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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루트를 찾아서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5)훙산·량주문화 중원을 향해 달리다
    (15)훙산·량주문화 중원을 향해 달리다

    “헌원(황제)의 시대에 신농씨의 세력이 쇠약해지는 시기였다. ~헌원이 곰(熊), 큰 곰, 비·휴·범과 비슷한 동물. 비는 수컷, 휴는 암컷), 추(·큰 살쾡이), 호랑이(虎) 등 사나운 짐승들을 길들여 판천(阪泉)의 들에서 염제와 싸웠는데 여러 번 싸운 끝에 뜻을 이뤘다.” “치우가 또다시 난을 일으켜 헌원의 명을 듣지 않아 헌원이 제후들로부터 군대를 징집하여 탁록의 들판에서 싸워 결국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 제후들이 모두 헌원을 천자로 삼아 신농씨(염제)를 대신하였으니 그가 바로 황제다.” 중국 역사서 사기 오제본기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 담긴 함의와 선후관계를 떠올리면서 이 글을 풀어야 할 것 같다. #깨지는 중화사상 주지하다시피 중국 역사계는 중원중심, 한족(漢族)중심, 왕조중심의 중화사상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왜 춘추전국 시대부터 만리장성을 쌓았겠습니까. 그것은 장성이북, 옌산...

    2008.01.11 17:16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4)훙산인의 성지
    (14)훙산인의 성지

    우리의 孝와 닮은 꼴…훙산인의 여신 숭배 뉴허량(우하량·牛河梁) 여신묘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 학계가 ‘여신은 훙산인(홍산인·紅山人)의 조상이며, 뉴허량은 훙산인의 신전이자 성지’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중국 학계는 아예 훙산인을 중국인의 ‘공동’ 조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훙산인은 동이족의 조상이라는 사실은 중국 학계도 인정하는 바다. 그러니 뉴허량은 ‘동이족의 신전이자 성지’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도 비상한 곳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도 여신이…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여신상 같은 소조상은 지금의 만주 일대와 한반도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함북 청진시 농포동과 웅기군 서포항 유적에서도 소조인물상이 나왔다. “특히 1956년 출토된 농포동 인물상은 허리를 잘록하게 좁힌 다음 그 아래는 다시 퍼지게 만드는 등 ‘여신’의 인상을 지울 수 없어요. 둥산쭈이(東山嘴)...

    2008.01.04 17:21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3)훙산인의 어머니
    (13)훙산인의 어머니

    “이제 우리 여신(女神)님 보러 가야지.” 7월30일. 뉴허량(우하량·牛河梁) 적석총 및 제단(제2지점)을 탐사하던 이형구 선문대 교수가 농을 건다. 여신묘(뉴허량 제1지점)를 ‘친견’할 시간이다. 유적 바로 곁을 지나는 베이징~차오양 간 공도(公道)를 무단횡단해서 북쪽 산길로 향했다. 여신묘로 향하는 길은 몸단장이 한창이다. 길가엔 도로용 석재들이 쌓여 있고, 인부들이 그 석재를 깔아 길을 만들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 위해 “중국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사전작업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중국 정부가 발해문명의 꽃을 피운 훙산문화의 본거지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한 20분 정도 산길을 걸으니 저편 숲 속에 허름한 건물 두 채가 보인다. 건물 한 채 한쪽에는 늙수그레한 관리인이 열심히 숫돌을 갈면서 이방인의 방문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여신묘를 보호하는 다른 가건물은 철문으로 굳...

    2007.12.28 17:25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2)훙산 곰의 정체
    (12)훙산 곰의 정체

    단군신화까지 훔쳐가려는 중국 “이 옥기에는 참 많은 뜻이 담겨 있어요.” 지난 7월30일 랴오닝성 박물관. 이른바 ‘랴오허(遼河) 문명’ 특별전을 지켜보던 이형구 선문대 교수가 기자를 붙든다. 뉴허량(牛河梁) 16지점 3호 무덤에서 확인된 짐승머리형 옥기를 가리킨 것이다. 짐승머리 형태로 3개의 구멍이 뚫린 희한한 모양이다. “이기자가 보기엔 무슨 동물 같아요?” “쌍웅수삼공기(雙熊首三孔器)라고 했으니 응당 두마리의 곰과 3개의 구멍이 뚫린 옥기라는 뜻이겠죠.” 유물 설명에 나온 대로 대답할 수밖에. “그동안엔 돼지머리로 보아 저수삼공기(猪首三孔器)라 했거든. 그런데 최근들어 해석이 바뀐거지. 돼지에서 곰으로….” 곰의 정체는? 자세히 보았다. 매우 사실적인 기법이다. 짧지만 둥근 귀와 눈, 모가 났으면서도 둥근 이마, 뾰족하면서도 둥근 입, 얇고 벌어진 아랫입술…. 그러고...

    2007.12.21 17:01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1)뉴허량의 옥기묘
    (11)뉴허량의 옥기묘

    “옥기 쥔 巫人은 神과 소통한 왕” 1989년 가을. 뉴허량(우하량·牛河梁) 제2지점 1호 적석총을 발굴 중이던 조사단은 기이한 모습에 꿈을 꾸는 듯했다. 21호묘에서 무려 20점의 옥기가 쏟아진 것이다. 이것은 훙산문화(홍산문화·紅山文化) 무덤 한 곳에서 나온 가장 많은 옥기였다. 무덤에는 옥기로 도배하다시피한 성인 남성이 누워 있었다. 입을 활짝 벌린 채 반듯이 누워 있는 인골은 짐승 얼굴 모양의 옥패(玉牌), 옥거북이, 옥베개 등으로 잔뜩 치장했다. -옥으로 도배한 인골- 희한했다. 다른 부장품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선사시대 무덤에서 흔히 보이는 토기와 석기 같은 것들은 단 한 점도 없었다. 중국학계는 이런 기이한 장례 풍습을 두고 ‘유옥위장(唯玉爲葬)’, 즉 옥으로만 장례를 치렀다고 정리했다. 뉴허량 유적군에서 정식 발굴을 끝낸 적석총은 모두 4곳에 이른다. 탐사단이 서 있는 이곳 제2지점과, 3지점,...

    2007.12.14 18:11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10)랴오허 동서쪽의 적석총
    (10)랴오허 동서쪽의 적석총

    “돌무덤이 고인돌로 발전했을 것” 혹 맹목적인 순혈·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우리 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우리 문화의 원류와 정체성을 찾는 것이 단순한 피가름이 아니다. 한민족이 단일민족이 아니라 다종족으로 이뤄졌다면 그 여러 종족이 힘을 모아 이뤄낸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것 역시 뜻깊은 일이다.-외줄타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여전히 식민·분단·냉전사학은 떠도는 원혼처럼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북한·중국·러시아 등 우리 역사의 중요한 무대에 대한 현장 조사가 시작된 것은 20년도 되지 않았다. 이형구 교수처럼 일찍이 한·중 수교 이전에 중국 본토의 역사와 고고학을 공부한 이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 가운데 중국은 동북공정, 하·상·대 단대공정, 중국문명 탐원 공정 등 장기 프로젝트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역사왜곡의 주범인 일본은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단적인 예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믿지...

    2007.12.07 15:15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9)뉴허량의 적석총들
    (9)뉴허량의 적석총들

    제단(壇)과 신전(廟), 무덤(적석총), 그리고 옥기(玉器). 흔히 집과 금속, 문자를 문명의 3요소라 하지만 인간의 정신세계와 관련 깊은 제단과 신전, 무덤은 이 3요소를 초월한다. 또한 옥기는 계급·사회분화, 그리고 제정일치 사회의 상징물이다. 바로 발해문명의 뼈대가 된 훙산문화(홍산문화·紅山文化·BC 4500~BC 3000년)의 빛나는 창조물들이다. 지난 7월30일 탐사단은 바로 그 훙산문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뉴허량(우하량·牛河梁) 유적을 찾았다. 이제 훙산문화의 정수인 돌무덤과 제단·신전, 그리고 옥 문화 등을 차근차근 탐구할 참이다. 오전 9시20분 탐사단을 태운 버스가 닿은 곳은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소 뉴허량 공작참(站)이다.-30년 연구의 내공- “(공작참) 관리소장이 회의를 하고 있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네요. 우선 (유물 진열실로) 들어갑시다.” 주인(소장)이 없다는 데도 이형구 선문대 교수...

    2007.11.30 15:56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8)차오마오산과 홍산문화
    (8)차오마오산과 홍산문화

    제단과 무덤, 여기도 동이의 흔적… “우한치 쓰자쯔(四家子) 차오마오산(초모산·草帽山) 유적에서 5500년전 홍산문화 시기의 제단+무덤 결합형식의 의례(儀禮) 건축물이 발견됐다. 이는 원시종교와 장례풍습, 제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새로운 자료다.” 2006년 6월5일, 네이멍구 츠펑 방송은 ‘5500년전 홍산문화(BC 4500~BC 3000년) 시대 적석총의 발견’ 소식을 숨가쁘게 전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올 7월 28일. 경향신문 탐사단은 폐부를 뒤덮는 자욱한 황토먼지, 그리고 뜨거운 불볕더위가 숨을 턱턱 막아버리는 따끈따끈한 유적, 바로 차오마오산을 찾았다. 늘 그랬듯 목표지점은 오리무중이다. 탐사단은 2m가 훌쩍 넘는 남의 집 옥수수밭을 헤치면서 정처없는 발길을 옮겨야 했다. -‘따끈따끈한’ 피라미드- “제기랄, 길이 만날 이 모양이야?” 불평불만이 절로 나왔으나 환갑을 훌쩍 넘긴 이...

    2007.11.23 15:36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7)빗살무늬 토기문화
    (7)빗살무늬 토기문화

    “이건 빗살무늬 아닌가요? 아! 여기 덧띠무늬(토기)도 있네.” 차하이(사해·査海)와 싱룽와(흥륭와·興隆窪) 마을은 물론 신러(신락·新樂), 뉴허량(우하량·牛河梁) 유적을 둘러본 기자는 깜짝깜짝 놀랐다. 싼줘뎬(삼좌점·三座店)과 청쯔산(성자산·城子山)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발길에 부딪히는 토기편을 주우면 어김없이 관찰되는 빗살무늬와 덧띠무늬…. 두 말 할 것도 없다. 기자가 금방 다녀온 차하이와 지금 서있는 이 싱룽와는 8000년 전 동이의 마을. 랴오둥(遼東) 선양시의 신러유적과 동이의 문화가 꽃피운 훙산문화의 본거지 뉴허량 유적도 마찬가지다. 이미 탐사단이 살펴봤던 싼줘뎬과 청쯔산은 BC 2000년 고조선의 영역일 가능성이 짙은 곳이 아닌가. 기자는 이제서야 이형구 선문대 교수가 그토록 “우리 신석기 문화의 고향은 발해연안이며, 시베리아가 절대 아니다”라면서 가슴을 치며 끈질지게 주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

    2007.11.16 16:01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6) 싱룽와 신석기 유적-동이의 발상
    (6) 싱룽와 신석기 유적-동이의 발상

    도시처럼 계획된 ‘8000년전 東夷마을’ 7월27일 오후 2시. 중화 제1촌, 아니 동이 제1촌인 차하이 마을을 탐사한 기자일행은 서둘러 행장을 꾸렸다. 차하이(사해·査海)에서 서쪽으로 200㎞ 떨어진 싱룽와(흥륭와·興隆窪)로 향하는 길이다. 싱룽와는 ‘중화시조취락(中華始祖聚落)’이라는 별명이 붙은 곳이다. 기자가 물었다. “아니 ‘중화 제1촌(차하이)’은 뭐고, ‘중화 시조의 취락(싱룽와)’은 또 무슨 말인가요?” 이형구 교수가 웃으며 대답한다. “차하이는 랴오닝성(遼寧省) 후신에, 싱룽와는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츠펑에 속해있어요. 서로 자기네 동네에서 나온 유적을 최고로 치는 것이죠.”# 중화제1촌, 중화시조취락 요컨대 ‘중국 최초의 마을’ 자리를 두고 네이멍구 자치구와 랴오닝성이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다. 아닌게 아니라 서로 자기네 마을이 8000년 전의 것이고, 다른 마을은 7...

    2007.11.09 1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