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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 [금요일의 문장]“지식인은 정부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식인은 정부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과 동기, 숨은 의도를 파악해 정부의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식인의 자격>(황소걸음) 중에서세계적 석학이자 진보지식인으로 꼽히는 노엄 촘스키는 날카로운 언어로 지식인의 책무를 강조하는 글을 써왔다. 서른아홉 살이던 1967년, 그는 ‘뉴욕리뷰오브북스’에 ‘지식인의 책임’이라는 에세이를 게재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해 지식인들이 “미국의 행동을 경악스러울 정도로 순진하게 받아들인다”며 날선 비판을 퍼부었다. 그는 “지식인의 책임을 고려하면,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고안하고 분석하는 지식인의 역할에 무엇보다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촘스키는 현시대 지식인을 구성하는 주류를 ‘학자-전문가 집단’, 즉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본다. 그는 “지식인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지위에 따른 특권을 누리”고 있다며,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드러내는 것은 지...

    2024.03.21 22:19

  • [금요일의 문장]“비건,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금기”
    “비건,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금기”

    그렇다면 코미디언이 가장 두려워하는 관객은 누구일까? 정답, 비건이다. 본인이 피곤하게 살기로 했으면 잠자코 있을 것이지 왜 웃음이라는 사치를 바란단 말인가? <적당한 실례>(은행나무) 중에서비건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저자가 한 말이다. 저자는 자기소개를 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웃는다고 한다. “비건이고 코미디언이라고요?” 마치 비건의 정체성과 코미디언의 정체성이 공존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역시 고기를 못 먹어서인지, 잔뜩 예민한 얼굴을 하고 와서는 웃기는커녕 얼마나 말이 많은지. 하는 농담마다 되지도 않는 딴지를 걸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들기 일쑤다.”이런 편견이 무색하게 저자는 ‘비건’을 소재로 시종일관 웃긴다. 웃음의 소재는 ‘비건’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병원에 입원하자 청혼하듯 손을 잡으며 ‘고기 먹자’고 말한 엄마, 감기에 걸려도 화를 내도 말라도 살이 쪄도 ‘비건이라 그렇다’며 핀잔을 주는 사람...

    2024.03.14 21:24

  • [금요일의 문장]“서문에 불안이 깃든 책이 흥미롭다”
    “서문에 불안이 깃든 책이 흥미롭다”

    “그리고 서문에는 불안이 깃들어 있다. 이미 위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듯, 이미 위대하게 태어난 책은 없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서문에서부터 이런 불안·초조함이 엿보이는 책들이 높은 확률로 훨씬 흥미로운 세계를 내 앞에 펼쳐 보여주었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유유) 중에서사람들이 책을 점점 더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는 문해력 대위기 시대를 맞았다고들 말한다.과연 그럴까?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에서는 이 당연해보이는 말들에 반문을 제기한다. “어쩌면 핵심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읽고 싶은 글을 접하기 힘들다는 사실 아닐까?”라고. 저자 김지원은 요즘 사람들이 결코 읽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재미없는 글·가치 없는 글·어딘가에서 복사-붙여넣기 해 온 출처 없고 신뢰성 없는 글이라고 말한다.좋은 글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책을 집어드는 것이다. &...

    2024.03.07 21:34

  • [토요일의 문장] 계속 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계속 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이대로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 돌아갈 것인가. (중략) 등단이라는 과정을 거쳐 작가가 되는 것에 큰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 생각은 접어두고서라도 여태껏 내가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일종의 매듭이 필요했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길은 어쨌거나 계속 ‘쓰는’ 것이었다.”<멜라지는 마음>(현대문학) 중 소설가 김멜라의 에세이 <멜라지는 마음> 마지막 즈음에 10여년 전 작가 가 단편소설 ‘홍이’를 쓰면서 끙끙대던 시기의 마음이 적혀 있다. 몽상과 빈틈의 시간에 책을 읽고 써오다 서른이 넘고 보니 갈림길에 당도해 있었다는 것.작가는 갈림길에서 능숙하거나 치열하게는 아니어도 ‘글을 쓰며 살겠다’는 문장에 기대어 이리저리 부딪치며 삶을 살아나갔다고 했다. 또 글을 쓰지 않더라도 자신의 첫번째, 가장 소중한 것을 바로 세우며 살겠다는 다짐을 적었다.2024 경향신문 신춘문예의 접수와 심사가 모두 끝났다. 새해 ...

    2023.12.29 20:11

  • [토요일의 문장] “그저 존재함의 재능”
    “그저 존재함의 재능”

    중증 장애를 지닌 아이의 부모는 썼다. 중증 장애를 지닌 아이를 자녀로 두는 일은 모든 부모를 철학자로 만든다고. 만약 당신이 이미 철학자이며 (중증 인지장애를 포함하여) 여러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어떤가? 당신은 더 겸손한 철학자가 될 것이다. 중증 장애를 지닌 아이의 부모는 모두 철학자가 되는데 그 일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로이 탐색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의존을 배우다>(김준혁 옮김, 반비) 중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장애학과 돌봄 분야 이론가 에바 페더 키테이는 “(딸 세샤의) 상당한 인지장애와 신체적 장애는 내가 전문 철학자가 된 이래 철학에 대한 내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고 말한다. 장애학을 철학에 끌어와 “세샤의 자리”를 만든다.기존 철학은 의존하는 이들을 무능하고, 미숙하며 도태된 존재로 여긴다. 플라톤은 ‘결함이 있는 아기’는 죽도록 놓아두라고 명령했다. 로크와 칸트는 이성이 모자란...

    2023.12.22 21:46

  • [토요일의 문장] “그러니까 왜 기어 나왔어”
    “그러니까 왜 기어 나왔어”

    “그러니까 왜 기어 나왔어. 나는 다른 영상을 더 보고 스크롤을 내렸다. 또다시 닥치는 대로 보게 될 것이다.” <전자적 숲; 더 멀리 도망치기> 민음사동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한자리를 계속 맴돌거나 지신의 배설물을 먹는 등의 목적 없고 지속적인 행동을 ‘정형행동’이라고 한다. 무한경쟁을 하라고 채찍질하면서도 마음 건강을 챙기라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나오는 기묘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6편의 시와 7편의 소설 모음집 <전자적 숲; 더 멀리 도망치기>에는 유튜브 쇼츠 영상을 하루 종일 돌려보는 인간의 행동을 동물의 ‘정형행동’에 비유하는 단편소설이 나온다. 서이제의 ‘더 멀리 도망치기’에서 주인공 ‘나’는 폭력적인 인물 ‘종’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종’과 경마를 하고 동물원에도 간다. 동물원에서 늑대를 만난다. “철창 안에 갇힌 늑대는 아까부터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철창 앞을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던 것...

    2023.12.15 21:36

  • [토요일의 문장] “작은 행동이 쌓여 차이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은 행동이 쌓여 차이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마르크스가 백 년도 더 전에 (포이어바흐에 맞서) 주장했듯이, 중요한 것은 세계의 끔찍함을 단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조금씩 조금씩, 관대함에서 나오는 한 작은 행동이 연이어 나와 수천만의 행동으로 쌓여 진정한 세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만약 세상이 정의롭지 않고, 앞으로도 결코 정의롭지 않을 것이라면, 그리고 심지어 우리 중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비난(모두 오늘날 너무나 적절한 비난)들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 인간 조건의 개선에 우리의 자원을 쓰지 않기로 의도적으로 결정했다”는 비난 말이다. <정의라는 감정에 대하여>(김영미 옮김, 오도스) 중에서미국 철학자 로버트 C 솔로몬은 ‘우리’가 정의의 실행을 제도나 시스템에 너무 일임하면서, 정의에 대한 개인의 책임이 사라졌다고 본다. 냉소주의도 퍼졌다. 그는...

    2023.12.08 22:49

  • [토요일의 문장] “지루한 겨울…동면이 최상이다”
    “지루한 겨울…동면이 최상이다”

    “길고 지루한 겨울을 어떻게 빨리 감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곰에게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동면이 최상이다. 깨어 있어봐야 넷플릭스나 유튜브 세상에서 헤매다 황폐해지니 차라리 잠 속으로, 꿈속으로 망명하자.” <겨울 간식집>(읻다) 중<겨울 간식집>은 뱅쇼, 귤, 다코야키, 만두, 호떡, 유자차 등 겨울 간식을 테마로 한 소설집이다. 작가 여섯 명의 짧은 소설과 겨울에 관한 에세이가 덧붙여 있다.김성중 작가는 귤도 아니고, 흔히 귤실로 불리는 ‘귤락’을 소재로 썼다. 속초로 휴가온 30대 ‘나’는 우연히 카페에서 “그런데요”라며 말을 거는 20대의 이야기를 듣는다. 언제나 친절한 40대 사장까지. 남자 셋은 귤락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누가 먼저 귤 껍질을 까는지 시합한다. 계속 만날 사람들이 아닌데 이들은 귤락을 까면서 깊은 속내를 나눈다. 이들에게 속초의 카페는 겨울잠을 지내는 동굴 같은 곳이었을 터. 처음 만나는 이에게도, ...

    2023.12.01 20:51

  • [토요일의 문장]“커피는 매일 가짜 리셋 버튼이 되어준다”
    “커피는 매일 가짜 리셋 버튼이 되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커피를 준비하는 건 일종의 의식이다. 내가 지금부터 자리에 앉겠다는 다짐이다. 자리에 앉아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겠다는 신호다. 아침에 일어나 에스프레소 머신의 전원을 켜거나 커피 메이커에 원두를 한 스푼 한 스푼 넣으면서 느끼는 것은 나의 살아있는 몸과 그 몸이 사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다.” <겨울의 언어>(웅진지식하우스) 중작가·독서가·애서가인 김겨울이 자신에 관해 쓴 산문집 <겨울의 언어>의 한 대목이다. 날이 추워지고 이불을 박차고 나오기 힘들어지는 계절의 아침이 찾아오고 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향한 생각은 더 간절해진다. 김겨울은 “커피는 카페인 성분 때문에 실제로도 연료로 기능하지만, 그보다는 마음의 연료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김겨울은 자신을 커피로 평생 속여왔다고 했다. 커피 덕분에 개운해지고 모든 게 리셋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김겨울은 리셋을 넘어 아예 새로운 시작, ‘뉴-셋’이라는 단어를 썼...

    2023.11.17 21:10

  • [토요일의 문장]“차드의 15세 소녀 15명 중 1명은 아이 낳다가 죽는다”
    “차드의 15세 소녀 15명 중 1명은 아이 낳다가 죽는다”

    전 세계에서 날마다 808명의 여성이 임신과 출산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이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는 출산 수 10만건당 임산부 사망 건수를 가리키는 임산부 사망률이다. (…)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임산부 사망률이 542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일반적으로 저소득 국가들의 임산부 사망률은 462이다. 차드의 15세 소녀 15명 가운데 1명은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 <80억 인류, 가보지 않은 미래>(김병순 옮김, 흐름출판) 중로즈칼리지 정치학 교수인 제니퍼 D 스쿠바가 책 3장 ‘죽음은 불평등하다’에 쓴 내용이다. “산모들이 보건의료 기관을 찾아갈 수 있거나 아이를 낳을 때 분만 보조를 받을 수 있다면, 임산부 사망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소득 국가의 임산부 사망률은 11이다. 북미는 그 수치가 16인데, 흑인 여성이 임신 또는 출산 관련 합병증으로 죽을 확률이 백인 여성보다 243% 높다. 스쿠바는 출생, 죽음, 이주라...

    2023.11.1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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