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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의 아니 근데
  • [이진송의 아니 근데] 미묘하고 애매한…예능 속 ‘장애 희화화’
    미묘하고 애매한…예능 속 ‘장애 희화화’

    나의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귀가 좀 어두웠다. 종종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말을 이상하게 알아들어서 우리 가족뿐 아니라 친척까지 공유하는 일화를 만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의 병원 진료에 동행했다. 청력이 떨어진다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는 젊은 시절 일했던 공장의 소음이 굉장히 심했으며 그때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버지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점을 한 번도 청력 손상이나 청각장애의 관점에서 생각지 못했다. 인권 교육 물(?) 좀 먹었다고 자부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아버지를 놀렸던 나는… ‘고요 속의 외침’을 보며 자란 <가족 오락관> 키즈였다.‘고요 속의 외침’은 1985년부터 2003년까지 방영된 KBS 예능프로그램 <가족 오락관>의 간판 코너였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헤드폰을 쓰고 옆 사람이 말한 글자를 전달하는 게임으로, 14년간 장수했다. 이 코너의 오락 요소는 잘 들리...

    2021.01.15 16:21

  • [이진송의 아니 근데]새해엔 ‘나이 듦’과 사이 좋게 지내요, 잘 늙어봅시다
    새해엔 ‘나이 듦’과 사이 좋게 지내요, 잘 늙어봅시다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으세요?”유튜브 채널 ‘밀라논나(Milanonna)’의 ‘논나’, 장명숙 패션 크리에이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어우 한번 했으면 됐지. 어떻게 안 늙어. 나도 한번 젊어봤잖아.”순간 시원한 박하를 씹은 듯했다. 노화를 거대한 재앙으로 치환하고, 안티 에이징(노화 방지 혹은 항노화라는 의미로 주로 화장품에 쓴다) 제품을 쓰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세상에서 이런 태도라니! 해가 바뀌면 다 같이 한 살을 먹는 조금 특이한 문화권의 한국인으로서, 새로운 나이를 맞이하는 기념으로 밀라논나를 소개하고 싶다. 1952년생인 장명숙은 패션 바이어이자 디자이너이자 교수이다. 밀라노에서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페라가모나 막스마라 등 유명 브랜드의 한국 출시를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채널 이름 밀라논나는 이탈리아의 지명인 밀라노와, 할머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논나’를 합친...

    2021.01.01 16:37

  • [이진송의 아니 근데]나이 들지도, 다치지도, 지치지도 않는…여기에 기획자의 의도가 있다
    나이 들지도, 다치지도, 지치지도 않는…여기에 기획자의 의도가 있다

    12월9일, Mnet에서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 방송을 시작했다. “대중이 그리워하는 아티스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복원해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는 것”이 기획 의도다. 프로그램은 고인의 음성 자료를 바탕으로 한 목소리 복원뿐만 아니라 페이스 에디팅 기술로 얼굴과 동작까지 재현한다. 1화에서는 그룹 ‘거북이’의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고(故) 터틀맨(본명 임성훈)을, 2화에서는 고 김현식을 소환했다. 내년 1월 신년 특집 4부작으로 방영될 SBS의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첫 편은 모창 AI다. 1996년 세상을 떠난 김광석의 목소리가 2002년 발표된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부른다. 사람들은 감동하거나 경악하거나 얼떨떨해한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결할 때까지만 해도 비일상적이고 흥미로운 이벤트 정도로 여겼던 인공지능(AI)은 이렇게 불쑥 우리 삶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움이나 친밀성 같은 ‘감정’을 공략하면서, 현실...

    2020.12.18 16:20

  • [이진송의 아니 근데]2020 ‘방구석 1열’ 시상식
    2020 ‘방구석 1열’ 시상식

    아이유가 부릅니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내가 왜 이러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오늘 했던 모든 말들 저 하늘 위로~”(좋은 날). 여기에서 ‘오늘’을 ‘올해’로, ‘모든 말들’을 ‘모든 일들’로 바꾼다면, 2020년을 보내는 노랫말로 제법 잘 어울릴 것 같다. 벌써 12월이라는 사실에 눈물이 흐르지만, 웃지는 못해도 꾹 참아보자. 신문의 칼럼을 찾아 읽을 만큼은 어른이니까. 2020년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전례 없는 한 해였다. 연말 역시 이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일 것이다. 올 연말 모임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라는 정은경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말을 기억하며, 1인 송년회를 제안한다. 그 코너 중 하나로, 1년간 나를 웃기고 울린 콘텐츠로 ‘방구석 1열 시상식’을 열어보자. 준비물은 나의 기억과 이불, 그리고 귤이면 충분하다.시상식을 개최하려면 심사 기준이 필요한 법. 최근 일부라도 부정적 요소가 있으면 ‘빻았다...

    2020.12.04 16:31

  • [이진송의 아니 근데]그렇게 엄마가 된다, ‘산모의 세계’
    그렇게 엄마가 된다, ‘산모의 세계’

    “순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세상에 순산이 어딨어. 내 새끼는 죽다 살아났구먼.”드라마 <산후조리원> 1화, 출산 후 기진맥진한 오현진(엄지원)을 두고 순산했다고 말하는 시부모에게 오현진의 엄마(손숙)가 하는 말이다. 이 대사는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방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모성의 신비화와 절대화에 가려졌던 ‘산모의 세계’를 당사자의 시각에서 구성한 것이다. tvN에서 11월2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 드라마는 기본 소개부터 심상치 않다. “회사에서는 최연소 임원, 병원에서는 최고령 산모 현진이 재난 같은 출산과 조난급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거치며 조리원 동기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격정 출산 누아르.” 누아르?! 그러고 보니 출산은 아주 위험한 유혈사태잖아?! 그런데도 지금까지 숭고한 희생으로 두루뭉술하게 포장되거나 ‘누구나 하는 것’으로 폄하됐다. 당장 출산했던 친구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칼 댄 곳이 회음부라니...

    2020.11.20 16:23

  • [이진송의 아니 근데]우리 곁을 떠난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
    우리 곁을 떠난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

    미디어 비평을 하다 보면 K팝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K팝 아이돌을 좋아하다 보면 특별히 내적 친밀감이 쌓이는 이들이 있다. 아이돌을 공연 예술 노동자로 존중하고 대우할 줄 아는 사람과, 팬덤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 산전수전 공중전이 벌어지는 연예계에는 온갖 천태만상이 다 있지만 이런 캐릭터는 드물고도 귀하다. 어리고 거부권이 없는 가수나, 세간의 기준으로 ‘백날 따라다녀 봐야 걔가 너를 알아줄 리 없는’(알아주면 큰일 납니다) 사랑, 즉 ‘덕질’을 하는 팬은 쉽게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고(故) 박지선씨는 성실한 자료 조사와 누군가를 좋아해본 경험을 기반으로, 때로는 팬이 패배감을 느낄 정도로 ‘주접’을 잘 떨며, 침착하고 상냥하게 행사를 끌어가서 많은 팬덤의 마음을 훔쳤다. 아이돌만이 아니다. 배우(GV), 작가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진행력과 ‘덕질’ 경력을 뽐냈으니. 닿을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해본 이들에게 박지선은, 좀 더 특별하고 애틋한 존재일...

    2020.11.06 16:27

  • [이진송의 아니 근데]아이돌의 ‘당사자’로서의 말하기는 왜 이토록 힘들었나
    아이돌의 ‘당사자’로서의 말하기는 왜 이토록 힘들었나

    “내가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제국의 아이들’의 하민우가 ‘숨듣명’으로 화제가 된 데뷔곡 ‘마젤토브(Mazeltov)’를 처음 접했을 때의 반응이다. ‘티아라’의 효민은 ‘야야야’로 활동할 때, 무대에 올라가기 전 “괜찮아, 괜찮아” 하고 멤버들을 달랬다고 한다. <문명특급>의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문명특급>은 SBS 디지털뉴스랩의 웹예능 프로그램이다. 듣기에는 어쩐지 부끄러운, 그러나 중독성 있는 노래를 재조명한다는 취지로 원곡 가수나 작사가, 안무가를 만나는 콘텐츠인 숨듣명이 대표적이다.숨듣명에서 재조명되는 곡은 ‘이런 걸, 이렇게까지?’라는 반응을 유발한다. 생략된 부분을 채우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난해한’ 것을, 이렇게까지 ‘열심히(잘)’?” 구독자 88만명의 <문명특급>은 추석특집 TV 판으로 편성될 만큼 ‘핫’하며, 그만큼 인기 요인도 자주 회자된다. ...

    2020.10.23 15:57

  • [이진송의 아니 근데]‘공범’인 남성의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낙태죄를 폐지하라
    ‘공범’인 남성의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낙태죄를 폐지하라

    낙태죄를 수호하려는 한국 사회 학생들을 모아 순결서약식을 하던 20년 전 미션스쿨 강당이 떠오른다내가 다닌 중학교는 미션스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동학대다. 어두컴컴한 강당에 중학교 1, 2학년을 모아놓고 임신중단(낙태)이 얼마나 끔찍한지 설파하는 비디오를 틀었다. 조작된 것이 분명한 비디오 속 내용은 잔인하고 충격적이었다. 또 다른 이벤트는 순결 서약식이었다. 순결 사탕을 먹고, 사비를 내서 맞춘 순결반지를 끼고, ‘True love is waiting’ 같은 플래카드가 걸린 곳에서 전교생이 혼전순결을 외쳤다. 지금 보면 코미디지만 그 당시에는 정통 학원물이자 비극적인 드라마였다. 화장실에서 임신 테스트기가 발견되고 누군가는 친구들에게 다급하게 돈을 빌리러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찬 ‘똥볼’은 그딴 식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낙태죄를 수호하려는 한국 사회에서 그 음침한 미션스쿨 강당의 냄새가 난다.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

    2020.10.09 16:55

  • [이진송의 아니 근데]스핀오프 예능 ‘여은파’ 한혜진·박나래·화사의 ‘관계성’
    스핀오프 예능 ‘여은파’ 한혜진·박나래·화사의 ‘관계성’

    “그동안 참 외로운 싸움을 막…. 치열하게 하셨겠구나.”2019년 3월1일 방송된 <나 혼자 산다>에서 화사는, 모델 20주년을 돌아보는 한혜진의 인터뷰를 듣다가 눈물을 흘린다. 한혜진은 모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과, 악의적인 외모 평가로 인한 고충을 토로한 참이었다. 박나래의 눈시울이 덩달아 붉어진다. 남성 패널들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어리둥절한 가운데, 그 장면을 시청하던 나의 관자놀이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화사는 말한다. “그걸 20년을 하셨으니까. 저는 이제 갓 그냥 5~6년 정도 됐는데도 하시는 말 하나하나가 그냥 맘에 너무 와닿더라고요.” 박나래는 여자 연예인의 삶과 애환에 공감하며 멘트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2020년 6월, 화사는 ‘마리아’를 발표했다. 화사가 직접 작사에 참여한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 체했어, 하도.”화사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다시 그 순간의 감정이 떠올랐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

    2020.09.18 16:48

  • [이진송의 아니 근데]‘똥색 안색’ 기사 보란듯이 받아친 래퍼 이영지
    ‘똥색 안색’ 기사 보란듯이 받아친 래퍼 이영지

    8월28일,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위키트리’에 기사 한 편이 올라왔다. “저 이영지입니다. 똥색 안색 논란 기사 작성한 기자 만났습니다.” 기묘한 제목의 기사를 클릭하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래퍼 이영지씨가 직접 작성한 기사입니다.” 이영지는 엠넷의 힙합 서바이벌 <고등래퍼> 시즌 3의 우승자이다. 기사는 이어진다. “래퍼 이영지의 똥색 안색 기사를 작성한 최정윤 기자를 만났다.” 내 귀의 도청장치도 아니고, 내 키보드의 래퍼…? 이영지가 자신에 대해 무의미하고 한심한 기사를 쓴 기자를 찾아가 직접 해명 기사를 작성한 것이다. 한 달 전 해당 기자는 이영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달린 댓글 중 일부를 골라 ‘“똥 못 싼 거 아니냐” 말까지 나온 오늘자 이영지 안색’이라는 기사를 썼다. 이영지는 왜 이런 기사를 작성했냐고 묻고, 기자의 장 상태 역시 좋지 않다고 폭로했다. 인스타그램에 기사를 올리며 이영지는 덧붙였다. “제 똥 가...

    2020.09.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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