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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 [책과 삶] 보지 못하지만 더 많이 보는 이로부터
    보지 못하지만 더 많이 보는 이로부터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조승리 지음세미콜론 | 288쪽 | 1만7000원<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쓴 시각장애인 작가 조승리가 두 번째 수필집을 냈다. ‘상실된 감각을 핑계 대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삶’을 담았다.책을 읽다 보면 작가에게 상실된 감각이 있다는 걸 까먹곤 한다. 작가는 분명 보지 않는데 ‘보았다’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촉수가 넓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각 외 모든 감각을 동원해 ‘눈앞’의 것을 받아들이는 그의 섬세함이 문장마다 느껴진다.작가는 풍경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도 생생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중국 여행을 갔다가 북한과 국경이 맞닿은 두만강변을 구경한다. 그곳에서 마사지숍 고객으로 왔던 어느 탈북민을 떠올린다. 작가는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세계로 확장한다. 두만강에서 떠오른 얼굴은 그 손님 한 명이 아닌 ‘이 물길이 수백, 수천 리였을’ 모든 사람들이다.작가는...

    2025.04.10 21:12

  • [책과 삶] 불륜 앤솔러지…“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불륜 앤솔러지…“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작가 4인이 다룬 ‘금지된 사랑’남의 신발 신어보지 않았으면쉽게 재단 말라는 책 속 주인공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스물아홉 살의 남자가 있다. 스스로 잘생기지 않았다며 그저 눈 코 입이 멀쩡하게 붙어 있는 정도, 중학생 때는 별명이 ‘심해어’이기도 했다고 밝히는 남자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책을 읽고 있던 그가 미모의 직장 상사를 만난다. 회사에서는 교류가 없던 그들이 그날의 일로 아주 조금 가까워진다. 어느 저녁, 회식을 마친 두 사람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여자가 하늘을 올려다보다 “오늘 달이 참 아름답네”라고 말한다.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했다는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를 떠올린 남자는 “손이 닿을 것 같네요”라고 답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섹스 파트너’가 된다.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장강명·차무진·소향·정명섭 지음마름모 | 244쪽 | 1만6000원금지된 사랑을 다룬 앤솔...

    2025.04.10 21:11

  • [책과 삶] 향기의 매혹, 그 풍요로운 문화사
    향기의 매혹, 그 풍요로운 문화사

    향기엘리스 버넌 펄스턴 지음 | 김정은 옮김 열린책들 | 360쪽 | 2만5000원야생 동물 생물학자로 17년을 살아온 저자는 돌연 ‘향기’라는 주제에 매혹됐다고 한다. 50세가 넘은 나이부터 그는 향수 제조에 몰두했다. 현재는 자연학자이자 천연 조향사로 활동하고 있다.나무의 진액과 허브류, 사프란과 같은 향신료까지. 인류의 시작부터 자연에는 향기로운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다만 식물이 향을 만드는 건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식물은 향기로 수분을 돕는 동물을 유혹하고, 질병과 싸우거나 스스로 치유하고, 초식 동물을 쫓아내기 위해 ‘휘발성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그로 인한 냄새가 인간에게 향기롭게 느껴졌을 따름이다.유향나무는 아라비아반도의 해안지대와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자란다. 이 나무에서 물방울 형태의 덩어리로 배출되는 수지를 연기가 날 정도로만 불에 그을리면, 달콤한 향에 흙냄새가 덧대어진다. 종교의식 등에 쓰인 유향나무 수지는 ...

    2025.04.10 21:11

  • [책과 삶] 은밀하게 대범하게…국가의 주권까지 흔드는 글로벌 기업
    은밀하게 대범하게…국가의 주권까지 흔드는 글로벌 기업

    소리 없는 쿠데타클레어 프로보스트·매트 켄나드 지음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364쪽 | 2만5000원ISDS.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손해를 끼쳤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2012년 11월 제기한 국제소송의 공식 명칭이다. 10년이 채 흐르기 전인 2022년 8월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달러(약 3190억원)를 배상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정부는 2013년부터 2023년 4월까지 ISDS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외 로펌에 433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외국계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ISDS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건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캐나다의 광산 회사는 중미의 엘살바도르 정부가 자신들이 광산에서 찾은 금을 캐지 못하게 막았다는 이유로 3억달러(약 4380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2009년 ISDS를 신청했다...

    2025.04.10 21:11

  • [책과 삶] 삶까지 ‘최적화’…그래서 행복합니까
    삶까지 ‘최적화’…그래서 행복합니까

    최적화라는 환상코코 크럼 지음 | 송예슬 옮김위즈덤하우스 | 304쪽 | 1만9000원“좋아, 빠르게 가.”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만든 이 짧은 구호는 청년층에서 밈(meme)으로 유행했을 정도로 꽤 인기를 끌었다. 구호를 외쳤던 대통령은 이 외침대로 민주화 이후 가장 빠르게 자리에서 쫓겨난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이 구호에는 비단 청년층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형성돼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최첨단 정보기술(IT) 산업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던 저자 코코 크럼은 <최적화라는 환상>이라는 책에서 이 정서적 공감대를 ‘최적화’라고 설명한다.최적화를 ‘가장 알맞게 한다’는 뜻의 한국어로 이해할 때에는 다소 와닿지 않을 수 있는데, 영어 원어로는 ‘optimization’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한정된 자원과 상황 속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끌어올...

    2025.04.10 21:11

  • [책과 삶] 불공정한 사회가 건강의 불평등 낳는다
    불공정한 사회가 건강의 불평등 낳는다

    자기 관리 실패·유전 결함에서질병의 원인을 찾는 미국 사회상대적으로 열악한 흑인 건강일상적 차별이 더 근본적 영향미국 미시간대학교 공공보건대학원의 알린 T 제로니머스 교수에 따르면 미국 주류 백인들은 질병을 개인의 자기 관리 능력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급성 바이러스 감염, 유전 관련 질환, 사고로 인한 때이른 죽음을 제외하면, 적당히 절제하면서 식단, 운동, 생활방식에서 의사가 권하는 건강에 이로운 선택들을 하는 한 모든 사람이 길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이다.이 때문에 주류 백인들은 흑인이나 라틴계 주민 등 미국 소수 집단 구성원이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이를 자기 관리의 실패로 취급하는 습성이 있다. 소외 계층 사람들의 절제력이 부족해 몸에 나쁜 음식이나 마약 등을 과도하게 섭취하고 운동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것이다. 흑인과 백인의 유전자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흑인과 백인의 건강 격차가 생긴다고 보...

    2025.04.10 21:01

  • [책과 삶]자멸을 자초하는 현생 인류···모든 것을 불태우는 ‘호모 플라그란스’
    자멸을 자초하는 현생 인류···모든 것을 불태우는 ‘호모 플라그란스’

    파이어 웨더존 베일런트 지음 | 제효영 옮김 | 곰출판 | 588쪽 | 2만8000원캐나다 서부 앨버타주 포트맥머리는 북극을 빙 둘러싸고 있는 아한대림 사이에 섬처럼 자리잡은 도시다. 오일샌드에서 회수한 역청으로부터 석유를 뽑아내는 오일샌드 산업의 중심지다. 일반 유정보다 석유 추출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지만, 이 지역에 매장된 석유량을 배럴로 환산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한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트맥머리는 2016년 화재로 잿더미가 됐다. 그해 5월1일 포트맥머리 남서쪽에서 화재가 포착된다. 소방당국은 ‘맥머리 임야화재 009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임야화재(wildfire)란 숲이나 초지, 덤불, 툰드라 등 개간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대지에서 발생한 화재를 가리킨다. 아한대림에서 임야화재가 발생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 화재는 차원이 달랐다. “도시 전체가 통째로 폭발한 듯 거대하게 솟구친 연기기둥이 보였다. 그 엄청난 연기를 보며...

    2025.04.04 08:00

  • [책과 삶]신이 떠난 무당은 가짜일까…진짜란 무엇인가 ‘혼모노’
    신이 떠난 무당은 가짜일까…진짜란 무엇인가 ‘혼모노’

    혼모노성해나 지음 | 창비 | 368쪽 | 1만8000원세계적인 미술가 제프의 에이전트이자 재미 한인 3세 듀이는 제프의 전시 일정에 함께하기 위해 난생처음 한국을 찾는다. 제프의 대표작인 ‘스무드’는 지름이 2m에 달하는 구 형태의 작품이다. 스테인리스스틸을 매끈하게 세공한 검은색 구는 듀이의 말대로라면 “분노도 불안도 결핍도” 없다. 작품은 서울의 한 고급 아파트 내부 갤러리에 전시될 예정이다.미쉐린 셰프가 준비했다고 하지만 입에 맞지 않는 한식을 먹다 화제를 돌리려 근처 관광지를 알려달라는 듀이에게 아파트 관계자들은 내부 산책로를 추천한다. “바깥은 시끄럽고 번잡하거든요. 이 안에서 더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듀이는 고궁에 가려다 종로에서 길을 잃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휴대전화 배터리도 끊긴다. 성조기와 ‘타이극기’를 들고 있는 일군에 휩쓸린다. 그들은 한국어로 끊임없이 그에게 말을 걸고 물과 떡, 도시락까지 무언...

    2025.04.04 06:00

  • [책과 삶] 불의한 사회에 이의제기한 ‘정치적 10대들’
    불의한 사회에 이의제기한 ‘정치적 10대들’

    고등학생 운동사조한진희 외 11인 지음동녘 | 516쪽 | 2만5000원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1화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국민학교 학생인 오애순이 급장 투표에서 1등을 차지했지만 담임교사는 ‘부급장’을 시킨다. 백일장에서도 오애순은 ‘부장원’ 상에 그쳤다. 잠녀 일을 하는 엄마는 결국 촌지를 들고 학교를 찾는다. ‘그땐 그랬지’식 회상의 도구로만 삼기에 우리 사회의 비민주성은 일상 곳곳에 뿌리 박혀 있었다.<고등학생운동사> 공저자인 김성윤 마을공동체운동 활동가도 오애순 사례와 비슷한 경험담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가 드라마상 오애순보다 20세가량 어린 나이임에도 상황은 대동소이하다. 담임교사는 국민학교 전교회장 후보 추천을 받은 저자를 불러다 놓고 출마 포기를 종용한다. 이 선거 이후 저자에게 더 이상 교사는 공정한 사람이 아니었고 학교는 시시한 곳이 돼 버렸다. 어디 학교만 그랬으랴. 불의한 사회는 역설...

    2025.04.03 20:17

  • [책과 삶] 영화 거장 알모도바르의 영화 아닌, 영화 같은 소설들
    영화 거장 알모도바르의 영화 아닌, 영화 같은 소설들

    마지막 꿈페드로 알모도바르 지음 | 엄지영 옮김알마 | 288쪽 | 1만8800원스페인 영화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76)는 “어렸을 때부터 작가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항상 글을 썼다”고 자부한다. <마지막 꿈>은 그가 1960년대 후반부터 써온 12편을 엮은 첫 단편소설집이다. 화려하고 강렬한 미장센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글은 그의 영화처럼 도발적이다. 이 중 몇 편은 영화의 기틀이 되었다.모순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것은 알모도바르 감독의 장기다. 유년기를 수도원에서 보낸 그는 가톨릭 교회의 위선을 폭로하는 작품을 만들곤 했다. 단편 ‘방문’에는 신실해 보이지만 수도회의 아동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가톨릭 신부가 등장한다. 기시감이 든다면, 이유가 있다. 이 단편은 훗날 영화 <나쁜 교육>(2004)의 모티브가 된다.감독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은 ‘자전적인 사소설인가’ 싶기도 하...

    2025.04.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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