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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 사이
  • [책과 책 사이]아메리카 원주민 문학을 관통하는 인종주의 비극
    아메리카 원주민 문학을 관통하는 인종주의 비극

    브랜던 홉슨의 <에코타 가족>(이윤정 옮김, 혜움이음)은 영적 세계와 신화에 관한 체로키 구전을 녹였다는 점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문학의 전통을 잇는다. 홉슨은 체로키족 후손이다. 이 소설은 차별과 인종주의를 다루며 지금 아메리카 원주민의 현실을 반영한다. 체로키족 연례국경일 행사 때 나온 총소리에 경찰이 무고한 원주민 소년 레이-레이 에코타를 “본능적으로” 쏜 것이다. ‘인종주의’로 빚어진 일이었다. 홉슨은 이 경찰 총격과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역사, 원주민 가족의 비극과 고통, 애도와 치유 이야기를 이어낸다. 이 소설은 2021년 ‘타임’지의 ‘꼭 읽어야 하는 100권의 소설’에 꼽혔다.같은 시기 번역돼 나온 <정육점 주인들의 노래클럽>(정연희 옮김, 문학동네)은 미국 현대문학 대표 작가로 꼽히는 루이스 어드리크의 작품이다. 원주민 대학살 같은 이야기를 녹였지만, 미국 노스다코타주 평원에 정육점을 차린 제1차 세계대전 독일 저격수인 피델리스 이야기다. ...

    2023.08.04 17:23

  • [책과 책 사이]‘노력’도 타고나는 것···배신당하지 않으려면
    ‘노력’도 타고나는 것···배신당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잘하는 것은 노력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놀랍게도 결과는 4퍼센트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노력은 거의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최선의 노력으로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그냥 우리의 믿음일 뿐이다.”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오늘도 잠을 줄여 공부하고 자기 계발할 것을 요구받는 학생들과 취업준비생들, 직장인들 모두를 허탈하게 만드는 문장이다.김영훈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노력의 배신>(21세기북스)에서 노력 또한 타고나는 자기조절 능력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1만시간의 법칙’이 강조한 것은 오히려 환경과 기회였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1만시간이라는 것은 엄청난 시간”이라며 “스스로의 힘만으로 그 정도의 연습을 해낼 수는 없다. 격려해주고 지원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곤궁해 아르바이트하느라 충분한 연습 시간을 낼 수 없으면 안 되므로...

    2023.07.28 17:21

  • [책과 책 사이]‘관제 시인’의 탄생···박강수의 ‘사랑’
    ‘관제 시인’의 탄생···박강수의 ‘사랑’

    <하늘 아래 딱 한 송이>(나무생각). 노영민 시집 제목이다. 2015년 11월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일 때 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도 맡을 때다. 산자위 산하 공기업에 팔았다. 의원실에 카드단말기를 설치하고 영수증도 발행했다. 당 윤리심판원은 당원자격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의회 유력자의 권력 사유화 행위엔 의원·위원장이 지녀야 할 염치도, 의회가 ‘공공의 것’이란 인식도 없었다. ‘세월의 용서’를 받았는지, 나중 청와대 비서실장이 됐다. 이 시집은 교보문고엔 검색 결과가 없다. 평산책방에선 뜬다.<하늘 아래 딱 한 송이>를 떠올린 건 마포구청장 박강수의 시 때문이다. 2014년 <그대 머무르는 곳에>(시사포커스)를 냈다. 시사포커스는 박강수가 대표로 일하던 매체다. 시집 중 ‘사랑’이라는 시가 상암 하늘공원 ‘시인의 거리’에 등장했다. 이 시를 새긴 어른 키 높이 표지판을 들머리에 세웠다. ‘시인의 거리 1...

    2023.07.21 15:14

  • [책과 책 사이] 그 많던 조현병 환자는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조현병 환자는 어디로 갔을까

    박완서의 소설 제목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정신장애인 버전으로 바꿔보자. “그 많던 조현병 환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조현병은 성별·국가·인종과 관계없이 100명당 1명꼴로 발병하는 정신질환이다. 5000만 한국 인구 중에 약 50만명의 조현병 당사자가 투병 중이란 얘기다. 하지만 일상 속에선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다. 폐쇄병동이나 시설 등에 ‘가족의 비밀’로 꽁꽁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가족이 “죽을힘을 다해 숨겨온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 나왔다. <나의 조현병 삼촌>(아몬드)의 저자 이하늬는 65세 삼촌과 40년간 함께해온 조현병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기로 한다. 삼촌의 실질적 보호자였던 어머니와 가족이 “평생 쌓아올린 거짓말”로부터 해방되고 싶었고, 삼촌의 일생이 “평생 정신병원만 들락날락하다가 불쌍하게 죽었다”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조현병 당사자의 이야기라고 암울하고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삼...

    2023.07.14 12:37

  • [책과 책 사이]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

    김연수의 새 단편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레제)와 박상영 에세이집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인플루엔셜)이 같은 시기 나왔다. 내용을 들춰보니 두 작품 구상이나 집필 공간이 겹쳤다. 두 작가는 2021년 하반기 제주 가파도 레지던시에 함께 머물렀다. 둘 다 상주 작가로 초대받았다.박상영은 레지던시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많이 썼다. 김연수와의 인연도 적었다. 김연수는 박상영의 첫 인터뷰이였다. 대학교지 기자를 할 때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낸 김연수를 만났다. 성심성의껏 질문에 답한 김연수에게 큰 감명을 받은 듯했다. 박상영은 이 인터뷰를 두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른’이 나의 말을 경청해준 경험”이라며 “그 경험으로 인해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더욱 확고히 굳히게 되었다”고 했다. 김연수가 밥도 해주고, 설거지도 해준 이야기도 썼다.<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레지던시에 머물 때 제주 여러 서점에서 진행한 낭독회...

    2023.07.07 12:12

  • [책과 책 사이]이집트 파라오도 ‘식집사’였다···집안 식물이 다시 보인다
    이집트 파라오도 ‘식집사’였다···집안 식물이 다시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삭막한 격리 생활 속에서 새 잎을 올리고 자라나는 ‘작은 자연’의 모습에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 ‘식집사’라는 말이 이제 낯설지 않다. ‘식테크’라는 말도 나타났다. 고가의 ‘희귀식물’을 비싼 값에 사들여 ‘한몫’하고자 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몬스테라 알보로 시작하는 식테크의 모든 것>(시월)이란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하지만 식물은 자라고 퍼져나간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식테크 거품이 파스스 꺼지면서 한때 금값이었던 식물값이 폭락하기도 했다.실내에서 키우는 식물들은 대부분 열대 지방에 사는 야생식물이다. 정글에서 키가 크고 빽빽한 나무 아래에서 적은 빛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열대의 관엽식물들이 주로 실내에서 부족한 빛으로도 키우기 적합한 식물로 여겨진다. <실내식물의 문화사>(교유서가)는 집안, 사무실 등 실내공간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주며 ‘작은 초록...

    2023.06.30 16:52

  • [책과책사이]읽기 쉬운 ‘일리아스’ 대 호메로스 표현대로 ‘일리아스’
    읽기 쉬운 ‘일리아스’ 대 호메로스 표현대로 ‘일리아스’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첫 원전 번역이 나온 건 1982년(종로서적)이다. ‘독보적 원전 번역자’ 평을 들었던 천병희(1939~2022, 단국대 명예교수)가 옮겼다. 천병희 번역서 중 가장 많이 팔렸다. 5만 권 넘게 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숲 출판사에서 출간한다.최근 ‘40년 만의 새 번역’이라는 홍보 문구를 달고 아카넷 출판사에서 나왔다. 스위스 바젤대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준석(한국방송통신대 교수)이 옮겼다.이태수(서울대 명예교수)가 추천의 말에서 천병희 역과 이준석 역을 간단한 맛보기로 비교한다. ‘네 이빨 울타리를 빠져나온 그 말은 대체 무엇이냐’ ‘날개 돋친 말을 건네었다’(이준석 역)와 ‘너는 무슨 말을 그리 함부로 하느냐’ ‘물 흐르는 듯 거침없이 말했다’(천병희 역)이다.천병희 번역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천병희도 생전 “사람들이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또 한두 페이지만 읽고 책을 손에서 놓지...

    2023.06.23 10:33

  • [책과 책 사이]유대인 여성 레지스탕스, 반란을 일으킨 흑인 여성 노예…기억하는 것도 ‘투쟁’이다
    유대인 여성 레지스탕스, 반란을 일으킨 흑인 여성 노예…기억하는 것도 ‘투쟁’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으로서 유대인 여성사에 관심이 있던 주디 버탤리언은 자료를 조사하던 중 도서관에서 1946년 출간된 이디시어 책 <게토의 여자들>을 발견한다. 무장투쟁, 첩보활동, 시설 폭파 등 폴란드 여성 유대인들의 드라마틱한 저항사가 담겨 있었다. 버탤리언은 자문한다. “왜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을까?” 그는 10년의 자료 연구 끝에 숨겨진 여성 유대인 레지스탕스들의 이야기를 복원해 <게토의 저항자들>(책과함께)을 펴냈다.10~20대였던 여성들은 폴란드인으로 위장하고, 신분증을 위조하고, 자신들이 펴낸 지하 간행물을 전달하고, 권총을 빵 속에 숨겨 나르고, 화염병과 폭탄을 제조하고, 실제 전투에 가담했다. 이들은 남성보다 위장이 쉬웠기에 아리아인으로 꾸미고 연락책으로 활동하며 “저항운동의 신경중추” 역할을 했다.책은 이들의 활약을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폴란드에서 거짓신분으로 위장한 채 살아가며 ...

    2023.06.16 19:47

  • [책과 책 사이]걷기라는 저항 또는 반란
    걷기라는 저항 또는 반란

    ‘걷기’ 책 분야는 대략 3가지다. 우선 건강이다. ‘걷기만 해도 낫는다’ 같은 제목을 달고 나온다. 건강 효능과 걷기 방법을 다룬다. 여행책도 많다. 동네부터 제주를 거쳐 산티아고까지 이른다.다음은 인문학책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현대문학)은 걷기의 의미를 찾으려는 이들이 아직도 찾는 책이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반비)은 걷기의 철학적, 문화적, 종교적 의미와 함께 공공성을 들여다본다. 시기적으로 중세 순례에서 시작해 도시 보행에 이른 그는 “보행이 공공장소를 사용하고 공공장소에서 거주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라는 걸 강조한다. “자기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 다니는 데 익숙한 시민들이라야 반란을 도모할 수 있다”고도 했다.최근 나온 미셸 드 세르토 <일상의 발명>(문학동네)도 걷기의 문화사나, 이론, 방법론을 두고 통찰을 주는 책으로 꼽힌다. 세르토도 ‘도시에서 걷기’라는 장을 썼다. “도시 ...

    2023.06.09 14:16

  • [책과 책 사이] 피부색 넘어 재능과 노력으로 다시 쓰는 ‘신데렐라’
    피부색 넘어 재능과 노력으로 다시 쓰는 ‘신데렐라’

    하얀 피부의 인어공주 에리얼에게 익숙한 이들에게 짙은 피부의 에리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을까? 흑인 가수 겸 배우 핼리 베일리가 주연을 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실사판은 개봉 전부터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다. 외모에 대한 조롱과 인종차별적 발언이 이어졌다. 개봉 이후엔 별점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의문이다. 인어공주는 신체 절반이 물고기인데, 상반신 피부색이 문제인가? <인어공주> 실사판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개봉 나흘 만에 전 세계에서 1억8580달러(2456억원)를 벌어들였다.디즈니 왕국의 ‘공주’들만큼이나 인종의 벽이 높은 곳이 있다. 바로 발레다. 발레는 ‘하얗게 칠해진’ 장르였으며 인종차별이 심했다. 하지만 이곳에도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흑인 발레리나들이 있었다. 흑인 최초로 미국 최고의 발레단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 무용수로 승급해 흑인 최초로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을 맡은 미스티 코플랜드가...

    2023.06.0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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