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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루트를 찾아서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5) 기자의 본향 ‘고죽국’
    (25) 기자의 본향 ‘고죽국’

    그렇다면 기자(箕子)가 은 유민(遺民)들을 이끌고 찾아간 본향, 즉 고죽국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일까. 고고학 자료와 문헌을 잘 따져보자.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기자가 돌아간 옛 조상의 땅으로 대략 4곳을 꼽는다. 먼저 롼허 하류설. ‘사기정의(史記正義·주석서)’는 “고죽성은 노룡현 남쪽으로 12리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은나라 제후국인 고죽국(孤竹城在盧龍縣 南十二里, 殷時諸侯孤竹國也)”이라 했다. 누룽셴은 오늘날의 롼허 하류에 있다. 두번째는 산하이관(山海關)설. ‘요동지(遼東志)’ 지리지는 “순임금~하나라 땐 북기(北冀)의 동북을 분할하여 유주(幽州)라 했고, 상(商)나라 때는 고죽국이라 했다”면서 “위치는 산해관(山海關) 동쪽 90리, 발해 연안에서 20리 떨어진 곳”이라 했다. 이에 따르면 지금의 진시셴(금서현·錦西縣) 첸웨이(前衛) 일대이다.세번째는 카줘(喀左) 일대설. ‘한서’ 지리지를 보면 “요서 영지현에 고죽성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청나라...

    2008.04.04 17:10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4) 기자, 본향으로 돌아가다
    (24) 기자, 본향으로 돌아가다

    BC 1046년. 주나라 무왕이 은(상)의 주왕(紂王)을 죽이고 은(상)의 554년 역사를 종식시켰다. 이것은 동북아 고대사의 판도를 뒤바꾼 대사건이었다. 한족(漢族)의 하(夏·BC 2070~BC 1600년)를 무찌르고 동아시아의 주인공이 된 동이족의 천하가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한족(하)~동이족(은상)~한족(주)으로….그 과정은 너무도 드라마틱하다. 주 무왕은 주나라의 수도인 펑이(풍읍·豊邑, 산시성 치산·岐山 부근)에서 전차 300대와 용·갑사 4만5300명을 직접 이끌고 출정했다. 그러자 주왕의 학정에 못이긴 은(상)의 제후들도 전차 4000여대를 지원했다. 은 주왕은 70만 대군을 동원, 그 유명한 무야(목야·牧野, 허난성 지셴·汲縣 부근)에서 대치한다.하지만 전쟁은 너무도 싱겁게 끝난다. 은 주왕의 학정에 몸서리를 친 은나라 군사들이 주 무왕의 군사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은나라 군사들은 창을 거꾸로 쥔 채(倒兵·자기 쪽을 향해 공격한다는...

    2008.03.28 17:27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3)동이가 낳은 군자들
    (23)동이가 낳은 군자들

    이젠 미스터리의 세계다. 29년 전 폭풍을 일으켰던, 그렇지만 지금도 미해결로 남아있는 고대사, 즉 기자와 기자조선, 고죽국, 그리고 고조선의 세계로 빠져들자.1973년 랴오닝(遼寧)성 카줘(喀左)현 베이둥(北洞) 구산(孤山)에서 확인된 ‘기후(箕侯)’명, ‘고죽(孤竹)’명 청동기부터 이야기 하련다.“임시로 집어넣은 교장갱에서 발견된 청동기들을 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두 곳 다 청동기 6점이 질서정연한 세트를 이루고 있잖아요. 또 발견 지점이 다링허(大凌河)와 그 지류가 서로 만나는 지점의 구릉 위였어요. 이것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이형구 교수)그것은 이 교장갱이 모종의 특수 목적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지배층이 하늘신 혹은 조상신에게 제사 같은 의례를 행하고 매장한 예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천도시야비야제사? 제사라면 바로 동이족의 유별난 풍습이다. 적어도 훙산문화(홍산문화·紅山文化·BC 4500~BC 3000년) 때부터 제정일...

    2008.03.21 16:45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2)고대사의 뇌관을 건드리다
    (22)고대사의 뇌관을 건드리다

    문화대혁명이 대륙을 강타하고 있던 1973년 3월. 분서갱유처럼 역사와 학문이 산산이 파괴되던 그 잔인했던 대륙의 동북쪽이었다. 한 농부가 랴오닝(遼寧)성 카줘(喀左)현 성 소재지인 다청쯔(大城子)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다링허(대릉하·大凌河) 유역 남안의 작은 구릉, 즉 구산(孤山) 베이둥(北洞)을 찾았다. 채석작업을 벌이던 농부는 깜짝 놀랐다.표면에서 불과 30㎝ 밑에서 모두 6점의 은(상)나라 시대 청동기가 질서정연하게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청동 항아리 1점과, 청동제 술그릇(뢰) 5점이었는데, 모두 주둥이가 위를 향해 있었다. 희한했다. 제2호 청동 술그릇의 주둥이 안에 이상한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고죽, 기후 명 청동기 6자였다.그런데 6자 가운데 3, 4번째 글자인 ‘고죽’ 두 자는 1122년 송나라 휘종이 출간한 ‘박고도록(博古圖錄)’과 ‘상하이 박물관 소장 청동기 부록(1964년)’에 수록된 은(상) 청동기 명...

    2008.03.14 17:03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21)상나라와 한민족 下
    (21)상나라와 한민족 下

    이형구 선문대 교수가 빛바랜 논문 한 편을 꺼냈다. 1981년 국립 대만대 유학 시절 작성한 중국어 논문(‘渤海沿岸 早期無字卜骨之硏究’)이었다. 그는 논문 뒤편에 쓴 후기(後記)를 보여주며 추억에 잠겼다.“여기 후기에 ‘내가 병중에 초고를 완성했다(病中完成草稿)’고 했어요. 이 논문을 쓰기 시작할 무렵 대장암 진단을 받았거든. 의사가 수술을 빨리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죽기 전에 이 논문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 수술 날짜도 받지 않고 한 달 동안 밤을 새워가며 신들린 듯 논문을 완성했지. 그리곤 곧바로 다른 병원으로 달려가 재진찰을 받았는데, 아 글쎄 오진이라잖아요.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갑골문화는 동이의 지표27년 전에 쓴 사연 많은 논문은 갑골문화와 우리나라 갑골문화의 관계를 처음으로 다룬 것이다. 논문은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이 발행하는 ‘고궁계간’(81~82년)에 3회 연재되었다. 우리의 국사편찬위원회격인 대만 국립편역...

    2008.03.07 17:46

  • (20)상나라와 한민족 中

    은(상) 마지막 왕 주(紂)의 악행에 대해 변명할 필요는 없다. 충신의 심장을 갈랐고, 육포를 뜨고 젓을 담가 맛보게 했으며, 녹대(鹿台)를 만들어 세금으로 거둔 돈을 가득 채웠으니까. 폭군은 더 나아가 수많은 악공과 광대들을 불러놓고 주지육림의 난행을 펼쳤다. 벌거벗은 남녀들이 그 안에서 서로 쫓아다니게 하면서 밤새도록 술판을 벌인 것으로도 악명을 떨쳤다.(사기 ‘은본기’)-주(紂)왕을 위한 변명-주왕의 악행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지만 “악공과 광대를 불러놓고 밤새도록 술판을 벌인 일”에 대해서는 다소간 할 말이 있다. 바로 음주가무야말로 상나라 풍습의 영향을 받은 우리 민족의 ‘전매특허’가 아닌가.“(은나라 정월에) 하늘에 제사 지내고 음식과 가무를 즐겼다(連日飮食歌舞). 밤낮으로 길을 가다가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하루종일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는다”(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는 부여 풍습이 대표적이다. 마한도 그랬다. “(5월이면) 파종을 마치고 신령께...

    2008.02.22 17:05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9)상나라와 한민족(上)
    (19)상나라와 한민족(上)

    “(시조인) 설 현왕이 아들 소명(설로부터 2대)을 낳고 지석(砥石)에 거주했다.”(순자·성상편)중국 문헌은 동이족인 상족(商族)이 중원으로 내려와 하나라를 멸할 때까지의 역사와 활동무대, 즉 시조 설부터 성탕의 상나라 건국(BC1600년)까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던져놓았다. 중국 학계는 이 문헌기록을 토대로 다각적인 분석에 들어간다.옌산에서 백두산·헤이룽강까지처음에 인용한 ‘순자 성상(荀子 成相)’편의 기록을 검토해보자.“요(遼·랴오허를 뜻함)는 지석에서 나온다”는 내용이 ‘회남자(淮南子) 추형훈(墜形訓)’편에 나온다. 이 내용을 주석한 가오유(高誘)는 “지석은 산의 이름이며 변방의 바깥에 있고, 요수(遼水·랴오허)가 그곳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고 했다. 즉 시조 설은 랴오허의 발원지인 지석에 살았으며, 지금의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츠펑(赤峰)시 커스커텅치(克什克藤旗) 부근이라는 것이다. 물론 ‘남쪽바다’는 ...

    2008.02.15 17:15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8)천하를 제패한 동이족
    (18)천하를 제패한 동이족

    “은나라 시조 설(契)의 어머니는 간적(簡狄)이다. 그녀는 제곡(帝곡·황제의 증손자라 함)의 둘째부인이다. 간적 자매가 목욕을 하러 가는데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이를 받아 삼켜 잉태했다. 그가 설이다.”(사기 은본기)사기에 나오는 은(殷)은 본래 상(商)나라이다. 최근 중국학계와 정부는 ‘하상주 단대(斷代) 공정’에 따라 상나라의 연대를 확정했다. 즉 BC 1600년에 성탕(成湯)이라는 영웅이 하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했으며, BC 1300년에 은으로 천도한 뒤 BC 1046년 주(紂)임금 때 주(周) 무왕에 의해 멸망했다. 은이라는 나라 명은 상왕조의 마지막 도읍 명칭인데, 주나라 사람들이 은으로 낮춰 부른데서 유래되었다. 상나라는 폭군의 나라?상(은)나라는 왠지 ‘폭군의 나라’ 혹은 ‘망국의 한(恨)’을 연상시키기 십상이다.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난행이 너무도 생생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2008.02.01 17:14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7)고조선과 청동기
    (17)고조선과 청동기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의 요령(랴오닝), 러시아의 아무르강과 연해주 지역에서 들어온 덧띠새김무늬 토기문화가 앞선 빗살무늬 토기 문화와 약 500년간 공존하다가 점차 청동기 시대로 넘어간다. 이 때가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으로,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년)”(고교 국사교과서) 지난해 2월, 교육인적자원부가 2007년판 국사교과서를 공개하자 학계가 한바탕 요동쳤다. 새 교과서가 한반도 청동기 시대의 개막을 기존 교과서 내용(BC 10세기)보다 500~1000년 앞당겼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는 애매한 인용문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확정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뒤늦은 감이 있다”는 환영론이 나왔지만, 학계 일각은 “올려도 너무 올렸다”고 아우성쳤다. #한반도를 벗어나라 기자는 논쟁의 출발점이 잘못되었다고 ...

    2008.01.25 16:56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6)중국인의 조상 ‘황제’는 동이족었나
    (16)중국인의 조상 ‘황제’는 동이족었나

    ‘황제(黃帝)집단=훙산(紅山)문화 대표. 옌산(연산·燕山) 남북지구가 주요 활동범위. 어렵이 주요 경제활동.’ ‘신농씨(염제) 화족(華族)집단=양사오(앙소·仰韶)문화 대표. 중원 속작(粟作)농업이 주요 활동범위.’ 지난해 7월30일, 이른바 랴오허(遼河)문명전이 열리던 랴오닝성 박물관 전시실. ‘훙산문화와 오제전설’이라는 제목의 전시공간은 기자의 눈과 귀를 멎게 했다. 훙산문화 시대를 오제전설과 연결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중국인의 조상이라는 황제를 훙산문화 대표로 ‘등록’한 것이었다.-마오쩌둥도 찾은 황제릉- 참 이상한 일이었다. 황제가 누구인가. 중국인의 조상이 아닌가. 그런 황제가 동이(東夷)의 땅을 대표한다는 것이니…. 그렇다면 치우는? 단군은? 굳이 옛날 기록을 들출 필요도 없다. 1912년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이 된 쑨원(孫文)이 서둘러 한 일은 황제(헌원)에게 제사지내는 것이었다. 훗날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나 공...

    2008.01.18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