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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 [금요일의 문장]교회마다 메시아를 외칠 때 공중 천막에는 등 시린 별빛
    교회마다 메시아를 외칠 때 공중 천막에는 등 시린 별빛

    “바람의 파르티타가 흐르는 겨울밤/ 털모자를 쓴 노동자들이/ 발전소 굴뚝에 올라갔다// 발아래 교회마다 메시아를 외칠 때/ 공중 천막에는/ 등 시린 별빛이 찾아왔다// 지상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하늘 높이 차린 전례// 기약 없는 복직만큼/ 머나먼 불빛” <내가 어두운 그늘이었을 때> 수록작 ‘공소’ 전문, 걷는사람박시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삼각김밥으로 하루를 버티는 청년, 폐지를 줍는 노인, 고시원에서 지내는 노동자, 언덕 위의 고양이까지 시인은 사회 구조에서 밀려나 삶의 가장자리에 놓인 이들을 시로 담아낸다. 시인은 밀려난 현실의 장면과 삶의 본질을 정면으로 응시하지만, 고발하고 재현하기보다는 조용히 바라본다. ‘생의 대부분 먹고사는 일에 보내야 하는/ 숨의 운명, 수북이 쌓인 내장/ 씹을수록 텁텁한 어둠은/ 또 다른 내장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간다.’(수록작 ‘순대 타운’ 중) 시집을 관통하는 미학적 중심은 음악이다. 시집엔 글렌...

    2025.08.21 21:05

  • [금요일의 문장]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오줌이 마려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오줌이 마려웠다

    “선희는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책을 다 읽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 선거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 찬성이 여름휴가 때 내려오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할 만한지, 대학 다닐 때 아르바이트했던 이야기는 왜 안 했는지, 뭐 필요한 건 없는지, 먹고살 만한지…. 그런데 오줌이 마려웠다. 방광염으로 또 고생하지 않으려면 줄 선 손님이 없을 때, 경숙이 퇴근하기 전에 얼른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와이카노>, 위즈덤하우스60대 여성 선희는 대구의 한 시장에서 칼국숫집을 운영한다. 가게에서 2년째 설거지 일을 하던 경숙이 그만두며 퇴직금을 요구한다. ‘시장에 그런 게 어딨노?’라는 억울한 마음에 소설 쓰는 일을 하는 딸 해리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2년 가까이 일했다며? 그럼 줘야지. 노동법으로 정해져 있는 거야’라는 딸의 대답에 내심 서운해진다. 선희는 시장 사정도 모르는 애한테 괜히 말했다며...

    2025.08.14 21:12

  • [금요일의 문장]이제 전 세계 이야기꾼들이 단결해야 할 때
    이제 전 세계 이야기꾼들이 단결해야 할 때

    “결국 언어를 통해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이야말로 문화적 발전을 가속시킨 출발점이었으며, 그런 발전이 우리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을 구별지었다. 이제 바로 그 의사소통 도구가 우리의 집단적 스토리텔링 활동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이제 전 세계의 이야기꾼들이 단결해야 할 때가 아닐까?”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 문학과지성사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저자 마틴 푸크너는, 기후위기는 곧 문학의 위기이기도 하다고 본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와 세계 속 자신의 위치를 이해해왔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세계 인식 위에 문명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 전달된 정보가 대단히 강력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수십만년 만에 지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 저자는 기존의 문학이 생태적 위기를 초래한 제도적 장치들과 긴밀한 공모 관계를 맺어왔다면서 앞으로의 문학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안적 서사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푸크너는 이를 ...

    2025.08.07 20:01

  • [금요일의 문장]나쁜 것은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다
    나쁜 것은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다

    “아름답고 싶은 욕망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나쁜 것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의무, 또는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다. 대다수 여성이 아름다움을 자기 성별을 추켜올리는 이상화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그것은 여성이 자신의 실제 모습 또는 평범한 성장의 결과에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방식이다. … 분명 아름다움은 권력의 한 형태다. 그래야 마땅하다. 개탄스러운 것은 아름다움이 대다수 여성이 추구하도록 권장되는 유일한 형태의 권력이라는 점이다.” <여자에 관하여>, 윌북몇년 전부터 여성 청소년들 사이에 ‘프로아나(pro-ana)’라는 말이 유행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찬성을 의미하는 프로(pro)와 거식증을 의미하는 아나(anorexia)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신조어인 이 말은 ‘마른 몸이 곧 아름답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이는 마르고 하얀 피부의 아이돌 등이 우상화돼 비치는 미디어의 영향을 비롯해 여러 사회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개념일 것이다. 아름다움엔 죄...

    2025.07.31 20:34

  • [금요일의 문장]밥도 못 먹었냐는 말 들으니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어
    밥도 못 먹었냐는 말 들으니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어

    “근데 그 언니가 딱 그래. ‘경희야, 인사는 좀 하고 살자.’ 나는 분명히 인사했는데 그러니까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같이 있던 언니가 ‘했잖아. 언니가 못 들었지.’ 이래요. 그러니까 ‘인사했어? 근데, 뭐 밥도 못 먹었어? 기어들어 가는 소리처럼 해.’ 이러는 거예요. 밥도 못 먹었냐는 그 말, 그거 들으니까 눈물이 막 나오기 시작하는데 진짜 엄청 울었어. 억울하기도 하고 저 언니가 왜 이렇게 나한테 막 하는가 싶기도 해서 그냥 막 눈물이 나와.” <우리들의 드라마>, 후마니타스이경희씨(가명)는 49세에 탈북해 한국에 온 지 15년째인 청소노동자다. 오십이 다 돼 목숨을 걸고 도착한 한국은 마냥 낯설었다. 낯선 환경에서 주눅든 채 살아가던 경희씨는 어느 날 “밥도 못 먹었냐”는 동료의 말에 주저앉아 운다. 굶어죽을 것 같아 사선을 넘어온 그에게 그 말은 상처가 됐다. 책은 노회찬재단 구술생애사팀이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아홉 명의 이야기를 구술...

    2025.07.24 21:02

  • [금요일의 문장]강물이 흐르지 않으니 시간도 강바닥에 침전되고
    강물이 흐르지 않으니 시간도 강바닥에 침전되고

    “이제는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갈색 등을 가진 물고기 가족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건너편 갈대숲으로 들어간다// 아직 노을은 멀었어?/ 강물이 흐르지 않으니 시간도/ 강바닥에 침전되고 있잖아/ 그래서 소용돌이가 사라지고 있잖아//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뱀 대신 안장 높은 자전거가 달려가고/ 가을 하늘을 헬리콥터 소리가/ 고요 대신 가득 채우고 있다// 강물이 흐르지 않는 것은, 누군가/ 물의 길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 <뒤로 걷는 길>, 창비강경석 문학평론가는 “황규관의 시에는 언제나 강이 흐른다. (강을 소재로 하지 않는 시에도) 심층에서는 어떤 쉼 없는 유속과 유량이 감지된다. 강은 황규관 시의 어떤 본질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번 시집에서도 ‘흐르지 않는 강’ ‘마지막 강’ 등 두 편의 시가 실렸다. 흐르지 않는 강의 하늘에는 “헬리콥터 소리”가 가득하다. 인간의 건설 활동이 물길을 막은 것처럼...

    2025.07.17 20:37

  • [금요일의 문장]예이츠는 귀족적인 길을 따라 파시즘에 도달한 사람
    예이츠는 귀족적인 길을 따라 파시즘에 도달한 사람

    “정치적 용어로 옮기자면 예이츠의 경향은 파시스트다. 대부분의 생애 동안, 그리고 파시즘이라는 말이 떠돌기 훨씬 전부터 예이츠는 귀족적인 길을 따라서 파시즘에 도달한 사람들의 세계관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민주주의, 현대 세계, 과학, 기계, 진보의 개념, 무엇보다 인간 평등 같은 개념을 아주 싫어했다. 그의 작품 상당 부분을 차지한 이미지는 봉건적이며 심지어 그는 보통의 속물주의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좋건 싫건, 나의 시대>, 북인더갭영국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20세기 최고 영미 시인을 논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다. BBC는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끼친 그의 영향이 셰익스피어에 견줄 만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만물은 무너져내린다. 중심은 지탱할 수 없다”는 시구가 포함된 예이츠의 1919년작 ‘재림’은 파시즘의 도래에 대한 시적 경고로 해석되곤 했다. 예술가의 글과 예술가의 정치적 태도를 분리할 수 없다고 보았던 영국...

    2025.07.10 20:57

  • [금요일의 문장]아이들. 바다. 지구의 양 끝. 이질적이고 초현실적이다
    아이들. 바다. 지구의 양 끝. 이질적이고 초현실적이다

    “오션 바이킹을 타고 처음 구조했던 소녀, 아이샤를 떠올린다. 구명보트 위의 눈물이 오션 바이킹 갑판 위에서 기쁨의 눈물로 바뀌던 장면. 품에서 품으로 옮겨지는 동안 두 팔로 꼭 안고 있던 인형도. 분홍색 유니콘 인형이었다. 어떻게 그 자리까지 함께 올 수 있었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를 일이었다. 아이들. 바다. 지구의 양 끝. 유니콘. 인연. 이질적이고 초현실적이다.” <지중해의 끝, 파랑>, 바람북스지중해는 아프리카와 중동, 남아시아에서 유럽 연합 내로 이주하려는 난민 상당수가 이용하는 루트다. 문제는 이곳에서 적지 않은 사고가 발생해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데 있다. 국제이주기구(IMO)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동안 지중해를 건너다 사망한 난민은 3만1180명이다. 책은 그 현장을 다룬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탐사 보도 기자인 저자가 리비아 북쪽 지중해 국제 해역에서 해상 인명 구조 활동을 하는 유럽의 인도주의 기구 SOS 메디테라...

    2025.07.03 20:52

  • [금요일의 문장]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감정들의 세계가 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감정들의 세계가 있다

    “다만 세상에는 논리와 이성의 세계, 육하원칙과 서론-본론-결론의 빈틈없는 수학적 세계만이 아니라, 기브 앤 테이크와 대차대조 제로의 세계만이 아니라, 그런 논리와 이성의 세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존재하는 너무나 많은 감정들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 세계는 ‘슬픔’, ‘답답함’, ‘어두움’, ‘억울함’, ‘모호함’, ‘애매함’, ‘말할 수 없음’, ‘사무침’, ‘기막힘’, ‘기쁨’, ‘즐거움’, ‘다정함’, ‘믿음직함’, ‘편안함’ 같은 형용사형의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 돌베개책은 문학비평가 김명인 전 인하대 교수가 1977년 봄부터 2024년 겨울까지 약 47년에 걸친 자신의 삶을 돌아본 회고록이다. 저자는 1980년대 주요 학생운동 사건인 ‘무림사건’의 주요 가담자이자 당대 문학계를 뒤흔들었던 민족문학주체 논쟁의 주역이었다. ‘불의 시대’ 1980년대와 ‘퇴조의 시대’ 1990년대를 관통해 60대 후...

    2025.06.26 21:07

  • [금요일의 문장]슬픔·위로 쌓아 구운 빵…어떤 형태로 남게 될까
    슬픔·위로 쌓아 구운 빵…어떤 형태로 남게 될까

    “사랑만 이야기하는 사람을 믿지 못했다// 길에는 어제 내린 눈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 발자국에 단단해진 눈/ 흰빛을 잃고 녹지도 않고// 언제까지 남아 있을까/ 잘 다져진 마음들// 나는 슬픔의 버터와 위로의 반죽을/ 겹겹이 쌓아 빵을 구웠다// 깨끗한 마음은 무엇으로 만들까/ 어떤 형태로 남게 될까//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나는 오독되기 위해 애쓴다// 식탁 위 놓아둔 빵/ 만져보면 돌처럼 딱딱했다”-‘크루아상’ 중 <빵과 시>, 아침달얼마 전까지 ‘나 오늘 너무 슬퍼서 빵 샀어’라는 얘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두고 성격유형지표(MBTI)가 T(사고형)인지 F(감정형)인지를 추측하는 놀이가 인터넷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시인도 그 질문을 남편과 아이에게 던져봤다. 남편은 “질문 자체가 이해 안 가. 슬픈 거랑 빵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라고 했고, 아이는 “왜 슬펐는데?”라고 했단다. 사실 슬픔과 빵처럼 시와 빵도 큰 관계는 없다. 그러나 관련없어...

    2025.06.1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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