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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
  •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21)초원 사람이 되고 말이 되어, 우리를 가둔 울타리를 벗어나보자
    (21)초원 사람이 되고 말이 되어, 우리를 가둔 울타리를 벗어나보자

    “오 나무야, 너에게 날개와 발이 있어 떠날 수 있다면, 도끼질과 톱질의 고통을 받지 않을 텐데.”(메블라나 루미) 지금 아마존에선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1분마다 축구장 하나 크기의 숲이 사라지고 있다. 수백년 된 나무가 한 살짜리 톱에 잘리고, 그 시간만큼 어렵사리 모았던 탄소가 풀려 나와 지구는 더 뜨거워진다. 약한 것들은 움직이지 못하면 죽는다. 숲에 깃들어 살던 것들이 먼저 죽겠지만, 죽음의 그물망은 인간에게까지 미쳐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가장 약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인간들이 이 땡볕에 익어 죽는다.■ 멋진 신세계로!지금 우리 몇몇이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 일대에서 방목하던 7세기 초의 서돌궐 유목민이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어쩌다 시간의 길에 잘못 들어, 21세기 7월 어느 날로 떨어졌다. 섭씨 42도의 폭염, 조상들로부터 가끔 듣던 그 재앙이 닥쳤다. 언제나 새하얗던 6월 천산(天山) 중턱엔 눈이 없다. 나무가 마르고 양들...

    2019.07.09 21:30

  •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20)군주가 시대착오에 빠진 나라는 멸망한다, 준가르가 그랬듯이
    (20)군주가 시대착오에 빠진 나라는 멸망한다, 준가르가 그랬듯이

    초원에서든 전답에서든 인간사의 법칙은 한 가지, 사람이 모이면 흥하고 흩어지면 망한다. 마찬가지로 사람 또한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서로 ‘베푸는 것(德)’이 있는 곳으로 모인다. 그래서 껍데기 같은 명분도 세대를 단위로 보면 실체가 있고, 완벽해 보이는 승리도 더 처절한 패배의 씨앗에 불과할 수 있다.몽골 제국 붕괴 후, 16세기 이래 세계사의 흐름은 분명 민족국가로 기울고 있었다. 유럽에서 베스트팔렌 조약과 오스만 제국의 쇠퇴는 이런 경향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징후였다. 사파비 왕조는 확실한 이란 민족왕조였고 중앙아시아는 수니파 정주 튀르크의 국가가 되어 갔다. 17세기 러시아가 시베리아 전체를 차지해 제국으로 도약하는 격변이 일어났지만, 그들의 동방 진출은 ‘타타르(몽골)의 굴레’를 벗어나 정교회에 기반한 슬라브인의 민족국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만주(滿洲)족은 거의 유일하게 세계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극소수 이민족이 다...

    2019.07.02 21:31

  •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19)스스로 ‘야만인’ 자처한 카자흐, 초원 제일의 ‘자유민’이었다
    (19)스스로 ‘야만인’ 자처한 카자흐, 초원 제일의 ‘자유민’이었다

    1449년 오이라트(서몽골) 수령 에센이 명나라 황제 주기진(朱祁鎭)을 사로잡은 사건을 전쟁사에서 빼놓을 수 없지만, 기마전의 역사에서 그 사건은 여명이 아니라 석양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사파비 왕조의 이스마일 샤는 메르브에서 우즈벡군을 ‘선제공격’하여 격파했고, 칸 무함마드 샤이반니를 살해해 그 두개골을 술잔으로 만들어 버렸다. 페르시아 정주민이 튀르크(비록 상당히 정주화되었지만)를 상대로 거의 500년 동안 잊혀졌던 승리를 되찾아왔다! 그로부터 다시 반세기가 지난 1552년, ‘뇌제(雷帝)’ 이반 4세의 포병부대가 날린 대포알이 카잔의 성벽 안으로 날아들었고, 마침내 몽골-튀르크 수비대가 학살됨으로써 조치 울루스는 끝났다. 겨우 100년 사이, 기마대가 포수들에게 전쟁의 주인 자리를 넘겨주었던 셈이다. (우습게도 이 격변의 15~16세기 한가운데인 1492년, 말은 콜럼버스를 따라가 아메리카에서 유럽인들은 세계사적인 팽창을 완수한다.) 2차 세계대전 중 몽골-키르...

    2019.06.25 21:50

  •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18)중앙아시아 정복했지만 ‘칸’이 되지 못한 통치자 티무르
    (18)중앙아시아 정복했지만 ‘칸’이 되지 못한 통치자 티무르

    세상의 모든 전쟁이 정의를 가장한 약탈 행위지만, 종교전쟁은 그중 가장 위험하다. 종교전쟁은 인간의 극한의 야만적인 속성을 최상의 고결함으로 분식(粉飾)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종교전쟁은 정의(正義·올바름)와 믿음의 구분을 파괴한다.인류는 지난한 갈등을 통해 얻은 집단적 이성으로 사회적 정의의 관념을 구축해왔다. 예컨대 거의 모든 문명권은 살인자는 자기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통칭으로 불리는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므로(대개 군주라는 예외자가 있지만) 일종의 보편적 규범이다. 보편 규범은 사회의 정의를 경험과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합의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나 신앙이 개입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특정한 상황에서 타 종교인 혹은 ‘이단’을 죽여도 살인이 아니다. 옳은 이가 그른 이를 죽이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며, 살인은 곧 심판인데 누가 심판자를 응징할 수 있겠는가. 1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군 전쟁...

    2019.06.18 21:36

  •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17)칭기즈칸이 세운 제국은 거대했지만, 그가 파괴한 것은 훨씬 더 컸다
    (17)칭기즈칸이 세운 제국은 거대했지만, 그가 파괴한 것은 훨씬 더 컸다

    누군가 ‘칭기즈칸은 얼마나 위대한가’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겠다. 그는 강했지만 위대한 인간은 아니었다고. 다시 ‘몽골제국은 얼마나 위대한가’라고 묻는다면 답하겠다. 제국은 거대했지만, 제국이 파괴한 것은 그보다 훨씬 컸다고. 제국이 이룬 수많은 성취를 인정하더라도, 몽골 제국의 역사는 길고 거대한 파괴와 그만큼 더디고 어려웠던 회복의 과정이었다.몽골 제국, 끝없는 정복 과정에서호레즘·바그다드부터 중국까지유목민족으론 유례없는 학살 벌여손에 핏덩어리를 쥐고 태어났다는 그 사람 테무친(칭기즈칸)이 죽은 지 50년 뒤 무렵의 제국을 상상해보자. 매일 제국 전역에 깔린 역참 사이를 수천 수만 마리의 말이 뛰어다니며 소식을 전했고(역마의 총수는 10만을 훌쩍 뛰어넘었다), 바그다드에서 한반도까지 상인들은 강도나 규정 외의 통행료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잘 정비된 도로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나무가 심겨져 여행자들의 땀을 식혀 주었다. 제국 안에는 종교의 차별도 없어...

    2019.06.11 21:49

  •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16)‘고려 사나이’ 함보가 만든 배상법, 부족 간 ‘복수혈전’을 멈추다
    (16)‘고려 사나이’ 함보가 만든 배상법, 부족 간 ‘복수혈전’을 멈추다

    유라시아 초원은 동서 수만리에 걸쳐 뻗어 있고, 중세로 넘어오면 한때 실개천으로 여겨졌던 작은 물줄기들이 불쑥불쑥 불어나 주류에 합류하니, 이 좁은 지면 위에서 길을 인도하는 붓이 한번 길을 잃으면 물줄기는 초원을 헤매다 사막에서 말라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과도하게 살을 발라내고 여러 사건을 추상하여 뼈만 남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기록의 행간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하나도 없음을 새삼 확인한다. 뼈 역시 피와 살을 재료로 조금씩 자라난 것이다.■ 거란의 유연함과 여진의 원시적 힘 다음 회에 우리는 몽골제국으로 들어간다. 태평양에서 지중해까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류에게 몽골은 실로 인간이 지상에 만든 문명을 파괴하기 위해 지옥의 심연에서 올라온 타르타로스였다. 기존의 어떤 유목 부족도 보여주지 못한 광범위하고 동시다발적인 팽창과, 몽골군이 보여준 진저리 나는 잔인성과 저항 불가의 힘 앞에서 당대의 사가(史家)들은 전율...

    2019.06.04 21:44

  •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15)당이 위구르와 거래한 ‘견마무역’, 피로 바꾼 북방 평화체제였다
    (15)당이 위구르와 거래한 ‘견마무역’, 피로 바꾼 북방 평화체제였다

    당(唐)나라의 인구 기록에는 ‘인구절벽’ 구간이 있다. 건국 이래 인구는 꾸준히 늘어 752년 전국 897만3634호(戶), 인구 5997만5543명(<신당서>)에 이르지만, 불과 몇 년 후인 760년에는 193만3134호, 1699만386명(<통전>)으로 줄어든다. 제국이 끝날 때까지 전성기의 인구는 회복되지 않았다. 그 몇 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인구가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 수 있을까? 이 세계사적인 인구감소는 안록산(安祿山)이라는 변경을 지키는 군인이 일으킨 난 때문이었다. 분명 많은 수가 칼날을 피해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명을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농사 짓는 이들은 전답을 떠나면 걸인이나 다름없으니, 10년 동란에 살아 남은 이들이나마 몸이 성했을지 의문이다.■ 군대가 커지면 나라가 위태롭다안록산 난으로 위태로울 때마다당은 위구르에 구원 요청하며조력 대가로 끔찍한 약탈 허용싸움이 잦으면 군...

    2019.05.21 21:33

  •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14)알타이를 동서로 장악한 ‘돌궐 제국’도 백성이 떠나면…
    (14)알타이를 동서로 장악한 ‘돌궐 제국’도 백성이 떠나면…

    ■ 튀르크-세상에서 가장 넓은 언어권천산산맥 동단의 튀르크 부족6세기 중반 화북의 혼란을 이용유라시아 전역을 손에 넣는다몽골보다 앞선 제국의 형성이다6세기 중반에서 8세기 중반까지 쾩튀르크(푸른 돌궐) 200년 역사는 요약할 수 없는 복잡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은 유라시아의 인구지도를 오늘날과 비슷하게 만든 첫 주인공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의 중심을 가진 정치체가 알타이의 동서를 동시에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히말라야와 파미르고원이 정주세계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듯 알타이산맥은 그동안 유목세계를 동서로 나누고 시베리아의 수렵채집민과 남부의 초원유목민을 나누는 기후의 구분선이었다. 심지어 몽골 제국 시절에도, 차가타이와 주치와 칸 울루스가 알타이산맥을 경계로 나누어 각각 다스렸다. 그 덕에 정치체로서 돌궐은 기존의 유목정권보다 복잡하다. 지중해를 사이에 둔 대제국 로마가 이미 동서의 전선을 모두 관리하다 기진맥진했...

    2019.05.14 21:43

  •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13)하층민 희생 강요한 농노제와 종교권력이 서구 중세의 ‘출발점’
    (13)하층민 희생 강요한 농노제와 종교권력이 서구 중세의 ‘출발점’

    5월이 시작된 지금, 러시아 측 알타이에는 여전히 계절이 뒤섞여 있다. 남향의 너덜에는 거뭇거뭇한 돌이끼를 배경으로 진달래가 붉게 파도치고, 비탈 아래 평지에는 아지랑이가 넘실거린다. 계곡 가까이에는 하얀 자작나무와 붉은 소나무가 번갈아 가며 언덕을 꾸미고, 버드나무 숲 사이 강줄기로 고원에서 내려온 얼음덩이들이 이리저리 부대끼며 흘러간다.좀 더 남쪽으로 몽골 국경 가까이에 이르면 알타이는 마치 티베트고원 같은 고산 평원으로 변한다. 넓은 품 안에 물줄기를 안고 있기에, 이곳은 최소한 4000년 전부터 유목민들의 황금 목장이자 이동로였다. 타샨타 초원에는 수백개의 자그마한 쿠르간(돌무지무덤)들이 평원에 흩어져 이정표와 경계 역할을 한다. 돌무지는 원래 높지 않은 데다 세월에 눌려 어떤 곳은 길이, 어떤 곳은 목동의 놀이터가, 어떤 곳은 심지어 쓰레기장이 되었다. 여전히 돌무지 아래 누워 있을 그 누군가에게 물어본다. ‘당신의 무덤 위에 길이 난 것을 아시오? 바람이...

    2019.05.07 21:34

  • [공원국의 세계의 절반, 유목문명사](12)내 영역 들어오면 모두 내 편…유목 왕조의 통치병기 ‘무아론’
    (12)내 영역 들어오면 모두 내 편…유목 왕조의 통치병기 ‘무아론’

    “한번 보살의 자비로운 손길에 스친 이런 사나운 전사들은 승려의 인문주의적인 가르침에 너무 감화되어 원초적인 호전성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방어마저 게을리하게 된 것이다.”(<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르네 그루세 저, 김호동 외 역)그루세는 탁발선비의 정복국가 북위(北魏)가 약화된 근본적인 원인을 불교로 돌렸다. 유목민의 우위는 말(馬)의 힘과 호전성에서 나오므로, 유목민이 정주세계로 들어와 순화되는 순간 후방의 다른 유목민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럴까?■ 무아론과 정복국가 논리적으로 불교는 분명 정복국가의 성격과 맞지 않다. 쿠샨인들의 무대였던 박트리아에서 탄생한 <밀린다왕문경>에서, 그리스계 왕 메난드로스는 불교를 통치에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나가세나 존자에게 묻는다.‘붓다는 살아 있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칭찬할 만한 이는 고무하고 제어할 만한 이...

    2019.04.30 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