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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 사이
  • [책과 책 사이]천편일률 ‘서양철학사’ 대신 아프리카·젠더 아우르는 ‘세계철학사’
    천편일률 ‘서양철학사’ 대신 아프리카·젠더 아우르는 ‘세계철학사’

    도서출판b에서 9권짜리(별권 포함) <세계철학사>(이신철 옮김)를 출간했다. 일본 인문 출판사 지쿠마쇼보가 창사 80주년을 기념해 낸 책이다. 일본 철학자 115명이 참여했다.제목 때문에 고대 그리스철학부터 시작해 유럽 철학을 주로 다루고, 곁다리로 중국이나 인도 철학을 끼워 넣은 전형적인 ‘세계철학사’를 먼저 떠올릴지 모르겠다.“명실공히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시야를 구축하고 확보하려는 흔적”(이신철)이 분명하다. 이슬람, 인도, 중국 철학사는 고대에 한정하지 않고, 현대까지 좇아간다.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철학도 아우른다.‘근대 조선 사상과 일본’도 들어갔다. 일본 편향 서술일까? “고대부터 조선 반도가 문명적·문화적·사상적으로 일본 군도에 대해 강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당연하며 상식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 ‘한·일 연대론’이나 ‘아시아주의’에 방점을 둔 해석은 한국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지만, 책...

    2023.05.26 11:49

  • [책과 책 사이]딥페이크와 예술 ‘창작’ 사이···AI의 두 얼굴
    딥페이크와 예술 ‘창작’ 사이···AI의 두 얼굴

    허리춤이 들어간 새하얀 롱패딩을 입고 산책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지난 3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사람들은 달라진 교황의 ‘패션센스’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한 누리꾼이 교황의 오른손이 뭉개진 모습을 포착했다. 사진은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AI)인 ‘미드저니’가 만든 가짜로 판명됐다. 화제가 됐던 사진이 하나 더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경찰에게 체포돼 연행되고 있는 이미지였다. 이 역시 조작된 사진으로 드러났다.생성형 AI는 누구나 복잡한 명령어 없이도 대화하듯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글과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줬다. 를 펴냈던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이번에는 이미지 생성 AI가 가진 가능성을 시험하는 책을 펴냈다. (동아시아)는 영화감독 김태용, 그래픽디자이너 김도형, 현대예술가 이완, 무용가 김혜연 등 예술가 네 명이 AI와 협업해 그림을 ‘생성’하는 실험을 한 결과물이다. 오픈AI의 프로그램인 달리(DALL·E2)를 이용했다. 김태용...

    2023.05.19 16:20

  • [책과 책 사이] 루쉰의 ‘숨겨졌던’ 아내, 주안
    루쉰의 ‘숨겨졌던’ 아내, 주안

    정혼하고 7년을 기다린 뒤에야 결혼했다. 남편은 첫날 밤부터 따로 잤다. 집을 나가 내연녀와 동거하며 자식까지 낳았다.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며 전족을 한 채 시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봉양했다. 시동생들까지 챙겼다.남편은 루쉰, 아내는 주안, 내연녀는 쉬광핑이다. 주안에 관한 기록은 한동안 한 줄로 기록됐다. 루쉰 사망 이듬해 만든 연보 중 1906년 루쉰이 26세 때 “6월에 고향으로 돌아가 산인의 주 여사와 혼인하다”는 구절이 나온다. 연보 작성자들은 이 한 줄마저 넣을지 고민하다 쉬광핑에게 “한 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니 제수씨께서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는 편지를 보냈다.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뒤 루쉰은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로 규정됐다. 사람들은 ‘중매 결혼’이 루쉰의 이미지를 훼손한다고 여겼다. 뤼순 연구에서 주안은 기피 대상이 되며 배제됐다. 한동안 루쉰 전기에서도 주안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나도 루쉰의 유물이다>(김민정 옮김, 파람북) 저자...

    2023.05.12 16:19

  • [책과 책 사이]‘시시한 말’이 혁명적이 될 때
    ‘시시한 말’이 혁명적이 될 때

    저 모든 책들, 저 모든 대화와 글쓰기는 내 마음에서 길을 잃었다. … 우스워져 나를 좋은 분위기로 돌려놓는 시시한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슬로베니아의 대표적 시인 브라네 모제티치의 자선 대표 시집 <시시한 말·끝나지 않는 혁명의 스케치>(움직씨)가 출간됐다. 시작과 끝을 알아채기 힘든 이 책은 두 시집이 양쪽 끝에서 각자 시작되어 중간에서 만난다. 앞과 뒤가 다른 한 권의 책이다. <시시한 말>은 13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슬로베니아 최고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에는 그림책 <첫사랑>(움직씨)과 <무기의 땅 아이들>(한울림어린이)이 먼저 소개됐고, 시가 번역되어 출간된 것은 처음이다.그의 시가 늦게 찾아온 것은 그가 성소수자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는 LGBTQ 운동가이자 작가·번역가·편집자로 활동해왔으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붕괴 이후 벌어진 전쟁과 내전에 시달려왔던 슬로베니아에서 반파시스트 인권활동가...

    2023.05.05 14:00

  • [책과 책 사이]다시 아무 데도 가지 않기
    다시 아무 데도 가지 않기

    <꿈꾸는 길, 산티아고>(김창현, 눈빛)라는 책이 최근 나왔다. 부제는 ‘54일간의 800㎞ 사진여행’. <100만 걸음의 예배자, 카미노 데 산티아고>(김형찬, 한사람), <자전거 타고 산티아고>(지훈, 하움),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손미나, 코알라컴퍼니)도 4월 출간됐다. 올해 제목이나 부제에 산티아고가 들어가 나온 책은 10권이다. 다 국내 저자다.산티아고에 왜 가는가? 책 제목에 대략 드러난다. ‘힐링’ ‘꿈’ ‘기도’ ‘명상’ ‘행복’…. 코로나19 전 산티아고 길에 선 열 명 중 한 명꼴로 한국인이라고 할 정도로 찾은 이가 많았다.긍정과 희망, 기원의 단어들을 한국 땅에선 이루기 힘들다고 여긴 이들이 이 길로 가는 듯했다.<꿈꾸는 길, 산티아고>에 실린 풍경을 보며 저 길을 걷고 싶다는 욕구에 빠져든다. 꿈같은 일이다. 두 달 남짓 걸린다. 돈과 시간만이 문제가 ...

    2023.04.28 11:00

  • [책과 책 사이]쓰고 읽는 사람이 있는 한 ‘책은 우리 곁’에
    쓰고 읽는 사람이 있는 한 ‘책은 우리 곁’에

    4월23일은 ‘책의날’이다. 유네스코는 ‘책의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독서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지식, 표현, 대화의 수단으로 책의 중요성을 내세우고 나아가 평화의 문화, 관용, 문화 간 대화를 증진하기 위한 책과 저작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책의날’을 마냥 축하하기엔 ‘책’을 둘러싼 환경이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독자’가 점점 줄고 있거니와, 챗GPT 등 언어생성형 인공지능(AI)의 출현으로 ‘저자’의 개념도 흔들리고 있다. AI의 창작으로 저작권 침해에 대한 우려도 높아진다.<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편않)은 이런 시대에 ‘곧 죽어도 못 잃는다’는 듯 책을 사고 보듬으며 책을 만들고 쓰는 사람들이 책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책이다. 서평가, 편집자, 번역가, 기자 등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8명의 저자가 각자 ‘책에 대한 책’을 고르고 읽은 후 쓴 글을 엮었다. 마티의 편집자 서성진은 현재 책이 처한 위치에 대해 말한...

    2023.04.21 22:35

  • [책과 책 사이]‘SF 거장’ 하인라인은 ‘여성혐오자’였을까
    ‘SF 거장’ 하인라인은 ‘여성혐오자’였을까

    10권짜리 <로버트 A. 하인라인 중단편 전집>(아작)이 최근 나왔다. 출판사는 ‘중단편 59편 완역’ ‘59편 중 국내 초역 40편’ ‘국내 최초 미래사 완역’이라는 문구로 홍보한다. SF도, 하인라인도 잘 몰라 검색하니 ‘위대한 SF 작가’ ‘SF 문학의 3대 거장’으로 평가하는 글 말고도 여러 내용의 글이 나온다. 그중 하나는 여성혐오와 성차별주의에 관한 것이다. 지식공유 사이트인 쿼라(Quora)에 ‘하인라인은 여성 혐오주의자인가’라는 제목의 글이 올랐다. 소셜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 관련 글엔 120여 개 포스트가 달렸다.여성혐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주로 문제 삼는 건 1982년 작 장편 <프라이데이>에서 인조인간 여주인공 프라이데이가 강간당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대목 등이다. 하인라인의 여성혐오 묘사 논쟁에서 특이한 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 이들도 반론을 펼친다는 점이다. 프라이데이가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을 갖춘 캐릭터라는 ...

    2023.04.14 15:02

  • [책과 책 사이]눈으로 듣는 사카모토 류이치
    눈으로 듣는 사카모토 류이치

    “우리가 음악을 하거나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돼야 합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사회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실감하게 됐습니다.”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난 2일 별세했다. 많은 이들이 슬퍼하며 그가 남긴 음악들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음악뿐 아니라 많은 말들을 남겼다. 그는 예술가였지만,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선 좋은 사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가 타계한 직후 그의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청미래)가 찾아왔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 잡지 ‘엔진’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해 묶은 책을 10년 만에 재출간한 것이다. 사카모토의 음악과 삶, 생각들을 한눈에 볼 수 있기에 그의 음악을 들으며 읽기 좋은 책이다.사카모토는 일본의 대표적 학생운동인 전공투 세대의 일원이었다. 10대부터 교복과 교모의 철폐, 시험 및 생활 통지표 폐지 등을 외치며 수업 거부 운동을 이끌었다. 대학 진학 후에도 교정보다는 민중과 함께 ...

    2023.04.07 21:34

  • [책과 책 사이]걸작은 누구를 모욕하는가
    걸작은 누구를 모욕하는가

    서평가 한승혜는 대학에 다닐 때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여성과 문학의 여러 관점을 접하고 다시 읽은 이 소설은 다른 방향으로 보였다. 주인공 카타리나의 ‘악행’이라야 집을 방문한 남성들에게 거친 언사를 행하는 정도다. “거친 언어를 과격하게 사용하고 과격하게 행동하는 남성”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목부터 문제라고 여긴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의 ‘길들이기’도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지 않은, 가축이나 사물과 같은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반영한 말이다.이 희곡에선 결국 말괄량이가 길든 듯하다. 가장 순종적인 아내를 뽑는 내기에서 이긴 뒤 카타리나가 한 말은 “남편이라는 건 우리의 주인이며 생명이고, 수호자며, 머리, 군주예요”였다. 한승혜는 바람직한 아내의 자세를 과장되게 강조하는 카타리나와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난 카미유 클로델,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 등 여러 여성 예술가들의 모습을 비교한다...

    2023.03.31 15:47

  • [책과 책 사이] ‘싱싱한 초록’에 담긴 ‘제주’의 평화
    ‘싱싱한 초록’에 담긴 ‘제주’의 평화

    지난해 여름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동양화가 김보희의 ‘더 데이즈’ 전시를 보러 갔다. 제주에 20년째 살고 있는 화가의 눈을 거쳐 그림으로 펼쳐진 제주의 풍경은 아름답고 따스했다. 제주의 푸른 바다와 풍경을 담아낸 그림들은 마음을 쉬게 하는 부드러운 힘이 있었다. 김보희는 초록 풍경 속에 빨간 커피잔을 그려놓곤 하는데, 그 작은 커피잔 덕분에 마치 그림 속으로 초대받은 느낌을 주었다. 김보희는 빨간 커피잔에 대해 그림 속 ‘자신의 자리’를 마련해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자리는 관객이 들어가 쉴 수 있는 자리로 변신한다.김보희의 첫 그림산문집 <평온한 날>(마음산책)은 그의 그림을 똑 닮은 책이다. 크고 무거운 도록 대신 가벼운 책 속에 담긴 그의 그림과 일상생활에 대한 단상들은 또다시 그의 그림 속으로 초대받는 느낌을 주었다. “제주도에서 내가 느낀 대로, 본 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들과 짧은 글들이 책을 받아든 사람에게 평화...

    2023.03.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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