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금요일의 문장
  • [토요일의 문장]사람 사는 일은 평생 똥 잔치다 밥잔치다
    사람 사는 일은 평생 똥 잔치다 밥잔치다

    “사람 사는 일은 평생 똥 잔치다 밥잔치다 산다는 건 그 잔치 설거지로 바쁜 나날이다// 누구는 밥 한 끼에 이백만원씩이나 소비한다는데 누구는 무료급식 한 끼에도 부자 기분을 느낀다는데 입원해서 점도 증진제 섞은 죽을 먹다 기저귀 차고 똥 싸는 환우의 똥 냄새 반찬처럼 씹으며 알았다 따뜻한 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어떤 밥도 똥이다” <점자 편지>(송유미, 실천문학사) ‘개똥 익어가는 계절 - 친절한 간병인 k에게’ 중자기 몸과 의지로 배설을 처리할 수 없는 환자와 그 잦은 배설 처리를 감당해야 하는 간병인을 두고 먹고살기를 떠올린다. 송유미는 “생과 사가 반복되고 소멸하고 탄생하는 것들을 처연하게” 바라보며 “정체불명의 슬픔을 형상화”하려 한다고 했다. 이 관점과 태도를 지켜나가는 곳은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존재의 밑바닥”(김다연 시인 해설 중)이다. 돌멩이 삼키듯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 앙상한 나무젓가락 분지르며 급식소 밥을 먹는 노인, 소주...

    2023.03.24 20:54

  • [토요일의 문장]“이주는 자연의 생존 전략, 생명의 본질”
    “이주는 자연의 생존 전략, 생명의 본질”

    “이주는 인권이 되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4조에 다음과 같이 명시돼 있다.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에서 피난처를 구할 권리와 그것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 … 동물도 이주하고 식물도 이주한다. 이주하는 것은 자연(계)의 생존 전략이다. 따라서 이주를 방해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제한하는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가 제한받는 경우는 훨씬 더 많다. 이주는 생명의 본질이다. 살아있는 유기체의 확산은 제한될 수 없다.”- 스테파노 만쿠소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더숲) 가운데식물학자 스테파노 만쿠소가 지구를 위태롭게 한 인간 중심적 관점을 비판하기 위해 ‘식물 권리장전’을 썼다. 인간보다 수억년 전에 존재했던 식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 주권을 부여했다고 말한다. 식물 권리장전은 달리 말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권리장전이다. 주권과 평등, 불가침성, 탈중앙화, 생명의 권리에 대한 존중, 깨끗한 물·토양·...

    2023.03.17 21:46

  • [토요일의 문장]“삶도 글도 되풀이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
    “삶도 글도 되풀이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

    “Write a little every day, without hope, without despair.”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책상에 붙어 있던 글귀라고 하지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써라. 카버가 한 말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이 했던 말입니다. …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글쓰기도 결국은 반복입니다. 반복에서 중요한 것은 되풀이 자체예요. 때로 우리는 희망에 도취해 반복을 벗어나거나, 절망에 빠져 되풀이를 그만두곤 합니다. 하지만 인생이 언제 그렇던가요?- <중급 한국어>(문지혁, 민음사) 중에서소설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비정규직 대학 강사 ‘문지혁’의 이야기다. ‘소설 속 글쓰기 강의’ 형식이다. 결혼 생활과 육아 이야기에 녹취록을 푼 듯한 강의를 교차한다. “소설이란 윤리로 비윤리를 심판하는 재판정이 아니라, 비윤리를 통해 윤리를 비춰 보는 거울이자 그 둘이 싸우고 경쟁하는 경기...

    2023.03.10 21:44

  • [토요일의 문장] 여자·남자를 넘어 ‘모두의 운동장’을
    여자·남자를 넘어 ‘모두의 운동장’을

    “스포츠는 오랜 시간 생물학적 성(性)으로 구분되어 존재해왔고, 이는 공정성에 대한 하나의 믿음이자 성(城)이었다. 따라서 전통적 관점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새로운 성(性)의 존재는 쉽게 자연 질서의 파괴이자 외부 요인으로 여겨진다.(…)트랜스 운동 선수의 스포츠 참여 금지가 이미 성적으로 차별받아 온 성소수자들이 운동으로 얻을 수 있는 ‘신체 활동의 이점’을 박탈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운동을 통한 불안, 우울증, 자살 시도 등의 위험 감소, 담배와 마약 사용 등의 감소를 포괄한다. (…)제도는 차별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며 의학·과학적 논의를 멈춰선 안 된다.”-Zephyrus <모두의 운동장>(스리체어스) 중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역도 경기는 ‘이번 올림픽에서 꼭 봐야 할 순간’이 됐다. 올림픽 무대에 트랜스젠더 선수가 선 것이다. 뉴질랜드 여자 역도 대표팀 선수 로렐 허버드는 2012년 성확정 수술을 받고 로렐로 개명한 뒤...

    2023.03.03 16:24

  • [토요일의 문장]담장은…아름다움을 보여주지 않았다
    담장은…아름다움을 보여주지 않았다

    롤랑 바르트는 “신화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담장이야말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담장처럼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질감을 드러내지만, 결국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게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담장은 미적인 ‘것’만 느끼게 할 뿐,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않았다. - <담장의 말>(민병일, 열림원) 중에서민병일은 “오래되고 미적인 ‘창(窓)’과 ‘담’을 찾아 10년 넘게 방랑”을 했다고 한다. 그 방랑의 장소는 순천만 와온 바다 갯마을 뒷간 담에서 베를린 장벽 돌 조각을 거쳐 핑크 플로이드 음반 <The Wall>로 이어진다. 민병일은 담을 산책하며 미를 탐사했다. “새하얀 눈 내리는 골목 외등 담벼락 안에서 나만의 혁명”도 모색했다. 돌담 사이 오가는 개미를 앞에 두고 ‘미란 무엇인가’를 따졌다. 결국은 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곳곳 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책은 담 건축술, 담을 만...

    2023.02.24 20:44

  • [토요일의 문장]존엄하게 살아야, 존엄하게 죽을 수도 있다
    존엄하게 살아야, 존엄하게 죽을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는 마치 주사위 놀이 같다. 먼저 ‘보이지 않는 손’이 노화, 질병, 돌봄, 죽음을 새긴 주사위를 던진다. 그 결과는 ‘우연히’ 누군가의 일상에 들이닥친다.(…) 주사위 놀이의 인기 비결은 불평등함에 있다. 우리 삶이 불평등하면 할수록 주사위 놀이는 ‘아찔한 모험’이자 세간의 관심을 끈다. 반면, 어떤 주사위를 던져도 누구나 존엄하게 살고, 늙고, 아프고, 죽을 수 있다면 그 놀이는 시시한 장난에 그칠 것이다.- 송병기 <각자도사 사회>(어크로스) 중살아서는 ‘각자도생’, 죽을 때는 ‘각자도사’다. 좋은 공동체가 서로 삶을 지지하고 북돋우며 위기를 맞아 취약한 상황이 됐을 때 기댈 만한 곳이라면, 우리 사회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요양원 노인은 ‘존엄한 죽음’ 대신 ‘깔끔한 죽음’을 원한다.의료인류학자 송병기가 집, 노인 돌봄, 호스피스, 콧줄, 말기 의료결정에 이르기까지 생애 말기와 죽음의 경로를 추적했다....

    2023.02.17 21:48

  • [토요일의 문장]정치적으로 말해 그리스 비극엔 이중적 역할이 있다
    정치적으로 말해 그리스 비극엔 이중적 역할이 있다

    정치적으로 말해서 그리스 비극에는 이중적인 역할이 있는데, 사회제도를 승인하는 동시에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예술은 내용을 통해 사회질서를 정당화할 수도 있지만, 관객에게 심리적 안전밸브를 제공할 수도 있다. 무해한 환상을 육성하여 자신이 사는 체제의 더 불미스러운 측면들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테리 이글턴 <비극>(정영목 옮김, 을유문화사) 중이글턴은 “비극적 드라마는 계속 국사(國事), 권위에 대한 반역, 공격적인 야망, 궁정의 음모, 정의의 침해, 통치권을 위한 투쟁을 다루는데, 삶과 죽음이 사회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명문가 출신 인물들의 경력이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자리를 잡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말을 했다. 즉 엘리트주의적이고, 영적이며, 귀족의 피가 흐르는 비극은 “세일즈맨의 자살보다는 왕자의 죽음”을 다룬다. 순교자, 영웅, 전사가 주인공인 비극의 세계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은 끼어들 틈이 없...

    2023.02.10 22:00

  • [토요일의 문장]나를 진짜로 즐겁게 하는 건
    나를 진짜로 즐겁게 하는 건

    어떤 경우든 진정한 재미가 주는 감각은 분명했다. 마치 공기 중에 번개 같은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강력한 에너지가 방출된 느낌이었고, 특정한 요소들이 합류하는 지점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진정한 재미를 느낄 때면 이 에너지가 불꽃처럼 내 몸을 스쳐 지나갔다.진정한 재미는 자기비판과 판단에서 벗어나 완전히 참여하고 몰두하는 느낌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기가 하는 일에 푹 빠져 결과에 신경 쓰지 않는 데서 오는 스릴이다.- 캐서린 프라이스 <파워 오브 펀>(한국경제신문) 중캐서린 프라이스는 한밤중 아이에게 수유를 하다가 멍하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과, 스마트폰 액정 불빛 아래 엄마를 바라보고 있던 아이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1500명을 설문조사해 ‘진정한 재미’를 관통하는 특징을 찾는다. 장난기, 유대감, 몰입이 만나는 순간, 에너지의 불꽃이 터졌다. 보상이 없어도 상관하지 않는 유쾌함(장난기), 누군가와 특별한 경험을 공유...

    2023.02.03 20:28

  • [토요일의 문장]경제의 균등한 분배는…
    경제의 균등한 분배는…

    집에서 참정권이 필요하다고 말해도 큰 반대에 부딪히게 되지는 않지만, 경제의 균등한 분배는 거론하자마자 눈앞에서 적을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당연히 극렬한 전투가 발생하게 됩니다.- <부엉이의 불길한 말>(문학과지성사) 중 ‘노라는 집을 나온 뒤 어떻게 되었는가’에서.루쉰이 1923년 12월25일 베이징 여자고등사범학교 문예회에서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의 행보를 두고 진행한 이 연설은 유명하다. 루쉰이 집 나온 노라가 유곽으로 가 타락하거나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부분이 회자하는데, 정확히는 루쉰이 노라의 양자택일에 관한 말의 출처를 밝히고 “(양자택일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을 뿐이다. 루쉰이 강조하는 건 돈, 즉 경제권이다. 꼭두각시가 되지 않으려면 경제권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 그는 “집에서 남녀 간 균등한 분배”와 “사회에서 남녀 간 대등한 세력”을 강조했다. 인용문은 “경...

    2023.01.27 20:40

  • [토요일의 문장]이봐, 이제 시작하는 게 어때?
    이봐, 이제 시작하는 게 어때?

    이봐, 야망이 장화 신은 양발에 번갈아 체중을 실으며초조하게 말하지-이제 시작하는 게 어때?왜냐하면 내가 거기, 나무들 아래, 이끼 깔린 그늘에 있거든.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게으름의 손목을 놓아주기가싫어, 돈에 내 삶을 팔기가 싫어,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기조차 싫어.- 메리 올리버 <서쪽 바람>(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검은 떡갈나무’ 가운데빡빡한 하루 일과를 마친 때에도, 아침을 막 시작한 때에도 좋다. 메리 올리버는 그 어느 경우에도 충만한 위안을 준다. 그가 숲과 들판을 거닐며 보고 듣고 느낀 모든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테니. 아침을 시작하며 잠시만이라도 산책 나갈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 시인이 본 것들이 바람에 실려 겨울 숲으로 달려가는 눈송이처럼 “소오오오오오…”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이봐, 그저 조금씩만 숨을 쉬면서 그걸 삶이라고 부르는 거야?/ 결국 영혼은 하나의 창문일 뿐이고, 창문을 여는 건...

    2023.01.13 21:32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