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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청년은 효자가 아니라 ‘시민’…모두가 ‘돌봄자’가 되는 세상 꿈꾼다
이길보라(영화감독, 작가) 영 케어러는 만성적인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인 문제나 알코올·약물 의존을 가진 가족 등을 돌보고 있는 청년을 일컫는 말이다. 가족돌봄청년 혹은 돌봄청년이라고도 부른다. 영 케어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에서 진행된 ‘케어러를 생각한다’라는 온라인 포럼을 보고 나서였다. 코다와 농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왔던 마루야마 마사키 작가와 코다, 소다(SODA·Sibling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의 형제자매를 뜻함), 코다 자녀를 키우는 농인, 영 케어러가 참가자로 등장했다. 각자가 수행했던 돌봄의 경험을 돌봄제공자와 돌봄수혜자의 입장에서 논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주체가 당사자로서의 경험을 나눈다고만 생각했다. 논의는 보편적 돌봄으로 이어졌다. 돌봄 사각지대에 처해 있는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경유하여 돌봄의 권리에 대해 말했다. 난생처음으로 코다와 돌봄이라는 단어를 이어보았다.... -
누가 그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고 ‘불법’이란 딱지를 붙였나
다가오는 6월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화성외국인보호소인권침해대책위원회·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InternationalWater31) 주최로 6월20일 오후 7시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이화여대)에서 영화 <도쿄의 쿠르드족> 상영 및 토크 행사가 열린다.1999년 한국 출생 나이지리아인그의 조국·모국·고국은 어디인가3개 개념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로불법 영역의 ‘이해 못할 존재’가 돼“어린 나이에 많은 걸 알 수밖에 없어요. 특히 엄마가 한국말을 못하니까 각종 서류 작업, 행정, 은행 업무, 집 계약 같은 일은 누나랑 제가 도맡았어요. 엄마가 무슨 일을 하든 전화가 와서 누나와 제가 통역을 하고. 어른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다 들을 수밖에 없었죠. 생계를 꾸리는 방법 등 모든 걸 알아야 했어요. 하기 싫어도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많았어요. 안 하면 살 수 없기 때문에.”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책 <... -
(18) 자연을 사랑한 주인공과 기록한 감독을 따라…관객도 자연에 매료되다
해양생물학자로서 세이블섬을 오랫동안 기록해온 조이 루커스섬에 스며들어간 그의 시간을 좇는 영화 ‘고독의 지리학’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일은 수집이자 기록, 아카이빙이며…대상·감독·관객이 관계를 맺으며 여정을 함께하는 수행적 행위동시에 작가의 사유와 성찰을 확장해내는 예술적 과정이기도 하다지리학은 지표상에서 일어나는 자연 및 인문 현상을 지역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다. 여기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에서 156㎞ 떨어진 외딴 섬인 세이블섬에서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부분 홀로 지내며 섬에 대한 연구를 이어온 환경보호 활동가인 조이 루커스가 있다. 그는 1970년대 회색바다표범 조사 연구팀의 식사를 준비하는 자원 활동가로 이 섬에 처음 방문한다. 미술학도였던 조이 루커스는 보트나 전세기로만 접근이 가능한 자연 그 자체인 환경에 매료되어 섬의 유일한 주민이 되기로 한다. 영화는 해양생물학자로서 세이블섬을 오랫동안 기록해온 조이 루커스의 ... -
(17) 장애는 왜 불쌍하고 안타까운 것일까…그 시선부터 철폐되어야 한다
이준석 대표·박경석 대표의 ‘썰전’이동권 시위를 둘러싼 혐오 여전20년 전 영화 ‘버스를 타자’ 데자뷔수어통역·자막도 제공하지 않아과연 동등한 출발점을 만들어갈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의문이다정부·시설·장애인 가족·국민들침묵의 카르텔 탓에 방치된 인권하지만, 투쟁 이어온 이들을 보면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장애인의날이 싫었다. 장애 부모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날에만 특별하고 거창하게 호명되는 게 싫었다. 농인 부모는 종종 표창장을 받으러 단상에 올랐다. “귀하는 장애를 극복하고 어려운 역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므로 이 상을 드립니다”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상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저 농(deafness)과 함께 살아갈 뿐인데 왜 극복했다고 말하는지, 어째서 장애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것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학교에서는 장애인의날이라고 ‘장애 체험’을 했다. 눈을 가려 앞이 보이지 않거나 한쪽 팔이나 ... -
(16) 더 나은 세상으로…체념하지 않고 나아가는 힘 ‘가족’
“농인이라서 방법 없다”며 부당에 항의 않던 나의 부모 비로소 알게 된 불평등 사회특수학교 짓기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 농인이던 부모를 통해 발달장애 자녀를 통해 세상을 보고 사회를 말하고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건 좀 괜찮은 일이다영화를 찍겠다고 엄마, 아빠를 인터뷰했을 때다. 학교생활은 어땠냐고 묻자 엄마가 말했다.“매일같이 벽돌 날랐어. 학교에서 배우는 거 하나도 없었어. 기숙사에 살았는데 새벽같이 일어나 건축 자재를 나르며 학교 건물을 직접 지어야 했어.”아빠는 맞장구를 쳤다.“맞아.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매일 새벽에 강제노역 했어. 나는 집에서 통학을 했는데 오후에도 노역을 하곤 했어.”엄마는 힘들고 버거워 제발 통학하게 해달라며 부모에게 졸랐다고 회고했다. 나의 부모, 이상국과 길경희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청각장애 및 지적장애학생들을 ... -
(15)서로의 글을 읽고 성장을 지켜보며 우린 용기를 길렀다, 그 방에서 함께
질투·시기·부러움·감탄·놀라움부터 억울함과 시샘, 찰나의 기쁨까지…내 이야기를 세상에 더 잘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단단히 품고서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워크숍 수업에서였다. 기획 단계였는데 정말이지 잘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다루어보고 싶었던 소재를 중심으로 기획안을 썼다. 어떤 피드백을 들을까 긴장되어 괜히 다리를 들썩거렸다. 함께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겠지만 잘 와닿지는 않는다며 고개를 갸우뚱댔다.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흥미롭고 중요한 이야기인데 어째서 이해할 수 없다는 거지. 누군가는 분명 긍정적인 피드백을 했던 것도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강사도 보완할 부분을 콕 짚어 말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눈물이 쏟아졌다. 잘해내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속상함에 감정이 북받쳤다.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는 법, 글쓰기나는 글을 쓰는 아이였다. 글을 쓰다보면... -
(14)재일조선인 여성들의 빛바랜 가족사진, 굴곡진 ‘소수자의 역사’가 되다
“혼자 쓰고 읽는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수업, 보라글방에서 종종 등장하는 피드백 중 하나다. 꾸준히 글을 쓰는 훈련을 하며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공간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제시된 글감에 맞춰 글을 쓴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를 어떻게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완성된 글을 제출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글을 사려 깊게 읽고 피드백을 하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글과 글을 쓴 작가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며 합평한다. 동료들의 시선을 경유하여 다른 시각으로 읽어내기를 시도한다. 이를 통해 ‘나’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기를 연습한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온전히 전달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눈 밝은 독자에 의해 그 의미가 새롭게 발견되기도 한다. 퇴고의 길이 열린다. 동료들은 첫 번째 독자가 되어 글과 세상이 만... -
(13)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하다
미나마타병 손배소송 다룬 다큐 ‘미나마타 만다라’ 장애인을 공해의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았지만 남들이 웃는 장면에서 쉽게 웃을 수 없던 이유는 병이 없었더라면 가능했을 사랑을 떠올리게 해서정말 지겨울 정도로 듣는 질문이 하나 있다.“농인의 자녀로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이는 종종 눈빛과 분위기로 형성된다. 안 봐도 뻔하다는 듯 탄식이 쏟아진다. 부모님이 말 못하는 벙어리구나, 정말이지 안타깝네, 같은 말들이 공중에 떠다닌다. 장애인과 그의 가정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다.이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눈을 크게 뜨고 목에 힘을 주어 부모님은 농인이고 나는 그의 자녀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수화언어를 배우고 세상으로부터는 음성언어를 배워 농사회와 청사회를 잇는 매개자로 자랄 수 있었다며 코다로서의 긍정적 경험을 말하면 사람들은 묻... -
(12) 모어 조선어와 모국어인 일본어, 두 언어를 쓸 수밖에 없는 소수자
재일 조선인 3세와 코다의 만남입술 대신 수어로 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농인 부모의 세상을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농인 부모의 자녀)의 시선으로 다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일본에서 상영했을 때의 일이다. 자신을 재일 조선인이라 소개한 관객이 말했다.“이 영화는 정확하게 제 삶의 경험과도 만나요.”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를 오가며 자란 나의 경험이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거주하게 된 이들과 어떻게 같다는 건가.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건 그뿐이 아니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 역시 영화를 보며 크게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저는 재일 조선인 3세로 태어났어요. 자라고 보니 나라는 존재가 특별영주 자격으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인 거예요. 학교에서는 조선어를 썼지만 바깥에서는 일본어를 썼죠.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 -
(11) ‘청각장애인’이 아닌 그저 ‘목소리가 다른 사람’이 아닐까
눈앞에서 접촉 사고가 났다. 연말연시라 기분 낸다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엄마는 주차 공간이 좁으니 먼저 내리라고 수어로 말했다. 나와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챙겼다. 차에서 내려 문을 닫았다. 쾅, 하고 차가 움직였다. 엄마는 진동을 통해 몸으로 신호를 감지했다. 아차, 케이크를 들고 내리지 않은 걸 깨달았다. 황급히 문을 열었다. 상자를 향해 손을 뻗는데 갑자기 차가 움직였다. 동생과 나는 어어, 하고 동시에 소리쳤다. 엄마는 후방을 응시하며 차를 후진했다. 나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팔을 머리 위로 크게 움직였다. 여기 보라고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닌 팔이나 몸을 크고 빠르게 움직여 신호를 주는 시각적 소통 방식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시선은 차 뒤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차 문이 열려 있는데 모르진 않을 거란 생각에 곧바로 달려가 차체를 두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대로 후진했다. 옆에 주차된 차량에 열린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