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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28) 현대적 외과를 가능케 한 마취술
    (28) 현대적 외과를 가능케 한 마취술

    마취없는 수술,그 상상 이상의 고통을끝내준 사람들“흉측한 쇠뭉치가 내 가슴뼈를 잘라내는 순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단다. 비명은 몸이 파헤쳐지는 내내 멈추지 않았어.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야, 신기하게도. 끔찍하게 아팠어. 수술도구가 치워졌을 때에도 통증은 전혀 줄어들 것 같지 않았다구. 그리곤 곧 내 가련한 몸뚱이로 공기가 달려들었는데 날카로운 단도가 갈가리 찢어대는 것 같았어.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맙소사! 더 무서운 일이 시작된 거야. 이전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나는 수술 칼이 가슴 속을 샅샅이 긁어내는 것을 느끼고 또 느꼈단다.”작가 패니 버니(Fanny Burney, 1752~1840)는 마취를 하지 않은 채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1811년 9월30일 외과의사들은 버니의 오른쪽 가슴에 생긴 유방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4시간에 걸쳐 유방제거수술을 시행했다. 위의 인용문은 버니가 수술한 지 아홉 달 뒤 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2014.12.19 20:29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27) 근대 유럽 초기의 여성 의학 교수들
    (27) 근대 유럽 초기의 여성 의학 교수들

    ▲ 500년 전 병원 설립한 갈린도, 세계 최초 여성 대학교수 바시, 남편 거들다 교수가 된 만졸리니… ‘금녀의 벽’ 낮은 이탈리아가 키웠다대학은 20세기 이전에는 남성들의 독점물이었다. 2009년에 제작된 에스파냐 영화 의 주인공인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의 천문학·철학 교수 히파티아(Hypatia, 370?~415)처럼 여자 교수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고대 시대의 대학은 금녀(禁女)의 집에 가까웠다.서기 395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유일무이한 국교가 되면서 서양문명권에서 사라졌던 대학이 중세 후기에 ‘universitatis’(라틴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고서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의학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위 직종의 여성 의료인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대학 의학부의 학생, 더구나 교수는 꿈꾸기조차 어려웠다. 영미권의 경우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7전8기의 노력으로 의과대학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국의 블랙웰(Elizabeth...

    2014.12.05 21:15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26) 모르가니와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 의학의 종언
    (26) 모르가니와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 의학의 종언

    ▲ 18세기 활동 이탈리아 해부학자 50년 넘게 증례 모아 2500쪽 저서임상과 부검 소견의 관련성 규명‘병은 체액 아닌 장기에 자리한다’ 질병의 실체 찾아 치료하는 계기“야윈 몸집에 포도주 애호가인 74세 난 노인이 한 달 전부터 왼쪽 다리에 체중을 싣듯이 걸었다. 하인들은 절뚝거림을 눈치 챘지만 노인은 그것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불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그런 지 22일째 복부에 통증이 생기자 예전부터 널리 쓰여 온 테리아카 가루로 스스로를 치료했다. 고통이 사라졌다. 하지만 12일 뒤, 오른쪽 하복부에 ‘개들이 물어뜯는 것 같은’ 통증이 생겼다. 통증 부위는 부어올랐고, 내가 손으로 누르자 단단하게 뭉친 것이 만져졌다. 나는 맥박이 정상이 아닌데다, 눈이 움푹 꺼지고, 혀가 말랐음을 알아차렸다.다음날 아침, 맥박이 더 빠르게 뛰었다. 통증과 단단한 덩어리는 이제 가운데와 왼쪽 하복부에까지 번졌다. 나는 혈액을 200g가량 빼라고 처방했다. ...

    2014.11.21 21:55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25) 윌리엄 하비와 현대 생리학의 출발
    (25) 윌리엄 하비와 현대 생리학의 출발

    ▲ ‘의학 변방’ 영국 출신 의학도‘혈액은 중심서 말초로 흐른다’ 전통적 진리에 의문 품어▲ 동물실험 통해 가설 세우고 30년 연구 끝 ‘혈액순환론’ 공표▲ 기존 생리학 핵심 무너지고 실험에 바탕 둔 현대 생리학 탄생1901년부터 수여된 노벨 의학상의 정식 명칭은 노벨 생리의학상. 영어로는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이다. 노벨상이 제정되던 당시 (의)학계와 사회에서 생리학이 차지한 비중과 성가를 짐작할 수 있는 명칭이다. 노벨(Alfred Nobel, 1833-1896) 자신도 독자적인 생리학 연구소를 운영했을 정도로 생리학, 특히 실험생리학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했다.프랑스 생리학자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의 (1865년)은 생리학자와 의사뿐만 아니라 교양인의 필독서였다. 베르나르는 그 책에서 생리학과 의학이 이성적 추론에 근거하는 실증과학이어야 한다고 설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2014.11.07 20:42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24) 인체해부학의 탄생
    (24) 인체해부학의 탄생

    지금부터 꼭 500년 전인 1514년, 벨기에 브뤼셀(당시는 네덜란드령)의 유명한 의사·약사 가문에서 한 아기가 탄생했다. 아기는 자라서 가족들의 염원대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실 주치의가 되어 집안의 전통을 이었다. 이것뿐이라면 이 소중한 지면에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그가 만 스물아홉 살이 되기 직전에 이룬 업적이 이번 이야기의 주제이다. 의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 가운데 하나인 이 위업을 흔히 ‘현대의학(modern medicine)의 기원’이라고 일컫는다. 영어 ‘modern’은 근대로도, 현대로도 번역된다. 역사학 용어로는 근대라고 옮겨야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근대는 현대 이전이라는 어감을 주는 까닭에 여기서는 부득이 ‘현대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해부학은 생리학·병리학의 ‘기초’40여년 전 대학 재학 시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통하지 않는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은 1학년 1학기 내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2014.10.24 21:10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23) 성경에 나타나는 질병과 치유
    (23) 성경에 나타나는 질병과 치유

    ▲ 구약에선… 질병·고통의 원인은 인간의 죄, 그리스 신화와 비슷한 인과응보▲ 신약에선… 민중들의 희망으로 떠오른 예수. 한센병 환자 고친 기록 특히 많아얼마 전 말기 암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된 친지가 있다. 웬만하면 한두 차례 다른 방법에 눈길을 돌릴 법도 하건만 한결같이 주치의를 신뢰하여 꾸준히 치료를 받고는 마침내 완쾌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완치를 계기로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직접 치료해준 주치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고 또 각기 존중받아야 한다. (종교를 갖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에 귀의하는 이유 중에는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질병에서 낫기 위한 것도 적지 않을 터이다. 이런 종류의 신앙을 기복적이라고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는 과연 정당할까?역사적으로 볼 때...

    2014.10.10 21:28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22) 에볼라 출혈열과 고대의 역병
    (22) 에볼라 출혈열과 고대의 역병

    ▲ 피해 규모도 엄청나지만 사회 질서 완전히 무너진 게 더 큰 문제… 인간의 의지 넘어 역사의 향방 좌우하기도지난 23일(미국 동부 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은 최악의 경우 에볼라 출혈열 환자가 내년 1월 말까지 140만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는 감염자가 최대 2만명이 되리라는 8월 하순의 세계보건기구 전망치를 크게 뛰어넘는 것으로, 세계보건기구 대변인은 자신들의 예상이 틀렸다고 인정했다. 또한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민간단체 국경없는의사회의 대변인은 이번 에볼라 열이 ‘이미 사상 최악의 대유행’이라고 표현했다.에볼라 열 환자가 최초로 발생한 것은 1976년 8월26일 콩고민주공화국(당시 국호는 자이르)의 북부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 얌부쿠에서다. 마을 학교 교사인 로켈라는 며칠 전 북쪽으로 100㎞쯤 떨어진 에볼라 강 일대를 다녀와서는 열이 오르자 말라리아가 재발한 것으로 진단받았다. (에볼라라는 이름이 붙...

    2014.09.26 21:43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21)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는 현대의학의 모범인가
    (21)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는 현대의학의 모범인가

    ▲ 합리적 의학 세우는 데 기여했지만 실제 질병의 치료·예방은 당시 의학 능력 한참 벗어나… 역사적 진실 안에서 교훈·모범 찾아야“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구약성경 <전도서> 1장 9~10절)질병은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 아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여러 가지 병을 앓는다. 고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 이전의 생물체에서도 다양한 질병이 발견된다. 예컨대 중생대에 살았던 공룡의 화석에서 양성인지 악성인지 확실치 않지만 종양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라는 <전도서>의 언급처럼 질병은 태곳적부터 존재했다. 아마도 질병의 역사는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났을 즈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니, 인류는 질병을 품에 안...

    2014.09.12 21:35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20) 공자와 ‘황제내경’
    (20) 공자와 ‘황제내경’

    ▲ 신이 아닌 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 의술을 다룬 의학책, 비행기도 전화도 없었던 이역만리 두 나라에서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은 경이로워“선생께서 병이 깊어지자 자로가 기도하기를 청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자로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전해오는 제문(祭文)에 이르길, 너를 하늘과 땅의 신들에게 기도한다, 라고 했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기도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 ‘술이(述而)’편 34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년)의 병세가 심해지자 제자 자로(子路, 기원전 542~480년)가 스승에게 병에서 회복되도록 기도를 권했지만 공자가 그것을 거절하는 대화이다.한편 논어 ‘옹야(雍也)’편 6장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백우가 병에 걸리자 선생께서 문병을 가셨다. 창문을 통해 백우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럴 리가 없는데. 운명인가 보구나. 이런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2014.08.29 21:28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9) 히포크라테스는 누구인가
    (19) 히포크라테스는 누구인가

    ▲ 생몰연대도 알 수 없는 ‘의학의 성인’… ‘합리성’ 추구한 의학의 시초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이름을 빌린 의사 선서는 ‘의술의 신’ 이름이 가득의학과 무관한 사람이라도 대개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년?)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그에 대해 물으면, 옛날 서양의 유명한 의사라거나 그의 이름이 붙은 ‘의사 선서’를 언급한다. 의학 역사를 전문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더라도 거기에서 많이 나가기는 힘들다. 그만큼 히포크라테스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이름난 의사, ‘의학의 성인’이라고까지 불리는 사람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니! 뜻밖이지만 사실이다. 생몰 연대도 어림값일 뿐이다.히포크라테스에 대한 자료가 적지는 않다.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출신의 의사 소라노스(서기 100년경)가 쓴 것을 비롯해서 전기도 몇 편 있고, 전승된 이야기는 제법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것들의 신뢰성이 크게 떨어져 역사적 사실이라고 인정할 ...

    2014.08.15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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