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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 사이
  • [책과 책 사이]“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하마스의 무도한 선제공격과 이스라엘의 잔인한 반격에서 떠오른 건 <폭격>(김태우, 창비)에 인용된 에드거 스노의 말이다. “공습은 급강하 폭격기를 피하려고 지하실에 처박히고 들판에 얼굴을 파묻어 본 적이 없거나, 혹은 자기 아들의 떨어진 머리를 찾고 있는 어머니를 본 적이 없거나, 불에 타버린 학생들의 고약한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누구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는 완전한 개인적인 증오를 일으킨다.”자유와 평화의 수호신 미국 공군의 폭격의 실체는? 낸 김태우 서울대 평화연구소 교수 인터뷰김태우 서울대 평화연구소 HK연구교수가 198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이야기다. 학교에서...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307262111161가짜뉴스와 허위 선전 속에서 진실의 가닥을 잡긴 쉽지 않지만, 분명한 건 주고받는 미사일 공격 와중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간다는 점이다. 폭격은 민...

    2023.10.20 13:37

  • 미셸 오바마, 워킹맘 그리고 노벨 경제학상

    성별 임금 차별을 연구한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된 책이 떠올랐다.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남편 버락 오바마가 변호사로, 정치인으로 탄탄대로를 걷는 동안 미셸은 ‘일’과 ‘가정’이라는 두 개의 공을 돌려야 했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로스쿨이라는 화려한 스펙을 가진 미셸은 이모에게 울면서 로펌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전화한다. 미국 중부에 사는 이모는 비행기를 타고 동부로 날아와 아이들을 봐준다. 미셸이 경력단절의 첫번째 위기를 넘긴 순간이다. 두번째 위기 앞에선 친정과 합가를 한다. ‘커리어우먼과 좋은 엄마’ 두 가지 타이틀을 다 얻고자 ‘친정엄마’를 희생시킨 죄책감에 시달릴 때 만난 이 책은 ‘미셸도 이렇게 사는데? 별수 있나’라는 묘한 위로를 줬다.클로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오랜 시계열 데이터로 보면 남성은 장시간 고강도로 일하고 여성은 육아를 이유로 낮은 임금의 유연한 일을 하면서 ...

    2023.10.13 20:21

  • [책과 책 사이]지금 세상에서 정작 중요한 일들
    지금 세상에서 정작 중요한 일들

    20대 대학생 예은이는 카드빚에 시달린다. 운동화 밑창을 순간접착제로 붙여야 할 정도로 허덕인다. 코로나19 때문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피크타임, 즉 두 시간밖에 쓸 수 없다는 사장 말에 예은이는 따진다. “우리는 순간접착제 같은 거네요? 카페가 망하지 않게 최소한만 일을 시켜서 임시로 지탱하는 거잖아요.” 예은이는 가난한 대학생이 매일 사 먹느라 망할 일 없는 삼각김밥 공장에 들어간다. 폐기 대상인 불량 판정 김밥을 챙겨다 먹다 반장에게 타박을 듣는다.김의경의 단편 ‘순간접착제’는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의 소설집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문학동네)에 실렸다. 정해진 공간 없이 자주 자리를 옮겨가며 일하는 학습지 교사, 배달 일로 근근이 생활하는 스무 살 청년 등이 등장한다.지난달 노동을 다룬 소설들이 여럿 나왔다. 김형규의 첫 소설집 <모든 것의 이야기>(나비클럽) 중 ‘코로나시대의 사랑’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파업 소송을 다룬다....

    2023.10.06 11:13

  • [책과 책 사이]시민의 목소리를 줄이려는 정부에게
    시민의 목소리를 줄이려는 정부에게

    서초동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교사들의 ‘교권 회복’을 위한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공교육 멈춤의 날’을 정하고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다. 교사와 집회라는 조합은 낯설다. 학교에서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교사들은 오와 열을 정확히 맞춰 집회를 열었며, 말끔한 뒷정리까지 완벽했다. 각 지역에서 올라온 교사들이 지역 특색을 반영해 만든 기발한 깃발들도 눈길을 끌었다. 집회를 하려면 이들처럼 해야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사들은 자신들의 ‘집회 문화’를 선보였다, 교사들이 처한 현실은 암담했지만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권리를 외치는 이들이 보여준 ‘집회 문화’는 고유했으며, 이들의 유대감을 더해줬다.<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서해문집)은 시위문화를 통해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시위문화란 “시위대가 상징적 행위, 곧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집단적인 의사를 표현하고 실천하며 그 과정에서...

    2023.09.22 14:25

  • [책과 책 사이]니체와 파시즘
    니체와 파시즘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는 유명 철학 개념 중 하나다. 니체 하면 떠올리는 개념이다. 여느 고전이 그렇듯, 정작 개념을 딴 제목의 책을 읽은 사람은 드물다. 책이나 개념엔 오해와 억측까지 곁들여졌다. 나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누이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가 파시즘에 이 책을 헌정했다는 게 그중 하나다.최근 <권력에의 의지>를 번역해낸 니체 전문가 이진우(포스텍 명예교수)는 ‘역자 서언’과 ‘후기’에서 오해와 정치적 오용 문제를 짚는다.우선 니체와 히틀러가 같은 시기를 산 걸로 아는데, 니체는 히틀러가 태어난 다음해인 1900년 죽었다. 1934년 히틀러가 니체 흉상을 바라보는 사진이 니체 사상과 파시즘이 엮인 듯한 인상을 줬다. 나치 사상가 알프레드 보이믈러가 <권력에의 의지>에 “니체의 철학적 최고작”이라 찬사를 보낸 일도 ‘정치적 오용’과 이어진다. 무솔리니가 “위험하게 살라”는 니체의 말을 파시스트 슬로건으로 만든 것도 한 예다. “니체의 글...

    2023.09.15 11:12

  • [책과 책 사이]멜라닌의 물리학과 세계사의 재구성, 그리고 아프리카
    멜라닌의 물리학과 세계사의 재구성, 그리고 아프리카

    지난주에 소개한 입자물리학자 찬다 프레스코드와인스타인의 <나의 사랑스럽고 불평등한 코스모스>(휴머니스트)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멜라닌에 대한 이야기가 신선했다. 멜라닌은 피부를 검게 만들기에 한국인들도 멜라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선크림, 미백 화장품 등이 인기 있는 이유다. 하지만 저자가 멜라닌의 물리학적 특성에 관해 설명하자 멜라닌이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였다. 멜라닌은 빛을 반사한다. 어둡게 보이는 피부는 그만큼 많은 빛을 반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피부색은 멜라닌이 반사한 색이다. 흑인들 중 피부색이 짙다 못해 푸른빛을 띠는 경우도 있는데, 멜라닌 색소가 푸른빛을 반사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해하자 눈에 보이는 피부색이 무척 다채롭게 느껴졌다. 멜라닌을 인종주의에서 놓아주자, 새로운 시야가 열린 것이다.[책과 삶]“오펜하이머처럼 될까 두려웠다”···인종차별·성폭력으로 얼룩진 ‘진짜 과학’나의 사랑스럽고 불평등한 코스모...

    2023.09.08 15:27

  • [책과 책 사이]창조성 잃고 돈벌이화된 ‘K○○’ 작명 강박
    창조성 잃고 돈벌이화된 ‘K○○’ 작명 강박

    김이듬 시집 <히스테리아>의 ‘사과 없어요’는 “아 어쩐다, 다른 게 나왔으니, 주문한 음식보다 비싼 게 나왔으니, 아 어쩐다, 짜장면 시켰는데 삼선짜장면이 나왔으니”로 시작한다. ‘아 어쩐다’를 어떻게 영어로 옮겨야 할까. <히스테리아>를 공동 번역한 제이크 레빈, 서소은, 최혜지는 2018년 “What to do?”라고 옮겼다. 2019년에 다시 “Shit”으로 번역했다.정은귀는 “순전한 질문 방식에다 난처함의 느낌이 살지 않는 ‘What to do?’보다 맥락에 따라서 난처함 또는 낭패감 또는 분노를 드러내는 ‘Shit’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은귀는 <K문학의 탄생>(민음사) 중 ‘시 번역과 창조성’에 이런 평가를 적었다.번역가가 말하는 번역 이야기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등을 번역한 제이미 장은 제이미 장은 “엄마가 되었다는 데 대한 벌로 김지영은 경력을 버려야 했다”며 자문한다. “번역...

    2023.09.01 15:11

  • [책과 책 사이] 교도소가 ‘새로운 정신병원’이 되지 않기 위해서
    교도소가 ‘새로운 정신병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잇따르는 ‘무차별 범죄’ 속에 시민들의 공포와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가해자가 정신질환자로 드러나면서 정부는 인권 침해 논란 속에 사법 입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 국민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제대로 된 ‘정신건강 대책’은 단순히 가두고 약물을 투여하는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범죄자가 된 정신질환자들은 대부분 치료를 중단한 채 방치된 경우가 많았다. “정신질환자가 제일 많은 곳이 교도소”란 말도 나온다. 농담이 아니다. 이얼 프레스의 <더티 워크>(한겨레출판)엔 교도소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교도관들이 나온다. 사회가 공공 정신질환 치료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결과 “교도소는 미국의 새로운 정신병원”이 됐다고 말한다. 미국 교도소 수용자 가운데 정신질환자가 40%에 달한다.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장을 지낸 토머스 인셀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책읽는수요일)에서 암, 심장병, 뇌졸중 사망과 장애는 감소했지만 뇌과...

    2023.08.25 13:52

  • [책과 책 사이]‘나’를 ‘너희’를 ‘우리’로 단일화하려는 것들에게
    ‘나’를 ‘너희’를 ‘우리’로 단일화하려는 것들에게

    줄리아노 다 엠플리의 <크렘린의 마법사>(책세상)엔 러시아 작가 예브게니 자먀친(1884~1937)의 소설 <우리들>(열린책들, 비꽃)이 나온다. 푸틴의 전체주의 정권을 비판하려 끌어들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영향을 준 소설이다. 1924년 미국에서 영역본으로 먼저 나왔다. 오웰은 ‘제대로 된’ <우리들> 영역본도 내려 했다.고전이건 현대 작품이건 디스토피아 소설은 작가의 살던 시기 체제를 비판하고 풍자한다. 즉 이 소설이 겨냥한 것은 스탈린과 소비에트의 전체주의다. 자먀친은 한 번은 혁명에 참여한 볼셰비키로서, 또 한 번은 스탈린 체제를 비판해 볼셰비키에 의해 투옥된 작가다.배경은 대략 러시아 혁명 1000년 뒤다. 사람들은 200년간 지속된 전쟁 끝에 들어선 ‘단일 제국’ 치하에 산다. 우주선을 만들 정도로 과학이 발달한 곳에서 사람들은 번호로 불린다....

    2023.08.18 14:14

  • [책과 책 사이] 동은아, 복수로는 ‘학폭’ 해결 못해···대신 네 옆에 서줄게
    동은아, 복수로는 ‘학폭’ 해결 못해···대신 네 옆에 서줄게

    지금 ‘학교’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장소가 되었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학교폭력 피해자의 사적 복수를 다뤄 인기를 끌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져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또 다른 충격도 있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은 학교 시스템이 학생뿐 아니라 교사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두 사건의 결은 다르지만 학교폭력과 관련한 부모 민원이 문제 원인으로 지목됐다.<학교폭력, 그 이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사유와공감)는 국내 1호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인 노윤호가 쓴 책이다. ‘학교폭력’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부터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되고 오늘날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뤄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치유에 초점을 맞춘다.<더 글로리> 주인공 문동은은 치밀한 복수로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느끼게 했지만, 저자는 사적 복수가 결코 해결책...

    2023.08.1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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