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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 [토요일의 문장]110년 지나도…노동자들 얼굴엔 ‘구슬픈 빗물’
    110년 지나도…노동자들 얼굴엔 ‘구슬픈 빗물’

    “교대를 마치고 돌아가는 느린 걸음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피곤한지/ 얼마나 일이 고되고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알 수 있다// 녹초가 되어 활기 없는 사람들, 무거운 발걸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 수심 가득한 멍한 얼굴/ 송장 같은 눈에는/ 빛이 죽어 있다” <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격>(공진호 옮김·아티초크) 중.베르톨트 브레히트 시 선집 중 ‘노동자들’이란 제목의 시 일부다. 브레히트는 “뼈가 부스러지도록/ 회색 돌더미 속에서 기계처럼” 일하고도 “휴식은 없고/ 해가 바뀌어도 끊임없는 힘든 일”만 기다리고, “푸른 하늘을 기쁜 마음으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노동자들을 그린다.“노예 같은 삶의 족쇄를 벗어던지는 투쟁을 벌이게 되지 않을까?” 아니, ‘노동자들’은 가족을 떠올리며 “세상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려 하다가도 그만두고” 다시 온종일 노동에 나선다. 브레히트는 비를 맞으며 헛간 같은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들의...

    2023.06.02 21:37

  • [토요일의 문장] 타인의 고통을 알기 위해 떠난 여행
    타인의 고통을 알기 위해 떠난 여행

    역사의 흐름은 되돌릴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제노사이드에 ‘제노사이드’라는 이름을 되찾아 주는 일이 제7의, 제8의 히틀러가 다시는 “도대체 지금 와서 누가 아르메니아인 절멸을 이야기하는가?” 따위의 말을 내뱉지 못하도록 막는 일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2015년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 100주기 특별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악을 숨기거나 부인하는 것은 상처를 지혈하지 않고 계속 피 흘리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양재화 (어떤책) 가운데타인의 고통을 알기 위한 것이 여행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양재화는 2005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캄보디아, 칠레, 아르헨티나, 제주, 아르메니아를 여행하며 제노사이드의 현장과 관련 박물관을 방문한다. “잊힌 이름들과 얼굴들을 마주하는 여행”이다. 죽음과 비극에 관한 장소를 여행하는 ‘다크 투어리즘’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됐지만,...

    2023.05.26 15:01

  • [토요일의 문장]걷기, 자신만의 은신처를 소유하는 일
    걷기, 자신만의 은신처를 소유하는 일

    “침묵 속에서 홀로 자신의 생각에 젖어 걸어갈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상황, 타인과의 관계,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 혹은 큰 기쁨을 주는 것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한다. 자연 속에서 걷는 일은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소풍이면서 자기만의 은신처를 소유하는 것과도 같다.” <철학자의 걷기 수업-두 발로 다다르는 행복에 대하여>(푸른숲, 알베르트 키츨러 지음, 유영미 옮김) 중인용문 중 ‘그런 일’은 “본질적인 사유가 전개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념 또는 결정 등이 우리 안에서 여무는 과정이 발생”하는 일을 뜻한다. 걷기라는 은신처는 “악의적인 사람들의 무리”를 벗어나 “생동감 넘치는 내면의 만족감”(루소)을 느끼게 한다. 책은 ‘걷기’에 관한 여러 정의를 시도한다. “산책하든 트레킹을 하든 천천히 어딘가를 걷는 일은 삶과 같다. 변화와 덧없음, 탄생과 성장, 피고 짐을 상징한다.”책은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유와 지혜를 걷기에 ...

    2023.05.19 22:12

  • [토요일의 문장]집단지성이 순식간에 ‘집단무지성’으로 전락한 때
    집단지성이 순식간에 ‘집단무지성’으로 전락한 때

    사람들이 다른 이의 선택을 볼 수 있을 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선택을 보고 흉내 낼 수 있을 때, 집단지성은 순식간에 ‘집단무지성’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하고 순응을 기본 태도로 장착하면서, 우리는 개인에서 집단의 구성원으로 변모한다. 이렇게 심어진 오류의 씨앗이 발아하게 되면, 모든 지식을 뒤덮어버린 채 오직 집단 착각만을 남겨놓는 연쇄 반응과 무한 복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 토드 로즈의 <집단 착각>(21세기 북스) 중에서“자신에게 해가 되는 결정인데도 왜 우리는 다수의 선택을 따라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평균의 종말>의 저자이자 교육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자인 토드 로즈는 신작 <집단 착각>에서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다. 다른 이들과 행동을 조율하고 싶은 ‘순응 편향’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속감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침묵하고 방관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

    2023.05.12 22:06

  • [토요일의 문장]내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내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아버지의 죽음 후 온갖 물건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 열네 살 소년 베니와 저장강박증을 겪는 엄마 애너벨”의 상실과 치유,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인용 문단은 애너벨이 발견한 책 ‘정리의 마법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루스 오제카는 이 성장소설에서 자본주의, 소비문화, 기후변화 같은 이슈를 다루며 선불교와 마르크스, 베냐민의 철학도 엮어낸다. 그는 선불교 승려이기도 하다. 2013년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을까>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오제카는 2022년 이 책으로 여성문학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책과 독서의 힘을 예찬하는 이 책은 삶과 죽음이라는 큰 주제를 다루면서도 읽는 즐거움이 가득하다”고 평했다.(<우주를 듣는 소년>(인플루엔셜) 중)지진이 우리를 흔들어 깨었고, 쓰나미가 우리의 망상을 쓸어갔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가치관과 물질적 소유에 대한 집착에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내 소유물, 내...

    2023.05.05 21:27

  • [토요일의 문장]한 노동자 집단의 승리가 모두의 승리
    한 노동자 집단의 승리가 모두의 승리

    “한 노동자 집단이 어떤 승리를 거두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승리다. 예를 들어, 어떤 저임금 이주 노동자 집단이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성공하면 고용주들은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이주 노동자를 고용하는 식으로 내국인 노동자들을 약화하지 못한다.”<노동계급 세계사>(워킹클래스히스토리, 오월의봄) 중에서2020년 4월29일 미국 일리노이주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직원 수가 부족하고, 개인 보호장비가 모자라며 위험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데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팬데믹 시기 건강과 안전을 둘러싸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수많은 파업 가운데 하나였다. <노동계급 세계사>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투쟁한 이들의 집단적 역사를 찾아내고, 그 역사를 다음 세대에 알리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노동계급의 역사는 “먼지 쌓인 문서보관소에 묻혀 있거나, 온라인 결제의 장벽 너머에 있거나, 온라인에...

    2023.04.28 21:57

  • [토요일의 문장]탐욕의 도시 속 투쟁·연대를 위한 다짐
    탐욕의 도시 속 투쟁·연대를 위한 다짐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가 바뀌지 않는다면 열악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세계를 개선하려는, 혁명하려는 지난한 사투이거나 자신의 몰락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 외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리라.” -박정대 (<체 게바라 만세>(달아실) ‘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중)박정대는 이 시에서 “인간의 이기적 탐욕이 이룩한 흉흉한 도시의 심부”에서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들을 회상하고 트리어 선술집을 전전하며 자신의 분노를 하나의 명백하고 견고한 이론으로 완성해 나가던 수염의 현자를 생각”한 뒤 앞 인용 구절로 나아간다. 이 현자는 마르크스다. ‘외부에서 온 고통을 누구보다 빨리 알았던 이들’은 사투를 벌이거나 몰락을 감당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27쪽에 이르는 이 시에서 두세 개 연 다음 계속 반복하는 행의 시어는 “나는 시를 말하려고 한다”이다. 고통, 투쟁, 희망, 연대를 시로 이어 내려는 다짐 같다....

    2023.04.21 22:35

  • [토요일의 문장] 버려진 식물들이 말을 걸었다···“함께 살아보자”고
    버려진 식물들이 말을 걸었다···“함께 살아보자”고

    ‘이 식물들은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면 어디로 가지?’ 의식하자 재개발 단지의 식물들이 더 많이 보였다. (…) 이것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만들어 꾸준히 활동해야겠다는 계획이 머릿속에 스쳤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시작된 ‘공덕동 식물유치원’의 유기식물 구조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사실 식물들이 시작하게 만든 것이다. 그들이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아 나를 이끌어주어서, 우리와 함께 살아보자고 내게 손 내밀어주어서 시작된 것이다. - 백수혜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 입니다>(세미콜론) 중에서버려져 죽어가는 식물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와 돌보고 살려내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재개발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떠나고 ‘철거 예정’이라고 붙여진 경고문 뒤에 남겨진 것들은 스산하고 애잔하다. 낡고 헌 건물, 버려진 물건뿐 아니라 생명을 가진 것들도 남아 있다. 개와 고양이를 구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수혜는 버려진 식물들이 눈에 밟혀 지나치지 못했다. 하...

    2023.04.14 15:12

  • [토요일의 문장]이것은 시의 형상을 한 ‘약자의 목소리’다
    이것은 시의 형상을 한 ‘약자의 목소리’다

    “무희가 밤과 겨울의 끝에서 웃으며/ 완전한 박탈의 춤을 춘다/ 그녀가 몰아내려는 것은 이 세상/ 사랑하고 증오하고 웃으며 서로를 죽이는 이 세상/ 피를 수확할 이 땅/ 밤 새우며 폭음폭식하는 자들의 이 밤/ 집 없는 자들의 이 고통”.<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지음·이루카 옮김·아티초크) ‘무희’ 중미스트랄은 194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주로 알려졌다. 그를 소개할 때 빼놓지 않는 게 칠레 5000페소 지폐의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노벨상이라는 명성과 지폐 모델이라는 상징성 말고는 잘 알지 못하는 셈이다. 외신이나 문학에 관심을 둔 이라면, 1996년 박경리가 미스트랄 문학메달을 받은 일이나 2010년 갱 속에 갇힌 칠레 광부들이 미스트랄과 네루다 시를 읽으며 버텼다는 내용의 외신을 기억할 것이다. 네루다에게 시를 가르친 이가 미스트랄이다. 이루카는 미스트랄의 시를 두고 “권리를 박탈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대변...

    2023.04.07 21:34

  • [토요일의 문장]싸우는 장애인? 싸울 수밖에 없는 세상
    싸우는 장애인? 싸울 수밖에 없는 세상

    “주어진 몸으로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데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자면 내 몸이 아니라 세상을 내 몸에 맞게 바꿔야 했다. … 나는 천사가 아니라 전사가 되었다. … 천사가 아닌 전사로 살아온 내가 생을 마감할 즈음엔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으리라 믿는다.”-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이규식·김소영·김형진·배경내 지음, 후마니타스)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나의 이동권’에 대해 쓴 책이다. 정확히는 그가 왼손만 간신히 움직여 자판을 두드려 쓴 글, 온 힘을 짜내 내뱉은 말들을 모아 동료들이 함께 만든 책이다. ‘사회적 말하기’의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그가 동료들과 힘을 합쳐 자신의 삶을 정리해냈다. 오랜 시간 시설에서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지내던 그는 우연히 노들야학과 박경석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세상으로 나아가 그야말로 몸을 부딪혀가며 길을 냈다. ‘싸우는 장애인’으로 유명한 그이지만,...

    2023.03.3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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