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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바라보면 좋겠는데, 새 친구 생기면 어쩌지
내가 안 그랬어!라이언 T 히긴스 지음 | 노은정 옮김토토북 | 48쪽 | 1만5000원노먼은 몸에 가시털이 난 호저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무 밀드레드다. 노먼은 밀드레드가 아주 좋아서 하루 종일 그 옆에서 산다. 함께 체스를 두고 공놀이도 한다. 밤이 되면 등잔불을 달고 밀드레드의 가지에 올라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는다. 한마디로 둘은 단짝 친구다.문제가 생긴다. 어느 날 밀드레드 옆에 작은 나무가 하나 자라나기 시작한다. 쑥쑥 자라며 조금씩 더 밀드레드와 가까워지는 새 나무를 보며 노먼은 걱정되기 시작한다. “새 나무가 밀드레드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 하면 어떡하지?” “밀드레드가 새 나무를 좋아하게 되면 어떡하지?” 우려는 곧 현실이 될 기세다.노먼은 방법을 떠올린다. 새 나무를 파서 저 멀리 심어 놓기로 한다. 그럼 노먼과 밀드레드는 다시 옛날처럼 단짝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어두운 밤, 노먼은 새 나무를 멀리 보내버린다. 노먼과... -
가장 어두울 때 만난…마음 털어놓을 친구 한명의 소중함이란
힘내, 두더지야이소영 글·그림글로연 | 50쪽 | 1만8000원그림책 <힘내, 두더지야>의 두 주인공 두더지와 사슴벌레는 일이 가장 안 풀릴 때 서로를 만난다.두더지는 성실한 농부다. 당근을 키운다. 땅을 열심히 일구고, 물도 열심히 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두더지가 키우는 당근은 다른 농부들의 당근에 비해 너무 작다. 당근 시장에서 ‘달달한 두더지네 당근’은 별로 인기가 없다. 다들 두더지네 당근보다 열 배는 큰, 아니 두더지보다도 큰 대형 당근만 찾는다. 시장에 나간 날이면 두더지는 애지중지 키운 자신의 당근이 보잘것없게 느껴진다. 거의 팔지 못한 당근을 다시 수레에 싣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밤. 두더지는 처치곤란인 당근을 믹서에 갈아 당근주스를 만든다. 고운 빛깔의 당근주스가 담긴 병이 하나둘 늘어갈 때마다 두더지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결국 두더지는 당근더미를 앞에 두고 엉엉 울어버리고 만다.사슴벌레는 숲속의 상담가다. 친... -
화해한 친구의 문자 “나올래?”…꾀병 중인 아이는 어떻게 할까
꾀병 사용법 정연철 글·이명하 그림길벗 어린이 | 56쪽 | 1만5000원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시작부터 꼬이는 하루가 있다. <꾀병 사용법> 주인공의 하루는 온 가족이 늦잠을 자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우유라도 마시고 가”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양치를 하며 허겁지겁 가방에 교과서를 챙긴다. 정신없이 뛰어서 학교에 가지만, 교문은 코앞에서 닫힌다. 지각생이 되어버렸다.작은 재앙은 끊이지 않는다. 쉬는 시간엔 친구랑 장난을 치다가 그만 난간에 있는 화분을 떨어뜨렸는데 와장창 깨지고 만다. 혼자 한 것도 아닌데, 선생님은 주인공만 혼낸다. 친구를 살짝 밀었는데, 친구가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꽝 엉덩방아를 찧는다. 주인공은 다른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는 통에 사과할 타이밍을 놓친다. 친구는 토라져 다른 친구와 집에 가버린다. 친구가 신경 쓰여 수업 시간에 ‘멍을 때리다’ 선생님한테 또 지적을 받는다. 온종일 혼나기만 하는 하루... -
갈라진 작은 손…면화 산업 속 보이지 않는 아동 노동
나는 요정이 아니에요이지현 글·그림사계절 | 40쪽 | 1만4500원목화 열매가 터지고 뽀얀 목화솜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보면 놀랍다. 단단한 열매 안에서 터져나오는 보드라운 솜의 대비가 경이롭게 느껴지고 보슬보슬한 표면이 포근한 솜이불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목화솜을 따는 일은 예로부터 악명이 높다. 면의 원료가 되는 목화는 식민지 플랜테이션의 대표 작물이었고, 미국 남부에서 흑인 노예의 노동력을 착취해 수확했다. 오늘날 부드러운 목화솜을 우리가 사용하는 옷과 이불로 만드는 일은 하청의 공급사슬을 따라 먼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나는 요정이 아니에요>는 면화산업의 공급사슬 맨 끝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들을 다룬 그림책이다. 아이들은 세계적으로 3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용된 면화산업 시스템의 끄트머리에 있다. 고용주들은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 작고 부드러운 손가락을 선호한다.“사람들은 볼 수 없지만 나는 있어요.”목화... -
이리 들어와, 함께 모여서 눈보라를 피해 보자
눈보라가 치던 날세린 클레르 글·친 렁 그림 | 김유진 옮김책과콩나무 | 48쪽 | 1만4000원평화로운 숲속 마을에 눈보라가 들이닥친다. 평범했던 날이 위태로운 날로 바뀐다. 이를 대비해 땔감을 쌓고 먹을 것을 모은 동물들은 집 안에 머물며 어서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뿌연 안개 속 세찬 바람을 뚫고 낯선 곰 형제가 마을에 나타난다. 곰 형제는 자신들이 가진 차를 내밀며 난롯불이나 과자, 불빛을 나눠줄 수 없냐며 묻는다. 이방인이 두려운 동물들은 형제의 부탁을 외면한다.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여우 가족도 거절하기는 마찬가지. 곰 형제가 체념하고 마을을 떠나려고 할 때 아이 여우가 이들에게 작은 등불을 건넨다. 곰 형제는 등불을 준 여우에게 매우 고마워한다. 날이 저물고 날씨는 점점 안 좋아지지만 곰 형제는 좌절하지 않는다. 여우가 준 등불에 의지해 눈으로 피신처를 만든다. 그사이 안전할 줄 알았던 여우네 집이 무너진다.... -
슬픔의 한가운데로 떠나는 모험
슬픔의 모험곤도 구미코 글·그림|신명호 옮김|여유당|40쪽|1만5000원누구나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상실이 주는 아픔을 잘 알기에, 어른들은 어린이가 슬픔에 빠지는 걸 원치 않는다. 하루빨리 슬픔에서 빠져나와 밝음과 명랑함을 되찾길 바란다. 하지만 어른들은 알고 있다. 슬픔의 가장 깊은 곳을 온전히 통과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회복 또한 요원하다는 것을.곤도 구미코의 <슬픔의 모험>은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후 슬픔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아이의 마음을 글 없이 그림과 소리로만 전달한다. 본문에 텍스트는 단 두 문장 뿐이다. “오늘 캔디가 죽었다”로 시작해 “오늘 캔디는 죽었다”로 끝난다. “캔디가 죽었다”가 “캔디는 죽었다”는 문장으로 바뀌기까지 아이가 경험한 감정의 진폭과 슬픔의 높낮이를 책은 놀랍도록 풍부하고 섬세한 그림으로 전달한다.처음 나오는 그림은 ... -
아무도 누구의 그림자로 사는 건 원치 않아
어느 날, 그림자가 탈출했다미셸 쿠에바스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김지은 옮김|책읽는곰|48쪽|1만4000원그림자가 없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상상력을 자극한다. 옛이야기 속 그림자가 없는 존재는 유령이나 귀신으로 그려진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소개하며 그림자를 상실한 상태를 ‘사람자격’에 가해진 손상으로 해석했다. 그림자는 인간 자격의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어느 날, 그림자가 탈출했다>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그림자를 바라본다. 그림자는 인간에 예속된 존재이길 거부하고, 자유의지를 갖고 독립해 존재하고자 한다. 주인에게 예속된 상태, 주인의 반영으로만 존재하던 그림자는 이제 자신이 가고픈 곳으로 갈 수 있고, 되고픈 존재가 될 수 있다.“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그림자 스무트는 지난 7년 반 동안 ... -
사라진 골목, 사라진 마을···길냥이 시선으로 본 도시의 뒷모습
집으로 가는 여정표현우 글·그림 | 노란상상 | 48쪽 | 1만7000원책은 혼잣말로 시작한다. “내 가 살 던 곳 은 사 라 졌 다.”한 바닥 펼쳐진 종이 위에 덩그러니 쓰인 현실 인식이 막막하다. 어느 날 집이 무너져 내려 살 곳을 잃은 고양이는 쫓기듯 더 높은 동네로 오른다. 그곳에서 가끔 저 멀리 떠나온 곳을 바라본다. 한때 그의 집이던 그곳에는 어느새 높은 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층 건물이 솟아 있다. 고양이는 말끔해진 아랫동네와 다르게 낮고 낡은 집들이 군데군데 금 간 담장을 공유하는 달동네를 거닌다. 어쩌면 여기서는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서.그러나 이 동네에서도 또 집이 하나둘 부서진다. 다시 떠날 때가 왔구나. 고양이는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던 찰나 어디선가 작고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떠돌이 고양이는 가녀린 비명을 외면하지 못한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힘겹게 따라... -
‘아낌없이 주는 나무’ 뒤에 숨은 기가 막히고 속이 뚫리는 156편의 시+그림
폴링 업셸 실버스타인 지음 | 김목인 옮김 | 지노 | 196쪽 | 2만2000원<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쓴 셸 실버스타인의 ‘시+그림’책이다. 실버스타인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으로 1996년 미국에서 초판 출간됐다. 개정판에는 미공개 작품 12편을 포함해 156편이 실렸다.“신발 끈을 밟는 바람에/ 나는 위로 떨어졌어-/ 저 지붕들 꼭대기를 지나/ 저 동네 위를 지나/ 저 나무 우듬지들을 지나/ 저 산 너머로/ 저 위 색깔들이/ 소리와 뒤섞이는 곳으로.”(‘폴링 업’ 일부)‘위로 떨어지다’라는 뜻의 표제작 ‘폴링 업(Falling Up)’은 평범한 생각을 뒤집고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의 문을 연다.모자의 챙이 엄청나게 넓어서 주변에 그늘을 만드는 소녀, ‘말랐으니 더 먹으라’는 체중계의 텍스트와 달리 배가 너무 나와 정작 체중계를 내려다볼 수 없는 중년 남자의 그림, 가구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주인 몰래 가구들끼리 ... -
아이디어는 ‘어렴풋이, 살그머니’ 다가온다
세상 모든 창작자들의 고민은 아마 이렇지 않을까? 뭐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 어떻게 하면 지난번과 조금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기막힌 아이디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쓸 만한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니 참 큰일이다.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자벨 심레르도 이런 생각들로 밤을 여러 번 지새웠던 것 같다. 그는 <아이디어: 창작을 만드는 작은 동물들>에서 아이디어가 찾아오는 순간을 섬세하게 담아냈다.아이디어는 원할 때 나타나지 않는다. 그토록 찾아헤맬 땐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다가, 포기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쯤 “어렴풋이, 살그머니” 다가온다. 처음부터 명확한 아이디어는 없다. 좋은 아이디어일수록 어렴풋하다. 저자가 책 첫 장에 그린 완성되지 못한 사슴 그림처럼.아이디어를 기다리는 저자의 모습은 텅 빈 의자로 표현된다. 44종의 동물은 작가 내면의 아이디어들이다. 의자 주위를 맴도는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