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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 [책과 삶] 폭력이여, 그들 침묵의 저항을 들어라
    폭력이여, 그들 침묵의 저항을 들어라

    듣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 일리야 카민스키 지음 | 박종주 옮김 가망서사 | 96쪽 | 1만9000원작은 마을 바센카에 어느 날 군대가 들어와 인형극을 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해산을 명령한다. 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소년 페타는 군대의 해산 명령을 듣지 못하고 결국 총에 맞아 쓰러진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저항의 의미로 군인들의 소리를 듣지 않기로 한다. 폭력과 억압에 맞서는 무기로 침묵을 택한 것이다.우크라이나 출신 시인 일리야 카민스키는 가상의 마을 바센카를 배경으로 군대에 맞서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서사시로 그린다. 시는 헬리콥터가 거리를 폭격하고 광장에서 시민들이 처형당하는 순간에도 사랑을 하고 신혼을 보내고 아기가 태어나는 일상을 찬란하게 묘사한다. 전쟁이라는 비극 속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저항하는 자들의 침묵이 소스라치게 선명한 소리를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이야기는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린 약자들...

    2025.08.21 21:11

  • [책과 삶] 독재자의 공범이자 위험한 적, 내부자
    독재자의 공범이자 위험한 적, 내부자

    독재자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마르첼 디르주스 지음 | 정지영 옮김 아르테 | 412쪽 | 3만원부침이 있긴 했으나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공기와도 같았다. 이 땅에 다시 독재정권이 발붙일 곳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난해 12·3 불법계엄으로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젊은이들은 영화에서나 봤던 일을 현실에서 겪었고, 젊은 시절 계엄의 공포에 떨었던 이들은 40여년이 흘러 다시 그 공포와 마주했다. 다시 독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 지금, 이 책이 더욱 유의미하게 다가온다.이 책은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했다. 오랜 기간 독재자를 연구하던 저자는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콩고민주공화국의 한 양조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일하던 2013년, 종교 지도자가 대통령을 겨냥해 일으킨 쿠데타를 목격한다.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으나 이 같은 강렬한 경험은 책 집필로 이어졌다.저자는 독재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권위주의 체제의 위협에 대처할...

    2025.08.21 21:11

  • [책과 삶] ‘실재’를 보는 틀, 양자역학과 일원론 철학…다르지만 같다
    ‘실재’를 보는 틀, 양자역학과 일원론 철학…다르지만 같다

    모든 것은 하나다 하인리히 페스 지음 | 김영태 옮김 바다출판사 | 451쪽 | 2만8000원그 작은 입자들을 발견하지만 않았더라면, 골치 아픈 양자역학 또한 세상에 없었을까. 원자를 발견한 이래 물리학은 자연을 작은 조각으로 분해해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환원주의 철학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소립자들은 대차게 고전물리학을 배반했다. 덕분에 애꿎은 고양이는 상자 속에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니게 됐고(슈뢰딩거의 고양이), 입자의 위치를 알면 운동량은 포기해야 하며(불확정성 원리), 입자인 듯 파동인 듯한 두 성질은 상호 보완적이라는(상보성 원리) 양자역학 개념들이 생겼다.1920년대 이래 양자역학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실재란 무엇인가’였다. 독일의 이론물리학자인 저자는 그 답을 찾는 과정을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하는 과정에 비유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보지만, 영사기 속 필름엔 끊어진 컷들이 담겨 있다. 줄거리는 보는 눈을 통해 만들어지는 셈이다. ...

    2025.08.21 21:11

  • [책과 삶] 견종별로 지능 차이?…그런 건 없어요
    견종별로 지능 차이?…그런 건 없어요

    세상에 똑같은 개는 없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 강병철 옮김 디플롯 | 344쪽 | 2만4800원‘똑똑한 개’를 물으면 대개 보더콜리, 푸들, 저먼 셰퍼드라 답한다. 1994년 스탠리 코런의 연구에서 등장한 ‘똑똑한 개 순위’는 실제로 지능을 측정하지 않고 훈련 용이성에 관한 의견을 모아 만들었다. 구체적 기준 없이 매겨진 순위가 발표된 이후 ‘견종별로 지능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굳어졌다.그러나 이 책은 ‘견종별 지능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18세기 이전 용도별로 키워졌던 ‘개’는 귀족의 사치품이 되고 나서야 ‘견종’이 되기 시작했다. 혈통서에서 말하는 ‘품종’은 치와와의 작은 몸, 닥스훈트의 짧은 다리, 핏불의 납작한 얼굴 등과 같이 오직 외형적 특징으로 구분됐다. 다시말해, 견종은 오직 외형만 보장할 뿐이라는 것이다.진화인류학자이자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함께 썼던 저자들(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

    2025.08.21 21:11

  • [책과 삶] 백인 노동자에게 트럼프는…‘우리 불량배’
    백인 노동자에게 트럼프는…‘우리 불량배’

    백인 저학력 노동자 계층은 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할까.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돌풍을 일으키며 당선된 이후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민주주의 연구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사로잡는 질문이다.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85)는 2017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애팔래치아산맥 부근 켄터키주 파이크빌로 갔다. 1980년대 ‘감정노동’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유명해진 혹실드는 파이크빌과 그 인근 지역 주민들을 7년간 심층 인터뷰했다. <도둑맞은 자부심>은 이를 바탕으로 그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한 <Stolen Pride>의 한국어판이다.도둑맞은 자부심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 이종민 옮김 어크로스 | 484쪽 | 2만3000원인구 약 7000명인 파이크빌은 파이크카운티의 카운티 소재지다. 한때는 번성했던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다. 1983년만 해도 “켄터키주에서 백만장자가 가장 많이 밀집...

    2025.08.21 21:05

  • [책과 삶] ‘윤석열차’ 촌극까지…한국 만화가 걸어온 길
    ‘윤석열차’ 촌극까지…한국 만화가 걸어온 길

    한국 만화 트리비아 서찬휘 지음 생각비행 | 420쪽 | 2만원한국에서 ‘만화의 날’은 11월3일이다. 공교롭게 일본도 날짜가 같은데 ‘만화의 신’으로 추앙받는 데즈카 오사무가 태어난 날이라고 한다. 한국은 만화가들이 국가 권력의 탄압에 맞서 거리로 몰려나온 날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배경이 사뭇 다르다. 1997년 정부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청소년 보호를 위한 유해 매체물 규제 등에 관한 법률(청보법)’을 제정하면서 대대적인 만화 단속이 벌어졌다. 만화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가 졸지에 음란물로 찍혀 작가가 고초를 겪었다.만화비평가 서찬휘는 해방기부터 현재까지 80년의 한국 만화 역사를 정리한 책을 ‘만화의 날’에 얽힌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에선 전쟁, 독재, 계엄 등 사회 현실 속에서 한국 만화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투쟁해 왔는지 정리한다. 사건을 통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성 위주로 엮어내 한국 만화 안팎의 다양...

    2025.08.21 21:05

  • [책과 삶] 기록학자 방엔 역사가 숨쉰다
    기록학자 방엔 역사가 숨쉰다

    내 방안의 역사 컬렉션 박건호 지음 휴머니스트 | 436쪽 | 2만5000원기록학자 박건호의 방에는 빛바랜 사진, 편지, 한자로 쓰인 공문서 등 온갖 ‘옛것’들이 쌓여 있다. 30여년간 모은 수집품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다. 쌀 포대와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파편까지, ‘이런 것까지 모았다고?’ 싶은 물건도 있다. 책은 그중 엄선한 110점을 통해 개항부터 해방 직후까지 한국의 근대 생활상을 풀어낸다.무명인의 이름이 적힌 문서들은 역사 강사이기도 한 저자의 맛깔나는 설명으로 역사적 맥락을 부여받는다. 공주부 참사관 이석령에게 공주재판소 검사를 겸하게 한 고종의 칙령에서 저자가 발견하는 건 ‘건양 원년 1월18일’이라는 문구다.조선이 세계 표준 달력을 받아들인 것을 기념해 ‘양력을 다시 세운다’는 의미의 연호를 쓰기 시작한 지 18일째라는 것. 저자는 거시사와 미시사가 교차하는 순간을 기민하게 포착해낸다.기차 등 신문물에 대한 경...

    2025.08.14 21:17

  • [책과 삶] 전쟁이 터지는 다섯 가지 이유
    전쟁이 터지는 다섯 가지 이유

    우리는 왜 싸우는가 크리스토퍼 블랫먼 지음 | 강주헌 옮김 김영사 | 564쪽 | 2만9800원국가 간에도, 국가 내에도, 국가라는 개념이 있기 전에도, 인류는 상대를 해치고 살생도 마다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전쟁을 치러왔다. 숱한 전쟁의 기록에서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나 법칙을 귀납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국가 간 전쟁부터 남미·아프리카의 저개발국에서 벌어진 군사·폭력조직 간의 전쟁까지 두루 살핀다. 그는 미국 시카고대와 피어슨 국제갈등연구소에서 글로벌갈등학을 가르치며, 시카고와 콜롬비아, 라이베리아, 우간다 등의 분쟁 현장을 찾기도 했다.전쟁을 일으키는 다섯 가지 요인 중 하나는 ‘견제되지 않은 이익’, 지배 세력이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전쟁을 통해 얻는 지위나 지배력과 같은 ‘무형의 동기’, 상대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도 다섯 요인에 해당한다. ‘이행 문제...

    2025.08.14 21:17

  • [책과 삶] ‘만듦’이란, 나와 물질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
    ‘만듦’이란, 나와 물질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

    만들기 팀 잉골드 지음 | 차은정·오성희·권혜윤 옮김 포도밭 | 392쪽 | 2만5000원선사시대의 기이한 수수께끼 중 하나는 주먹도끼라 불리는 사물이다. 손에 딱 들어맞는 석기의 두 면이 만나는 모서리는 놀랍도록 날카롭다. 고고학에선 이 사물의 제작 방법에 대해 다양한 학설을 내놓았는데, 전통적 가정은 주먹도끼의 대칭적 형태를 만들려는 디자인이 ‘미리’ 있었고 그에 따라 도끼가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사물을 창조하는 활동의 본질을 재검토한다. 석기와 같은 도구 역시 단순히 질료와 형상의 관계에 따라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조응의 활동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노련한 나무꾼은 도끼를 내리칠 때, 그 날이 나뭇결을 파고들어 나무가 살아 있었을 때의 과거 성장 역사를 통해 이미 나무 속에 형성된 길을 따라가게 한다. 도끼가 가는 대로 나무를 쪼개며 자신의 길을 찾아갈 때 …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을 끌어내는 것이다.”...

    2025.08.14 21:17

  • [책과 삶] 식민지 조선에도 ‘동심’이 있었을까
    식민지 조선에도 ‘동심’이 있었을까

    1938년 일본인·조선인 학생들 글짓기 경연대회 수상작 모음 조국 뺏긴 아이 생계 고민할 때 일 어린이, 천황에 헌신 당연시 전쟁으로 황폐화된 마음 보여“요즘에는 그렇지 않지만, 며칠 전만 해도 저는 수업료 납입일이 다가오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여 재밌게 놀 수도 제대로 공부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놋쇠 젓가락과 수저 등을 만들어 행상을 하는데 올해 봄, 집을 나서 5개월이 가깝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는 수업료를 걱정하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반 아이들이 어려운 친구의 사정을 알고 아이의 수업료를 모아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글은 “저는 요즘 수업료 걱정 없이 2학기에도 최고의 성적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로 끝난다.1938년 제1회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학무국장상 수상작 ‘수업료’ 얘기다. 글은 전라남도광주북정공립심상소학교 4학년 우수영군이 썼다. 일본 식민기구는 내선일체라는 ...

    2025.08.1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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