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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의 필화 70년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3) 미군정 땐 필화, 북한선 처형 ‘비극 시인’ 임화
    (3) 미군정 땐 필화, 북한선 처형 ‘비극 시인’ 임화

    반미와 신탁통치 지지는 분단 독재 시기의 성역이었다. 8·15 직후 민족 내분을 격화시킨 분수령은 신탁통치였는데, 그 단서는 오보에서 비롯했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분할,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동아일보 1945년 12월27일자)이란 기사는 제목만으로도 반소(반공) 감정의 강력한 불쏘시개였다. 다른 신문들도 내용이 비슷했기에 이 매체만을 오보의 주범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워싱턴발 AP통신 기사를 국내 합동통신이 받아 배포하면서 비롯된 이 엄청난 오보는 비스마르크가 고의로 사실을 비틀고 과장한 보도자료 때문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일으킨 것에 비교할 만하다.■신탁통치, 민족사의 굴레 조선은 20~30년간 신탁통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최초로 구상한 것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그가 세상을 뜬 이후 열린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국이 제안하자 소련은 즉각 독립을 주장하며 반대하다가 받아들이면서 기간이 5년으로 단축됐다. “조선을...

    2016.10.19 21:07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2) 첫 필화 사형수 시인 유진오
    (2) 첫 필화 사형수 시인 유진오

    8·15 직후 통일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한 건 미국, 소련, 일본 등 외세 개입과 국내 정치지도자들의 과오 때문이었다.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민족의 이름으로 최선을 다했던가에 대한 반성과 속죄는 7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없고, 정치판은 여전히 싸움질이다. 이치로 따진다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집회결사의 자유도 보장해준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일본 통치 사례가 한국에도 적용되어야 했다. 그런데 필화사건을 통해서만 본다면 미군정은 점령 초기부터 반소 친미정권의 수립이란 제국주의적인 의도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을 몰랐던 정치세력심하게 말하면 민족독립 사상을 탈색시키고, 친일 친미세력에게 유리하도록 정치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검열과 통제로 일관했다. 이에 가장 비판적이어야 할 조선공산당은 ‘8월 테제’에서 미국을 진보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했다. 당 기관지 ‘해방일보’에 미군정 비판 기사가 처음 등장한 게 1946년 4월2일이었다....

    2016.10.12 21:37

  •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 (1) 만담가 신불출 테러 사건
    (1) 만담가 신불출 테러 사건

    경향신문은 창간 70주년을 맞아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문학평론가·서울디지털대 교수)이 쓰는 ‘필화 70년’ 시리즈를 연재한다. ‘필화’란 개인과 집단의 의사표현에 대한 탄압의 총칭이다. 여기에는 펜뿐만 아니라 설화(舌禍),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모든 의사소통에 대한 직간접적인 제재가 포함된다. ‘필화 70년’ 시리즈는 광복 이후 정치, 경제, 사회, 언론, 교육, 종교, 문화예술, 노동, 학술 등 모든 분야에 걸친 필화 사건을 다룰 예정이다. ■8·15 이후에도 여전했던 일본의 검열일본의 항복을 가장 먼저(1945년 8월10일 밤) 알았던 백범은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고 한탄했다. 독립운동이 연대와 통합을 이루지 못한 채 맞게 될 민족적인 갈등과 비극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일제의 패망이 저절로 민족해방으로 이어져 독립 민주국가로 정착할 기대로 환희에 들떴던 8·15는 백범의 고뇌를 그대로 드러냈다....

    2016.10.05 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