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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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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유수’ 같은 인간, ‘표식’이 된 나무…오래가는 것에 대한 경외
    ‘유수’ 같은 인간, ‘표식’이 된 나무…오래가는 것에 대한 경외

    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옛사람들이 공간에 부여한 의미 딜쿠샤 저택 앞 은행나무 고목 길흉사를 예고했다는 믿음도 대를 거듭하는 영원한 계승이란 상징성을 가진 아름드리나무엔 인간 공동체의 염원이 담겨있다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개천이 있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 같은 멋진 정경이면 좋았겠지만, 198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그런 경치는 기대할 수 없었다. 동네 하수가 여과장치도 없이 콸콸 쏟아져 악취가 고약하던 그 개천을 아이들은 모두 ‘똥개천’이라 불렀다. 한때 이 개천이 맑아서 빨래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를 토박이 친구들에게 듣기도 했지만, 사실 그 친구들도 직접 본 적은 없을 정도로 오래된 이야기였다. 더럽기는 했어도 개천은 다양한 생명을 품고 있었다. 봄이면 개구리가 깨어나고 제비가 날아들었으며, 가을이면 짝짓기하는 잠자리가 분주히 날아다녔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아름드리...

    6시간 전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선조의 임진왜란 트라우마에 풍수가 결합…동묘의 탄생은 ‘힙’하지 않다
    선조의 임진왜란 트라우마에 풍수가 결합…동묘의 탄생은 ‘힙’하지 않다

    조선 태조가 한양도성 쌓을 때 ‘허약한 동쪽’ 큰 문제 안됐지만 임진왜란 직후 수면 위로 거론 참전 명장수들 관우 사당 추진에 전란 책임 의식한 선조, 풍수 활용 “지세 보완하려면 동쪽에 지어야” 조선 왕들 왕릉 갈 때 으레 방문 명나라에 대한 의리 되새긴 공간이중환(1690~1756)은 <택리지>에서 한양도성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조정에서 한양에다) 외성을 쌓으려고 했는데, 둘레의 범위를 미처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바깥쪽에만 (눈이) 쌓이고 안쪽에는 녹아버렸다. 태조가 이상하게 여겨 눈을 따라 성터를 정하라고 명하였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성 모습이다. 비록 산세를 따라 성을 쌓기는 하였지만, 정동쪽과 서남쪽이 낮고 허하다. 게다가 성 위에 작은 담을 쌓지 않았고 해자도 파지 않았다. 그래서 임진년과 병자년 두 난리 때에 모두 지킬 수가 없었다.”이...

    2026.06.02 21:03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고려인 시각서 ‘한양 풍수’ 비판…첫 조선인들 ‘남산 뷰’로 맞섰다
    고려인 시각서 ‘한양 풍수’ 비판…첫 조선인들 ‘남산 뷰’로 맞섰다

    세종 때 최양선 “경복궁의 백악은 주산 아니다”…창덕궁 서편을 궁궐 옮길 ‘혈 자리’로 짚어 태조·태종 대 관원들은 “앞뒤로 석산이 험하고 물길 말랐다” 한양에 대해 부정적 평가 일색 개경 기준으로 보는 고려인 관점…조선서 성장한 이들은 남산에 올라 ‘새 프레임’으로 접근남산에 있는 서울타워에 올라서 도심 방향을 내려다본다. 빽빽한 고층 빌딩 숲 사이로 멀리 북한산에서부터 뻗어 내리는 푸르른 산세가 창덕궁·창경궁, 종묘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 보인다. 우뚝 솟은 백악과 그 아래 푸른 지붕의 청와대와 경복궁 역시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종묘까지 이어지는 그 수풀의 풍성한 양감에는 미치지 못한다. 1433년(세종 15), 바로 그 관점에서 한양의 주산에 대해 딴지를 건 이가 있었다. 최양선, 풍수를 공부해 관련 관청에서 일한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경복궁의 북산은 주산이 아닙니다. 목멱산에 올라 바라보면, 향교동으로 이어지는 줄기인 지금의 승문원 ...

    2026.05.19 20:42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난세, 죽음과 죽임의 벌판에서…왕건은 이 살생의 정당성을 고민했다
    난세, 죽음과 죽임의 벌판에서…왕건은 이 살생의 정당성을 고민했다

    후백제 건국 전 이미 시작된 혼란 왕건의 마지막 전투까지 50년 세월 재해와 기근 반복에 도적 떼 창궐 삼한 통일을 목표로 한 전쟁 속에 수많은 생명의 희생 번뇌한 왕건 “살생 원하지 않지만 자비는 재앙” 승려 이엄의 답변은 ‘제왕의 길’ 다만 백성을 불쌍히 여기라 당부“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용맹한 함성이 나니와 연안을 가로지른다. 싸우자. 싸우자. 그것이야말로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함성이 사람들을 고무한다. 전국시대를 연 오닌의 대란으로부터 어느덧 백 년, 전국 방방곡곡 전쟁이 없는 땅은 없어 수많은 집들이 생겨나고 또한 사라져갔다. 기아와 질병, 전쟁은 … 현세를 고통으로 채웠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힘차게 전진하라, 싸우다 죽으면 극락왕생이 보장된다.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이다! 함성은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다.”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지은 <흑뢰성>(김선영...

    2026.05.05 19:56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인생은 원래 덧없는 것”…신격화를 거부한 권력자의 ‘도덕적 의무’
    “인생은 원래 덧없는 것”…신격화를 거부한 권력자의 ‘도덕적 의무’

    삼한 통합의 위업을 달성한 지 7년 왕위 26년에 67년 삶을 마친 왕건 임금의 ‘고명’으로 사후 혼란 막아 업적을 ‘신비화’하려는 욕망 절제 바른 정치를 위한 기록자의 ‘의지’ 조작된 이미지와 욕망이 난무하는 오늘 한국의 정치문화에도 거울로943년 음력 5월29일, 양력으로는 7월4일. 아마도 장마의 찐득한 습기와 후텁지근함이 공존했을 그날, 임금이 태자, 종실, 신료들이 모여 있는 개경 궁궐의 신덕전에 나온다. 병색이 완연한 그는 훗날 왕조의 시조로 추앙받으며 태조라는 묘호를 받게 될 왕건이다.모두가 임금의 죽음을 예견하던 자리, 왕건이 학사 김악에게 남길 말을 불러주며 유조의 초고를 작성하게 했다. 임금이 힘겹게 내뱉는 한마디와 종이에 소맷자락을 스치며 붓 움직이는 소리만 들려오는 전각. 잠시 후 김악이 붓을 멈추고 임금의 다음 말씀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돌아가신 것인가! 숨죽이며 김악의 붓끝만 바...

    2026.04.21 21:15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왕의 정통성 저격…개국공신의 후예는 벼슬을 가질 수 없었다
    왕의 정통성 저격…개국공신의 후예는 벼슬을 가질 수 없었다

    조선 정치의 DNA1485년(성종 16) 가을, 서른을 갓 넘긴 남효온(1454~1492)은 개성 시내의 한 집터 앞에 멈춰 섰다.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남재의 저택. 이제 농부가 경작하는 밭으로 변해 있었으나, 그가 말을 오르내릴 때 딛던 바위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남효온은 쓸쓸하게 다음과 같은 시를 읊조렸다.“오백 년이 끝나고 성군을 만나니/ 구정공(남재)은 그날 풍운의 만남처럼 성군과 만났구나/ 처량한 옛집이 송악산 아래에 있어/ 오세 손이 베옷 입고 찾아왔다오”구정 남재가 누구인가? 동생 남은과 함께 조선 개국을 주도해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된 인물이다. 비록 동생은 정도전과 함께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죽임을 당했지만, 남재는 태종의 편에 서며 승승장구해 영의정까지 오르고 세종의 즉위도 보았다. 남효온은 바로 이 남재의 5세손이었다. 개국공신인 5대조 할아버지의 사적을 찾은 길, 그러나 그의 마음은 자랑스러움이 아니라 씁쓸함과 쓸쓸함...

    2026.04.07 19:51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박완서가 경고한 ‘소설과 역사의 혼동’…이야기 너머 ‘맥락’을 질문해야
    박완서가 경고한 ‘소설과 역사의 혼동’…이야기 너머 ‘맥락’을 질문해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속 박완서 소설 ‘단종애사’ 사실로 받아들여 ‘역사를 잘 안다’ 착각했다고 회고 대중의 역사 인식, 소설·영화 기반 장면 재현보다 경계해야 하는 건 영웅 서사 등 역사 단순화한 구도철든 후부터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소설을 깔봐서가 아니라, 한번 붙잡으면 정신을 못 차리고, 읽고 나면 한동안 그 세계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서 그랬다. 한번은 자습 시간에 선생님이 반 친구 한 명을 호되게 꾸짖으신 적이 있었다. 교실이 시끌시끌했다는데, 나는 그런 소동이 일어난 줄 까맣게 모를 정도로 소설에 푹 빠진 일도 있었다.역사학을 전공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나이 들어서 고전을 다시 읽으면 새로운 감상을 하게 되고 어쩌고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이제는 소설이 소설로 읽히지 않고 자꾸 사료로 읽히는 것이다. 어릴 적 푹 빠져 읽은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를 몇년 전 다시 잡았을 때는 약간의...

    2026.03.24 21:05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모두 불러들여 보호한다…도성이 지켜야 할 것은 ‘백성의 마음’이었다
    모두 불러들여 보호한다…도성이 지켜야 할 것은 ‘백성의 마음’이었다

    조선 개국 후 무신 출신인 태조는 현장 직접 지휘하고 크기도 결정 성곽 둘레 길면 방비 어렵고 보수도 힘들어 ‘개경 나성’보다 짧게 일부 문신들, 방어보다 민심 이반 걱정…국가의 존재 이유 되짚어18.627㎞. 한양도성의 전체 둘레 길이다.수치만으로는 그 크기를 체감하기 어렵기에, 답사 때면 개경의 나성(외성) 크기와 비교해서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곤 한다. 개경의 나성은 11세기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대비하여 건설했다. 그로부터 400년 후 건설된 한양도성은 개경 나성보다 클까, 아니면 작을까. 대답은 늘 팽팽하게 갈린다. 이 질문을 던진 최근 어느 모임에서는 한양도성이 작다는 쪽이 약간 우세하기는 했지만, 실상은 대다수가 선뜻 손을 들지 못할 만큼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정답을 말하자면, 한양도성이 개경의 나성보다 작다. 개성 나성의 둘레는 23㎞, 한양도성은 그것의 78% 수준에 불과하다. 조선을 건국한 이들은 왜 한양도성을 ...

    2026.03.10 21:09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경부고속도로·황리단길·보문단지…천년고도를 쌓아올린 삶들
    경부고속도로·황리단길·보문단지…천년고도를 쌓아올린 삶들

    얼마 전 경주를 다녀왔다. 요새 인기 많다는 ‘황리단길’ 구경도 할 겸, 104년 만에 6점의 신라 금관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전시도 구경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경주를 찾았다. 신라 금관은 이전에도 띄엄띄엄하게나마 다 본 적이 있고 내 전공 분야도 아니라서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104년’ 만이라니, 이것은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거기다 젊은이들의 ‘핫플’로 유명하다는 황리단길도 가보고 싶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경주 도심을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황리단길이라는 말이 생기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전반적인 감상은 ‘격세지감’, 이 네 글자로 압축됐다. 세련된 카페와 식당, 번듯한 한옥 숙소 사이로 젊은 여행객이 가득한 황리단길. 이곳이 과연 내가 알던 그 동네인가 싶어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기억 속 한적했던 경주 박물관의 풍경은 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시간대별로 인원을 제한하고 있음에도 금관 전시실은 관...

    2026.02.24 19:57

  • [장지연의 역사 상상력]\'서울이 곧 생존\' 강박적 일극 체제, 600년이 지나도 우리 삶을 지배하다
    '서울이 곧 생존' 강박적 일극 체제, 600년이 지나도 우리 삶을 지배하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건국된 지 10년,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겪고 새 임금이 즉위한 지 2년이 되던 1402년(태종 2), 의정부에서는 한 폭의 세계지도를 완성했다. 우리가 지금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라고 부르는 바로 그 지도이다. 서쪽으로 아프리카부터, 동쪽으로 일본까지. 유라시아 대륙 거의 전부를 담고 있는 이 지도에 대해 권근은 이렇게 설명했다.“천하는 지극히 넓다. 안으로는 중국으로부터 밖으로는 사해까지 닿아 몇천만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 것을, 요약하여 몇자 폭에 그림으로 그리니 상세하게 기록하기 어렵다.”권근의 말대로 이렇게 광활한 세계를 요약해서 인간이 볼 수 있는 크기로 지도를 그린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정보의 부재도 문제지만, 방대한 정보 중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결단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렇다면 조선은 어떠한 정보를 선택했는가? 그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그러므로 지도란 것이 대부분 소략한데,...

    2026.02.0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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