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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 사이
  • [책과 책 사이]실로 작은 타임머신 ‘책’
    실로 작은 타임머신 ‘책’

    책과 독서를 두고 나온 명언이 많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책보다 충실한 친구는 없다”고 했다. “독서 습관을 붙이는 것은 삶의 온갖 비참한 일에서 벗어날 대피소를 짓는 일이다.” 서머싯 몸의 말이다. 최상급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 같다. “나는 천국이 도서관일 것이라고 늘 상상해왔다.”작가나 애서가라면 책과 독서를 두고 정의를 내리기 마련이다. <서평가의 독서법>(김영선 옮김, 돌베개) 저자 미치코 가쿠타니는 “종이, 잉크, 접착제, 실, 판지, 천 또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벽돌 크기의 이 마술 같은 물건은 실로 작은 타임머신”이라고 말한다. 책은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 역사의 교훈”을 배우게 해준다. “우리가 만날 일 없을 남자와 여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즈, 중간계, 나니아, 원더랜드 같은 허구의 세계”로 데려간다.가쿠타니는 어린 시절 “도피이자 안식”으로 책 읽기를 시작했다. 더 자란 뒤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하는지 ...

    2023.03.17 18:01

  • [책과 책 사이] ‘극과 극’ 한계에서 시작하는 페미니즘
    ‘극과 극’ 한계에서 시작하는 페미니즘

    십대부터 ‘밤 세계’를 경험한 AV배우 출신 여성 작가, 대표적 페미니스트와의 만남이라니 그 자체로 흥미롭다.대학생 때 유흥업소 직원으로 일하고 AV 배우로도 활동한 스즈키 스즈미는 일본경제신문사에서 5년간 기자로 일하고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성공한 작가다. 대화 상대는 <여성혐오를 혐오하다>를 쓴 일본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학자 우에노 지즈코다. 우에노는 스즈키의 책 <귀엽고 심술 맞은 여동생이 되고 싶어>를 보고 “이런 제목을 쓰는 건 이제 한계가 왔죠”라고 논평한다. 자신의 한계 밖으로 나가고자 애쓰는 젊은 작가와 우에노가 주고받은 편지글은 페미니즘의 새로운 연대 가능성을 보여준다.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문학수첩) 이야기다.‘83년생 스즈미’는 페미니즘이 가져온 변화에 따른 희망과 좌절을 온몸으로 맞닥뜨린 세대다. ‘결혼-출산-육아’라는 생애주기를 충실히 따른 ‘82년생 김지영’과 또다른 방식으로 생존...

    2023.03.10 15:18

  • [책과 책 사이]SF 거장들? 읽고 쓸 뿐
    SF 거장들? 읽고 쓸 뿐

    팬들은 작품으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사소한 메모까지 모든 텍스트를 섭렵해야 성이 풀린다. 일상을 어떻게 영위하는지, 여러 사안에 관한 생각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다. 최근 나온 SF 책은 이런 팬심에 부응한다. ‘전설’이니 ‘세계적 거장’이니 하는 수식어가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들의 책이다. 거장들의 일상과 생각은 ‘읽기와 쓰기’ 뿐이라는 걸 보여준다.<베스트 오브 코니 윌리스>(코니 윌리스, 아작)는 중단편 작품집인데, 2006년 월드콘 주빈 연설문 등을 부록으로 실었다. 유쾌한 내용의 연설문에선 남자 친구와 이별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수행하러 가는 비행기에서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읽은 이야기도 나온다. 프로도와 샘 걱정에 ‘헤어질 생각’을 까맣게 잊은 일을 떠올리며 말한다. “어제부로, 우리(저와 그 남자 친구)는 결혼한 지 39년이 됐습니다.”윌리스가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줬다”며 열거한 이들 중 한 명은 필립 K ...

    2023.03.03 13:52

  • [책과 책 사이]챗GPT의 물량 공세…‘진짜’를 걸러낼 안목 키울 때
    챗GPT의 물량 공세…‘진짜’를 걸러낼 안목 키울 때

    미국 SF잡지 ‘클락스월드’가 작품 접수를 일시 중단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챗GPT 등 인공지능(AI)이 쓴 작품이 쇄도해 표절 등을 이유로 접수가 거부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업무가 마비됐단다. 편집장 닐 클라크는 “신인이나 국제 작가들이 작품을 내는 데 장벽이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201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세계SF대회(월드콘)’ 에서 닐 클라크를 만났다. 당시 클락스월드에 배명훈·듀나·정소연 등의 작품이 소개됐다. 클라크는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며 “다양한 SF 작품을 소개해 영미권 SF를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챗GPT가 대량 생산한 저질 제품의 ‘물량 공세’로 공들여 쓴 작품이 빛을 볼 기회가 줄어들었다. 그중에 한국 SF소설이 있을 수도 있다.국내에도 챗GPT가 쓴 책이 출간됐다. 지은이 챗GPT, 옮긴이 AI 파파고, 일러스트 셔터스톡 AI다. 제목은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스노우폭스북스). 내용은...

    2023.02.24 20:43

  • [책과 책 사이]시간을 뛰어넘어 현대로 온 근대 여성 작가들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로 온 근대 여성 작가들

    “당대의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뒤흔든 여권주의자가 53세에 피폐한 행려병자로 죽은 것은 기존의 도덕률을 감히 거슬렀기 때문이야. 인습에 순종하지 않은 혹독한 대가야. 선각자를 파멸로 이끈 위력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굳건해.” 강경석 소설집 <툰드라>(강) 중 표제작에 나온 말이다. 화자가 홍상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두고 나온 ‘공개적으로 입증된 두 사람의 도덕성 결함’ ‘뻔뻔한 사랑’ 같은 인습적인 비난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최근 출간 경향의 가지 중 하나는 ‘한국 근대 여성’이다. <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정은문고, 안은미 옮김)는 나혜석의 ‘구미 여행기’를 넣었다. 이다혜는 추천사에 이렇게 적었다. “(나혜석의 글을 읽을 때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갈증과 울분을 동시에 일으킨다. ‘구미 여행기’를 읽으면 나혜석에게 오직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선구적인 작가로 꼽히나 세상에는 덜 알려...

    2023.02.17 13:55

  • [책과 책 사이] 자식 잃은 고통을 ‘알아주는’ 것이 그리 힘든가
    자식 잃은 고통을 ‘알아주는’ 것이 그리 힘든가

    작가이자 영화감독 이길보라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다. 농인(청각장애인)의 청인 자녀를 일컫는 말이다. 그는 부모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만들었다. 농인들은 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박수를 치는 대신 두 손을 흔드는데, 손가락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은 소리 없는 세계도 충분히 빛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감동받았지만, ‘공감’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 환함과 어두움의 일면을 보았을 뿐, 삶을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다고 짐작하는 것은 무성의할 뿐더러, 위험하다. 이길보라는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창비)에서 장애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게 하는 논픽션들을 소개하며 상실이나 결여가 손상이 아니라 또 하나의 다름일 뿐임을 보여준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단순하고 납작한 착각을 넘어설 때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이 말을 한...

    2023.02.10 18:31

  • [책과 책 사이]어린이도 아는 ‘사실’과 ‘의견’
    어린이도 아는 ‘사실’과 ‘의견’

    <사실과 의견 그리고 로봇>(마이클 레스, 길벗어린이)은 “한 로봇은 파란색, 한 로봇은 빨간색”을 두고 “사실”이라고 예를 들며 시작한다. “사실이란 진실 또는 거짓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을 말해요. 의견이란 여러분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꼭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이어 묻는다. “초록색은 로봇에 잘 어울리는 색이에요. 이건 사실인가요, 의견인가요?” 사실인지 결정 내릴 수 없을 때는 더 많은 정보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고 깨우쳐 준다.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이 좋은지 같은 의견을 두고 다투지 말라고도 타이른다.한국 현실이 떠오른다. 정치·사회 부문에서 존중하면 될 의견을 두고 아이스크림 맛으로 싸우는 로봇처럼 다툴 때가 많다. 사실인지 묻는데, 의견을 사실인 양 말하며 타박하는 일도 벌어진다. 섣불리 사실 여부를 판단하거나 불리한 사실은 은폐하고, 유리한 사실만 내세우는 일도 흔하다.사실·근거를 무시하고, 감각에만 기대 낸 생각과 지식이 억견이...

    2023.02.03 13:41

  • [책과 책 사이]‘완벽한 몸’과 피트니스 산업, 그리고 초가공식품
    ‘완벽한 몸’과 피트니스 산업, 그리고 초가공식품

    설 연휴 마지막 날, 명절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사람들에게 경종이라도 울리듯 넷플릭스에서 <피지컬:100>을 선보였다. 국가대표 선수부터 인플루언서까지 ‘뛰어난 몸’을 가진 100명이 참여한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이다. 날것의 육체가 힘대결을 벌이는 프로그램은 ‘몸짱’에서 진화한 ‘강인한 몸’에 대한 열망을 포착했다. 여성 출연자들도 ‘보기 좋은 몸’을 넘어 근육과 힘을 보여준다. 프로그램은 말한다. “인간의 몸은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완벽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그런데 ‘완벽한 피지컬’이 존재하긴 하는 건가? 어맨다 몬텔의 <컬티시>는 탈신앙 시대에 유사종교로 군림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로 ‘피트니스 산업’을 꼽는다. 대형 피트니스 센터의 등장과 함께 사람들은 외모나 자기계발을 삶의 의미와 결합시켜 “열심히 노력하면 완벽한 몸매와 완벽한 인생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따른다. <피지컬:100>은 출연진의 몸을 본떠 만든 토르소를...

    2023.01.27 20:39

  • [책과 책 사이]창비와 실천문학의 ‘객관적 진실에 대한 공격’
    창비와 실천문학의 ‘객관적 진실에 대한 공격’

    출판사 한 곳은 책을 내지 않아, 다른 한 곳은 출간해 비판받았다. 실천문학과 창비 이야기다. 창비는 에세이집을 준비하면서 장강명에게 기발표 글 중 ‘신경숙 표절’과 ‘창비 궤변’ 표현이 들어간 문장을 바꿔달라고 했다. 표절 구절을 염두에 두고 ‘창비 뜻은 다르다는 것을 밝혀둔다’라는 문장이 든 괄호를 넣어달라고도 했다. 지금은 퇴사한 전 미디어 창비 편집자 이지은은 책 홍보 배제 방침을 정한 일도 알렸다.실천문학사는 고은 신작 시집 <무의 노래>,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를 냈다. 새 책들에선 그 흔하고, 의례적인 ‘유감’이나 ‘성찰’ 같은 말은 찾을 수 없다.고은은 상징 자본과 문화권력을 지닌 이 두 성채에서 굳건하다. 실천문학사는 홈페이지 전면에 ‘전 지구적 시인 고은의 삶과 철학과 시’라는 문구를 달아 신작을 소개한다. <고은과의 대화>를 두고 “경전을 읽듯 머리맡에 두고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했다. 창비 홈페이지에...

    2023.01.13 14:28

  • [책과 책 사이]새해 첫 책을 읽으며 다시, 세상과 접속합니다
    새해 첫 책을 읽으며 다시, 세상과 접속합니다

    책이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을 봅니다. 물론 안 읽은 책도 많습니다. 어찌됐든 나란히 꽂힌 책들을 보다보니, ‘世’(세)자와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통해 세상을 더 잘 알 수 있고, 내가 읽은 책들이 나라는 세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으니 모양만 아니라 뜻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과 세상은 불가분입니다.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희망적인 책이 도착했습니다. 나오미 배런의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입니다. 인쇄 매체를 제치고 디지털과 영상 매체의 시대가 온 것이 기정사실화됐는데, 다시 ‘읽기’라니요. 책을 읽고 기사를 쓰는 출판 담당 기자로서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심 ‘책도 안 읽는 시대, 서평 기사는 누가 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거든요. 더군다나 신문도 올드미디어 중 하나니까요.단순히 종이책의 우월함을 역설하는 데 그친다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을 겁니다. 그 작업은 이미 매리언 울프가 <다시, 책으로>에서...

    2023.01.0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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