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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과 삶]망각을 강요하는 국가에 기억으로 저항하다
    망각을 강요하는 국가에 기억으로 저항하다

    “넌, 한 권의 책이야. 진짜 책.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 무지한 자들만 모르는 알파벳이야.”엄마는 딸 오브에게 이렇게 말한다. 알제리 내전의 끝자락인 1999년 12월부터 2000년 1월 사이 벌어진 하드 셰칼라 대학살에서, 다섯 살이던 오브는 이슬람 무장단체의 습격을 받아 가족을 잃고 자신 또한 목이 그어지는 비극을 겪는다. 살아남았지만 후두와 성대가 손상돼 목에 삽입한 튜브로 호흡하며 생활한다. 평소엔 스카프로 가리고 다니는 목의 상처를 오브는 자신의 ‘미소’ 혹은 ‘살인자가 내게 남긴 길쭉한 캘리그래피 서명’이라 부른다. 폭력의 역사를 몸에 담은 오브는 그렇게 비극의 현대사를 증명할 증거로 존재한다.소설은 이제 스물여섯 살이 된 오브 그리고 그가 뱃속에 품고 있는 아이 ‘후리’를 주요 인물로 한다. 배경은 2018년의 알제리 오랑시다. 1부 ‘목소리’, 2부 ‘미궁’, 3부 ‘칼’,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된 소설은 오...

    2025.12.04 20:14

  • [책과 삶]망가진 지구, 동물 살려야 우리도 산다
    망가진 지구, 동물 살려야 우리도 산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더 바라는 걸까? 코뿔소, 강돌고래, 돼지발가락담치, 나그네비둘기 같은 생명체가 만들어지기까지 거의 40억년이 걸렸지만 사라지는 데는 채 몇십 년도 걸리지 않았다. … 지금 이 순간, 생명체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동물이야말로 핵심이다. 다양성과 풍요로움, 바로 여기에 동물 세계의 강점이 있다. 우리를 구원할 존재들은 이미 주변에 있다.”사람과 동물의 관계는 4만년 동안 지속됐지만, 최근 200년간 급격한 기술 발달로 인해 모든 생물권의 운명이 인간종의 손에 놓이게 됐다. <야생의 존재>는 ‘망가진 행성에서 우리의 집을 다시 그리기 위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는 책이다. 가장 작은 미생물부터 가장 거대한 생명체까지, 역사·문화·과학 그리고 수많은 실화를 통해 유대의 궤적을 되짚는다.책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문제가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쓰였다. 지금 우리가...

    2025.12.04 20:12

  • [책과 삶]혁신적 발견의 걸림돌 ‘천재 과학자’라는 신화
    혁신적 발견의 걸림돌 ‘천재 과학자’라는 신화

    대개 과학은 소수의 천재 과학자가 인류의 진보를 이끄는 분야로 여겨진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이 천재 몇명의 노력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천재’의 그림자에 수많은 과학자와 보조인력들의 노력이 가려졌다. 이 책은 ‘천재 과학자’는 일종의 신화이며 과학자들의 대다수는 과학을 직업으로 갖게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천재 프레임’은 과학계의 엘리트주의를 부채질했다고 지적한다.특히 저자는 ‘능력 있고 천재적인 소수를 지원하자’는 신자유주의적 모토가 과학발전을 저해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노벨상’을 정점에 둔 과학계는 상위 10%의 연구자가 연구비의 절반 이상을 가져간다. 저명한 과학자의 연구실은 비대해졌고, 연구실 안에는 자신의 연구가 채택되지 못한 ‘보통의 과학자들’이 채워진다. 특정 연구실에 예산이 몰리면 그렇지 못한 연구실에 속한 다수의 연구자는 연구를 통해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그렇다고 비대한 연구실에서 이렇다 할 과학적 성과를...

    2025.12.04 20:02

  • [책과 삶]AI엔 없고 인간에겐 있다…발견의 희열·경이
    AI엔 없고 인간에겐 있다…발견의 희열·경이

    인공지능의 출현과 함께 인문학자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인간만이 고도의 지능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면, 오히려 지능의 총량이나 효율성에서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열등해질 수 있다면, 인간 존재의 고유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는 근원적 질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서양고전학자이자 서울대 인공지능 디지털인문학센터장인 이은수 교수(철학과)는 <인간지능의 역사>에서 수천년 인류의 지성사를 ‘발견’ ‘수집’ ‘읽기와 쓰기’ ‘소통’ 등 네 가지 키워드로 재조명한 뒤, 각각의 영역에서 인공지능과 구분되는 인간지능의 고유성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인간지능의 의미를 역사적 맥락에서 살피는 인문학적 작업이야말로 “인간과 인공지능 기술이 공존하는 미래”를 찾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믿는다.‘발견’은 인간지능의 출발점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는 부력의 원리를 발견했고, 유클리드는 기하학의 원리를 발견했다. 페르시아의 알콰리즈미는 대수학의 원리를 발견했고, ...

    2025.12.04 19:59

  • [책과 삶]화학원소는 어떻게 차별의 도구가 됐나
    화학원소는 어떻게 차별의 도구가 됐나

    깨진 온도계에서 나온 은빛 액체가 책상 위를 또르르 굴렀다. 마법에 홀린 듯 손을 뻗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외쳤다. “만지지 마!” 이 물질은 ‘퀵 실버’라는 별명의 수은(水銀). 원소기호 Hg 또한 물(hydor)과 은(argyros)을 붙인 라틴어 hydragyrum에서 왔다. 연금술사들이 붉은색 황화수은 광석을 태워 얻던 수은은 참 쓸모가 많았다. 밀도와 표면장력이 높아 압력 측정에 편했고, 형광물질을 바른 유리에 증기 형태로 넣으면(형광등) 세상이 밝아졌다.1987년 12월 서산에서 상경한 15세 문송면군은 압력계·온도계 공장에 취직했다. 1월부터 불면과 두통에 시달렸건만, 3월 중순에야 수은중독 진단을 받았다. 회사는 산재 신청서 날인을 거부했고, 노동부는 산재보험 미지정 의료기관 진단 등을 이유로 산재 신청을 반려했다. 스위치만 켜면 세상을 밝히던 퀵 실버는 빠르게 소년의 생명을 꺼뜨렸다.우리 몸에 8번째로 많은 원소 황(S)은 인류 첫 항...

    2025.11.28 10:46

  • [책과 삶]일제 치하 두 여인의 달콤씁쓸한 타이완 맛 기행
    일제 치하 두 여인의 달콤씁쓸한 타이완 맛 기행

    “샤오첸의 젓가락이 큰 접시로 향했다. 첫 번째 완자부터 시작해 투명한 완자, 고기 피 완자, 양념에 재운 완자, 아삭한 완자, 토란 완자 순서로 먹었다. (중략) 탕을 마시고 무절임을 먹었다. 그런 뒤 같은 순서로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중략) 나는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거침없이 내뱉었다. ‘우리 함께 타이완을 구석구석 돌면서 미식을 즐겨요!’”<1938 타이완 여행기>는 타이완 미식 체험을 하는 여행기 형식의 소설이다. 이야기의 얼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식민지 타이완에서 1년을 보내게 된 일본 여성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가 통역을 맡은 타이완 여성 왕첸허(샤오첸)의 도움으로 타이완 곳곳을 여행하며 갖가지 풍경과 음식을 경험하는 내용이다. ‘군침 도는’ 문장이 술술 읽힌다. 하지만 식민주의, 젠더, 정체성, 역사의 해석 등 이야기의 겹을 층층이 쌓아 올린 깊이가 결코 간단치 않다.소설은 길거리 간식부터 각 지역의 토...

    2025.11.27 20:15

  • [책과 삶]‘감시 사회’ 중국…부글부글 끓는 민심 들춰보기
    ‘감시 사회’ 중국…부글부글 끓는 민심 들춰보기

    책 <저항의 수다>는 중국의 통제와 감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인상을 준다. 책에 등장하는 어느 교수는 최소한 중국 인구의 1%가 상시적으로 주변을 감시하고 윗선에 보고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공산당과 행정기관에 소속된 공식 감시자는 물론 그들에게 포섭된 ‘스파이’가 일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오늘날 중국 본토에 사는 사람은 시국이나 최고 권력자 시진핑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마음 놓고 피력하지 못한다.이 책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그 원인을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시진핑 체제의 특성에서 찾는다. 일상적인 감시 시스템은 마오쩌둥 시대보다 억압적이고, 시진핑 체제 출범과 코로나19 봉쇄 조치 이후 강화됐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 책은 시진핑의 중국을 비판하는 목소리만 담긴 했지만 그 불만과 비판은 하나의 징후로 읽힐 정도로 심상찮다.2022년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참사의 추모제에서 누군가 “공산당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2025.11.27 20:13

  • [책과 삶]시인들, 시공의 궤도에서 SF와 만나다
    시인들, 시공의 궤도에서 SF와 만나다

    “외계인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여기선 누구도 자신들이 식민지인인 줄 모릅니다. 전부 길러서 추수해 가는데도 모릅니다”(김혜순, ‘육식 행성 보고’ 중)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SF와 시가 만나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어느 대화에서 따온 듯한 알쏭달쏭한 책 제목에는 ‘SF 시집’이라는 생소한 부제가 달렸다. 한국 최초의 SF 시집이라고 소개된 이 책에는 김혜순을 비롯해 신해욱, 이제니, 서윤후, 조시현, 임유영, 고선경, 유선혜 등 12명의 시인이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써낸 시 36편이 실렸다. 종과 개체, 퀴어, 생물성, 변신, 자연, 우주, 외계, 시간, 사랑을 아우르는 낯설고도 매력적인 시들이 한 권의 책 안에 제각기 흩어져 별자리를 이룬다.현실에 발붙이지 않고 우주 또는 알 수 없는 차원 어딘가에서 부유하는 시들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시에 쓸쓸하고 고독하다. 시의 영원한 주제인 인간성과 사랑은 SF적 세계 ...

    2025.11.27 20:12

  • [책과 삶]조선 의병의 ‘캘리포니아 드림’은…조국 광복
    조선 의병의 ‘캘리포니아 드림’은…조국 광복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사이.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로 불리는 지역에는 프레즈노, 다뉴바, 리들리 등 다소 생소한 이름의 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100여년 전 척박하고 황량하던 이 땅엔 뜨거운 눈물과 피, 땀을 흘린 ‘조선의 의병’들이 있었다. 혹독한 노동환경과 인종 차별을 꿋꿋이 버텨내며 모은 돈을 잃어버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사했고 친일파 미국인을 향해 권총을 겨누는가 하면, 일제와 공중전을 벌일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겠다고 비행기를 사들이기도 했다. 이들은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던 초기 한국인 이민자이다.1903년을 시작으로 조선인 7000여명은 하와이로 이주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그중 2000여명은 본토로 이주했고, 또 상당수는 중부 캘리포니아에 자리 잡아 농업에 종사했다. 굳건한 민족정신, 독실한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한 이들은 한인 공동체를 형성하며 미주 독립운동의 핵심 역할을 했다....

    2025.11.27 20:10

  • [책과 삶]참사가 남기는 상처들 책임지는 사회를 향해
    참사가 남기는 상처들 책임지는 사회를 향해

    수십년간 반복된 국가폭력과 대형 참사는 많은 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자기 의심과 부정으로 스스로를 원망하거나 사건 자체를 회피하게 된 이들도 있고, 트라우마의 고통을 더 나은 삶을 위한 바탕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5·18민주화운동에서 아들을 잃고 그날에 머물러 사는 어머니나, 세월호 사건 이후 응급구조사의 삶을 택한 학생들처럼 말이다.정신건강 전문의인 저자는 2013년부터 광주 트라우마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해 세월호 참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의 심리지원팀에서 일했다. 책은 피해자들의 증언, 트라우마의 양상을 나열하고 회복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저자는 피해자들의 회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정’과 ‘의미찾기’라고 말한다. 내가 겪었던 고통이 실제로 발생한 것임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희생이 어떤 식으로든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의 정신건강 관리뿐만 아니라, 정부가 재발 방지에 노력을 기울이고 시...

    2025.11.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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