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기자(箕子)가 은 유민(遺民)들을 이끌고 찾아간 본향, 즉 고죽국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일까. 고고학 자료와 문헌을 잘 따져보자.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기자가 돌아간 옛 조상의 땅으로 대략 4곳을 꼽는다. 먼저 롼허 하류설. ‘사기정의(史記正義·주석서)’는 “고죽성은 노룡현 남쪽으로 12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은나라 제후국인 고죽국(孤竹城在盧龍縣 南十二里, 殷時諸侯孤竹國也)”이라 했다. 누룽셴은 오늘날의 롼허 하류에 있다. 두번째는 산하이관(山海關)설. ‘요동지(遼東志)’ 지리지는 “순임금~하나라 땐 북기(北冀)의 동북을 분할하여 유주(幽州)라 했고, 상(商)나라 때는 고죽국이라 했다”면서 “위치는 산해관(山海關) 동쪽 90리, 발해 연안에서 20리 떨어진 곳”이라 했다. 이에 따르면 지금의 진시셴(금서현·錦西縣) 첸웨이(前衛) 일대이다.세번째는 카줘(喀左) 일대설. ‘한서’ 지리지를 보면 “요서 영지현에 고죽성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청나라...
2008.04.04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