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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림으로 쉽게 읽어볼까
프루스트의 마들렌베티 본 지음 | 신유진 옮김 알마 | 60쪽 | 2만3000원“나는 마들렌 한 조각을 녹인 차 한 모금을 입으로 가져갔다.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온몸을 떨면서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별한 일에 주목했다. …이토록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마들렌 효과’ ‘프루스트 현상’이란 말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맛이나 냄새 등을 통해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설명하는 말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표적 장면에서 유래했다.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는 순간, 미각을 통해 어린 시절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경험을 한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세기 세계문학사의 걸작으로 꼽히지만 7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뚜렷한 줄거리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 -
긍정 마인드로 세상과 소통…작은 인형의 ‘큰 용기’
작은 도자기 인형의 모험최정인 글·그림 | 브와포레 64쪽 | 2만2000원작은 바구니 안의 도자기 인형은 넓은 세상이 궁금하다. 비록 낡은 촛대와 때 묻은 인형, 오래된 책들 사이에서 할인 표시가 붙은 채 놓여 있지만, 인형은 세상이 자신을 위해 멋진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믿는다.어느 비 오는 날 골동품 가게 주인이 급히 짐을 정리하다 인형을 바닥에 떨어트리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인형은 말 없는 소년, ‘야간비행사’를 자처하는 회색곰 인형, 참새, 노래하는 여치, 청설모를 만난다. 인형은 마침내 개와 함께 산책 나온 소녀의 눈에 띈다. 인형을 발견한 소녀는 먼저 인사한 뒤 해가 드는 창가에 인형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탁자 한쪽에 목발이 있는 것으로 봐서 소녀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작은 도자기 인형의 모험>은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작은 인형이 세상을 떠돌면서 겪는 일을 그렸다. 이 인형은 바닥에 떨어져도 주인이 ... -
늑대 부부에게 입양 보낸 동생 찾아…안개 숲으로 떠나요
안개 숲을 지날 때송미경 글·장선환 그림봄볕 | 104쪽 | 2만원연이는 기차에서 깜박 잠이 들어 종착역에 도착했다. 객실을 청소하던 두더지의 성화에 눈을 떴다. 역에는 한참 전에 어둠이 내렸다. 연이 손에는 동생 설이의 주소가 적힌 종이가 들려있다. 연이는 동이 트기 전 양부모인 늑대 부부의 집에 있는 설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제때 가지 못하면 설이는 늑대 부부와 함께 산으로 떠날지도 모른다. 역전에서 우연히 만난 사슴이 연이를 안내하겠다고 나선다. 사슴은 연이의 소유였던 캐러멜색 목도리를 둘렀다. 별다른 방법이 없던 연이는 사슴을 따라 안개 자욱한 숲으로 들어선다. 동생을 구하러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긴박하고, 연이가 정체 모를 동물들에게 이끌려 다닌다는 점에서 기괴하다. 목탄을 주조로 해 어스름하게 그려진 그림은 쓸쓸함을 자아낸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이후 드는 감정은 따뜻함과 용기다.어느 날 어른들이 갑자기 동물로 변해버... -
물귀신이 오염된 물을 정화한다는 신박한 상상
‘오늘의 할 일’이라는 평범한 제목을 지어놓고선 물귀신이 아이를 ‘납치’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능청스러운 그림책이다. 하지만 물귀신이 아이를 데려가는 이유를 알고나면,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제목이 아주 시급한 이야기로 들린다. 기다란 머리채를 늘어뜨린 물귀신들의 ‘할 일’은 바로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물가에서 캔, 과자봉지 등 쓰레기를 놀이 삼아 건져올리던 아이의 나뭇가지 끝에 기다랗고 검은 물건이 걸린다. 비닐봉지인가 싶지만 바로 다음 장, 눈이 퀭한 물귀신의 머리채가 쑤욱 수면 위로 올라온다. 물귀신은 아이를 데리고 물속 나라로 간다. 물귀신은 사실 아이를 납치한 게 아니다. 갈수록 오염되는 물을 정화하느라 바쁜 물귀신 나라에 일손이 부족해 하루 동안 ‘특별채용’한 것. 아이에게 아기 물귀신들을 돌보고, 일귀신들의 휴식과 훈련을 돕고, 어린이 물귀신들과 함께 교육을 받고 노는 ‘오늘의 할 일’이 주어진다.... -
터널 속 무지갯빛 고리 지나···별들과 함께 달리면
50번 고속도로 환상 여행 강전희 글·그림|진선아이|76쪽|2만5000원바다를 보기 위해 구비구비 산맥을 통과해 동해로 향하는 영동 고속도로(50번 고속도로)를 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진 터널, 고속도로를 호위하듯 둘러싼 웅장한 산맥들은 도시와 일상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향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50번 고속도로 환상 여행>은 일상에서 이탈한 감각을 기묘한 판타지로 그려낸 작품이다. 가족은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조용히 집을 나서 고속도로를 달린다. 한밤의 고속도로는 지루한 공간이 될 수 있지만, 작가에겐 신비롭고 으스스한 상상을 펼치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가 된다.입을 크게 벌린 터널 속으로 들어가자, 자동차는 공중으로 떠올라 밤하늘의 별자리 사이를 신나게 누빈다. 급류에 떠밀려 기다란 파이프 속을 빠져나오자, 밤 풍경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공장 굴뚝은 거대한 관악기가 되... -
촘촘하게 찍은 점들로 친구를 죽음에서 건질 수 있다면
점과 선과 새조오 지음 창비 | 56쪽 | 1만6000원수많은 새들이 하늘을 날다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다. 미국에선 매년 10억마리, 캐나다에선 매년 4000만마리가 희생당한다. 한국에서도 매년 800만마리가 건물 유리창이나 투명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다. 충돌을 방지하는 설비를 ‘버드 세이버’라고 한다. 유리에 일정 간격의 점을 찍어 새들이 피하게 하는 것이다.그림책 작가 조오의 <점과 선과 새>는 고층 건물로 둘러싸인 도심을 날아다니는 까마귀와 참새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느 날 까마귀와 놀다 헤어진 참새는 유리창을 피하지 못하고 부딪힌다. 다친 참새를 돌보던 까마귀는 오랫동안 꿈꾸던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도시 곳곳의 유리창에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다른 새들도 날아와 점과 선을 더하면서 도시는 환상 속 형형색색의 축제처럼 빛난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던 까마귀는 유리창에 작은 점 하나를 희망처럼 남긴다.... -
자유로운 그림 따라…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들
생각한다잉그리드 고돈 그림 | 톤 텔레헨 글 안미란 옮김 | 롭 | 104쪽 | 3만4000원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열한 책은 어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멈추려고 할수록 계속 고개를 쳐드는 생각….벨기에 일러스트레이터 잉그리드 고돈의 그림을 보고 네덜란드 시인이자 동화작가 톤 텔레헨이 떠오른 ‘생각’을 쓴 책 <생각한다>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들로 채워진 책이다. 풍부한 표정의 다채로운 사람들을 그린 고돈의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상상의 길 사이로, 텔레헨은 자신의 사유를 넓고 깊게 펼쳐보인다.어딘지 시무룩해 보이는 아이, 불안한 표정의 남성, 새초롬한 여인, 순하지만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눈매의 개…. 일러스트는 재미있고 엉뚱하기도 하며, 사람들 중 내 모습 하나쯤은 찾아낼 법한 공감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우리 자신의 수많은 변주일지도 모른다. 텔레헨은 그런 공감과 변주의 순간을 시적으로 포착한다.... -
14분6초 선율 위 축제의 장…아니, 이건 아마도 전쟁
춤을 추었어이수지 지음 | 장영규 음악 안그라픽스 | 66쪽 | 3만원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춤을 추었어>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최소 14분6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은 음악과 함께 보는 책이기 때문이다. 책 두 번째 페이지 하단에 모리스 라벨의 춤곡 ‘볼레로’의 큐알(QR)코드가 있다. ‘범 내려온다’로 유명한 이날치의 장영규 작곡가는 이 곡을 책의 구성과 똑같이 18개 파트로 쪼개서 편곡했다. 큐알 코드를 찍으면 책의 순서에 맞게 음악이 재생된다. 각 파트별 음악의 길이는 짧게는 45초, 길게는 1분13초다.책의 주인공은 작은 아이다. 아이는 첫 장 ‘출발’에서 음표 위에 검은 공을 튕긴다. 스네어 드럼 소리가 잔잔하고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보면 정말 공이 음표 위를 통통 굴러가는 것만 같다. <춤을 추었어>라는 제목대로 아이는 계속 춤을 춘다. 아이를 둘러싼 사마귀와 개미도, 물고기도, 나비도, 개구... -
검은 돌멩이가 품은 건…백만년간 쌓인 색색의 기억
나는 돌이에요지우 글·그림 문학동네 | 60쪽 | 1만8000원돌은 백만 년을 살았다. 아마 별일이 없다면 또 백만 년을 살 것이다. 돌은 혼자 움직이진 못하지만 백만 년 뒤엔 지금 자리에 있진 않을 것이다. 당장 내일 없을 수도 있다. 돌은 늘 누군가의 발에 차여 구덩이에 빠지고, 물에 잠겼다가 더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고, 그러다 다시 햇빛이 있는 곳으로 나온다.<나는 돌이에요>는 돌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땅에 작은 돌 세 개가 놓여 있다. 돌은 백만 살이다. 돌인 줄 알았던 것에서 갑자기 싹이 돋아난다. 돌이 아니라 콩이었다. 콩잎이 하나둘 돋아나자 이번엔 또 다른 돌인 줄 알았던 것에 금이 간다. ‘짹!’ 우렁찬 소리와 함께 새가 태어난다. 돌도, 콩도 아니라 새알이었다. 콩이 열매를 맺고, 새가 알을 깨고 날아가는 동안 진짜 돌은 그 자리에 가만히 존재한다. 지나가던 개의 발에 차여 돌은 물이 고인 구덩이에 빠진다.주위의 것들... -
‘일방적 계몽’은 없다…얽히고설키며 풍성해지는 지혜
아마존을 수놓은 책 물결이레네 바스코 글·후안 팔로미노 그림김정하 옮김 | 봄볕 | 40쪽 | 1만6000원한 젊은 선생님이 첫 발령을 받는다. 부임지는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 있는 라스 델리시아스 마을. 가는 길은 험하고 멀다. 그래도 신임 선생님은 열의가 넘친다. 책을 잔뜩 챙겨 버스를 서른두 시간, 배를 일곱 시간 타고 마을에 도착한다. 멀쩡한 벽도 없는 작은 학교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의 수업과 책을 좋아한다. 마을 어른들도 책에 호기심을 갖는다.여기까지는 익숙한 ‘훈훈한 이야기’에 가깝다. 하지만 이내 책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은 “커다란 뱀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며 수업을 중단하고 높은 곳으로 피신한다. 선생님은 지리 수업을 해야 한다고, 커다란 뱀 같은 건 전설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학생들은 사라지고 없다. 천둥 번개 소리에 덜컥 겁이 난 선생님도 언덕 위로 올라가고, 그곳에서 정말 ‘커다란 뱀’을 만난다. 무섭게 불어나 집도 논밭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