7월 ‘우리의 맹세’를 제정, 교과서를 비롯한 모든 도서 판권란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

    2016.11.23 20:57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7) 이승만 정권의 사상 탄압
    (7) 이승만 정권의 사상 탄압

    “한국 군인들은 우리가 그들을 훈련하는 목적이 미국이 피를 흘리는 대신 피를 흘리고, 미국을 위하여 쏘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첫 미국고문사절단장 윌리엄 로버츠(William L. Roberts) 준장의 말이다(허상수, , 다락방, 264쪽).권력기반을 외세(미군)와 친일파에 둔 이승만 정권은 주한미군사령관 하지와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1948·8·24)을 체결, 주한미군사령관이 본국 정부의 지시나 자신의 직권으로 “대한민국 국방군(국방경비대, 해안경비대 및 비상지역에 주둔하는 국립경찰파견대를 포함)”을 훈련, 무장, 조직, 장비, 작전상의 통제 등 권한을 갖도록 합의했다.하지 중장 후임으로 주한미군사령관을 겸했던 로버츠는 1949년 6월29일 미군이 철수한 뒤에도 고문관으로 남았다가 6·25 이틀 전 퇴임했다.■첫 금지곡과 보도연맹 결성8·15 광복 직후 국민적 염원은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 그리고 통일·민주정부 수립...

    2016.11.16 21:04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6) 이승만 정권, 일민주의 비판한 시집 잇단 판금
    (6) 이승만 정권, 일민주의 비판한 시집 잇단 판금

    “영명하신 우리의 지도자(…), 그의 혁명투쟁을 통하여 체험하신 민족의 부활과 조국의 광복을 찾기 위한 이론과 실천의 양면을 체계화한 철리적(哲理的)인 민주원론.” “우리의 영명하신 최고 영도자이신….”어떤 ‘지존’을 향한 누구의 용비어천가일까? 앞의 것은 이범석 초대 국무총리, 뒤의 것은 안호상 초대 문교부 장관이 이승만 대통령의 일민주의(一民主義)를 찬양한 수사다. 이로써 일민주의는 분단 한국의 국시가 되었다. 문벌과 반상(班常) 철폐, 빈부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공동 이익, 남녀평등, 지방구별 없애기란 4대 강령이 그 요체다. 이것으로만 보면 사회과학적 인식에서 이승만은 안창호보다 한참 밑단계인 이광수 수준으로 느껴진다.■‘영도자국가’에 대한 집념그 주장이 어쨌든 일민주의는 정치현실에서는 “거대한 영도자국가 또는 두령국가의 면모”(서중석, <이승만의 정치 이데올로기>, 역사비평사)로 나타났다. 대통령직과 함께 대한...

    2016.11.09 20:40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5) 친일파 최남선·이광수·박영희의 ‘필화’
    (5) 친일파 최남선·이광수·박영희의 ‘필화’

    세상은 공정하지 않아 “뛰기는 역마가 뛰고 먹기는 홍중군(洪中軍)의 말이 다 먹는다”는 속담이 어디서나 적용된다. 풍찬노숙의 독립투사들이 친일세력에 의해 훈장등급이 매겨지고, 그들이 걸어주는 훈장을 받는 처량한 세월 아닌가.부민관 폭파 사건의 주역인 독립투사 조문기는 “해방은 친일파에게만 왔다”며 정부 주도 3·1절이나 8·15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8·15 이후 친일 행위를 반성한 것은 조용만, 이항녕, 채만식, 현석호 등과, 일제 때 법조인으로 있었던 걸 반성해 해방후 사퇴한 엄상섭, 이호, 이병용, 김윤수, 박종근, 김영재 등이 있다. 또 김동환의 장남 김영식, 후손으로 사죄한 신기남 전 의원, 이윤, 한진규 등이 있지만 친일행위를 반성한 극소수에 불과하다. 단체로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반성했다. 이에 반해 선조의 과오를 미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뒤바뀐 세상에서 살아남기명망 있는 친일파들은 8·15를 맞고도 여생을 즐길 만했다. 세월...

    2016.11.02 21:32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4) 경향신문 필화 1호 사건과 언론인 우승규
    (4) 경향신문 필화 1호 사건과 언론인 우승규

    미군정 3년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고, 1947년 6월 이후인 후반기를 통상 ‘남조선 과도정부’라 부른다. 점령 전반기에 군정은 민족 주체성을 탈색시키기 위해 중국 상해 임시정부와 건국준비위원회를 분해시켰고, 친일파를 앞세워 진보적인 민주통일 세력의 날개를 꺾었다. 이런 바탕에서 세운 남조선과도정부 입법의원은 군정의 자문역할을 넘어서지 못했다.입법의원이 제정한 친일파 숙청법(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 조례)이 그 한 예이다. 1946년 대구 10월 항쟁이 친일파 때문에 일어났기에 1947년 7월2일 입법의원은 이 법을 통과시켰지만 미군정은 거부했는데, 그 핑계가 재밌다. “반역자 또는 협력자로서 규정받는 자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문제는 상당히 곤란하다.” 그러면서도 “원칙적으로 이런 종류의 법률이 필요”하지만, 입법의원 전원이 민선으로 선출된 상태에서 해야 된다면서 “본관은 이 법안의 조문을 검토하는 것을 삼간다”(군정장관 대리 G.C.헬믹)고 했다....

    2016.10.26 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