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와 신탁통치 지지는 분단 독재 시기의 성역이었다. 8·15 직후 민족 내분을 격화시킨 분수령은 신탁통치였는데, 그 단서는 오보에서 비롯했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분할,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동아일보 1945년 12월27일자)이란 기사는 제목만으로도 반소(반공) 감정의 강력한 불쏘시개였다. 다른 신문들도 내용이 비슷했기에 이 매체만을 오보의 주범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워싱턴발 AP통신 기사를 국내 합동통신이 받아 배포하면서 비롯된 이 엄청난 오보는 비스마르크가 고의로 사실을 비틀고 과장한 보도자료 때문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일으킨 것에 비교할 만하다.■신탁통치, 민족사의 굴레 조선은 20~30년간 신탁통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최초로 구상한 것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그가 세상을 뜬 이후 열린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국이 제안하자 소련은 즉각 독립을 주장하며 반대하다가 받아들이면서 기간이 5년으로 단축됐다. “조선을...
2016.10.19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