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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를 하다
  • [여성, 정치를 하다](20)분노에 기댄 보복이 아닌 ‘진실·치유·통합’…그는 약속을 지켰다 영상 컨텐츠
    (20)분노에 기댄 보복이 아닌 ‘진실·치유·통합’…그는 약속을 지켰다

    피노체트 정권의 고문 피해자 가족으로 자신도 비밀경찰에 피해망명 귀국 후 복지부·국방부 장관 거쳐 칠레 첫 여성 대통령으로 국가폭력 진실 규명·배상 “분노·원한의 개입 없이” 일관된 추진 유엔여성기구 총재 → 재선 → 유엔인권 대표 ‘용기있는 여정’ 계속“고문 후유증은 개인이 혼자서 감당하거나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추진 중입니다. 이 중대한 원칙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켜질 것입니다.”2006년,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세계 최초의 남녀 동수 내각 장관을 출범시켰던 미첼 바첼레트는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유와 관련해 분명한 소신을 밝혔다. 사실 그녀 자신도 국가폭력 생존자였다. “저는 분노와 원한이 제 삶을 통째로 잡아먹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습니다.” 칠레의 굴곡진 현대사는 미첼 바첼레트 가족사와도 밀착되어 있다.19...

    2021.02.02 06:00

  • [여성, 정치를 하다](19)“악법 폐지돼야 세상이 변해”…불평등에 반기 들며 민주주의 부르짖다 영상 컨텐츠
    (19)“악법 폐지돼야 세상이 변해”…불평등에 반기 들며 민주주의 부르짖다

    공공장소 흑인·백인 분리 법 두고 어릴 때부터 ‘부당하다’ 생각 가져 “나의 반평생 동안 미국 남부에는 모든 공공장소에서 흑인들을 백인들과 엄격하게 분리하는 법과 관습이 지배했다. 그 법은 백인들로 하여금 흑인들을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괜찮도록 허용했다. (…) 몽고메리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한 나의 행동이 남부의 분리주의 법률을 폐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로자 파크스는 1913년 미국 앨라배마주의 흑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섯 살 정도가 되었을 때”부터 “우리가 자유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남부에서는 “KKK가 흑인 거주 지역을 휩쓸고 다니며 교회를 불태우고, 사람들을 폭행하거나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몽고메리에서 백인과 흑인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분리되어야 했다. 전차를 함께 탈 수도, 공공 급수대를 같이 사용할 수도 없었다. 로자 파크스는 공부에 재능...

    2021.01.19 06:00

  • [여성, 정치를 하다](18)환경·평화 지키는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녹색 깃발을 들다 영상 컨텐츠
    (18)환경·평화 지키는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녹색 깃발을 들다

    빌리 브란트에 감화 받고 입당한 독일 사민당의 교조화에 실망 대안정치연대 ‘녹색당’ 창설 주도“좀 더 민주적인 방법으로 가는 수밖에,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는 기존 정당이나 의회 그리고 사법부를 반드시 해체시켜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고, 거기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자는 뜻도 정녕 아니다. (…) 비폭력과 창조적인 방법을 통해, 환경운동과 평화운동 그리고 타협을 용인하지 않는 정당반대당, 즉 녹색당 운동을 통해 생명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1972년, 25세의 페트라 켈리는 독일사회민주당(SPD)에 입당한다. 그녀는 소련 영향 아래에 있었던 공산주의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으며 동방정책을 펼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의 정치적 행보를 눈여겨보았다. 빌리 브란트는 1970년 12월7일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다. 그는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어렵게 살아남아 폴란드의 총리가 된...

    2021.01.05 06:00

  • [여성, 정치를 하다](17)기아·약탈·학살 없는 세상 위해…히틀러에 맞선 예술가이자 정치인 영상 컨텐츠
    (17)기아·약탈·학살 없는 세상 위해…히틀러에 맞선 예술가이자 정치인

    부자가 독점하는 예술에 반감 비생산적이고 무력한 예술 배격 연작 ‘직조공 봉기’ ‘농민전쟁’ 호평 독일 대표 사회적 예술가로 부상 1차 세계대전 참전한 아들 잃고 10년에 걸쳐 ‘전쟁’ 시리즈 완성 “1920년 1월5일. 이제는 태산 같은 사람들의 고통을 입 밖에 내야 한다. 그게 내가 맡은 임무인데도 그 일을 해내는 건 정말 쉽지 않다. 흔히들 일을 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이 포스터를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빈에서는 날마다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간다면, 과연 이 일이 내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전쟁에 관한 그림을 그릴 때, 전쟁이 계속해서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데도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단 말인가?” 케테 콜비츠는 1867년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비범했다. 케테 콜비츠의 외할아버지인 율리우...

    2020.12.22 06:00

  • [여성, 정치를 하다](16)성녀도 꼭두각시도 거부하며…‘공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부르짖다 영상 컨텐츠
    (16)성녀도 꼭두각시도 거부하며…‘공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부르짖다

    생후 19개월에 청각과 시각 잃고 특수교육 전문가 설리번과 함께 점자 읽는 법과 말하는 법을 익혀 셰익스피어·마르크스 책들 섭렵 장애가 존재의 본질이 아님을 확인 “내 활동이 사회봉사나 시각장애에 국한될 때, 그들은 나를 현대의 기적이라고 과장되게 추켜세웠다. 그러나 내가 정치적인 현안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어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부도덕한 사람들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라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호의를 구걸하고 싶지 않다. 나는 공정함을 원할 따름이다.”1937년 7월, 57세의 헬렌 켈러는 식민지 조선을 방문했다. 경성, 평양, 대구에서 열린 강연회에 수천 명의 청중이 몰려들었다. 강연회 입장권은 연일 매진되었다. 조선에 도착하기 전 일본에서도 헬렌 켈러는 크게 환영받았다. 1937년 7월7일 중일전쟁이 일어났고, 아시아는 전운에 뒤덮였다. 그런 와중에도 헬렌 켈러의...

    2020.12.08 06:00

  • [여성, 정치를 하다](15)‘투옥 불사’ 유리창 깨며 여성 참정권 투쟁…영국·조선 여성을 깨우다 영상 컨텐츠
    (15)‘투옥 불사’ 유리창 깨며 여성 참정권 투쟁…영국·조선 여성을 깨우다

    여성사회정치연합 비폭력 운동 법안 도입 미적대는 정치에 분노“일어나라 여성이여” 실력 행사 “내가 런던 체류할 동안, 영어를 배우기 위하여 여선생 하나를 정했다. (…) 팽크허스트 여자 참정권 운동자 연맹회 회원이요, 당시 시위운동 때 간부였었다. (…)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여자는 좋은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절조(節調)하여 은행에 저금을 하라. 이는 여자의 권리를 찾는 제1조목이 된다.’ 나는 이 말이 늘 잊히지 아니하고 영국 여자들의 선각(先覺)에 존경 않을 수 없다.”(나혜석, ‘베를린에서 런던까지(伯林에서 倫敦까지)’, 삼천리, 1933년 9월)나혜석은 1928년 7월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해 8월15일까지 런던에 체류했다. 그녀가 런던에서 ‘팽크허스트 여자 참정권 운동자 연맹회’의 일원을 만나 “내가 조선의 여권운동자 시조가 될지 압니까”(‘영미 부인 참정권 운동자 회견기’, 삼천리, 1936년 1월)라고...

    2020.11.24 06:00

  • [여성, 정치를 하다](14) 스웨덴 소상공인들 삶을 위해···40년 지지 정당을 과감하게 비판하다 영상 컨텐츠
    (14) 스웨덴 소상공인들 삶을 위해···40년 지지 정당을 과감하게 비판하다

    110편의 작품 발표, 90개국에서 번역되었고 1억명 이상의 독자를 만난 작가 복잡한 세법과 자영업자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과세 정책을 비판하며 “세금 내기 위해 돈을 훔쳐야 하나”…관료화된 집권 사회민주당에 반대 깃발 그에게 문학과 정치는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되는 일”“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나는 사회민주당원일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현 정권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않습니다. 당 이름을 사회관료당으로 바꾸는 게 나을 것 같군요.”1945년,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 출간되자 전 세계는 놀랐다. 씩씩하고 용감한 새로운 어린이가 탄생하자 독자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말괄량이 삐삐”가 등장하기 전까지 천방지축 좌충우돌의 여자 어린이 주인공을 아동문학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38세에 동화작가로 데뷔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첫 작품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지만, 벼락 성공이 오히려 작가에...

    2020.11.10 06:00

  • [여성, 정치를 하다](13)‘성실’로 경제 살렸지만, 독선의 파국도 따라왔다 영상 컨텐츠
    (13)‘성실’로 경제 살렸지만, 독선의 파국도 따라왔다

    시 암송 경연대회에서 입상 교장은 “너는 참 운이 좋구나” 발끈한 아홉살의 마거릿은“저는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 받을 만한 자격을 갖췄기에 수상자가 됐습니다”라고 대답“내가 처음으로 가진 직업은 플라스틱을 만드는 공장의 개발과에서 일한 것이다. 소규모 실험 단계를 거쳐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들어낸 다음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어디에 팔 것인지 생각하는 일이었다. 가끔 노동당 일원인 친구들에게 ‘난 너희보다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더 많아’라고 말하며 장난을 치고는 했다.”마거릿 대처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구두 제조공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13세에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고 일했다. 잡화상 점원으로 앞만 보며 생활한 소년은 이내 식료품점의 주인이 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근면한 삶에 보상이 따른다는 종교적 신념도 깊었다. 감리교 교회의 평신도 설교자로 명성이 ...

    2020.10.27 06:00

  • [여성, 정치를 하다](12)혁명이 그녀를 배신했을 때, 그녀의 혁명은 시작됐다 영상 컨텐츠
    (12)혁명이 그녀를 배신했을 때, 그녀의 혁명은 시작됐다

    “우리는 혁명이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 혁명의 성공과 함께 나 역시 승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 나를 휘감았던 그 뿌듯한 느낌은 나중에 나를 쓴웃음 짓게 만들었다. 한 달도 못 되어 내가 나 자신의 죽음에 기꺼이 열정적으로 동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이었고 혁명의 승리는 나에게 패배를 요구했다.”1970년 3월, 시린 에바디는 “스물세 살의 나이에” 판사가 되었다. “당시 이란의 법체계에서는 판사가 되는 데 최저 나이 제한 같은 규정이 없었다.” “(테헤란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시점에서 이미 2년간의 실습을 마친”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 시린 에바디는 “아침마다 정장을 하고 법무부로 출근할 때면 자부심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하지만, 시린 에바디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이란의) 정치적 공기는 격해져 갔다”. 1964년에는 이슬람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정부의 급격한 서구화 정책을 비판하는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이라크...

    2020.10.13 06:00

  • [여성, 정치를 하다](11)그리스 독재정권에 맞서…총 대신 예술로 민주주의를 지키다 영상 컨텐츠
    (11)그리스 독재정권에 맞서…총 대신 예술로 민주주의를 지키다

    “이 세상에서 내가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그리스, 그런데도 그리스의 바다, 그리스의 언덕, 그리스의 태양 그리고 그리스의 산등성이에 부딪혀 반사하는 그 찬란한 햇살을 나는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에 돌아갈 수 없는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쓰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나에 관한 일,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일이다. 그리스와 그 정치 이야기, 외국의 지배라든가 외국의 지배 세력에 이용된 비열한 정치가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다가 수없이 좌절한 우리들 그리스 국민의 이야기를 쓰려는 것이다.”1967년 4월, 그리스의 대령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1960년, 40세에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인 배우로 이름을 떨친 멜리나 메르쿠리는 196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군대가 그리스를 점령해 버렸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듣고 현기증이 났다. 약 1년 전, 멜리나...

    2020.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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