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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 [금요일의 문장]“내가 받은 사랑의 재료로 나의 삶을 꾸려가겠다”
    “내가 받은 사랑의 재료로 나의 삶을 꾸려가겠다”

    “삶의 경험들을 재료로”에 밑줄. 나는 잠시 밑줄 아래 작은 화살표를 그려넣고 책의 문장을 바꿔보았다. 내가 받은 사랑의 재료로 나의 삶을 꾸려가겠다, 라고. 손에 잡히는 대로 재료로 삼지 않고 사랑의 재료를 알아보고 골라 쓰겠다는 다짐이었다. <우리의 여름에게>(창비)저자가 받은 “사랑의 재료”는 할머니가 준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한 후 할머니 곁에서 자랐다. 무엇이든 혼자 잘해냈지만, 유독 머리 감기만은 무서웠다. 할머니는 열한 살 손녀를 품에 안고 머리를 감긴다. 어느 날은 왜 머리 감는 걸 무서워하냐며 혼을 내고 또 어느 날은 달래도 보면서. 저자는 할머니가 준 “사랑의 재료”가 “인내의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그저 참는 마음이 아니라 믿음의 다른 말. “대책 없고 허망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나 혼자 머리를 감는 날이 올 거라는 믿음…곧 그리될 것이기에 지치지 않고 반복했던 믿음이라고.”할머니가 준 “사랑의 재료”들은 다른 경험들마저도...

    2024.06.06 20:06

  • [금요일의 문장]“경제발전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블랙홀을 만든다”
    “경제발전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블랙홀을 만든다”

    경제발전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규율에 따라 일하는 위계 조직들 속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적인’ 헌법, 선거제도, 언론의 자유, 인권 보장을 갖춘 사회라 할지라도 경제발전은 일상 한가운데에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블랙홀을 만든다. - <래디컬 데모크라시>(한티재)자국의 정치 체제가 반민주적이라고 자인하는 정권은 거의 없다. 일본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미국 사회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래디컬 데모크라시>에서 ‘민주주의’가 아무 뜻도 전달하지 못할 정도로 남용되고 있다면서 ‘정명(正名)’을 시도한다. 한국이나 중남미 일부 국가의 사례를 들어 경제발전이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것처럼 보는 견해가 있다. ‘민중이 권력을 갖는다’는 민주주의 본래의 정의를 파고드는 러미스는 이 같은 관점을 단호히 거부한다. “경제발전은 몇 가지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다. 민중들이 자유로운 상태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종류의 노동, 노동조건...

    2024.05.30 20:06

  • [금요일의 문장]“영어를 모르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영어를 모르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오늘날 영어를 모르면 그 누구도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간판을 비롯해 메뉴판도 영어로, 키오스크도 영어로, 심지어 강남에 위치한 몇몇 직장에서는 수평적 문화를 위해 영어로 회의한다고 했다. 곧 있으면 집에서도 영어로만…어라, 생각해보니 이미 우리 집은 그러고 있었다. <붐뱁, 잉글리시, 트랩> (네오픽션) 중에서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어보다 영어를 잘해야만 했다. 영어 점수와 등급은 ‘나’의 가치를 판단하고 가능성을 결정했다. “한국 사람들은 태어나 학교를 다니다가 취업할 때까지, 심지어는 은퇴하고 관절염에 무릎이 아파 해외여행을 갈 때까지, 아니 병상에 누워서 디즈니 영화와 HBO 드라마를 볼 수 있을 때까지 영어를 배운다.” 주인공 ‘나’는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22년차다. 자신이 영어를 못해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했고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나’의 영어 공부에 돈을 쏟아붓는다. 게다가 언제부턴가는 집에선 오직 영어로만 이...

    2024.05.23 20:35

  • [금요일의 문장]찰나의 복잡미묘한 감정에 영생을 부여하다
    찰나의 복잡미묘한 감정에 영생을 부여하다

    ‘에테르니스’(etherness)-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둘러보고는 그곳이 지금은 온기와 웃음소리로 가득하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그것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진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느끼는 아쉬움. <슬픔에 이름 붙이기> 중에서사람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공허함을 떠올리는 복잡한 존재다. 복잡미묘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이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 존 케닉은 ‘에테르니스’라는 ‘감정 신조어’를 만들었다. 휘발성이 높은 마취성 화합물을 뜻하는 ‘에테르’(ether)와 단란함이라는 뜻의 ‘투게더니스’(togetherness)가 합쳐진 단어다. 단란함도 결국은 휘발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쉽게 느껴진다.작가 존 케닉은 불완전한 언어의 빈틈을 메우고 싶다는 생각에 2009년 ‘슬픔에 이름 붙이기’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애매모호하더라도 우리 내면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섬세한 느낌들에 감정...

    2024.05.16 20:18

  • [금요일의 문장]“여자라는 아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여자라는 아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와이엇처럼 킴도 남자로 태어났지만 일찍이 두 살 때부터 바비 인형을 갖고 놀며 드레스를 입길 좋아했다. 시간이 흐르며 킴의 부모는 본인이 여자라는 아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깨달았다…“우리가 보기에 킴은 한 명의 여자아이일 뿐이었어요. 골칫거리가 아니라요.”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돌고래) 중에서와이엇은 남자로 태어났으나 2세부터 여성의 자의식을 내보인다. 엄마 켈리는 와이엇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이해와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 전직 군인이자 보수적인 성향의 아빠 웨인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실화를 다룬 책 <소녀가 되어가는 시간>은 와이엇이 가족과 공동체의 지지 속에 트랜스젠더 여성 니콜로 거듭나는 20여년의 여정을 다룬다. 엄마 켈리는 “낙심할 이유가 없었기에 와이엇을 남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지만, 아빠 웨인은 “와이엇이 여아복을 입을 때면 아이를 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랬던 웨인도 신문에 공표하지 않는 방식으로 와이엇이...

    2024.05.09 19:56

  • [금요일의 문장]“어린이는 다 다르지만 어른은 공통점만 찾는다”
    “어린이는 다 다르지만 어른은 공통점만 찾는다”

    “모든 어린이는 다 다르다.(…)하지만 대개 어른은 어린이에게서 ‘보편의 어린이’를 찾으려 한다. 어린이들에게서 각자 다른 점을 보려 하기보다는 어른을 기준으로 해서 어른과 대비되는 어린이들만의 공통된 특성을 찾고 기뻐한다.”<구체적인 어린이>(민음사) 중에서유은실 작가가 쓴 유년동화 시리즈의 제목은 다소 반항적이다. <나도 편식할 거야> <나도 예민할 거야> <나는 망설일 거야> 등이다. 주인공 정이는 허약하고 반찬 투정하는 오빠에게만 엄마가 장조림을 주는 걸 보고 ‘나도 이제 편식할 거야’라고 생각한다. 정이는 엄마가 ‘아무거나 잘 먹는’ 자신에게는 장조림을 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울음을 터뜨린다.아동문학 평론가인 김유진 작가는 <구체적인 어린이>에서 이처럼 우리가 잘 몰랐던 어린이의 모습을 소개한다. 그는 “아동문학에서 만나는 어린이가 늘 같다면 그건 가짜 어린이일 수 있”다고 말한다. “모...

    2024.05.02 20:06

  • [금요일의 문장]“그는 가질 뻔했던 것이 사라졌단 사실을 알았다”
    “그는 가질 뻔했던 것이 사라졌단 사실을 알았다”

    그는 자기가 가질 뻔했던 것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경험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고 혹여 온다 해도 자기가 물리치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힘든 일이 닥치면 그는 우주의 먼지로 작아지면서 곤경을 벗어날 수 있었다.”<힘내는 맛>(문학동네) 중에서서른여섯 살 영업사원 한철에겐 부양해야 할 부모가 있고,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하는 사고뭉치 동생이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자신을 꾹꾹 눌러가며 살아온 한철은 어느 날 6주 과정의 무료 연극 강좌에 참여하게 된다. “연기를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직접 무대에 서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철은 이내 연극에 빠져든다.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른 채 줄곧 원하던 것을 방금 손에 넣은 것 같았다.” 한철은 연극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강좌 마지막 공연 날 이를 연출자에게 말하기로 한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한철은 뜻밖의 관객을 만난다.처음 가족을 벗어...

    2024.04.25 20:27

  • [금요일의 문장]“한국 사회는 개인주의자를 가만히 보지 못한다”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자를 가만히 보지 못한다”

    개인주의자는 철저하게 자기 본위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살 때 힘들지만 행복하다. 그러나 한국사회에는 자기와 다른 기준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만히 보지 못하는 획일주의에 물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타적 개인주의자>(파람북) 중에서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정수복은 개인주의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기 전인 2007년에 개인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책을 썼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생각의나무)이라는 책에서 그는 “개인이 존중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에서 집단의 논리 앞에 개인을 줄 세우는 오래된 문법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그로부터 14년 후, 정 작가는 <이타적 개인주의자>에서 다시 한번 개인주의에 대해 논한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르다. “개인주의자는 전통과 관습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대세나 다른 사람의 생각에 쉽사리 동조하지 않는다.” “독자적으로 사유하는 생각의 주체”이자 “자기 자신과의 진실...

    2024.04.18 20:16

  • [금요일의 문장]“도서관에 잘 읽히는 베스트셀러만 두라고?”
    “도서관에 잘 읽히는 베스트셀러만 두라고?”

    도서관에 “모두가 읽고 싶어 하는 베스트셀러만 비치하고 읽히지 않는 책은 버려라. 그렇게 하면 도서관 방문자 수가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지성과 인연이 없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근래 그런 사람들이 행정 요직을 교육 및 문화 예산을 집행합니다.”<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유유) 중에서“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스스로를 ‘활자 중독자’라 여기는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공공도서관 사서들 앞에서 강연을 하다가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그는 도서관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니며, 가능하다면 하루 중 반 이상 도서관에 사람이 없는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도서관이란 “세계는 미지로 가득한 곳이라는 사실에 압도당하기 위한 장소”이자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를 가르쳐 주는 장소”라고 말한다. 우치다는 도서관에까지 상업성과 인기영합주의를 운영 기준으로 요구하는 현 세태를 비...

    2024.04.11 22:05

  • [금요일의 문장]“시간을 어떻게 나눌지가 사랑의 관건”
    “시간을 어떻게 나눌지가 사랑의 관건”

    “결국 ‘사랑의 분배’ 문제란 사실 ‘시간의 분배’ 문제와 다르지 않은 셈이기도 하다. 출퇴근하고 집안일하느라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또 아이에게 쓰고 나면, 혼자 있는 시간도 부족하고, 서로에게 쓸 시간과 여력도 많이 남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부족한 자원을 어떻게 나눌지가 요즘 우리 사랑에서 관건인 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육아>(한겨레출판) 중에서지난 2월 출간된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정재훈, 21세기북스)에 따르면 태어나는 아이 중 절반이 고소득층 자녀인 것으로 알려졌다. 책에서 인용한 ‘소득 계층별 출산율 분석과 정책적 함의’ 연구보고서는 저소득층일수록 아이를 낳지 않는 현상이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소득격차는 노동시간 격차로도 이어진다. 저소득층 노동자는 사회경제적 압력에 의해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 십상이다.<그럼에도 육아>의 정지우 작가는 “사랑의 가장 핵심 재료는 ...

    2024.04.0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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